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선진 기형아

● 칼럼 2021. 7. 17. 07:0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기형적 선진 한국

 

 

한국이 선진 7개국 정상회의, 즉 G7에 초대되어 전례없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G8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뒤이어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하라는 공식 인정을 받았다.

 

UNCTAD가 57년 전 발족한 이후 개발도상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월반’시킨 사례는 이번 한국이 처음이라니, 대단한 사건이다. 사사건건 정부 여당을 비판해 오던 야당의 한 대선주자가 뜻밖에도“UNCTAD가 한국의 지위변경을 결정한 7월2일을 국경일로 하자”고 공개 제안한 것을 보면, 그의 말대로 ‘역사적인 경사’ 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세계 10대 무역국이고, 경제규모나 국민소득에서도 10위 안에 들어서 이탈리아를 추월했다는 말도 들린다. 군사력은 세계 6위라고 한다. 전자제품과 자동자, 선박 등은 세계 상위그룹이다. 경제나 국방 등 국세(國勢) 뿐만이 아니다. K팝과 K문화예술, K방역, K스포츠 등 이른바 한류(韓流) 혹은 한풍(韓風: Korean Style)이 지구촌을 주름 잡는다. 미-중 등 대국들도, 개도국-후진국들도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도움을 청하려 손짓한다. 국제사회에서 명실공히 ‘선진’의 대우를 받는 선진국이 다 된 것만 같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 자신은 왜 어깨가 으쓱하면서도 어쩐지 어색하고 한 구석 모자란 느낌이 드는 것일까. 마치 양복을 입고 갓을 쓴 모양새처럼…번지르한 고급양복 입었다고 품격있는 신사라고 내세우긴 자신없고, 진한 향수에 비싼 화장품으로 단장했다고 우아한 미녀라고 우기기엔 민망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 스스로도 우리가 이젠 당당한 선진국이다 라고 확신하며 큰소리 치기에는 자신이 안서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져보면 아직 ‘선진’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모자란 구석구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두리번거리다 내달리는 운전사들이 선진국 네거리에는 거의 없다. 공무를 수행중인 경찰이나 공무원에게 막말을 하고 멱살을 잡는 일이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흔하지 않다. 우리네 주변의 쉽고 간단한 ‘비교검증’ 자료들이다. 일상의 하찮은 언행에서 의식구조와 습성까지 선진·후진의 수준은 나타나게 되어 있다. 지성과 품격, 도덕과 정의감 등이 바탕이 되고 의식화 되어 품행으로 표출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 소소함을 넘어 몇가지 거시적인 사례들을 보자.

군사력 6위라지만, 한국은 마음대로 전시작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국방의 장애 상태에 있다. 세계에 유례없는 희한한 군사종속국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위 보수라는 사람들은, 더구나 군의 장성 출신들이 그 전작권을 회수하면 절대 안된다, 나라 망한다고 우겨댄다. 어느 선진국에 그런 기이한 상황이 있고 그런 보수층이 존재하는가.

 

부동산 때문에 나라가 흔들린다. 투기에는 기를 쓰면서 폭등했다고 원망하고, 폭락하면 경기침체라고 아우성이다. 값 오르면 좋아하면서도 세금에는 기겁을 한다. 부동산과 세금을 빌미로 선거 때마다 몰표를 활용하는 강남부자들이 과연 선진 시민들인가.

 

한국의 정치판을 선진스럽다고 평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외치면서도 상대 헐뜯기와 이전투구, 갈등 조장만 횡행한다. 오직 자기 당선과 이권에 연연하는 정치인들 뇌리에 공복과 헌신의 개념이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러니 국민 90%가 원한다는 수술실 카메라 설치법하나 처리 못한다. 중대재해법은 누더기가 되었다. ‘선진화 법’을 만들어도 후진을 면치 못하는 국회의 현주소다.

 

사법은 인권과 정의의 보루인가.

재판을 거래했던 대법원장과 수하 판사들은 뻔뻔하기 그지없고, 단죄해야 할 법관들은 그들이 죄가 없다고 선고한다. 징계조차 받지않고 복귀한 일부 농단 판사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재판하는 어이없는 현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

 

검찰총장이 야권의 대선주자로 돌변해 ‘마시던 우물에 침뱉 듯’ 독설을 쏟으며 본색을 드러낸 것도 우습지만, 정치색을 감추지 않다가 중도 사퇴해 “나라를 밝힌다”며 대선판에 뛰어든 감사원장도 ‘후진’스럽기는 오십보백보다. 두 사람은 결국 공직을 개인적·선택적으로 활용해 정권 흠집내기와 항명, 자기보호와 출세에 써먹었고, 사욕의 발판삼아 정치검찰·정치감사원의 오명을 씌우며 절대중립을 짓밟고 말았다.

 

언론은 어떤가. 재벌과 노사는? 너무 많다. 곳곳에 대한민국의 선진도약을 먹칠하는 후진적 양태는 널려있다.

 

‘졸부’라는 말이 있다. 벼락부자 되어 의시대지만 그 심중에는 치사한 성정이 배어있다는 뜻이다. 선진을 자랑하기에 앞서 구석구석까지 선진인지, 몇 군데만 잘난 기형체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선진국은, 선진 시민들이 선진 시스템과 선진 공복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불편도 걱정도 없고 고통도 없는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나라를 말한다.         < 김종천 시사 한겨레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