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많지 않은데

 

미래를 위한 금요일깃발을 펼쳐놓고 모여 앉은 청년 기후 활동가들. 코로나19로 내년으로 미뤄진 26차 유엔기후총회(COP26)를 대신해 30살 이하 전세계 청년 800여명이 지난 19일부터 모의 유엔기후총회를 온라인으로 열고 있다. 모의 유엔기후총회 누리집 갈무리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이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선 26차 유엔기후총회(COP26)가 열렸을 것이다. 내년 본격 발효를 앞둔 파리기후협약의 이행에 필요한 세부규칙을 최종 합의하는 자리였다. 애석하게도 26차 총회는 내년 11월로 연기됐고, 30살 이하 젊은 세계 기후 활동가들은 공백을 메우겠다며 지난 19일부터 모의 유엔기후총회를 온라인으로 열고 있다. 참가한 전세계 800여명의 청년들은 내년 총회에 참석하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란 듯 그들 대표단 명의의 최종 성명서를 표결에 부치는 것으로 다음주(121) 회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18살의 한 영국 청년은 총회 전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당신들이 식탁에 자리를 주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식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다음 세대의 절박함은 기성세대가 느끼는 위기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들은 연기된 1년에 조마조마해하며 마음을 졸인다.

청년들의 조바심과 달리, 우리 사회 기후위기 대응 논의는 진전이 더디다. 대통령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고 직속위원회를 설치하겠다지만, 그 선언이 갖는 뜻과 무게가 곧이 전달되지 않는다. 여전히 친원전파와 일부 보수언론은 기후위기 대응이 아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기에 바쁘다. 2050년에도 원전이 일부 남게 된다는 국가기후환경회의 부위원장의 말(23일 중장기 국민정책제안 브리핑)정부 위원회가 탈원전을 비판했다며 침소봉대한다. 1%의 사례를 들어 태양광 때문에 산사태가 났다 하고, 미세먼지도 탈원전 때문이라 한다. 본격적인 원전 가동 중단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최근엔 미국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이 원전에 올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기사의 차세대 원전은 연구개발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에너지전환포럼에서 지적했듯, 그나마도 경제성이나 안정성 확보가 어려워 상용화가 쉽지 않다. 그리드 저장기술, 그린수소, 차세대 건축소재 같은 꿈의 기술이 이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바이든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임기 4년 동안 2300조원을 투입해 태양광 지붕 800만개와 패널 5억개, 풍력터빈 6만개를 설치하고 건물 400만채, 주택 200만채를 에너지 고효율 형태로 개조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의 올인이 어디를 향했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미국은 현재 계획 중인 원전보다 폐쇄 예정인 원전이 더 많다.

마크 제이컵슨 미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팀을 비롯한 일련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전세계 에너지 수요를 재생에너지인 풍력과 수력, 태양광으로 100% 공급하는 목표는 빠르면 2050년 달성할 수 있다. 독일 항공우주센터도 201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유럽연합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67%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2050년엔 96%까지 가능하다고 봤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 굳이 새 원전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시설 인근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원전의 위험은 재생에너지를 압도한다. 풍력발전기나 태양광발전시설이 고장 나거나 파괴되는 상황과 원전이 그렇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지난해 여름엔 유럽 원자로 6개가 전력 생산을 줄이고 2개가 가동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폭염 때문에 수온이 오르고 원전이 냉각수로 쓰는 하천 수량이 줄어든 탓이다. 원전은 열이 극심하면 운영이 어렵다. 우린 주로 바닷가에 짓는데 이러다 보니 폭염뿐 아니라 태풍이나 홍수 같은 기후재난에도 취약하다. 올해 태풍 땐 바닷물의 소금기로 원전 6기가 멈춰 서버리는 일이 있었다. 대형 전원인 원전의 갑작스러운 가동 중단은 전체 전력망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재난에 대비해 소규모 분산형 전원을 늘려가는 흐름에도 원전은 맞지 않는다. 원전의 발전단가가 재생에너지보다 싼 것도 위험 부담 비용이 빠진 탓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의 복구비용은 최소 80조원에서 최대 800조원으로 예상되지만, 한국 원전 사업자가 사고에 대비하는 비용은 고작 5000억원까지다. 초과 비용은 모두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원전처럼 위험하고 전체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은 에너지원보단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정책 목표를 집중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긴박함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미 세계적으로 화석에너지를 몰아내는 재생에너지의 기세는 맹렬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공개한 재생에너지 2020’ 보고서를 보면, 발전용 재생에너지는 여러 발전원 중 나 홀로’ 7%가량 증가세다. 나머지 에너지 수요는 코로나로 5% 감소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설비용량은 2023년 천연가스를, 2024년 석탄을 추월하게 된다. 비슷한 경제 규모 나라 중 유독 우리만, 탈원전 논란을 벌이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많지 않다. 박기용 기후변화팀장

       

보수언론, 그들은 왜 ‘탈원전’을 싫어할까?

부정적 보도 일관, ‘입맛에 맞는 표현만 골라 쓰기도

한수원 광고비와 연관?결국 경제적 이해관계비판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기후환경회의 중장기 국민정책제안 기자회견에서 김숙 전략기획위원장이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위원장 반기문)는 지난 23일 정부에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중장기 정책을 제안했다. 석탄 발전과 휘발유·경유차량 퇴출 시점 등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주요 정책이 포함됐다. <한겨레><경향신문> 등 여러 언론은 ‘2035년부터 내연차 국내 판매 중단 제안등을 제목으로 정책 발표 소식을 전했다.

같은 정책을 두고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다른 내용을 주요하게 전했다. <조선일보>(‘대통령 직속 기후회의 탈원전 고정불변이면 탄소 중립 어렵다”), <한국경제>(대통령 자문기구 원전정책 고정불변으론 2050년 탄소중립 어렵다”), <서울경제>(대통령 직속위 탈탄소, 원전도 대안”)가 대표적이다. 정부 내부의 탈원전 어깃장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다.

정부 추진 정책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주요 기능이다. 같은 정책을 두고도 언론마다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는 정부와 환경단체의 탈원전 기조에 시종일관 부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데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이들 언론의 보도가 나온 24일 오전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자료를 냈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24일 발표한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 보도자료.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정책 제안 발표 전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석탄 발전 퇴출 부분에 원자력이 언급돼있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인 석탄 발전(2019년 전체 발전량의 40.4%)2045년 또는 그 이전까지 0으로 감축하되,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 2040년 이전으로 앞당기는 방안도 함께 검토한다.

또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최적의 국가전원믹스를 구성한다.

정책 제안 발표 뒤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되,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보완적으로 활용한다는 제안을 두고 “(모든 원전 수명이 끝나는) 2079년 이후에도 원전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이 나왔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이 답변을 시작했다.

“(석탄 발전의 빈 자리를) 천연가스, 원자력, 재생에너지 중에서 대체할 수밖에 없는데 시기별로 각 에너지원의 발전단가, 사회적 수용성 등 여러가지를 검토해야 한다.”

<한겨레>가 당시 발언 내용 전체를 확인한 결과, 안 운영위원장은 이 발언에 이어 <조선일보> 등이 제목으로 뽑은 발언을 했다.

원전 문제를, 지금 정부 정책이 있습니다만, 고정불변의 것으로 놓고 2050년 탄소 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발언을 두고 <조선일보>대통령 직속 기구가 정부의 기존 탈원전 정책과는 다른 시각을 보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원전 활용 필요성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기사에 썼다. <한국경제>는 아예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가 사실상 원전 정책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기사를 썼다.

이들은 안 운영위원장이 정책이 고정불변이면 탄소 중립은 어렵다는 말 바로 뒤에 한 다음의 발언은 기사에 줄여서 담거나 쓰지 않았다.

원전이 이때도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원전도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인데, 다만 우리가 석탄 발전을 대체하는 것은 곧 원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린수소, 재생에너지, 석탄발전소에 장착할 수 있는 탄소·포집 저장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

<조선일보> 등은 통으로 이뤄진 전체 발언 중에서 입맛에 맞는 앞부분만 잘라서 크게 쓰고 나머지 발언은 축소하거나 아예 쓰지 않는 고전적 방식을 사용한 셈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중장기 정책제안 요약본보도자료 10쪽 원자력 부분 갈무리

안 운영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유지될 경우에도 2038년에는 14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다. 이를 전제로 원전도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원전 정책이 고정불변의 것이라면 2050년 탄소 중립은 어렵다고 말하긴 했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다른 언론사가 보도한 당시 질의응답에는 이런 맥락이 잘 드러나 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은 석탄 40%, 원자력 25%, 액화천연가스 25%, 재생에너지 6.5% 정도다. 석탄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릴 때 찬반 갈등이 첨예한 원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늘 질문하게 된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은 원자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진보언론은 원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 등이 원자력 발전의 긍정적 면을 주로 보도하는 데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나왔다. 2017년 공개된 한국수력원자력 광고비 집행 내역(1~7)을 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및 그 계열사에 가장 많은 광고비가 집행됐다.

다만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원전 반대 목소리를 내는 시민사회뿐 아니라 산업계 목소리도 함께 수렴해 대안을 고민해 왔다는 점에서, 안 운영위원장 발언이 탈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언론에 빌미를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대표는 원전 수명을 전제로 한 발언이라지만 원전이 미래 전력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최우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