국민 불신 심각한데 대책커녕 반성 한마디 없어
여당 사법개혁안에 '우려' '신중'뿐…사실상 거부
"독립 보장" 요구만…외부 개혁의 당위성 재확인
민주 "사법개혁 방해하면 국민 결코 좌시 안 해"

정청래 "대선 후보도 바꾼단 오만이 재판 독립?"
"사법부가 시동 건 개혁, 다 조희대의 자업자득"
강득구 "법원장회의 집단행동…조희대 사퇴해야"
이성윤 "정치검찰 '전국검사장회의' 보는 듯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각급 법원장들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9.12. 연합
 

사법부가 전국법원장회의를 통해 "사법 독립 보장"에만 목청을 높이고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나 조희대 대법원의 대선 개입 등 내란 공범에 가까운 일련의 작태를 벌인 데 대해서는 재발 방지책은커녕 일말의 반성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집권여당은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자초한 것임을 다시금 환기시키며 "사법개혁을 끝까지 거부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13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국법원장회의는 사법부의 역사적 과오와 현재까지 내란 재판이 장악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사법부 스스로가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백 원내대변인은 "사법개혁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정한 사법을 실현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다. 만약 사법부가 사법개혁을 거부하거나 이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국민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법부는 왜 사법개혁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는지, 왜 개혁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과거 군부독재 시절 민주 인사를 탄압하는 반인권적·반헌법적 판결이 내려졌고, 민생범죄에는 가혹하면서도 기득권 권력형 범죄에는 관대한 판결을 일삼았다. 불법 계엄 상황에서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사법부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다"면서 "또한 내란 수괴를 석방하고 내란 재판을 앞두고 휴가를 떠났으며, 한덕수를 비롯해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을 반복적으로 기각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특히 대법원이 대선 후보 교체를 시도했다는 노골적인 대선 개입 의혹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고 사법부 적폐를 열거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법부는 국민의 명령인 사법개혁에 단호히 나서야 하며, 윤석열·김건희의 국정농단과 내란 재판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사회적 합의와 개혁 입법을 통해 시대적 과제인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반드시 완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시상에 앞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2025.9.12. 연합
 

정청래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조 대법원장을 직접 거명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 대표는 <조희대 "재판 독립 확고히 보장돼야…내란재판부 위헌 여부 검토">라는 TV조선 보도 제목을 언급한 뒤 "대선 때 대선 후보도 바꿀 수 있다는 오만이 재판 독립인가?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시동 걸고 자초한 거 아닌가?"라며 "다 자업자득이다.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이라고 일갈했다.

 

대법원이 터무니없는 졸속 심리 끝에 6·3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던 지난 5월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던 사태를 지적한 것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던 당시 '사법 쿠데타'를 조 대법원장이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정 대표는 또 <장동혁 "정청래, 조희대 겁박하고 나서…위험천만">이라는 SBS 보도 제목을 거론한 뒤 "노상원 수첩만큼 위험천만할까? 국민을 겁박하고 죽이려 했던 자들이 누구인지 국민은 다 안다"면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부터 하라. 패륜적 망언을 한 송언석도 사과하고"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사법부 말살 시도' 운운한 데 대해서도 "사법부 말살은 윤석열이 하는 짓 아닌가? 내란수괴 피고인 윤석열이나 재판 똑바로 받으라고 전하라"며 "내란세력은 반성과 사과가 없다"고 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4.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전국법원장회의 결과를 개탄하며 사법개혁의 당위성을 재확인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법개혁은 시대적 과제이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사법개혁의 열차는 국민과 함께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사장 출신으로 국회 법사위 소속인 이성윤 의원은 "조희대 '전국법원장회의', 사법개혁에 사법 참여 강조! 정치검찰 '전국검사장회의' 보는 듯하다"며 "헌법은 '사법왕국'이 아닌 '국민주권'을 원한다"고 했다.

 

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조희대, 지귀연은 '내란 공범'에 해당한다. 조희대, 지귀연을 그대로 두고 사법부 독립 운운하는 것은 깡패 짓을 하고도 벌 받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조 대법원장의 '사법정치'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 사법 불신을 풀어낼 실마리이며,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해법이 없다면 그 해법은 외부로부터 추진되지 않을 수 없다는 요지의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글을 들어 "한인섭 교수 주장에 틀린 말이 없다. 사법부는 주권자 시민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고 단언했다.

 

강득구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자마자 일정을 앞당겨 사상 초유의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윤석열을 지키기 위해 구속 기간을 시간 단위로 쪼개야 한다는 황당한 판결을 내린 지귀연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자들이 사법부 독립을 말한다.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다. 나아가 "사법부가 진정 독립을 원한다면 먼저 대선 개입과 정치적 판결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면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퇴하고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 의원은 "어제 전국법원장회의가 열렸다. 윤석열 정권 시절 내란과 국정농단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못하던 분들이 정작 자신들의 권한이 줄어들까 봐 집단행동을 하는 모습으로 비친다"며 "그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있는 권력은 없다. 내란특별재판부는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성역이 아니다. 과거 법기술자들이 정치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훼손했던 흑역사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고 전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5.9.12. 연합
 

앞서 대법관인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전국 각급 법원장들은 12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열고 여당의 사법개혁 추진과 관련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회의는 오후 2시에 시작해 약 7시간 반 만인 오후 9시 25분쯤 종료됐다.

 

이번 회의는 지난 1일 천대엽 처장이 법원장들에게 민주당 사법개혁안에 관한 소속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법원장들은 민주당 사법개혁 특위가 추석 전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의제에 대해 각급 판사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를 진행했다.

 

법원장들은 회의 뒤 보도자료를 내고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중대한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이므로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입장을 함께 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고법원 구성과 법관인사제도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 요소"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므로 그 개선 논의에 사법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대다수 판사는 '충분한 숙고 없이 진행된다' '사실심 기능 약화가 우려된다' '상고제도의 바람직한 개편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등의 이유로 단기간 내 대폭 증원에 우려와 함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를 통한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에도 대다수 판사는 우려와 함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법관평가제도 개선 논의에 대해서도 대다수 판사가 사법권 독립 침해 우려나 위헌성 소지를 들어 발의된 법안에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공식 안건은 아니었지만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를 두고도 논의가 진행됐다. 이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고 한다. '우려' '신중' 등의 우회적인 표현을 썼으나 사법개혁 주요 의제 대부분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장회의는 사법행정 기구를 이끄는 법원행정처장이 주재하기 때문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에 열린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사법부는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의 헌법 가치를 중심에 두고 과거 주요 사법제도 개선이 이뤄졌을 때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전례를 바탕으로 국회에 사법부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사법개혁에 사법부 의사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법원장들에게 미리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   <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