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지나치다” 불붙은 재협상론

● COREA 2011. 12. 13. 10:39 Posted by SisaHan
날치기·무소불위 FTA에 ‘사법저항’까지

판사들의 잇따른 문제제기를 계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론이 다시 확산될 조짐이다. 국회의 날치기 처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협정문 서명으로 협정의 공식 발효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논란이 재개됨에 따라, 협정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파장이 현실화하면 분야별로 문제점 지적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협정 재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는 글을 지난 1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이에 동의하는 댓글이 하루 만에 170개를 넘기자, 2일 오후 제안 글을 내리고 대법원에 낼 청원서 작성에 들어갔다. 페이스북을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의견을 밝혔던 최은배·이정렬 부장판사도 이날 라디오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협정의 문제점을 거듭 지적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온 법원에서 이렇게 비판론이 늘어나는 것은 협정이 사법주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위험이 크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정렬 부장판사는 인터뷰에서 “협정대로라면 미국 투자자가 협정 위반을 이유로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분쟁을 벌이면 우리나라 법원이 재판권을 갖는 대신 제3의 중재기구에 관할권이 있게 된다”며, 이런 내용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조항은 “우리 법원의 재판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 오래전부터 지적돼온 문제다. 대법원은 2006년 “사법주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용덕 대법관 후보자는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해 “우리 법원이 배제될 수 있고 국제중재센터에 의해 해결되게 돼 솔직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법률전문가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본질적인 문제로 꼽는 것은 국가기관의 기능 위축이다. 이 제도가 행정부의 규제나 공공정책, 의회의 입법,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 나아가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서까지 국가의 행위로 보고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법과의 충돌은 물론 국가기관의 고유한 권한 행사도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제3국의 법정에서 심판받게 되는 것도 국가 사법 기능의 제약으로 꼽힌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공적인 신분이 아닌 중재인 3명이 단심제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여러 외국 투자자가 각각 다른 중재절차를 통해 다른 결론을 받아낼 수도 있어, 법적 안정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2001년 이 제도를 두고 “그들의 모임은 비밀이다… 하지만 이 소수로 이루어진 국제법정은… 한 국가의 법을 취소하고, 사법시스템을 심사하며, 환경적 규제에 도전한다”고 비판했다. 
법원 안에서는 태스크포스까지는 아니라도 이러한 협정의 문제점을 연구할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 후 ‘소통’을 강조해온 만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의 계기 정도는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판사들의 움직임에 대해 “법관의 의견이 외부로 노출될 때에는 법원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되어 결과적으로 국민의 법원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지난30일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미FTA반대 나꼼수 야외집회에 모인 인파.


“한국 모든 법률장벽 붕괴, 미국은 존속”
TF제안 김하늘 판사 ‘ISD등 불평등 의심 5가지 이유’지적

스스로를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지난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김하늘 부장판사는 한-미 협정의 첫번째 문제점으로 두 나라에서 국내법적 지위가 다르다는 점을 꼽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800쪽짜리 한-미 협정 자체를 ‘조약’으로 보고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부여하지만, 미국에서는 한-미 협정을 조약보다 낮은 ‘행정협정’으로 취급해 200쪽짜리 이행법을 제정했다는 것이다. 한-미 협정 자체는 미국에서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법이 한-미 협정에 우선하고, 협정을 근거로 개인이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미국의 한-미 협정 이행법이 이를 말해준다. 
외교통상부는 “양국 법률체계의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김 부장판사는 “한-미 협정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법률상 장벽은 제거되는데, 미국에 있는 법률상 장벽은 그대로 존속한다는 말이니 바로 이것이 불평등 조약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 탓에 간접적으로 입은 손해를 보상해주는 미국의 광범위한 재산권 개념인‘간접수용’이 한-미 협정에 들어온 것도 논란이 됐다. 김 부장판사는 “정부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펴면 간접적으로 대기업이나 외국계 투자기업이 손실을 입는데, 그 피해액은 예측하기 어려워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특히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대해선 “사법주권을 빼앗는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란 상대방 국가가 협정상 의무나 투자계약을 어겨 손해를 입혔을 경우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금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그는 “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조약의 해석에 관해 법률의 최종적인 해석 권한이 있는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포기해야 하는가?”라고 우려했다.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제도”라는 외교부의 입장을 사법주권이란 관점에서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밖에 김 부장판사는 네거티브 방식과 역진 방지 조항(래칫 조항)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한-미 협정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과 달리,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정한 뒤 나머지는 모두 개방하고, 특히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서는 개방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는 있어도 후퇴하는 방향으로 되돌릴 수 없는 래칫 조항을 두고 있다. 
김 부장판사의 주장에 대해 최석영 외교부 자유무역협정 교섭대표는 “충분한 이해와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은 의견표명”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 미 속국됐다, 반면교사로 삼자”
일본 보수 경제평론가들 한국 걱정…자국 TPP신중 촉구

한나라당이 비준안을 강행처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서명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조동중 등 한국의 보수우파 진영은 찬성론 일색이지만, 일본의 보수우파 일각에서는 “한국은 향후 미국의 경제 식민지가 될 것”이라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보수우파 가운데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미국 등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지만 ‘보수 우파 진영논리’에 매몰돼 찬성론의 한목소리만 내는 한국의 보수우파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파 경제평론가인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23일 일본 우익매체인 케이블 방송 문화채널 ‘사쿠라’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미 FTA를 통과시킨 한국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이 미국 등과 맺으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통산성 관료출신인 나카노 다케시 교토대 교수는 27일 일본 민방 후지텔레비전의 아침 프로그램 ‘도쿠다네’(특종)에 출연해 “한국은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건강·환경·안전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됐다”면서 환태평양경제 동반자협정 체결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카아키는 우리 국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것을 두고 “저질렀다”고 묘사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던져서가 아니라 한미 FTA를 한국 국회가 가결했다. 이거 저질렀구나 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FTA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 시장은 무조건 개방하는 방식), 역진 방지조항(한번 개방한 것을 되돌릴 수 없게 한 조항)들이 독소조항이라고 밝혀진 시점에서 미 의회의 비준이 끝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는 이미 (문제점들이) 들통났는데도 한국 언론들은 일절 보도를 하지 않아 미국에서 비준된 뒤에 들켜서 큰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일본은 TPP 관련 교섭조차 참가하지 않은 단계에서 국민들에게 (독소조항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타이밍’의 차이가 일본을 구할지도 모른다”며 한미 FTA 검증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우리 보수언론의 행태를 비판했다.
 
또 다카아키는 한국이 이익을 본다고 평가된 자동차 분야에서도 매우 불평등한 협상결과가 나왔다고 혹평했다. 그는 “(한미 FTA로)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 부과 관세 2.5%가 철폐되지만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자동차 수입 때문에 어려워졌다고 불평하면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는 부활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 회사들이 똑같은 이유로 한국 정부에 관세를 부활해달라고 요구하면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이는 2010년 12월 한미 FTA 재협상 때 추가된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말을 들은 사회자가 “이런 협상에 사인해도 괜찮은 걸까”의문을 제기했지만 다카아키는 “이미 늦었다. 22일 통과해버렸다”고 답했다. 이어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사회자가 “한국이라는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고 묻자 다카아키는 “한국은 완전히 경제 주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주권이라는 건 자국의 제도, 방향성을 스스로 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미국의) 속국이라고 해야 할까”라고 묻자 “속국이라기보다는 식민지다”고 단언했다. 
마지막으로 다카아키는 “경제 주권을 잃은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는 2, 3년 뒤 한국을 보면 명백해질 것이다. 한국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이 미국과 맺으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카아키의 9분짜리 동영상은 유튜브( http://youtu.be/dGcVGU3Mvow )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제전문가조차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보다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youngmoo***), “짜증나다가 맞는 얘기라 눈물이 ㅠ”(@jarug***) 등의 글을 남기며 트위터에 관련 영상을 퍼나르고 있다. 반면, “극우 방송에 나온 전문가의 발언을 일본 전체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sum1***)는 의견도 있다. 
케이블 방송 <사쿠라>는 극우 성향의 방송이며 방송에 출연한 미쓰하시 타카아키도 우익 성향의 경제평론가이다. 2010년 7월 참의원 선거에 자유민주당 비례 대표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한국경제에 정통해 <사실은 위험한 한국경제>(2007), <부자 삼성 가난한 한국>(2011) 등의 저서를 쓴 한국통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보수진영에서 관세철폐 등 시장개방에 신중한 의견이 만만찮은 것은 기본적으로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무역의존도가 18위(2009년기준)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내수시장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3.4%로 1위다. 여기에다 농업을 천대하는 한국과 달리, 농업에 대한 각종 푸짐한 보조금 지급 등 농업보호 강화정책을 오래 전부터 펴오고 있는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 한국 관료들과 달리, 일본 관료들이 자국 시장보호에 적극적인 점도 시장개방 신중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