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한마당]   호르무즈 파병론, 실망스럽고 불안하며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국민주권정부가

 국제적 · 외교적 파장과 국가의 안위

 국민적 자존심과 명분을 걸만한 대상이라고 판단하는가"

 

시민사회단체들의 주한 미국 대사관 앞 호르무즈 파병반대 시위(연합]

 

한국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못이겨 전쟁중인 호르무스 해협에 국군파병을 적극 검토해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불안하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아닌가.

이례적으로 우방인 이스라엘의 만행을 해적행위라고 비난하는 결기를 보여 선진외교라는 평가도 받았던 이재명 정부가 설마 그런 위험한 결정을 내리겠느냐는 의구심이 자꾸만 커져 불신감으로 변하는 것은, 청와대와 국방부의 모호한 태도 때문이다.

보도가 사실일 개연성이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호르무즈 파병의 예민함과 위험성을 모를 리 없는 이재명 정부가 긍정적 검토로 돌아선 데는 ‘동맹협력’을 강압하는 미국측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얼마나 집요하고 전방위적이며 위협적인지를 암시한다. 

최근의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 군사훈련을 트럼프 대통령이 축소-중단 시키자 당황한 데서도 압박강도의 일단이 감지된다. 역대 민주정부가 남북대화를 위해 중단하자고 제안하곤 했던 훈련이었는 데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가이익과 국민생명을 지켜야할 책임과 의무(責務)가 지상명제이며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다. 거센 외압에 시달려 고육책을 찾는 고충은 이해못할 바 아니나, 국민과 국가에 대한 책무에 우선할 수는 없다.

코앞에 닥친 정권의 득실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국가의 안위가 최우선임을 명심하여, 결코 시류에 영합하거나 줏대없는 결정으로 후회나 후유증을 자초하지 않을 강단있는 리더십과 대처가 절실한 것이다.

벌써 시민사회가 파병 강력 반대를 들고나오는 것은 국민과 국가의 자존과 안위에 심각한 불안요소라고 판단한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왜 호르무즈 파병이 실망스럽고 불안하며 현명하지 못한 실책인지,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국군 파병의 득실을 따져보면 그 불합리와 비현실적 근거가 명확해진다.

한국정부가 파병 검토의 명분으로 거론하는 것은 통상·안보·대북현안 등의 한미공조와 한반도 대비태세, 핵심적 원유 공급루트 확보에 기여 등으로, 혈맹인 미국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파병으로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고 국익으로 돌아올 것인가, 따져보자.

 

먼저, 미국 트럼프의 압박에 한미공조 악영향 등 외교적 손실을 피하기 위해 국군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설득논리다. 쉽게 말해 트럼프 말에 순종해 전쟁에 동참하면 특별동맹 예우를 받아 통상압박이 누그러지고, 전작권 쉽게 넘겨주며, 우라늄 농축이나 핵잠 건조 순탄해지고, 북미대화에 한국을 주역으로 참여시켜 주지 않겠느냐는 등의 판단이고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이고 순진한 희망이고 기대일 뿐이다. 전혀 언질도 보장도 없는 추정이고 트럼프를 과신(過信) 내지는 과대평가한 맹종외교의 실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설령 밀약을 통해 트럼프가 약속했다손 치더라도, 확실한 이행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 과연 그런 위태로운 거래에 국제적·외교적 파장과 국가의 안위, 국민적 자존심과 명분을 걸만한 대상이냐는 것이다.

 

협박에 굴복해 군대를 보내면 좌충우돌 트럼프가 대만족한 나머지 잠시 상찬(賞讚)의 말을 떠벌일지는 모른다. 허나 그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근성으로 끝없이 깔아뭉개며 무시하고 벗겨먹는 조폭적 스타일이 그간의 행적에서 증명된 바 있다.

‘독불광인’(獨不狂人)으로 지탄받는 트럼프의 잠시 쾌감 외에 거시적인 외교적 이득은 희망고문으로 남을 뿐, 오히려 장기적으로 엄청난 부담과 후유증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한-미 간에 잠시 허니문은 있을지 모르나, 한국은 아무리 비전투 영역일지라도 병력과 함정파견을 하게 되면 이란이 규정하는 전쟁 당사자이고 적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참전의 여파가 일시적인 득(得)보다 국내외-국제적 악영향과 불이익과 위험스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약관화, 허다하다.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약소국을 두들겨 팼다가 궁지에 빠진 미국과 트럼프를 위해 방패막이 뒷처리에 한국이 소모되고 말려들어 국군 젊은 장병들이 자칫 개죽음 당할 이유를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겠는가.

 

왜 서방의 미국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협박과 요청을 모두 묵살하는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캐나다, 호주 등 유럽과 서방 각국은 한국보다 미국이 더 중시하는 동맹들이다. 그들도 득실을 따져 전혀 득이 되지 않기에 외면하고 소극적인 것이다.

역시 미국이 한국보다 중시하는 동맹인 일본은 대놓고 미국을 적극 추종하는 나라다. 평화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격무기까지 수출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면서도, 트럼프 요구에는 헌법적 제약을 들먹이며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보다 한 단계 위 동맹국들이 대부분 안면몰수하는 형국인데 어찌 한국만 마치 최고의 동맹노릇을 혼자 다하듯이 짝사랑이고 새가슴인가 말이다.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한국외교의 대미종속 악폐요, 후진적 사대외교 철학에서 비롯된 숭미(崇美)와 종미(從美)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트럼프가 연속 한국만을 겨냥해 때리는 것은 그 ‘약한 가슴’을 간파한 술책이라고 봐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압력에 굴복한다는 것은 ‘굴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주권국가 한국이 미국에 굴종해 불의한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정권이 말못할 약점이 있고 트럼프에게 책잡힐 만한 구린데가 있다거나, 전작권 조차 맡겨놓은 종속국이니 원래 그런 수준의 나라라는 국제사회의 냉소와 멸시를 자초하고 국민적 자존심이 망가질 것을 감내할 작정이라면 혹시 모른다.

 

트럼프가 한국을 진정한 동맹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호구로 볼 뿐인가도 생각해 보자.

조변석개(朝變夕改)의 인물인 트럼트의 그간 언동을 보면, 자기가 필요할 때, 큰 득을 봤을 때만 진정한 동맹이라고 떠벌일 뿐, 전혀 참 동맹이나 전통 혈맹으로 생각하고 예우한다는 정황은 찾기가 힘들다.

FTA 일방 파기하고 관세 공갈로 3500억 달러를 뜯어냈다. 공장 지어주러 간 한국인 300명을 범죄자 취급해 감금했다. 반도체 미국공장 지으라 압박이 끈질기다. 마가(MAGA)를 이용해 선거부정과 반정부를 외치는 극우 뒷배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상 처음 무궁화 대훈장을 주고 신라금관 선물을 안기자 파안대소하며 가장 친한 척했고, 한국의 거액투자에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관세전쟁에 주한미군 방위비 압박, 남북대화 어느 것 하나 ‘혈맹’의 예우를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이재명에 실망감을 표하며 “김정은이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라는 언급을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는 약자와 약소국을 짓밟아 약탈하고 덤터기 씌울 대상으로 보는 냉혹한 조폭 권력적 사업가다. 이란전쟁도 그렇지만, 최근의 베네수엘라, 그리고 캐나다와 관계를 보라.

국제 외교무대에서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 끝에 쇠락한 영국의 블레어 정권도 타산지석이다.

이재명 정권이 ‘트럼프의 푸들’이 되어 파병하면 미국이 특별동맹으로 예우하며 한미현안을 특별히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는 한마디로 헛된 꿈이다. 트럼프는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종속국 이미지만 강화할 뿐더러, 국내 분란은 물론 국민적 자존심이 엉망진창이 되어 정권 반감만 커질 악재임에 틀림없다.

 

전혀 명분도 없는 일이다.

이란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제법을 무시한 주권국 침략과 무차별 폭격, 비인도적 살상으로 발발했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비난하고 서방동맹도 협조를 꺼린다. 그런데 헌법에도 명백히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이, 더구나 셀프 쿠데타를 제압하고 빛의 혁명으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반헌법적 침략전쟁을 거들고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낯뜨거운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연히 우크라이나 전쟁에 끼어드는 바람에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어 기업과 경제, 국제외교에, 특히 남북관계에 얼마나 큰 후유증이 지속되는지를 모를 바도 아니다.

한국이 이란을 적대하고 중동분쟁에 개입해 한쪽 편을 들 때, 원유수급을 비롯한 경제-무역파장과 국제적 곤경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정권 지지기반에 이상기류가 경종을 발하고 있는데,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병문제로 갈라지고 대립할 국내정치와 민심의 분열을 자초하며 기름 붓고 부채질하겠다는 것인지, 무엇보다 청년층의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 젊은 장병들을 사지로 내몰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을 어찌 그리 쉽게 ‘긍정 검토’할 수 있는지, 정말 기막히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국민주권정부에 바라는 것은, 설사 현 정권내에 이뤄질 수 없는 이상향에 불과할지라도, ‘한국 패싱’을 걱정하는 대미 굴종과 숭미일변도 눈치외교 구태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대국 의존과 예속적인 사대의식을 제발 떨쳐버리고, 스스로 국제사회 중심적, 다자적인 위상을 높여 ‘한국 퍼스트’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진력하라는 여망이다.

언필칭 자랑하는 국력과 국민의 수준에 걸맞게 대범한 자존외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자주독립국이요 평화를 사랑하는 선진 문화대국임을 만방에 각인시키도록 노심초사, 국민을 믿고 앞장서 달라는 간청이다.

그러면 국내외 동포들이 든든한 자부심과 함께 뜨거운 응원을 보내지 않겠는가 말이다.                                                                                                                         <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