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조적 검찰 소아병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남일 ㅣ 디지털콘텐츠부장

 

그래서 남은 검사들은 이제 어쩌겠다는 것일까. 검찰조직을 지켜주겠다던 검찰총장이 대차게 직을 던지고 나갔다. 대선 출마 얘기가 나온다. 그건 더 이상 같이 자장면 먹던 검사 윤석열이 아닌 정치인 윤석열의 일이다. 다 같이 조국·추미애와 싸울 때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정치인과 검사가 한배를 타는 건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1년, 남은 검사들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사실상 정치를 택한 검찰총장을 박수 치며 떠나보내고 여전히 응원하는 검사들은 아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전직 검찰총장이 하려는 정치, 그의 대권가도를 알게 모르게 지원하겠다는 것인가. 새 검찰총장이 와도 윤석열만이 진정한 총장이라며 상왕으로 모시겠다는 것인가. 대통령이 돼서 지금 정권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을 없던 일로 만들어달란 것인가.

앞으로 검찰이 하는 수사마다 정치적 꼬리표가 붙게 될 이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생각 있는 검사라면 말장난을 상소문이랍시고 검찰 게시판에 올릴 시간에 제발 그 뜻 거둬달라며 전직 총장 집 앞에서 짧은 목을 내놓고 지부상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말은 거창하나 지켜진 적 없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니 이제부터는 아예 없는 셈 치겠다는 것인가. 정치가 검찰을 흔든다며 호기롭게 실명 비판하던 검사들은, 저런 정치로는 안 된다며 직접 정치에 나서려는 검찰총장에게는 왜 아무 말 안 했던 것인가. 검찰이 정치를 흔드는 건 괜찮은가. 이 또한 내로남불인가.

윤 전 총장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미리 준비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누구로부터가 없다. 정치의 언어는 한없이 헐렁해 보이지만 막상 뱉어놓으면 주어 하나가 없다고 몇날 며칠 난리법석이 벌어진다. 체제와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공소장에 흔히 쓰듯 성명불상자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검찰총장이 이런 첩보를 유훈으로 남겼으니 박수 쳤던 검사들은 체제 위협 세력 발본색원에 나서지 않겠는가.

정치는 엉망이고 사회는 혼란스럽다며 무력을 쥔 이들이 직접 나서면 쿠데타가 된다. 지금 미얀마가 그렇고 5·16, 12·12가 그랬다. 민주화 이후 가장 센 권력기관은 검찰이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검사들이다. 검사들은 구국의 심정으로 떠난다는 검찰총장을 따라 노도와 같이 들고일어나겠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현직 검사들이 답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검찰총장이 사상 초유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며 직을 던졌기 때문이고, 그렇게 떠난 총장에게 잘하신다며 박수 치는 검사들이 있기 때문이며, 검찰을 이용해 정치하려는 이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검사들이 많아서고, 당면한 조직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검사들은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이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느냐고 따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억울해하는 피의자가 있다면 검사 당신은 무어라 하겠는가. 박수 칠 때 어서 조사실을 떠나라 하겠는가. 누가 괴롭히면 정치로 갚아주겠다며 옷을 벗는 게 검찰수사실무인가. 수사가 막히니 별건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하긴 몇몇 검사는 그렇게 금배지를 달았다. 검찰의 생존전략은 정권 페이스에 맞춰 충성과 배신의 스톱워치를 누르는 데 있지 않았던가. 힘 빠진 정권이 막판 내달려 등을 보인 것이 그리 억울한가. 솔직히 이번 정권은 다를 거라 믿었는가. 공익의 대표자라면서 내심 무엇을 바랐길래 그리 배신감을 토로하는가.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윤 전 총장이 정치를 안 하면 된다. 이 간단한 답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이러할 것이다. 윤석열이 정말로 정치하겠다고 나서니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아니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낯설고 신기할 뿐이다. 후배 검사들이 앞으로 하게 될 정의로운 수사마저 정치수사, 표적수사라는 기본값에서 출발하게 만든 검찰지상주의자 윤석열의 행보가 황당하고, 조직으로 뭉쳐 그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검사들이 기이하기 때문이다.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즉각 수용했다. 연합뉴스


[칼럼]  윤석열 총장, 정치 하지마라

 

대선주자로 나서려면 ‘왜 내가 대통령을 해야 하는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 두 가지가 없으면서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은 사기와 다름이 없다. 유권자는 절대 멍청하지 않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때문에 사퇴했을까? 아니면 내년 3월9일 치러지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사퇴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검찰 수사권 박탈에 대한 반발은 명분이고, 대선 도전은 실리다. 명분과 실리를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사다.

보통은 명분을 내걸고 실리를 취한다. 정치인에게 애국은 명분이고 당선은 실리다. 애국과 당선을 선명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의 문제도 있다. 검찰총장 사퇴는 과거의 일이고, 대선 출마는 미래의 일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면 명분이 부각될 것이고 출마하면 명분은 사라질 것이다.

양자역학에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상자를 열어서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다.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는 가능성의 상태로 병존한다.

윤석열 전 총장의 지금 상태가 바로 그렇다. 검찰 직접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특수부 검사들의 영웅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검찰 조직 전체의 명예를 팔아먹은 파렴치한일 수도 있다.

특수부 검사로 잔뼈가 굵은 윤석열 전 총장에게 ‘정치 바람’이 들어간 이유가 뭘까?

첫째, 여론조사 때문일 것이다.

2019년 조국 사태, 2020년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충돌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윤석열 전 총장을 대선주자로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뜨면 멀쩡했던 사람도 눈이 돌아간다.

2011년 청춘콘서트에 나섰던 안철수 교수가 그랬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그랬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그랬다. 그래도 고건·반기문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둘째, 수사 경험 때문일 것이다.

특수부 검사는 프레임을 짜는 사람이다. 프레임을 짜서 피의자를 악당으로 선언하고 구속영장과 중간 수사 발표를 통해 ‘여론재판’에서 성공하면 승리하는 것이다. 뒷날 법원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아내면 금상첨화다.

무죄가 나와도 괘념치 않는다. “범죄 방식이 전형적인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서 입증이 어려웠다”고 치부하면 된다. 프레임을 짜서 상대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하면 안 된다. 대선주자로 나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잘할 수 없다.

‘치국경륜’의 핵심은 경제와 외교다. 정치 경험과 국정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을 할 수 없다. 윤석열 전 총장이 경제와 외교를 알까?

부패가 만연한 부패 공화국에서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부패 공화국이 아니다. 범죄율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둘째, 될 수 없다.

지금 여론조사 수치는 반문재인 성향 유권자들의 화풀이에 불과하다. 거품이라는 얘기다. 진짜라고 믿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대선주자로 나서려면 ‘왜 내가 대통령을 해야 하는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 두 가지가 없으면서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은 사기와 다름이 없다. 유권자는 절대 멍청하지 않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 후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좋은 방법이 있다. 그가 평생 쌓은 특수 수사 경험을 살려서 대한민국 수사 기관의 반부패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면 된다. 그러면 평생 존경받으며 살 수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의 검찰 후배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여권의 개들’을 비판하며 “살아 있는 권력과 싸우다 사그라지는 것이 정치 행보인가. 만약 그렇다면 사육신도 정치 행보를 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윤석열 검사가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수천명의 검사와 판사들이 남아 있다”며 “그 소중한 직분을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위해 불꽃처럼 태우라”고 촉구했다.

김웅 의원의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윤석열 전 총장이 새겨들어야 한다.

‘천하의 윤석열 검사’가 거악 척결이라는 풍운의 꿈을 안고 검사가 된 수많은 후배 검사들을 쪽 팔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