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10월에 부치는 편지

● 칼럼 2021. 10. 9. 13:59 Posted by 시사 한겨레 ⓘ한마당 시사한매니져

[칼럼]  10월에 부치는 편지

 

 장계순 (토론토, 수필가)

 

어느새 온 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단풍의 계절이 왔습니다.

말린 꽃잎으로 장식한 생일 카드를 받고서야, 아 벌써 10월이구나 했습니다.

노란 은행잎이나 단풍잎을 책갈피에 간직했던 그때 우리는 참으로 순수했지요.

저는 지금 조약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호숫가에 앉아 있습니다. 평화스러운 수평선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조금 전 산에서 내려올 때 떠오르던 단상을 문득 편지로 부치고 싶었답니다.

 

지난여름 따갑게 내리쬐던 태양 아래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아픔 그 자체였지요. 탈레반에게 무참히 총살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시민들, 미 캘리포니아와 B.C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던 산불, 그리고 허리케인…독서나 글 쓰는 일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더랬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무색할 만큼 잔인한 계절에 아무 대처할 힘도 없던 피해자들…그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도 도움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그 ‘인류애’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런저런 고통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고, 내 주변의 친구들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가게에 매일 들르는 용접공이 있어요. 그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작업장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일해요. 늘 후줄근한 모습이지요. 토론토에서 해밀턴까지 버스로 직장을 다닌다고 해요. 퇴근 시간에 들러서 빵이나 캔 참치 또는 파스타를 사곤 하지요. 새벽에 갔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이 노총각에게 “ 당신 같은 용접공이 있어서 든든해요. 내 손자 만한 꼬마들이 뛰어 놀 안전한 그네를 만들어 줄 테니까요“ 라고 말하면 그가 활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지요. 또 부부가 의사인 집에서 그들의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아주는 유모에게, 그녀 덕분에 마음 놓고 자녀를 맡긴 의사 부부는 환자들 치료에 더 매진할 수 있을 거라고 귓속말을 해준답니다. 무거운 운송 물품을 어깨에 지고 오는 배달부에게도 물 한 병 건네주면서 행복을 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소소하지만 드러나지 않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지에, 그래서 나 역시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산을 찾아가는 사람이 산 앞에 겸허한 마음을 지니지 않는다면, 산에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요. 왜 사람들은 산을 정복하려고 드는 걸까요? 난 ‘정복’ 이라는 단어를 몹시 싫어합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정복해야 하나요? 그 단어보다는 ‘공동 작업, 혹은 협업(collaboration)’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세상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래서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진리가 내내 마음에 와닿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대들은 나를 감화시키는 인풀루언서(influencer,영향력자)들입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명 강사가 아닐지라도, 정직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노동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으면서도 정신은 고고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사랑하는 그대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스펙을 쌓느라 으스대는 일도 없고, 자본주의 이윤을 챙기지도 못하면서 그저 나누어 줄 줄만 아는 그대들, 이제 열매를 거두는가 하면, 이파리를 떨구고 가벼워지는 법을 깨우친 그대들의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미숙하기만 한 나를 지금까지 참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Albert Camus/ *모든 낙엽이 꽃으로 보일 때에야 비로소 가을은 제2의 봄이 되는 것이다” - 앨버트 카뮈(*필자의 의역)

떨어져 뒹구는 낙엽까지도 꽃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다면, 스산한 가을도 새로운 봄의 계절이 된다는 말이겠지요? 많은 사람이 긴 팬데믹에 지쳐서 우울하다고들 하네요. 누군가를 위해 한 가지 일이라도 도와주라고, 그리운 친구에게 문자 한 통이라도 쓰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10월은 누군가에게 안부 편지를 쓰고, 감사를 전하고, 또 용서받고 싶은 달인가 봐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해피 땡스기빙 (Happy Thanksgivi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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