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제한 업주들 정부 상대 소송전문가 본격적인 협의·논의 필요

 

지난해 서울의 한 영화관에 체온 측정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인 국참사원(콩세유데타)에서 발열 측정의 정당성을 따지는 재판이 열렸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한 지방자치단체가 시청 청사에 설치한 체온측정 기계가 논란이 됐다. 법원은 당사자의 승낙이 없었다면 자동 체온측정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체온이란 건강과 관련되는 개인의 민감한 정보인데 이를 동의 없이 확인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논리였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이 사례를 소개한 가네즈카 아야노 프랑스 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체온측정을 거부할 자유가 아니라 체온이라는 개인정보를 존중하는 것, 그리고 해당 정보 취득을 위한 적절한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사생활 침해가 이뤄져선 안 된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주의·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외국에선 국가가 감염병 차단을 위해 국민 기본권을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일찌감치 논쟁이 붙었다. 우리나라는 3차 유행 장기화로 자영업자 생계에 타격이 커지면서 자영업자들이 벌금을 무릅쓰고 가게 문을 열었고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도 줄을 잇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본권과 공익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헬스장·호프집·카페·피시방 더는 못 버텨법원 찾아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 사업자들이 모인 필라테피트니스사업자연맹 회원 203명은 12일 영업제한 조처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며 정부는 1인당 50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서울서부지법에 냈다. 지난달 이 단체 회원 350여명이 낸 소송에 뒤이은 것이다. 수도권 학원 원장 350명과 전국카페사장연합회 200여명도 같은 취지의 소송에 동참했다. 박주형 필라테스피트니스사업자연맹 대표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우리가 쉬어서 코로나19가 줄어들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고정비가 월 2천만원인데 6주를 쉬었다고 말했다.

호프집·피시(PC)방 등 집합금지 업종 업주들은 지난 5손실보상 없는 감염병예방법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영업정지로 매출이 급감했지만, 손실보상 조항이 없어 재산권이 고스란히 침해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19를 종식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흔쾌히 협조했지만, 연말연시 대목 기간에 강화된 조처가 시행되면서 사실상 제대로 된 영업을 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참다못해 소송까지 냈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엔 방역의 불가피성을 알기에 따랐지만, 정부가 확진 세를 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해당사자와 협의 없이 장기간 자영업자의 희생만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학원 집합금지 손해배상 소송을 낸 이상무 함께하는사교육연합 대표는 방역이라는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은) 제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사자 의견을 묻는 간담회가 단 한번도 없었다스터디카페·공부방·과외는 허용하는데 학원만 규제하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본권 뒷전선례 우려정부·국회·시민사회가 제한 범위 논의해야

전문가들은 국가 비상사태 때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당연하게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을 우려한다. 감염병 종식이란 목적 달성을 위해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의심 환자의 나이, 직업, 군 단위 거주지 같은 상세한 개인정보를 공개했다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권위는 정보제공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공개한 정보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예방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인격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확진자 개인정보 공개 논란과 함께 무작위 격리는 재현됐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이론 측면에서 (정부의 방역대책은) 불특정 다수를 수신자로 한 강력한 처분으로, 향후 또 다른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코로나19때 사례가 (기본권 제한의) 선례가 될 수 있다. 집합금지 명령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국회가 시민과 함께 기본권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방역 때문에 기본권이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기본권은 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생긴다기본권을 왜 제한해야 하는지, 기간은 어느 정도여야 하고 대안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명확히 해야 할 때라고 짚었다.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통제를 강화하든 권리를 보호하든 최소한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의 의견수렴을 하는 과정은 있어야 한다어느 정도까지 기본권 제한이 허용돼야 하는지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위기 상황이 지나도 (결정권자가 긴급 상황에서) 기본권을 통제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신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