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 씨앗교회, 6~10개월간 10~30만원 지급하기로
‘성도롤 교회삼은‘ 교회…"어려울수록 떡 나누는 교회 돼야"
씨앗교회가 코로나19 발병 이전인 지난해 12월 25일 경기도 고양 예배당에서 이규원 목사의 인도로 성탄 예배를 드리는 모습.
"씨앗교회는 곧 예배당이 없어집니다. (중략) 씨앗교회는 현 예배당 임대를 포기하고 그 보증금을 성도들의 일상을 돕는 기본 소득으로 지급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한국 경기도 일산 씨앗교회 공지문이, 교회들이 지탄대상이 된 코로나19 상황에서 큰 화제로 회자되고 있다. 이 교회는 공동체 가정이 코로나19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예배당 보증금을 빼서 교인들에게 나눠 주기로 결정했다. 지금보다 더 작은 공간으로 이주하고,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비대면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다.
씨앗교회는 7년 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 이규원 목사가 개척했다. 성장과 확장보다는 개개인의 성숙, 믿음과 생활의 일치를 추구했다. 제도권 교회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다. 우선 씨앗교회에는 담임목사가 없다. 이규원 목사는 나중에 합류한 임인철·이인호·송명수 목사와 공동 목회를 하고 있다. 목사들은 돌아가면서 설교하고 주중에는 따로 일을 한다. 교회는 임대료와 관리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을 내·외부 구제비로 흘려보내고 있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해 온 씨앗교회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하지는 못했다. 씨앗교회는 올해 2월부터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전체 교인이 80명이었는데, 현재는 60명으로 감소했다. 송명수 목사는 "아무래도 온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커뮤니티가 잘 운영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현장 예배를 드릴 때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셨고, 씨앗교회가 추구하는 비전에 동질감을 느끼셨다. 지금은 비대면으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행할 일은 외면하고 포기하는 교회들
어디서가 아닌. 어떻게 예배드리는지가 중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원이 하나둘 나왔다. 목사들은 8월 9일 회의 도중, 몇 달 전 정부가 지급한 재난 지원금을 떠올렸다. 정부도 하는데 교회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지원 가능할 때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송 목사는 "처음 리더 그룹에 제안했을 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 게 사실이다. 단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일인 데다가 예배할 장소도 새로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배 장소보다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라는 가치에 모두가 공감하면서 시행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 목사는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떡을 나눠 먹는 게 교회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교회는 옳고 참된 것은 기가 막히게 제시한다. 하지만 실제로 행해야 할 일은 외면하거나 포기해 버린다. 지금은 형식적으로 한번 나눠 주고 끝낼 게 아니다. 어려운 공동체, 이웃을 품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요한복음 4장의 말씀처럼 중요한 건 ‘어디서 예배드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드리는지’입니다. 교회가 믿는 것을 예배하는 모든 공간이 곧 예배당입니다.”
송명수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 예배당 공간을 허무는 씨앗교회의 행보를 이같이 설명했다. 약 180㎡(60여평) 규모의 상가교회로 운영해온 씨앗교회는 이제 성도가 있는 곳곳을 예배당, 성도를 곧 교회로 삼는 공동체가 됐다.
“과거에는 ‘만나’라는 기적으로 주어졌다면,
일용할 양식이 이젠 교회 통해 주어질 때”
송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영상 예배를 드리고 가정 심방 위주로 성도와 교제해왔는데, 상황이 길어지면서 작은 교회가 모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교회는 텅 비어있는데 성도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더 커지는 모습을 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의 형태는 그 근거 중 하나인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두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결정됐다. 교회는 기존에도 세월호 유가족,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며 임대료와 관리비를 제외한 헌금 전부를 교회 안팎의 구제 활동에 사용해왔다.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거나 이를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돕고자 하는 가정은 교회에 기본소득을 헌금할 수 있다.
송 목사는 “과거에는 일용할 양식이 ‘만나’라는 기적으로 주어졌다면, 이제는 교회를 통해 주어져야 할 때”라며 “성도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오히려 목회자들보다도 차분하게 이해하고 동의해줬다”고 전했다.
씨앗교회는 예배당으로 쓰고 있는 건물을 내놓았다. 임대 보증금 3000만 원과 매달 나가는 월세 70만 원을 더해 기본 소득 액수를 정했다. 각 가정에 30만 원씩, 싱글 가정과 청년에게는 10만 원씩 지급한다. 예상 지급 기간은 6~10개월로 잡았다. 9월부터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새 입주자가 일찍 나타나면서 8월 말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교회는 일산의 한 카페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예배하고 소규모로 교제할 계획이다. 예배당을 다시 마련할지는 코로나19 상황이 마무리된 후 논의한다.
송 목사는 “염려가 없진 않지만, 씨앗교회가 가정 사역을 중시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의 역량을 발휘하고 중요한 가치들을 공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 시간을 통해 교회가 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되새기며 그리스도 안에서 더 강해지는 공동체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종교 탄압' 주장하는 이들 보면 답답하고 애통
지금은 재난의 시대, 교회는 생명을 중시해야"
교회를 매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나오면서 한국교회는 다시 비난을 받고 있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상황인데도 일각에서는 "예배는 생명과 같아서 포기할 수 없다"며 종교 탄압이라는 주장을 편다. 송명수 목사는 "아직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크리스천이 꽤 많은 것 같다. 목에 핏줄을 세워 가며 '대면 예배'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열정 하나만큼은 인정한다. 하지만 저분들에게서 사회 고통을 함께 나누고 애쓰려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답답하고 애통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또 "'종교 탄압'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너무 극단적이다. 개인적으로 현 정부 지지여부를 떠나 이번 정부 조치가 종교 탄압이라는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재난의 시대, 교회는 어느 때보다 생명을 중시 여겨야 한다. 한데 왜 계속 '6·25 때도 예배는 드렸다' 같은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씨앗교회는 기본 소득 지급과 별개로, 계속해서 구제비도 흘려보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미혼모,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 가족 등을 지원해 왔다. 송 목사는 "우리 교회는 작고 가난하지만, 우리 같은 교회가 많아지면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달리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뢰와 믿음이 가지 않을까 싶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는 교회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 양한주 이용필 기자 >
씨앗교회의 비대면 온라인 예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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