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생존자 고통·아픔 얽힌 자리…시위는 피해자들 남긴 과제"
장대비 속 시민 200여명 참여…소녀상 옆에선 자유연대 등 '소녀상 철거' 집회
보수단체의 장소 선점으로 28년 만에 옛 주한일본대사관 바로 앞이 아닌 인근에서 수요시위를 열게 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상처 속에서도 시위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24일 정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열게 된 제1천445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빗방울이 눈망울에 맺힌다. 눈물이 빗물이 되어 흐른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이사장은 "인내와 파동의 역사를 묵묵히 견뎌왔지만 이제 평화의 소녀상을 가운데 두고 다가갈 수 없는 슬픔의 협곡을 지켜보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뿌리째 흔드는 반역사적, 반인권적 행태가 무자비하게 슬픈 오늘, 그래도 저희는 변함없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 "상처투성이 돼도 이 자리에 있을 것"
매주 수요시위의 마지막 순서인 '경과보고'는 그간 정의연의 활동 내역이나 언론 보도에 대한 입장 등을 밝히는 자리였으나 이날 이 이사장은 수요시위의 '장소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 이사장은 1992년 1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열린 첫 시위 이래로 매주 이어진 수요시위가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과 아픔, 상실감과 좌절감이 얽혀있는 자리', '낙인과 배제, 고통과 죽음을 이겨낸 존엄과 생명의 자리'였다고 의미를 짚었다.
그는 "밀려나고 빼앗기고 탄압받고 가슴이 찢기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힘겹게 세상에 나와 역사적 진실을 위해 싸우다 고인이 되신 피해자들의 유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참가자들 "시민운동 오류 있을 수 있지만…위안부 운동 역사 부정은 안돼"
이날 시위를 주관한 평화비 경기연대는 "30년 동안 지켜온 자리를 빼앗긴 채 다른 자리에서 평화의 함성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일제 군부에 의해 식민지 여성들에게 저질러진 명백한 전쟁 범죄를 합리화하려는 자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온기가 스민 이 자리에서 위안부 역사와 운동을 부정하고 폄하는 이 현실이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권과 평화를 위해 순수한 동기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된 시민운동이라 해도 의도치 않은 실수와 오류가 존재할 수는 있다"며 "불거진 문제는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30년 운동의 역사가 부정당하고 폄훼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와 전국여성농민회, 평화예술인행동,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 등은 연대 발언을 통해 수요시위를 함께 지키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 '소녀상 철거' 자유연대 집회도 진행…소녀상 주변은 인산인해
이날 집회 우선순위를 자유연대에 빼앗긴 정의연은 원래 수요시위를 열어온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남서쪽으로 10여m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시위에는 시민 200여명이 참여했다.
자유연대 등 관계자 100여명은 원래 수요시위가 열린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제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며 소녀상 철거와 정의연 해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경찰력 400여명을 투입해 두 집회를 겹겹이 에워싸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고, 취재진도 100여명이 몰렸다.
소녀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백지대' 안에서는 '소녀상 수호'를 외치는 대학생 20여명이 소녀상과 자신들의 몸을 끈으로 묶고 이틀째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미신고 집회라며 자진 해산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응하지 않았다.
공공조형물인 평화의 소녀상을 관리하는 종로구청은 이날 오전 연좌시위 중인 대학생들에게 소녀상이 훼손될 수 있으니 끈을 풀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수요시위는 끊임없이 계속합니다!” 54번째 수요시위
24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소녀상에서 부산여성행동이 54번째 ‘부산 수요시위’를 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부산 54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
부산여성행동은 24일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소녀상에서 수요시위를 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수요시위에 대한 보수언론 등의 공격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넘어 분노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수요시위를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여성행동은 “정의연 회계 의혹 등으로 지난 28년 동안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가 보수단체의 위치 선점으로 시위 장소를 옮기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벽돌로 훼손됐다. 대구에 세워진 소녀상도 훼손됐다. 지난 23일에는 누군가 부산 소녀상에 ‘박정희’라고 적힌 천과 나무막대기가 놓고 갔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 자체에 대한 악랄한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여성행동은 또 “보수언론이 악의적인 거짓보도를 했고, 보수단체는 이에 호응해 정의연을 부패 집단으로 낙인찍었다. 이들은 여성 평화 인권 운동의 상징인 수요시위와 소녀상을 부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를 모독하고 있다. 피해자와 활동가, 시민들을 이간질하고 있다. 양심적인 세력들이 더는 피해를 입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비난과 갈등에 휘둘리지 않도록 수요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선화 부산여성행동 대표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할 때까지 친일 적폐 세력에 맞서 반드시 부산 수요시위와 소녀상을 지키겠다. 이에 경찰과 부산시도 함께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부산 여성단체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28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항의하기 위해 2016년 1월부터 다달이 마지막 주 수요일 부산 수요시위를 시작했다. < 김영동 기자 >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대학생들
보수단체 수요시위 장소 선점에 반발해 연좌 농성
28년 동안 매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수요시위가 보수단체의 위치 선점으로 시위 지점을 처음 옮기게 되자 이에 반발하는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학생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일본대사관터 앞 평화의소녀상을 둘러싸고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은 지난 2015년 한일합의 이후 지금까지 1638일째 소녀상 지키기 철야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이달 23일 자정부터 7월 중순까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집회 신고를 내고 소녀상 인근에서 수요시위 반대시위를 연다는 보수단체 자유연대의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경찰은 자유연대에 “자유연대 등이 공공조형물인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어서 종로구에서 시설 보호 요청을 해왔다”며 “일단 자유연대 측에 소녀상에서 1∼2m 떨어져 집회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농성 중인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학생들에게도 “공동행동의 시위는 미신고 집회로 불법”이라며 자진해산을 요구했으나, 학생들은 ‘소녀상을 지키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정의기억연대는 24일 1445차 수요시위부터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원래 장소 대신 남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 무대를 만들어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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