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논란의 아이러니

● 칼럼 2021. 8. 26. 13:09 Posted by 시사 한겨레 ⓘ한마당 시사한매니져

언론중재법 논란의 아이러니

 

국회 법사위에서 박주민 위원장대리가 야당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강행에 맞서 ‘언론자유’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다. 여기에는 사뭇 결이 다른 목소리가 섞여 있다. 25일치 <한겨레> 사설은 “언론중재법 개정 취지에 대한 반대와 법안 일부 조항에 대한 반대를 정확히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법안의 디테일에서 언론자유 훼손 가능성을 진지하게 우려하는 목소리와, 기득권 지키기나 정치적 목적의 무작정 반대 목소리는 당연히 구분돼야 한다. 언론중재법 논란은 언론자유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언론자유 외침의 진정성을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공적인 인물·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문제에 대한 입장이다.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권력 감시라는 건 상식이다. 이에 관한 현대적 법리를 구축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1964년)은 “(민주사회에서는) 정부와 공직자를 향해 격렬하고 신랄하고 때론 불쾌할 정도로 날 선 공격이 가능해야 한다”며 “그러다 보면 간혹 잘못된 사실을 언급하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를 보장하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숨구멍조차 막게 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공적인 인물·사안에 관해서는 허위의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나 공격도 용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 감시가 위축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연방대법원은 공적인 인물이 이런 공격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유도 제시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치밀한 검증과 비판을 받아야 하는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잘못된 보도에 반박 기자회견·인터뷰 등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일반 시민보다 우월하다는 점 등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우려하는 핵심 이유도 공적인 인물·사안에 대한 보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공적 관심사 등에 대한 보도는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우회로나 틈새가 없는지 더 정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보도에는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면, 언론자유를 외치는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윤 전 총장은 부인 김건희씨 관련 의혹을 보도한 매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최근엔 김씨의 이력서 허위 기재 의혹 보도가 나오자 언론사에 기사 삭제와 사과를 요구하며 “후속 조치가 없을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의혹 보도가 나왔을 때 이를 부인하는 윤 전 총장 쪽의 입장은 의혹 제기 보도를 압도할 만큼 대대적으로 보도되곤 한다. 그런데도 언론을 상대로 툭하면 법적 대응에 나서거나 으름장을 놓는 윤 전 총장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언론 재갈법’이라고 공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도입하려고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보다 훨씬 더 가혹한 법적 제재인 형사처벌에 대해선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언론보도에 강하게 대응할 때는 형사 고소·고발을 한다. 민사소송보다 압박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형성된 까닭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국경 없는 기자회’ 등 언론자유 옹호 단체들은 언론보도에 대한 형사처벌, 특히 징역형을 강하게 반대한다.

 

현대국가에서 대부분 사라진 태형처럼 반문명적 형벌로 취급한다. 유엔은 우리나라에도 폐지를 권고해왔다. 이런 제도를 놔두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론자유를 침해하느냐 마느냐를 논쟁하는 것은 모순이다.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이나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형사처벌하라고 주문하거나 이에 찬동했던 이들이 오늘은 언론자유의 수호자처럼 행세하는 건 웃픈 현실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론의 권력감시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라면 명예훼손 형사처벌 폐지부터 주장해야 마땅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정도의 허위보도라면 현행법상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더구나 형법상 명예훼손죄에는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처럼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공적 관심사 등에 대한 예외 조항도 없다.

 

야당·언론단체 등이 진정으로 언론자유를 원한다면 언론보도에 대한 고소·고발부터 없애고 형사처벌 폐지에 나서야 한다. 여당도 이런 토대 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해야만 언론자유를 보장하되 약자인 시민들의 피해를 막겠다는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언론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조화된 언론개혁을 하려면 언론중재법 개정 이상의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법 정비가 필요하다.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폐지해야 한다. 최소한 공적인 인물·사안에 대해서는 그래야 한다. 민형사적 제재 수단 대신 정정보도·반론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면 된다. 공적인 인물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허위보도나 명예훼손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받아야 한다. 이 경우에도 형사처벌보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한 제재가 바람직하다.

 

적어도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이중처벌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잘못된 보도에 대한 개별적·직접적 제재 이외에도 언론의 책임성을 높이고 균형 잡힌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찾는 일도 시급하다. 부쩍 높아진 언론자유와 언론개혁 목소리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찬반이라는 앙상한 구도로 소모되고 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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