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살리고 정서적 만족감 채워주는 ‘리페어’ 문화
내구성 좋은 제품 만들고 선택하는 기업·소비자 필요
리페어 컬처: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
볼프강 M. 헤클 지음, 조연주 옮김/양철북·
“고치는 것이 돈이 더 들어. 그냥 버리고 새로 사는 게 나아.”
요즘 물건이 고장났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자원과 재화가 귀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값싸게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고 그만큼 쉽게 버리는 시대가 됐다. 기업들도 ‘친환경’을 앞다퉈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는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판매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리페어 컬처>는 “오늘날의 과소비 사회, 쓰고 버리는 사회에 저항”하고 물건들을 고쳐서 쓰는 문화(리페어 컬처)의 의의와 가치를 역설하는 책이다. 물리학자이자 국립독일박물관 관장인 저자는 고쳐 쓰는 문화가 정착돼야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 수 있을뿐더러,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행복감과 자연에 대한 이해라는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지구상의 유한한 자원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양적인 성장만을 앞세운다면, 자동차, 컴퓨터, 휴대전화 같은 것들을 모두 두 배씩은 더 가지려고 한다면, 지구라는 ‘폐쇄된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폐기되는 전자제품을 비롯한 유독한 쓰레기들도 환경에 계속해서 큰 부담을 준다. 따라서 고쳐 쓰기는 “하나의 문화 비판적 자세”이자 “점점 늘어나는 쓰레기 더미에 대한 적극적인 항의의 움직임”이고, “전 지구적 차원의 지속가능성이라는 퍼즐의 작지만 중요한 한 부분”이다.
환경문제 해결책 중 하나라는 점에 덧붙여,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고쳐 쓰기가 주는 정서적 충족감이다. 자신의 힘으로 직접 어떤 작업에 성공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물건을 수리·수선할 때 찾아온다는 것이다.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우는 일, 구멍 난 자전거 바퀴를 때우는 일 같은 간단한 작업만 이뤄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간단한 작업에서의 성공은 더욱 복잡한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도 된다.
고치는 과정에서 사물의 기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를 파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계의 기본적인 원리를 깨닫는 일은, 아주 기초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도로 정신적인 성공의 경험을 안겨준다.”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행위는 물질의 순환을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직접 손을 움직여서 수선하고 수리하는 과정은 최선의 경우 기술의 역사, 생물학, 물질과학, 기초물리학, 화학 등에 대한 연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인 덕이다.
리페어 컬처는 사람들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세대간 간극을 좁히는 데에도 한몫을 한다. 뭔가를 고치다 보면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미 있는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사회적인 이벤트”가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는 청년들은 노년세대에게 디지털 세계를 안내해주고, 반대로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과거에 익혔던 수선·수리의 방법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더 오래 쓸 수 있고 고쳐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기업들의 책임, 또 이를 요구하고 선택하는 소비자로서의 자세는 리페어 문화가 확대되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기업들이 소비자가 새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품의 수명을 짧게 만든다는 의심은 입증되기는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생각이다. 저자는 이를 ‘의도적인 노후화’라고 표현한다.
모든 부품이 하나로 붙어 있어 새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제품들도 있다. 소비자 역시 단순히 싫증났다는 이유로 큰 문제 없는 옷이나 가구, 전자제품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에 익숙하다. 휴대폰 약정 기간이 끝나면 이젠 새 모델을 사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끊임없이 신제품을 내세우는 광고 역시 이런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제조사들은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더 오래 쓰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들은 더 튼튼한 제품을 눈여겨보고 그런 제품이 얼마나 값진지 알아보아야 한다. 이것이 한번 쓰고 버리는 태도에 맞서는 첫걸음이다.” 리페어 컬처가 정착된다면 기업들은 제품을 홍보할 때 디자인이나 기능 못지 않게 내구성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이 제품은 쉽게 수리할 수 있습니다’ ‘이 제품은 경쟁사 제품보다 더 오래갑니다’라는 문구가 광고에 등장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명이 짧은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기업에 일정한 세금을 부과한다든가, 에너지소비효율등급 스티커를 붙이는 것처럼 ‘사용기한등급’을 부여하는 정책들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개개인 차원에서 일단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제안한다. 흔들리는 의자 다리, 떨어진 커피잔 손잡이, 구멍이 난 스웨터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낡은 제품을 수선해서 사용하거나, 오래된 물건을 다른 용도로 바꾸거나, 중고시장에서 안 쓰는 제품을 파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다 쓴 물건들을 내다 버리기 전에 이를 고쳐 쓸지 벼룩시장에 내놓을지 고민”하는 태도는 우리의 자원을 아끼고 우리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평소 쓸 만한 물건을 버리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쓰레기로 이뤄진 산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지구의 미래’를 걱정했던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리페어 컬처의 여러 논리적 근거와 개인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미덕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물리학자답게 수리를 하면서 이해하게 되는 과학원리를 풀어놓고, 자신의 여러 ‘고난이도’ 물건 수리 경험들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전달한다.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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