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마라라고 구상'은 '제2 플라자 합의'
천문학적 무역·재정적자를 동맹국에 덤터기

안보지원조차 돈으로 환산, 사실상의 협박
G5 경제사정 약해지며 한국때리기로 선회

 

1985년 서방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들이 모여 '플라자 합의'를 결정한 뉴욕의 플라자 호텔. 아사히신문 9월 22일

 

22일은 1985년의 ‘플라자 합의’ 4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는 그날을 일본 언론들은 잊지 않았다. 40년 전 그날 뉴욕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는 플라자 호텔에 모인 G5(미국, 일본, 독일[서독],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주요 5개국) 재무장관들은 당시 강세였던 미국 달러 시세를 끌어내리기 위해 일본 등 나머지 나라들이 보유 달러를 팔고 자국 통화를 사들이는 환율 조작 국제협조에 합의했다. 주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고 있던 일본과 독일을 겨냥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천문학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플라자 합의 뒤 일본은 5%였던 정책금리를 2%(1987년 2월)까지 내렸다. 이처럼 G5가 동시에 달러 풀기 환율 개입에 나선 뒤 3개월만인 1985년 말 1달러=240엔대였던 엔 시세가 200엔대로 뛰었고, 그 다음해 중반에는 150엔대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엔 시세는 플라자 합의 뒤 단기간에 2배 이상으로 뛰어 올랐다. 그럼에도 일본의 수출이 당장 급감한 건 아니었지만 급속도의 엔 강세로 인한 자금 경색과 내수 부진을 풀기 위해 일본 정부는 금리를 대폭 내렸다. 아베 신조 정권 때의 마이너스 금리까지 이어지는 그 금융(양적)완화는 투기 과열, 거품 경제로 귀결됐다. 1990년대 초에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의 기나긴 불황터널로 빨려들어 갔다.

 

플라자 합의 뒤 미국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엔 시세의 변화 추이. 1970년 1달러=350엔이었던 엔 시세는 1985년 플라자 합의(검은 점선) 직후 급등하기 시작해 1달러=100엔 가까운 강세를 유지했다.. 아사히신문 9월 22일

 

미국이 기획한 그 플라자 합의의 성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미국이 다급했던 ‘쌍둥이 적자’를 줄이는데는 일정한 효과가 있었다. 미국은 일단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미국이 저질러 놓은 금융, 경제정책 미스로 미국경제가 떠안게 된 짐을 다른 주요국들에게 전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스티븐 미런 FRB 신임 이사.  KSAT.com

 

트럼프의 제2 플라자 합의 ‘마라라고 구상’

 

그 40년 뒤인 지금, 미국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2024년도 미국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치인 9184억 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도 7월 한 달의 무역적자가 783억 달러로 6월보다 32.5%(192억 달러) 늘었다. 2024년 재정적자는 약 1조 8300억 달러였고, 2025 회계연도에는 더 늘어 누적 적자가 22조 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재정적자에 대한 이자로 나가는 돈만 연간 1조 달러가 넘는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로 들어간 그의 책사 스티븐 미런 당시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율과 채권, 안보, 무역(관세)정책을 패키지로 한 대책을 입안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이애미 마라라고 저택에서 조정된 그 대책은 ‘마라라고 구상’으로 알려졌다. ‘제2의 플라자 합의’로도 알려진 마라라고 구상은 제1 플라자 합의 때와 비슷한 문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짜낸 방안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19일 워싱턴 D.C. 백악관 타원형 사무실에서 골드 카드 비자에 대한 서명된 행정 명령을 보여주고 있다. 2025.9.19. 로이터 연합

 

관세협상 아닌 사실상의 협박, 한국도 주요대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40년 전과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긴 해도 지금은 미국과 세계의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마라라고 구상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선지 지금 트럼프 정권은 특히 4가지 요소 중에서 관세와 안보를 무기 삼아 동맹국들을 협상이 아니라 사실상 협박하면서 자신들 요구를 수용하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 주요 협박 대상에 한국이 포함돼 있다는 것도 40년 전과는 다른 점이다. 없었거나 거의 없었던 관세를 15% 이상은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 상품을 대량 구입하고 5500억 달러, 350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돈을 미국정부 처분에 맡기라는 트럼프 정권은 그것을 협상이라고 부른다. 특이하게도 제1 플라자 합의가 주로 일본을 겨냥한 것이었다면 제2 플라자 합의는 한일 두 나라를 한묶음으로 엮어 겨냥하고 있다. 어쨌든 제1 플라자 합의 40년 뒤 한국이 협조든 협박이든 미국이 자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끌어들여야 하는 G5, G7급 주요 대상국이 돼 있는 현실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인 서방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들. 중앙이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 맨 오른쪽이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대장상.  나무위키

 

40여년 전 미국서 유행한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

 

40년 전은 동서 냉전시기였고, 서방의 G5나 G7의 경제력도 압도적이어서 협상을 통한 상호양보와 결속이 가능한 시기였다. 그때도 미국은 환율과 관세를 만지작거리면서 여차하면 보호무역주의 관세전쟁을 벌이겠다는 강경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서방 동맹국들이 당시 플라자 합의에 동의한 것은 언제 터져나올지 모를 미국의 그런 폭주를 사전에 막기 위한 바람 구멍 내지 가스 빼내기 차원의 협조였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이 고안해낸 방식은 달러 시세(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춰 미국 수출과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것이었다. 플라자 합의 전인 1980년대 상반기에 미국에선 인플레(물가 상승)가 진행 중이었다. 이를 억누르기 위해 당시 폴 볼커 FRB 의장은 금리 인상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가 달러 강세였다.

 

지난 해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민주당 집권 연장에 실패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도 물가고(인플레)였다. 고용이나 성장 등의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았으나 뛰는 물가 때문에 바이든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유권자들 평가는 좋지 않았고, 트럼프 쪽은 그것을 파고들었다. 재집권 뒤 트럼프가 인플레를 걱정하는 제롬 파월 FRB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줄기차게 압박하는 것은 인플레 위험에도 불구하고 40년 전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플라자 합의를 기획했던 것과 같은 이유, 즉 미국 제조업 부활과 수출 증대를 위해서다.

 

달러 강세 기조를 바꾸려면 미국은 금리를 내리고 일본은 금리를 올려야 한다. 당시 일본은 GDP(국내총생산)이 세계 전체GDP의 10%가 넘을 정도로 잘 나가던 나라였다. 일본 자동차와 가전제품, 반도체가 세계를 휩쓸었다. 미국 대외 무역적자의 30%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다. 에즈라 보걸의 책 이름인 ‘재팬 애즈 넘버원’(세계 최고 일본)이란 말이 유행했다.

 

그런 시기에 G5가 미국의 플라자 합의 구상에 협조했다고 하지만 일본이 순순히 따랐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일본에 비관세장벽을 없애라며 미국산 수입할당제 같은 것을 노골적으로 압박했고, 미국 시민들이 도요타나 닛산 자동차를 길거리에 세워 놓고 두들겨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인종차별적 성격까지 밴 ‘재팬 배싱’(Japan bashing. 일본 때리기)이 미국사회를 풍미했다.

 

더 거칠어진 지금의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

 

그 40년 뒤 대미 무역 흑자국에 대한 미국의 그런 강압적인 행태는 한층 더 강도가 세졌다. 조지아 주 서배너 인근의 현대-LG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한국인 기술자 3백여 명을 군사작전 벌이듯 기습해 폭력적으로 체포 구금한 사태가 그것을 상징한다.

 

40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일본의 가전과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제조업과 첨단산업을 겨냥했던 미국의 압박은 그 상당부분을 대체한 한국과 중국 쪽을 향하고 있고, ‘주적’으로 설정한 중국보다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압박과 ‘무례’가 훨씬 더 모욕적이고 노골적이다. 40년 전의 ‘일본 때리기’와 같은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라고 할까.

 

달랐던 일본과 독일의 대응

 

제1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기업들은 가격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거점을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이전했다. 그 결과 일본 국내산업이 공동화하는 바람에, ‘아베노믹스’로 금리를 낮춰 무제한 돈을 풀었지만 수출은 별로 늘지 않았다. GDP의 250%가 넘는 재정적자와 엔 약세 속에 임금과 소비는 수십년 간 제자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치솟아 실질임금은 내려갔다.

 

독일의 경우 플라자 합의 뒤 마르크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출에 불리해지자 공동통화 유로를 창설해 역내 환율을 안정시키고, 자동차와 의약품을 비롯한 부가가치 높은 제품들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쪽으로 대응했다. 앙겔라 메르켈 정권 때 그렇게 해서 일본식 ‘잃어버린 세월’을 피해갔던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폭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마이애미 마라라고 리조트 내의 트럼프 별장.  나무위키

 

실현 가능성 없는 제2 플라자 합의

 

일본 미즈호은행의 가라카마 다이스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1 플라자 합의와 달리 제2 플라자 합의, 즉 마라라고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면서 3가지 요소를 그 이유로 들었다.

첫째, 외환시장 하루 거래량이 4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10배 이상) 정부나 중앙은행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는 당시의 서방 G5와 같은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의 협조체제에 지극히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고 있다. 40년 전에 미국은 자신이 저지른 정책 미스 때문에 생긴 짐을 서방의 다른 동맹국들에 떠넘겼지만, 한편으로는 냉전의 한 축을 이끌었던 중심국으로서 휘하 서방 주요국들의 이익도 일정부분 보장해 주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지 오래인 지금 미국 제일주의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 정권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동맹국의 안보 지원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분명한 대가를 요구하면서,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찾기에 여념이 없는 트럼프에겐 전통적인 동맹전략의 개념조차 없어 보인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주요국들의 경제사정도 좋지 않다.

 

세 번째는 일본경제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아사히> 4월 23일)한때 세계 GDP의 15%까지 차지했던 일본의 GDP는 지금은 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트럼프 정권의 마라라고 구상이 한국과 일본을 한묶음으로 엮어 관세 및 투자 공세를 펼치고 있는 듯 보이는 것도 이런 일본의 약체화를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 달리 말하면 한국의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미국과 유럽, 일본의 상대적 쇠퇴는 그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분점해 왔던 글로벌 차원의 부(생산)가 한때 그들의 지배를 받고 수탈을 당했던 그 나머지 국가들의 성장과 함께 분산되면서 G5 등으로 불렸던 그들의 몫이 상대적,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 등 서방 부국들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자국 기업들을 개도국, 신흥국에 재배치함으로써 손실분을 만회했으나, 더는 자본주의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는 뉴프런티어(새 개척지)를 찾을 수 없는 행성적 한계에 봉착하지 않았을까. 트럼피즘의 MAGA는 그 한계를 일국 차원에서 돌파하려는 가망없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