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활동가들, 타이대사관 앞서 원숭이노동 항의 퍼포먼스

“동물학대 논란 ‘원숭이노동’ 코코넛밀크 한국 마트서도 판매 중”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태국대사관 앞에서 한 동물권리운동가가 원숭이 복장을 하고 코코넛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태국의 원숭이들이 코코넛 밀크 제품에 사용되는 코코넛을 따도록 강요받아 이에 대한 노동착취 메시지 및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행위극을 진행했다.

 

5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타이(태국)대사관 정문 앞 인도에 열대 과일인 코코넛이 무더기로 버려졌다. 목에 체인을 건 원숭이 복장의 사람이 손수레 가득 코코넛을 싣고 와 투척한 것이다. 동그란 코코넛이 인도를 따라 멀리까지 굴러가자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타이대사관에 코코넛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인 이들은 미국 동물권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페타)을 지지하는 이들로, 국내서 활동 중인 개인 동물권활동가들이다. 이들은 “태국대사에게 태국의 코코넛 산업이 원숭이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페타는 타이 코코넛 농장에 잠입해 촬영한 영상을 공개해 전 세계에 코코넛 농장의 원숭이 노동 착취 현실을 알렸다. 페타는 타이 코코넛 농장 8곳, 원숭이에게 코코넛을 따는 기술을 가르치는 원숭이학교 4곳, 그리고 코코넛 수확 경연대회에 잠입했다.

코코넛 수확에 동원되는 원숭이들은 보통 돼지꼬리원숭이(pig-tailed macaque)로 어린시절 이른바 원숭이학교에서 조련된다. 처음에는 길지 않은 장대에 코코넛을 묶어놓고 따는 연습을 하다 차츰 고도를 높여가는 식이다.

3~5개월의 수업을 마친 원숭이들은 농장에 투입돼 온종일 코코넛 수확을 하게 된다. 원숭이는 하루 평균 1000여개의 코코넛을 딴다. 이는 인간이 하루 수확하는 양(약 80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보여 ‘코코넛 머신’이라고 불릴 정도다.

타이의 한 코코넛 농장에서 목줄에 메인 돼지꼬리원숭이가 코코넛을 따기 위해 야자나무를 오르고 있다.

원숭이 학교에서 야자 따는 훈련을 받는 새끼 원숭이. 크리에이티브 코먼즈

문제는 이런 노동이 강제 노역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페타가 공개한 영상에서 원숭이들은 짧은 목줄에 묶인 채 온종일 나무에 올라 코코넛을 따고, 코코넛을 수확하지 않을 때는 좁은 철창에 갇혀 있거나 목줄에 묶여 있었다. 짧은 줄에 묶인 원숭이들은 심각한 정형 행동을 보이거나 철창에 갇혀 괴로운 듯 케이지를 흔드는 등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런 모습이 공개되자 미국과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은 줄줄이 원숭이가 딴 코코넛으로 만든 코코넛 밀크 제품의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약혼녀인 캐리 시먼즈까지 트위터에 환영 의사를 표시하는 등 코코넛 밀크 불매운동은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페타가 불매 업체로 지목한 기업은 태국의 코코넛 밀크 업체인 차오코(Chaokoh)와 어로이디(Aroy-D)였다. 이들의 폭로 뒤 영국의 대형 드러그스토어 체인 부츠, 슈퍼마켓 체인 웨이스트로즈, 코옵, 오카도, 모리슨 등 다수의 유통업체가 동참했다.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태국대사관 앞에서 한 동물권리운동가가 원숭이 복장을 하고 코코넛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여전히 차오코와 어로이디가 인터넷과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퍼포먼스를 기획한 김영화·신종석 활동가는 “원숭이의 노예노동을 통해 얻은 코코넛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코코넛을 투척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인 불매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형 마트인 롯데마트, 이마트 등 매장은 여전히 차오코의 코코넛 밀크를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페타 아시아 지부는 지난해부터 주한 태국대사관에 서한 등을 통해 원숭이 노동 착취 코코넛의 불매를 국내 업체에도 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답변이 없는 것으로 안다. 최근 채식 인구가 늘어나며 소비가 늘어난 코코넛 밀크의 이면에 이처럼 잔혹한 동물 착취가 숨어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퍼포먼스에 사용된 코코넛은 인도적인 방식으로 선별한 베트남산 코코넛이 이용됐다. 시중에 나와 있는 코코넛 밀크가 모두 ‘원숭이 노동자’가 생산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타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코코넛 농장에서는 현재까지 코코넛 수확에 원숭이가 동원되고 있다. 김지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