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 Hot 뉴스 2025. 11. 25. 13:0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현타’조차 오지 않는 윤석열의 추락


학교 후배에게 책임 전가하는 비루함
검언 합작으로 ‘괴물’이 된 검사와 기자
괴물 윤석열을 키운 조력자 친윤 언론
신상필벌로 괴물 등장 원천봉쇄해야

 

‘분노의 5단계’라고 하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시한부 판정 같은 엄청난 현실에 봉착하게 되면 인간이 겪는 극심한 심리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분노하다가 현실과 타협하고 우울감에 빠졌다가 결국 현실을 수용한다는 겁니다.

 

‘현타’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수의를 입어야 하는 피의자로 신분이 추락한 윤석열도 인간이기에  ‘분노의 5단계’가 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내란 법정의 윤석열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피할 수 없는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이 아니라 3류 예능쇼에 출연한 떠버리 같았습니다. 건들건들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히죽거리는 그를 보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피할 수 없는 내란 수괴가 아니라 ‘내가 한때는 말이야’를 반복하는 뒷골목 건달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런 윤석열에겐 ‘현타’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고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윤석열. MBC 뉴스데스크 화면

 

윤석열의 장광설에 따르면 후배인 여인형은 ‘정보통’이 아닌 소총 들고 진격하는 ‘야전통’입니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여인형을 방첩사령관에 앉혔습니다. 학연을 고리로 자리를 주면 무슨 일이든 시킬 수 있는 믿음직한 고교 후배라서, 계엄을 염두에 두고 그랬을 겁니다. 12·3 계엄 당시 대통령 윤석열이 방첩사령관 여인형에게 이재명·우원식·한동훈 등을 콕 짚어 체포 지시를 내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니랍니다. 그런 적 없답니다. 여인형이 알아서 한 거랍니다. 내란 재판 법정에 나온 피고인 윤석열은 ‘뭘 모르는 애’ ‘이 새끼’ ‘황당한 애’ ‘이 자식’ ‘어떻게 이런 놈이’ 등등의 저속한 표현을 써가며 고교 후배인 방첩사령관 여인형의 흉을 보더니 증인으로 나온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게 ‘그렇죠?’를 연발하며 동의를 구하더군요. 재판정에서 윤석열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을 직접 심문한 내용 중 일부를 옮깁니다.

 

“후배니까 ‘야, 이 새끼야’라고도 하고 말을 놓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 친구 이거 뭘 모르는 애 아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들었죠?”

“여인형이가 통신사에 실시간 위치 추적을 해달라고 얘기할 때  아니 이거 이 자식이 도대체 방첩사령관이란 놈이 이거 수사의 '시옷'도 모르고, 이놈이 뭐 아무리 야전통이라 해도 어떻게 이런 놈이 방첩사령관을 하나 그런 생각 들었죠? 그죠?”

“아니 이 친구가 뭐 검거하고 체포한다는데 도대체 이런 ABCD도 모르는, 이런 일을 제대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런 생각 들었죠?”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흉을 보는 걸 ‘뒷담화’라고 합니다. 저 살자고 고교 후배인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저속한 언어로 험담하는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의 비겁한 언행에 참다못한 홍장원 전 차장은 두 마디로  윤석열의 입을 봉해버립니다.

 

“피고인!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겁니까?”
“여인형 사령관에게 왜 그런 지시를 한 겁니까!”

 

윤석열은 저급함과 찌질함, 비루함을 넘어 인격 파탄자가 맞습니다. 인간의 기본 품성을 잃어버린 괴물입니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고시 9수를 할 수 있는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윤석열은 어쩌다 괴물이 되었고,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을까요?

 

영화 ‘야당’은 정치 영화가 아닙니다. 제목은 ‘야당’이지만 출세욕에 눈이 먼 검사가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검사는 구속된 피의자에게 공갈과 협박으로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각본대로 진술하는 ‘진술 세미나’도 합니다.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회유하고, 증거를 조작·은폐하고, 검사실에서 보온병에 담아온 소주를 마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검찰 출입 기자를 심부름꾼처럼 부리면서 검언 합작으로 검사 출신 대선후보의 해결사 노릇도 마다지 않습니다. 영화 속의 검사는 선거판을 뒤엎는 도박을 하다 결국 파멸을 맞게 됩니다.

 

검사가 구속된 피의자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영화 ‘야당’의 한 장면.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던 현실의 부장검사는 피의자에게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배를 가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검사가 이런 말로 피의자를 회유하고 협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따님이 한 6살 되나요? 애가 이쁘장하던데. 우리 인간적으로 합시다, 잔인해지기 전에. 가족을 지키셔야죠. 그렇죠?”

 

미끼를 슬쩍 던지며 검찰 출입 기자를 유인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기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 선물이라도 받는 표정으로 미끼를 덥석 물어버립니다.

 

“소스만 주시면 제가 운을 띄워 보겠습니다.”
“박자 잘 맞출 자신 있어?”
“제가 탬버린을 기가 막히게 칩니다.”
“송 기자, 검찰 출입한 지 몇 년 됐어?”
“예, 올해로 4년차 됐습니다. 검사님.”
“아이, 말끝마다 검사님, 검사님. 4년차라면 같은 패밀리인데,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영화에 나오는 기자는 검사가 먹이를 던져주면 덥석 받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근사하게 포장해 대중을 자극하는 보도를 합니다. 그 먹이는 최면제가 주입된 사과이고, 그걸 먹은 대중은 집단 최면에 빠집니다. 그걸 알면서도 과장과 왜곡의 기술을 발휘하여 원청업자를 흡족하게 하는 하청업자, 우리는 그런 보도행태를 ‘검·언 유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기자를 수족처럼 부리던 검사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검찰 기자라고 자기가 검사인 줄 알아요.”

 

어떤 영화는 언론보다 더 사실적으로 세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 ‘야당’도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파멸에 이른 검사가 체포되어 검사실에서 끌려 나오는데, 카메라는 그의 등 뒤로 소훼난파(巢毀卵破)라는 사자성어가 쓰인 액자를 무심히 보여줍니다. 둥지가 훼손되면 그 안에 있던 알도 깨진다는 의미입니다. 검찰 조직이 검사인 너를 보호해줄 것이니 너는 오로지 조직에 충성하라는 의미로 걸어둔 것이겠지요. 영화에서는 한 사람의 일탈이 핵폭탄이 되어 조직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읽혔습니다. 지금 검찰이 그런 것처럼. 감독의 섬세한 미장센에 박수!

 

영화 ‘야당’의 한 장면. 검사실에 걸린 ‘소훼난파(巢毀卵破) 액자가 보인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가 바르게 자라려면 가정 교육, 학교 교육은 몰론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육계에서는 제법 잘 알려진 로버트 풀검 목사의 저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의 상아탑 꼭대기에 있지 않았다.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모래성 놀이를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다는 겁니다. 아이들을 ‘암기하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는 갈대’로 키워야 합니다. 부모는 이기심을 가르치고 학교에선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사회에 나와선 수단이 목적을 지배하는 출세 지향의 본말전도를 익히면, 아이는 괴물로 자라게 됩니다.

 

윤석열이 괴물이 된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있습니다. 검찰총장 윤석열을 영웅으로 미화하며 대선 출마를 부추긴 언론이 있었습니다. 리더로서의 자질과 함량이 부족하다는 게 드러날 때마다 이를 감싸고 옹호하던 언론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을 지우는 청소부’를 뽑는 선거이니 닥치고 윤석열을 찍으라고 선동하는 언론이 있었습니다. 궁금합니다. 감옥에 갇힌 윤석열은 지금 그 언론을 고마워할까요? 아니면 너희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다고 저주를 할까요?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부단히 권력을 탐하는 한국의 어떤 언론은 권력과 유착했던 과거를 반성하지 않습니다. 할 말을 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정권을 편든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거짓으로 거짓을 덮어가며 지난 여름에 한 짓을 감추려다 점점 더 확증편향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그 늪의 이름은 소훼난파(巢毀卵破)입니다.

 

숲을 보면 나무를 볼 수 없듯이 잎이 무성하면 나무의 형태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잔가지를 모두 쳐내야 합니다. 그러면 큰 줄기가 보입니다. 언론의 대장동 관련 기사에는 7886억이니 5823억이니 1415억이니 428억이니 하는 숫자가 난무합니다. 기자들은 그 숫자가 어떻게 산출된 숫자인지 알고 있을까요? 불법이익, 범죄수익, 초과이익, 추징금, 도둑질 등 음습한 용어가 지면에서 춤을 춥니다. 기자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부산 엘시티 사업은 개발이익이 1조 원이 넘었다는데 부산시는 왜 개발이익을 한 푼도 환수하지 않았을까요?

 

잔가지 쳐내듯 지면에 난무하는 숫자와 용어를 쳐내면 줄기에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검찰은 왜 대장동 수사를 한 걸까? 이제껏 부동산 개발이익을 환수한 지자체가 없었고 이재명 성남시장이 처음이라는데, 왜 선한 목민관이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고 수사대상이 된 걸까?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이재명 시장이 ‘대장동 그분’이라면, 왜 대장동 사업자들에게서 공산당이라는 욕을 먹어가며 막대한 개발이익을 환수했을까? 그 질문이 ‘대장동 사건’의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이재명을 죽이려다 윤석열도 ‘친윤 언론’도 괴물이 되었습니다. ‘정적’ 이재명을 겨눈 윤석열과 친윤 언론의 총구는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요?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그 말에 답이 있습니다. 특검으로 ‘대장동 사건’의 진상이 투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사필귀정이 되어야 하고, 신상필벌의 교훈을 남겨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을 세우지 못하면 괴물은 또다시 태어나 세상을 어지럽히게 될 것입니다.             < 송요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