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코로나백신 증명’으로 ‘여행 자유’ 추진
일부 국가는 ‘일부 계층에 특권 부여’ 이유로 반대
개인별 여행 자유와 백신 유효성, 시민평등권 ‘문턱’
“코로나백신 맞으면 해외 여행 떠나도 될까?”
질병관리청은 오는 26일부터 국내 생산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을 시작으로 전국민 대상 백신 접종이 순차적으로 실시된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백신 접종 이후의 일상생활 범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코로나 백신 접종을 통해 면역을 형성하게 되면,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이나 자가격리 기간 등의 절차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해 12월부터 영국 등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됨에 따라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개인별로 ‘백신 접종 사실’을 증명해 해외 여행 등을 가능하게 해주는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아이슬란드, 지난달부터 ‘백신 증명서’ 발급
실제로 올 1월26일부터 아이슬란드는 백신 접종을 마친 자국민 수천명을 대상으로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비자없이 유럽연합 국가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 가입국인 아이슬란드는 자국민만이 아니라 ‘코로나 백신 증명서’를 소지한 유럽 시민에게도 입국을 허용할 방침이다. 전국민 약 40%가 이미 1차접종을 실시한 이스라엘은 코로나 백신 접종사실을 증명해 일상활동의 범위를 확대하는 ‘녹색 여권’을 발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덴마크 재무장관대행도 이달초 “서너달 안에 출장용도 등의 디지털 코로나19 여권이 준비될 것”이라고 밝혔다.
솅겐조약 누리집에는 유럽 각국의 ‘코로나백신 여권’ 도입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백신 접종자에 대한 검역 면제방침을 가장 먼저 발표했으며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슬로바키아 등은 백신여권 도입을 지지하고 있으며 구체적 절차를 준비중이다. 헝가리의 경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거나 면역을 형성한 경우 플라스틱카드를 발급해, 저녁 8시 이후 출입이 제한되는 식당 등 다양한 시설을 출입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로이터 연합뉴스
IATA 총장 “백신증명서로 자가격리 없이 자유여행 가능”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사무총장은 최근 유럽 집행위원회(EC) 우르술라 본 데르 레옌 총재에게 편지를 보내 “디지털 백신 접종 인증 체계를 유럽연합 모든 회원국들이 긴급히 채택해야 한다”며 “백신 접종은 국경개방을 안전하게 재개하고 경제회복을 촉진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 유럽에 걸쳐 상호 인정되는 백신접종 증명체계는 각국 정부가 국경을 안전하게 재개방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여행객들은 검역과 자가격리 등의 제한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드 주니악 사무총장이 말한 ‘디지털 백신 접종 인증(COVID-19 vaccination certificate) 시스템’이 바로 ‘백신 여권’이다
‘백신여권’으로 불리는 ‘코로나 백신 접종증명서’는 국가간 여행만이 아니라, 코로나 상황에서 면역 증명서로 통용되며 일상생활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용도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와 덴마크는 ‘백신 접종 증명서’를 여행만이 아니라 식당, 영화관, 음악회, 대규모 스포츠행사 참석을 가능하게 하는 출입증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스포츠경기장, 식당 등 ‘공공장소 출입패스’ 기능도
민간 차원에서도 ‘백신 접종 증명서’를 발급해 ‘백신 여권’의 기능을 수행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는 코로나 백신접종 또는 면역 보유 사실을 증명하는 ‘디지털 여행패스’ 스마트폰 앱을 다음달 출시할 계획이다. 에미레이트항공과 에티하드항공이 수주 안에 이를 활용할 계획이다.
<뉴욕타임스>의 지난 4일 보도에 따르면, IBM은 국제항공운송협회 앱과 별개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백신접종 여부 등을 담은 ‘디지털 헬스 패스’를 개발해왔다. IBM은 이를 항공여행, 대학, 일터, 스포츠경기장 같은 공공장소 접근을 허용하는 용도로 제공할 계획이다. 백신접종자와 증명 수단이 늘어남에 따라, 백신을 맞은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공공생활도 나타날 전망이다.
하지만, ‘코로나백신 여권’ 발급과 실행은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백신’을 아프리카 많은 국가들이 입국시에 요구하는 황열병 백신 접종, 말라리아 예방약 복용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특정 국가를 방문하는 사람의 감염을 막기 위해 요구되는 백신 증명과 달리, 코로나백신 증명은 접종자에게 일상생활에서 일종의 ‘특권’을 부여한다는 문제 때문이다.
독·영·프 “백신 여권은 특권 부여하는 차별적 정책” 반대
‘여권’은 시민들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발급되어야 하고, ‘비자’는 국가간에 호혜적으로 발급되는 게 기본원칙이다. 그런데 ‘백신 여권’은 일부 계층과 산업계의 수요를 앞세워 이러한 무차별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의 지난 7일 보도에 따르면, 독립기구인 독일 윤리위원회(Germany Ethic Council)는 백신 접종자에게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독일 윤리위원회는 “백신 접종자가 전염력이 없는지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고 접종자에게 특권을 도입하는 것은 사회적 불안(독일어에서 ‘팔꿈치로 밀쳐내기’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며 “우선권이 필요하다면 남다른 보살핌이 필요한 요양원 거주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클레망 보네 유럽담당 장관도 백신이 아직 모든 사람들에게 접종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등’을 이유로, 백신 여권에 대해 반대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보네 장관은 “일부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충격적이고, 프랑스는 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BBC의 지난 9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나딤 자하위 백신담당장관은 방송에서 “백신 여권이 차별적이 될 것이며 (백신 접종이후) 바이러스 전염 가능성 또한 명확하지 않다”며 백신 여권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달 14일 회의에서 “백신을 접종한다고 해서 국제 여행객들에게 여행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조처의 준수를 면제해서는 안 된다”며 ‘백신여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인천국제공항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이 서 있다.
변이 바이러스, 면역 유효기간, 개인정보 등 문턱 넘어야
현재 추진되고 있는 ‘코로나백신 여권’은 스마트폰에 디지털 앱 형태로 개발되고 있는데 위·변조 그리고 개인정보와 데이터 집적, 해킹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를 안고 있다. 출입국 심사를 위해 여권에 담기는 개인정보 이상의 건강 상태 정보까지 디지털 앱으로 유통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다.
코로나 백신의 유효성 문제도 백신여권 도입의 문턱이다. 독일·영국 보건당국의 우려처럼 백신을 통한 면역 보유자가 바이러스 전염 위험이 100% 사라지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항체 형성력은 백신마다,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백신과 별도로 개인별 면역보유 증명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남아공·영국 등 새로운 코로나 변이바이러스의 출현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개발된 백신이 유효성을 갖는지도 미지수다. 백신 개발사상 유례없이 단기간에 속성개발, 접종되는 만큼 백신의 효과가 얼마동안 지속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백신 여권’이 국제 여행 패스로 인정받기 위해서 답변해야 할 문제들이다.
국내에선 “백신 접종 이후 검토할 문제”
<한겨레> 취재결과, 국내는 아직 ‘백신 여권’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 단계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에미레이트항공 등 코로나 마케팅에 적극적인 일부 항공사들이 관련 앱을 준비하고 있지만, 우리는 비슷한 것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의 항공정책 관계자는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 중앙방역대책본부 차원에서 질병관리청, 외교부, 국토교통부 간의 협의를 통해 방향이 잡힐 것”이라며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집단면역이 형성된 나라가 없는 상태다. 아직은 ‘백신 여권’을 검토하진 않았다. 국가나 도시별로 방역 상태와 면역 상태에 따라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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