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우화
박용현 논설위원
노상강도들이 횡행하는 도시가 있다. 경찰관 A는 순찰 도중 노상강도가 시민들한테서 금품을 갈취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은 그렇게 피해를 면했으나, 그 사이 여전히 강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일부 시민들은 주머니를 탈탈 털리고 말았다. 강도는 한몫 단단히 챙기고 사라졌다. 그러자 A의 행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다. 왜 시민 모두를 대피시키지 못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강도와 결탁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A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사실 이 도시에는 노상강도를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경찰관들도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A를 격렬히 비난하던 경찰관 B는 강도한테서 금품을 나눠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대장동 의혹’을 지켜보며 떠올려본 우화다. 그런데 독자들은 이야기 속에서 분명 부조리한 점을 느꼈을 것이다. 경찰관 A가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했다면 노상강도를 제압해 체포하면 되는 게 아닌가. 왜 일부 시민들만 대피시키는 데 그쳤나. 하지만 우화 속 도시에서 노상강도는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 비정상적인 도시의 부조리는 바로 여기에서 잉태됐다. 노상강도가 들끓어도 아무도 근본 대책을 촉구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부산의 해운대관광리조트(엘시티) 사업은 2007년 민간사업자에게 맡겨졌다. 애초 콘도·호텔 등 상업시설만 짓는 조건이었는데 사업자 요구로 아파트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부산시는 그밖에도 각종 특혜를 제공하며 민간사업자를 도왔다. 그 과정에서 불법 로비가 벌어져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 출신 현기환씨와 배덕광 자유한국당 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이 처벌을 받았다. 개발이익은 1조원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공 환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개발 계획과 인허가라는 공공의 권한과 의사결정을 통해 이뤄지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천문학적 규모의 이득을 창출하지만, 정부는 그 이득을 시민들의 몫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소수의 민간사업자들이 독식하는 구조, 누가 봐도 부조리한 이 구조가 우리 사회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대장동 사업도 이 지역구의 신영수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영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박했고, 2010년 민간개발로 바뀐 뒤 신 의원의 동생이 이 사업 관련 로비를 받아 처벌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신영수 전 의원을 꺾고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에도 새누리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는 줄기차게 민간개발을 주장하고 공영개발에 반대했다. 당시 한 시의원의 발언에서 그들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대장동 개발은 원래 민영개발이 원칙이었다. 이재명 시장이 성남시장이 된 이후에 개발 허가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대장동 개발 허가를 해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대장동 개발은 민영개발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민영개발회사의 이익이 얼마 남든 손해가 나든 개발 허가를 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사가 이런 반발을 뚫고 개발이익 환수를 추구했다면 민관 공동이 아닌 전면적인 공영개발을 선택하는 게 옳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따라붙는다. 이 지사 쪽은 시의회의 반발과 막대한 사업비 자체 조달의 한계 등으로 관철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오른쪽부터), 박수영 의원, 정상환 법률자문위 부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이른바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화천대유·천화동인 관계자 8명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오른쪽부터), 박수영 의원, 정상환 법률자문위 부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이른바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화천대유·천화동인 관계자 8명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타협책이지만 민관 공동개발을 추진해 5500억원을 환수한 것인데, 그럼에도 여기에 참여한 소수 민간사업자들이 수천억의 거대한 수익을 누린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화천대유가 챙긴 막대한 이익을 애초 예측하고도 방치했다면 문제다. 나아가 이 지사가 뒷돈이라도 챙겼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의문점들은 수사 등을 통해 밝혀야 할 일이다.
아직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았고 정치권이 ‘개발이익 환수’냐 ‘특혜 개발’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한가지 바뀌지 않는 사실은 대장동과 같은 부동산 개발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든 천문학적 이익을 남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간사업자가 아닌 공공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분노도 결국엔 이 지점을 향하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이번 논란이 불거진 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부동산 개발로 인한 민간사업자의 일확천금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고 철저히 공공으로 환수하는 근본적 제도 개혁에 나설 동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화 속 세계로 말하자면, 노상강도를 범죄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진 셈이다. 대선에 참여하는 후보와 정치세력들이 과연 토건 카르텔의 편에 서 있는지, 공공의 편에 서 있는지는 이제 유권자들의 선택에 중요한 변수가 됐다. 대장동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부동산 개발 불로소득 방지를 위한 공약과 실천 의지를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절망과 분노를 느끼는 유권자들이 거기에 화답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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