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 간담회’에 앞서 이준석 대표와 후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홍준표 유승민 박진 김태호 원희룡 후보, 이 대표, 최재형 안상수 윤희숙 하태경 장기표 황교안 후보. 윤석열 후보는 30일 입당했다.
정치 문외한을 정치 지도자로 받드는 정치인들의 모습만큼 기괴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윤석열 최재형 캠프에 들어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내에 훌륭한 자질을 가진 대선 주자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일까?
성한용 정치부기자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 국회의원을 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사람은 박정희·최규하·전두환 세 사람뿐이다. 박정희·전두환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최규하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이 됐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14·15대 국회의원을 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장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15대부터 19대까지 내리 5선 국회의원을 했다.
국회는 민의(民意)의 전당(殿堂)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지방선거가 시작되면서 ‘정치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이 된다는 것까지 확대됐다. 정치인은 선출직 공직자다.
정치는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다. 우리가 축구를 보는 안목은 프리미어 리그지만, 실력은 동네 축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축구도 그런데, 하물며 정치다. 뭐든 오래 해야 잘하는 법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기만 해도 자동으로 정치 학습이 시작된다. 성장이 중요한지 분배가 중요한지, 보편적 복지가 옳은지 선택적 복지가 옳은지,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발전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어떻게 해야 ‘우리 편’이 선거에서 이겨서 집권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 당’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정무 감각은 모든 사안을 선거 유불리로 계산하는 얄팍한 능력이 아니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요,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심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평생 검사만 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거의 평생 판사만 했다. 정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의 최고봉인 대통령 하겠다고 나섰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윤석열 전 총장은 여론조사를 믿었을 것이다. 최재형 전 원장은 계시를 받은 것 같다. 미안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격 미달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날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두 사람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두 사람에게 몰려드는 국회의원들이다. 정치 문외한을 정치 지도자로 받드는 정치인들의 모습만큼 기괴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윤석열 캠프에는 윤창현·윤한홍·이용·이종배·이철규·장제원·정점식·정찬민·한무경 의원이 참여했다. 권성동·이양수·정진석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윤석열 캠프는 최근 이명박·박근혜 정부 참여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정책자문단까지 출범시켰다. 윤석열 캠프에서는 먹을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동물들의 냄새가 난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 되면 이들의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최재형 캠프에는 김미애·박대출·박수영·서정숙·이종성·정경희·조명희·조태용·조해진 의원이 참여했다. 최재형 전 원장을 닮아서 그런지 대부분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정치는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쨌든 참 이상하다. 윤석열 최재형 캠프에 들어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내에 훌륭한 자질을 가진 대선 주자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일까?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수석이라는 단어를 이름처럼 달고 다닌 제주의 자부심이다. 보수 정당에 몸을 담고 있지만 늘 개혁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서울 양천갑에서 16·17·18대 의원을 하고 2014년 제주지사가 됐다. 입법 경험과 광역단체장 행정 경험을 함께 갖췄으니 ‘준비된 대선 주자’인 셈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경제 전문가다. 17·18·19·20대 국회의원을 했다. 개혁 보수 소신이 무척 강하면서도 성과를 내는 정치인이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혔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홍준표 의원은 15·16·17·18대 의원을 했고 경남지사를 했다. 패거리를 짓거나 줄서기를 하지 않고 개인기만으로 원내대표, 대표를 했다. ‘재수 강세’의 우리나라 대선에서 2017년 출마 경험은 상당한 강점이다. 겉으로 비치는 이미지와 달리 실용주의자다. 정책의 이념성을 따지지 않는다.
국민의힘에는 세 사람 말고도 좋은 대선 주자들이 더 있다. 김택근 시인이 최근 <경향신문>에 ‘좋은 정치인은 갑자기 솟아날 수 없다’는 칼럼을 썼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성한용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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