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 광주 방문, 분위기 ‘싸늘’

이재명·심상정 후보, 구묘역 ‘전두환 비석’ 밟아

다수 보수 정치인들, ‘비석 없는’ 신묘역만 참배

 

광주·전남민주동우회는 1989년 1월13일 전두환씨 부부 민박 기념비를 망월동 옛 5·18묘역으로 옮겨 깨 들머리 땅에 놓았다.

 

‘전두환 옹호 발언’, ‘개 사과 사진’ 등으로 물의를 빚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광주를 찾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할 예정이지만, 이를 대하는 광주 시민사회 단체들 분위기는 싸늘하다. 윤 후보가 5·18묘역을 찾아 ‘전두환 기념비’를 밟을지를 두고서도 관심이 쏠린다.

 

광주지역 8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9일 오후 2시 5·18민주광장에서 ‘윤석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광주공동체 일동’ 명의로 기자회견을 열어 “5·18과 광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라며 면담, 간담회 등 어떤 접촉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병근 조선대(정치외교학) 교수는 “윤 후보의 광주 방문 강행은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가 피해자와 가족들의 마음이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사과할테니 문을 열라’는 것처럼 일방적인 방식이어서 반발하는 것이다. 사과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시민들의 마음을 풀어주지도 않고 오겠다고만 하는 것은 정치적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 22일 망월동 옛 5·18묘역를 참배하면서 ‘전두환 비석’을 밟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광주를 찾는 정치인들의 5·18묘지 참배 행태는 두가지로 나뉜다. 진보·개혁 쪽 정치인들은 흔히 신묘역으로 불리는 국립5·18민주묘지 뿐 아니라 망월동 옛 5·18묘역도 찾아 참배한다. 망월동 옛 5·18묘역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전까지 평범한 시립공원묘지였지만, 1980년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주검이 청소차에 실려와 묻히면서 역사적인 상징공간이 됐다. 1997년 5월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운정동에 국립5·18민주묘지가 들어서 희생자들 대부분이 이장됐고, 옛 5·18묘역은 5·18진상규명 투쟁과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숨진 학생·노동자·시민 등이 묻히면서 ‘민족민주열사의 묘역’이 됐다. 이곳엔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한열(연세대생)씨 등 민족민주 인사 58명이 안장돼 있다.

    망월동 옛 5·18묘지

 

지 교수는 “정치인들이 망월동 옛 5·18묘지를 방문하는 것은 1980~90년대 목숨을 걸고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들의 주장과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정치적 행위”라고 말했다. 반면 대다수 보수 진영 정치인들은 신묘역(국립5·18민주묘지)만 참배한다.

 

망월동 옛 5·18묘역 들머리엔 ‘ㅈ두환’이라고 적힌 비석이 박혀 있다. 원래 ‘전두환’이라고 적혔던 비석은 깨지고 밟혀 ‘전’씨라는 글자가 거의 지워진 상태다. 1982년 3월10일 광주 학살 주역인 전씨 부부가 광주 인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숙박하고 가자, 마을 유지 등이 이 기념비를 세웠다. 광주·전남민주동우회는 1989년 1월13일 민박 기념비를 옮겨와 부순 뒤 5·18 영령들이 묻힌 망월동 묘지로 가는 들머리에 묻었다.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표지판)는 취지였다.

 

윤 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사진’ 논란 뒤 정치인들의 ‘전두환 비석’ 밟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2일 망월동 옛 5·18묘역을 참배하면서 ‘전두환 비석’을 밟았다. 이 후보는 “윤석열 후보도 여기 왔었느냐?”고 물은 뒤 “왔어도 존경하는 분이니 (비석은) 못밟겠네”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지난 8일 망월동 5·18묘역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전두환 비석’을 발로 밟았다. 심 후보는 “전두환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광주 방문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광주 시민사회 “윤석열, 5·18 헌법전문 수록 등 약속해야”

10일 방문 예정 100여개 단체 ‘반대 행동’ 돌입

 

100여개 광주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윤석열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광주 시민단체 일동’이 9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일 예정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광주 방문 반대 뜻을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광주 방문을 하루 앞두고 5·18단체를 중심으로 한 광주시민사회가 반대 행동에 나섰다.

 

9일 100여개 광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윤석열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광주 시민단체 일동’은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 민주정신을 더럽히려는 윤석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학살자 전두환을 옹호하고, ‘개 사과 사진’을 통해 국민을 조롱한 만행은 단순한 말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 후보 내부에 뿌리 깊게 자리한 역사의식과 5·18에 대한 거부감이 은연중에 터져 나온 것”이라며 “윤 후보가 5·18 영령과 광주시민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하려면 △5·18민주화운동의 헌법전문 수록 △당내 5·18 왜곡·폄훼 청산 △전두환 등 헌정 질서 파괴자들의 국립묘지 안장 배제를 위한 국가장법 개정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부터 약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시민단체는 윤 후보가 광주를 찾는 10일 오전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 모여 민주주의와 5·18 정신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또 윤 후보 방문에 맞춰 시민 200여명이 5·18묘역을 참배하고 묘비를 청소해 윤 후보 방문 거부 의사를 전달할 방침이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어 “5·18이 정쟁과 특정 정치인들의 소모적인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며 “5·18을 폄훼했던 국민의힘에 구체적인 조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된 윤 후보에게 묻겠다. 광주에 와서 무엇을 어떻게 사과하겠다는 것이냐. 대선 후보로서 5·18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느냐. 구체적인 답변을 보여주시라”고 요구했다.

 

윤 후보의 광주 방문과 관련한 5·18단체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5·18단체들은 “5·18 정신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참배와 방문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5·18을 능멸하고 모욕하는 사람과는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대다수 단체들이 윤 후보 방문 반대 행동에 나선 가운데, 5·18구속부상자회는 윤 후보와 간담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규연 5·18구속부상자회 회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윤 후보가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할 때 귀빈(VIP) 실에서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기존 5·18단체의 요구말고도 5·18유공자 정신적 손해배상 지원, 5·18유공자 보훈수당 지급, 김종인 등 국보위 출신 인사 선거캠프 배제 등을 더한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석열 캠프 광주선거대책위원회(이하 광주선대위)에 참여한 송기석 변호사는 “광주선대위에서 5·18단체에 간담회를 요청한 상황이 와전된 것 같다. 윤 후보 일정에 5·18단체 간담회는 없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사회에서는 재개발 철거현장 붕괴 사고 여파로 문흥식 전 회장이 구속된 뒤 회장 자리를 놓고 내홍이 일었던 5·18구속부상자회가 5·18단체의 대표 중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시각도 있다. 김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