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가 하면 수사, 남이 하면 사찰?"

국민의힘 “공수처, 의원 78명 통신자료 조회”

윤 “게슈타포나 할 일…대통령되면 책임 묻겠다”

정작 서울중앙지검장 때는 홍준표 비서 조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3월4일 검찰총장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소속 의원 105명 가운데 최소 78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며 ‘불법 정치 사찰’을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씨도 조회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 사안을 두고 “공수처 존폐 검토”를 언급했던 윤석열 후보는 29일 “대통령이 되면 공수처의 불법 행위에 책임있는 자들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공수처가 게슈타포나 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조회 대상인 된 ‘통신자료’는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서비스 가입·해지일 등이다. 공수처가 법원 허가 없이 간단한 사유만 적어 이동통신사에 요청해 받아낸 것들이다. 검찰 등 수사기관은 우선 법원 영장을 받아 수사 대상자의 통화 내역을 확보한다. 통화 내역에는 수사 대상자가 통화(발신·수신)한 누군가의 전화번호와 통화 시간 등이 뜬다. 수사기관은 이 전화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에 통신자료를 요청해 이름 등을 확인한다. 범죄와 연관이 있는 인물로 드러나면 추가 수사가 이뤄지지만 대부분은 일반적인 통화여서 버려진다.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고발 사주 의혹 수사 대상이다. 지난해 4월 ‘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메시지를 이용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된 고발장이 그해 8월 당 공식계통을 통해 법률자문위원장이던 정점식 의원실을 거쳐 당 법률자문위원에게 전달됐다. 이 고발장은 당 공식직인이 찍힌 뒤 대검찰청에 접수돼 실제 수사와 기소까지 이뤄졌다. 피의자로 입건된 윤석열 후보와 김웅 의원 등 수사 대상자와 통화한 불특정 다수에 대해 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를 했고, 이 과정에서 의정활동 등으로 통화가 잦은 국민의힘 의원들 다수가 그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 논란에 대해 “수사 중인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면서도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언급한 이유다.

 

사찰이 성립하려면 처음부터 대상자를 특정해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져야 하는데 통신자료 조회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잘 알고 있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한 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까지 1년6개월 간 검찰은 모두 282만6118건(전화번호수 기준)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통신자료 조회를 당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나갔다.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3월과 4월 두 차례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 수행비서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윤석열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이던 그해 8월에도 수행비서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 홍 전 대표 쪽은 “사찰”을 주장했지만,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대상자와 여러 차례 통화한 전화번호 가입자 인적사항을 확인하다 그 중 한명이 수행비서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사찰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조선일보>는 “통신자료 조회는 통신 수사의 한 수단일 뿐 특정인을 겨냥한 사찰로 단정짓기 어렵다. (사찰 주장 등) 여야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통신조회 남용 방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통신자료 조회가 구체적 통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시기에 누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 ‘인적 네트워크’를 재구성할 수 있다. 수사·정보기관이 이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법무부와 경찰청 등 수사기관은 “수사 사실 노출 우려”를 이유로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당사자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는 등의 개선안에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검찰 출신이 대거 포진한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와 국민의힘에서도 이 문제를 ‘불법 정치 사찰’로 선거 쟁점화할 뿐 정보·인권단체 등에서 10년 넘게 요구해온 통신자료 조회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선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야당이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인·정치인 등에 대한 수사·정보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를 ‘불법 사찰’로 규정했지만, 거대 여당이 된 지금은 조회 근거가 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통신자료 조회 제도 개선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온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27일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위헌적인 제도임에도 윤석열 후보 자신이 검찰총장직에 있었던 검찰은 물론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자행해 온 것이다. 오히려 규모로 따지면 공수처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다. 윤 후보 발언과 같이 사찰이 된다면 검찰총장 재직 시절 이뤄진 검찰의 통신자료 요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하면 수사, 남이 하면 사찰인가”라며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영장주의 도입 등 근본적 개선 방안을 촉구했다. 전광준 기자

 

이재명, ‘중범죄자 공세’ 윤석열에 “특수부 검사 특성 나오나”

  “국민에 비교 기회 줘야…민주적 절차 좀 불편해하는 듯”

  ‘청 2부속실 폐지’ 관련 “문제 생겼다고 폐지, 납득 안 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중범죄 후보의 정치공세’라며 자신의 토론 제안을 거부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향해 “토론을 거부하되 권한은 행사하겠다고 하는 얘기는 다른 사람 얘기를 안 듣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 후보는 29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에게) 비교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기회를 피하고 있다”며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좀 불편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전날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중범죄가 확정적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런 후보가 물타기하려는 정치 공세적 토론 제의를 받아들인다는 건 야당 후보로서 취하기 어려운 태도”라며 토론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께서 좀 지나친 말인 것 같아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 상황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원래 품격이라고 하는 게 있지 않냐.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유력 후보가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수부 검사들 특징 중 하나는 있는 죄도 만들고 없는 죄도 만들고, 있는 죄도 덮어줄 수 있다고 믿는 무소불위 특권 의식 같은 게 있다”며 “아무 근거 없이 저를 그렇게 표현하는 걸 보면 특수부 검사의 평소의 특성이 나온 게 아닌가 좀 걱정된다”고 꼬집었다.

 

윤 후보가 부인 김건희씨 논란이 불거지자 꺼내든 ‘청와대 제2부속실 폐지’ 등을 두고도 “사고 유형이 조금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부인 외교도 있고 부부동반으로 해외 갈 때 지원도 하고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독자적으로 부인으로서 국제활동을 했다”며 그런 기회를 다 봉쇄하겠다고 하는 게 대체 누구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본인에게 생긴 문제를 덮기 위해 제도를 없애버리겠다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