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기쁨과 소망]  광야에서 제자리 걸음?

 

                                                             송만빈 목사 (노스욕 한인교회 담임)

   

    나침반 없이 사막이나 깊은 숲을 걷는다고 상상해 보자. 분명 똑바로 걷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실상은 방향 감각을 잃고 한 지점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맴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환상방황(Ring Wanderer)’이라 부르는데, 대부분 악천후나 피로 등으로 인해 방향감각을 상실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실제 실험 결과, 해나 달 같은 지표가 보일 때는 피실험자들이 직선으로 이동했지만, 안개나 구름이 끼거나 밤이 되어 시야가 차단되면 자신도 모르게 방향을 잃고 뱅글뱅글 돌았다. 눈을 가렸을 때는 더 심각했다. 고작 지름 20미터의 작은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기준점이 사라진 인간의 감각은 이토록 불완전하다.

 

    이와 오버랩되는 성경의 사건이 있다. 출애굽 후 40년간 광야를 유랑했던 이스라엘 백성 이야기다. 홍해의 기적, 마라의 쓴물, 만나와 메추라기 같은 숱한 이적을 체험했음에도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직진하지 못했다. 불신앙과 원망으로 영적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가데스 바네아 주변을 맴돌며 긴 세월을 보냈다. 만약 그 상태로 곧장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여호수아 사후 펼쳐진 사사 시대를 보면 안다. 40년의 혹독한 광야 훈련을 거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눈 가린 실험자처럼 ‘죄-심판-회개-구원’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반복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입성했다면, 더 깊은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굴레 속에서 맴돌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의 유랑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하는지 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걸음마를 다시 배우는 학교였다.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반석에서 터진 물은 단순한 식량 공급이 아니었다. “나는 너희를 인도하는 여호와요, 너희의 공급자다.”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법을 뼛속 깊이 새기기 위한 훈련 교재였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광야와 다르지 않다. 문제와 결핍 앞에서 불평과 낙심을 반복하다 보면, 기도해도 변한 것이 없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물론 하나님은 기다려주신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시고, 다시 걷게 하시며,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게 하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평생 걸음마 훈련만 받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시겠는가?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이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말씀은 길을 비추는 등불이요, 성령은 진리로 이끄는 안내자다. 삶이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 같아도, 나침반만 확실하다면 길을 잃지 않는다. 제자리를 맴도는 환상방황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걷고 있는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날마다 점검해야 한다. 비록 그 걸음이 조금 느릴지라도, 정확한 나침반을 손에 쥐고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나침반을 손에 쥐고, 천성을 향해 담대히 걸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