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도 필요없고 정권 내놔야” 국민 선택 받는 민주 정치 무시

 총장 때 통신조회 비판 보도엔 “민주당 기관지 자임” 원색비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30일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 선대위 출범식에서 당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발언 수위가 선을 넘고 있다. 윤 후보는 30일 다자간 토론 요구에 대해선 “알 권리 운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대장동·백현동”이라며 일축했고, 문재인 정부를 향해 “정권을 내놓고 물러가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전날윤 후보의 독재정권 미화 등 역사의식과 민주적 태도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 입문 6개월에 들어선 윤 후보가 여전히 검사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지역기자 간담회에서 “지방도 다니고 국민 여론도 수렴하고 공약도 개발·발표할 시간에 토론이나 하자는 얘기 아닌가”라며 거듭 토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전날 윤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 바꾸기’를 지적하며 “제가 이런 사람하고 국민 여러분 보는 데서 토론을 해야 하나. 어이가 없다. 정말 같잖다”고 밝힌 바 있다. 유권자가 공직자를 선출하기 위한 검증 과정을 상대 후보의 ‘자격’ 등 자의적 기준을 들이대고, “알 권리 운운” “토론이나 하자는 얘기”라며 폄하한 것이다. 윤 후보는 또 문재인 정부를 향해 “실패했으면 실패를 자인하고 겸손하게 정권을 내놓고 물러가는 것이 책임정치라는 민주주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대선도 필요없고 이제 곱게 정권을 내놓고 물러나는게 정답”이라는 주장의 연장선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각 당 후보들이 시대정신과 정책 비전으로 경쟁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 민주 정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발언이다.

 

그는 이날 자신의 검찰총장 재임 기간 동안 검찰이 282만여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한겨레> 보도를 언급하며 “그 기사 제목을 봤지만 그건 물타기 기사”라며 “그 언론이 그야말로 민주당 기관지임을 자인하는 물타기 기사”라고 원색 비난했다. <한겨레> 기사는 수사·정보기관이 제도 개선 의지 없이 수사 편의를 위해 수십년간 통신자료 조회를 일상적으로 행해왔고,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시절에는 사찰 주장만 되풀이하면서도 법 개정 노력은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은 것인데,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물타기”, “기관지”라고 호도한 것이다.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기록 조회 논란에 대해 “미친 사람들”, “공수처장을 구속수사해야 한다” 등 거칠게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윤 후보의 최근 행보가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면서도, 발언 내용과 수위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 재직 시절 조국 전 장관을 범죄자로 놓고 수사한 것처럼, 실제 이 후보를 중대범죄자로 보는 것 같다. 언론에 대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갈등 조정과 통합, 소통을 중시하는 정치인의 태도가 아닌,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검사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후보는 ‘반문재인’ 깃발로 여기까지 왔지만,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과 자질은 아직 보여준 게 없다”며 “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국민이 왜 아파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른채 엉겁결에 후보가 된 탓에 국민을 설득할 내용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전날 윤 후보가 “권위주의 독재 정부는 우리나라 산업화 기반을 만들었다. 이 정부는 뭐 했나”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는 대선 후보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받고 있다. 앞서 “전두환은 5·18과 군사쿠데타한 것 빼고 정치는 잘했다”와 같은 ‘몰역사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당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가”라며 “평등, 인권 등을 고민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장나래 김해정 기자

 

윤석열의 ‘황당 언행’과 ‘검찰 DNA’

 

윤석열 국의민의힘 대선 후보.

 

박용현 | 논설위원

 

세무서장이 육류업자한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다. 그런데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이 6차례나 기각한다. 그리고 세무서장은 해외로 도피한다. 8개월 만에 인터폴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되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또 기각해 무사히 귀가한다. 검찰은 2년이나 시간을 끌다가 슬그머니 무혐의 처분한다. 세무서장의 동생은 검찰에서 잘 나가는 특수통 검사다.

 

영화에 나와도 비현실적 설정이라고 비웃음을 살 법한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2012년 시작된 이 비현실적 현실은 2021년 12월29일까지 이어졌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은 사건 발생 10년 만에야 겨우 기소됐다. 검찰 내부의 비호세력 없이 이런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0%다. 윤 전 서장의 동생인 윤대진 검사장은 당시 대검찰청 중수2과장이었고,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었다. 윤석열은 ‘대윤’, 윤대진은 ‘소윤’으로 불릴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그림은 너무도 뻔한데, 대윤·소윤이 윤우진 전 서장을 비호한 의혹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다. 10년을 흘려보냈으니 오죽하겠는가.

 

‘윤우진 사건’은, 동영상 속 얼굴을 뻔히 보면서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던 ‘별장 성접대 사건’과 더불어 ‘제 식구 봐주기’ 수사의 끝판왕이다. 다양한 법기술과 고도의 뻔뻔함을 발휘해 국민의 공분 속에서도 사건을 덮어버렸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고서는 감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표적으로 삼은 인물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난도질하면서 제 식구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이중잣대가 검찰의 디엔에이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검찰총장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윤석열 후보도 이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윤 후보는 29일 경북 선대위 출범식에서 놀라운 말을 했다. “수사 과정에서의 자살은 수사하는 사람들이 좀 세게 추궁하고 증거 수집도 열심히 하고 그러니까, ‘이게 지금 진행되는 것 말고도 또 내가 무슨 걸릴 것이 있냐’ 하는 불안감에 초조하고 그러다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도 하는 것이다.” 별건 수사로 압박하고 모멸감을 주며 몰아붙여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는 잔인한 ‘수사 기법’을 자인한 셈이다. 그렇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나 자성도 묻어나지 않는다. 그가 검사로서 어떤 태도로 수사에 임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반면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과 재직증명서 위조 의혹과 관련해서는 과거에 그가 수사하거나 수사를 지휘한 신정아씨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씨 사건에서 보여줬던 냉혹함을 찾아볼 수 없다. 장모가 두가지 범죄 혐의로 각각 실형을 선고받은 데 대해서도 남의 일이라는 듯 무덤덤하기만 하다. 정의와 공정, 법치라는 그의 구호가 허망할 뿐이다.

 

검찰과 윤석열 후보는 사과에 인색하다는 공통점도 보인다. 국민이 위임한 검찰권을 잘못 행사했으면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게 당연한 도리다. 그러나 윤우진 사건이든 김학의 사건이든 사과하는 검사가 한 명도 없다. 과거의 수많은 조작 사건, 강압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대신해 권한을 행사하는 공복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을 소유한 지배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행태다. 그런 인식이 배어있는 탓인지 윤 후보도 사과해야 할 때 사과하지 않아 물의를 빚는 일이 잦다. ‘개 사과’ 논란에 이어 김건희씨의 대국민 사과도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후폭풍에 휩싸였다.

 

그런 윤 후보가 매우 신속하고 전격적으로 사과를 한 대상이 있다. 박근혜씨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 출신인 윤 후보는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대구를 방문해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고 하더니 최근 특별사면에 즈음해서도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피의자를 수사해 처벌했는데 미안하다니, 검사로서 자기 부정을 하는 셈이다. 출세를 위해선 알량한 검사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불의와 손잡던 과거 정치검사들의 굴신이 떠오른다.

 

독재정권이든 부패정권이든 공생관계를 맺어 부역하면서 검찰의 특권을 보장받고 이를 통해 권력과 부를 누린 게 검찰의 폐단이었다. 윤 후보의 요즘 행보를 보면 그런 속성이 뿌리깊게 잠재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반복적으로 독재정권을 미화하고, “토론을 하게 되면 싸움밖에 안 나온다”는 망발로 유권자 국민과 민주적 선출 절차를 비웃는다.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를 모독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내놓는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선 후보인가 싶을 정도다. 이런 인물이 검찰총장을 지내고 조직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으니 검찰 조직의 민주적 소양 수준을 알 만하다.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선 후보가 되는 것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허무는 일이지만 검찰 내부의 비판과 자성은 없었다.

 

검찰의 폐단을 바로잡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인데 윤 후보를 통해 그것이 정치에까지 고스란히 이식된다면, 암담한 일이다.

 

윤석열 사찰 주장에…공수처장 “고발사주 피의자 통화 확인”

법사위 ‘통신기록 조회’  여야 설전

 

김진욱 공수처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수처의 야당 대선 후보 및 국회의원 등의 통신기록 조회 논란에 대한 현안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의 통신기록을 조회한 이유와 관련해 “(고발사주 의혹 사건) 피의자, 핵심 관계자와 통화한 상대가 번호로만 나오는데, 그 번호가 윤 후보자 번호였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기록 조회’를 놓고 김 처장을 강하게 몰아붙였고 김 공수처장은 “사찰이 아니다. 본질은 가입자 정보조회”라고 항변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고발 사주로 입건된 국민의힘 의원은) 김웅·정점식 2명”이라며 “(다른 의원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왜 털었냐, 과도하다는 생각은 안 드냐”고 말했다. 권 의원은 김 처장에게 “이봐, 이봐, 공수처장”이라고 소리치며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만 최소한으로 조회해야 정당한 법 집행이지 그 사람과 통화한 모든 사람을 조회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공수처가) 제2의 정치검찰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일개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공수처장으로 앉혀놓으니 보은하는 것이 아니냐. 대선에 개입해 공을 세워보겠다는 의도가 맞지 않냐”고 말했다. 김 처장은 “(언론에서) ‘통신내역 조회’라는 말도 쓰는데, 내역 조회가 아니다. 가입자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가입일만 확인하는 것”이라며 “지나친 말”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아전인수 격 주장을 한다고 비판했다. 김영배 의원은 “(야당 주장대로라면)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만 280만명의 국민이 사찰을 당한 셈”이라며 “자기들도 통신조회를 해놓고 지금은 사찰이라는 것인가. 이는 내로남불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에 김 처장은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해 요건에 맞춰 이뤄진 적법한 통신자료 요청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특히 공수처가 윤 후보의 통신기록을 세차례, 부인 김건희씨는 한차례 조회한 것에 대해선 고발 사주 의혹 사건 관련이라고 했다. “윤 후보와 김건희씨에 대한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것이냐”는 권성동 의원의 물음에 “국민적 관심사가 됐기 때문에 말씀드리자면 현재 수사 중인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라며 “(사건) 피의자, 핵심 관계자와 통화한 상대가 번호로만 나오는데, 그 번호가 윤 후보자 번호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틀 연속 거칠게 공수처를 비난했다. 공수처를 나치 게슈타포에 견줬던 윤 후보는 페이스북에 “야당 대선 후보까지 사찰하는 ‘문재명’ 집권세력에 맞서 정권 교체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서서 죽겠다”고 적었다. 조윤영 오연서 기자

 

위기의 윤석열 “박근혜 찾아뵙고 싶다”…친박 표심 ‘구애’

“박 전 대통령 석방 크게 환영 조금 더 일찍 나오셨어야 생각

이 전 대통령도 빨리 석방돼야” 15개 친박단체와 비공개 만남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30일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0일 대구를 방문해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곳에서 ‘박근혜 리스크’를 줄이고 보수층의 지지를 다지는 행보를 이어갔다.

 

1박2일 일정의 대구·경북 지역 방문 이틀째인 이날 윤 후보는 대구에서 한 지역 기자 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크게 환영한다”며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회복되면 한번 찾아뵙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더 일찍 나오셨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찾아뵙고 싶은데 다른 정치적인 현안들을 박 대통령께서 신경을 쓰신다면 쾌유가 늦어지기 때문에 시도 자체를 안 하고 있다”며 몸을 낮췄다.

 

윤 후보는 지난 24일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란다”고 한 데 이어 28일에는 “박 전 대통령 수사는 공직자로서 직분에 의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정서적으로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인간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날 15개 친박 단체들을 만나 비공개 차담을 하기도 했다. 친박 단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외쳤다. 하지만 강성 친박인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대구시당과 대구백화점 앞에서 윤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빨리 석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거듭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쪽이 ‘대장동 특검’을 거부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후보는 이 후보를 겨냥해 “대장동 범인이기 때문에 (특검을) 받지 않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부산저축은행, ‘고발 사주’ 등을 끼우자고 해서 얼마든지 하자고 했는데, 또 안 받는다. 특검도 받지 못하는, 그래서 확정적 중범죄자로 표현하는 이가 대통령이 돼서야 되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사람을 후보로 내세운 정당은 정상적인 정당이 맞느냐. 완전히 망가졌다”며 “민주당 정권이 내세우는 공약, 이거 믿느냐. (이 후보가) 공약을 ‘소확행’이라고 해서 지역마다 표를 얻기 위해 막 던지는데 어음정치다. 이 정권에서 어음이 결제되는 것 봤나”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도 “많은 국민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안보 행보도 이어갔다. 그는 이날 오후 경북 칠곡군에 있는 다부동 전투 전적비에 참배하고 참전 용사, 유가족과 차담회를 했다. 윤 후보의 행보는 당 내홍과 부인 김건희씨 허위 경력 파문, 자질 시비 등의 겹악재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정권교체’ 필요성을 재점화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텃밭’에서 반문재인 정서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핵심 지지층을 우선 결집시키겠다는 의도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한겨레>에 “위기감이 크다 보니 발언도 세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대구/배지현 기자

 

[특파원 시각] 미국 대선 토론과 윤석열 후보

 

2016년 9월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시민들이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첫 텔레비전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웨스트할리우드/AFP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황준범 | 워싱턴 특파원

 

대선을 석달 앞두고 후보 간 토론 문제로 시끄럽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토론 제안을 “중범죄자의 정치 공세”라고 힐난하더니 이튿날에는 이 후보의 공약 수정을 가리키면서 “이런 사람하고 토론해야겠나. 정말 같잖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대통령 후보 토론은 3번밖에 하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대선에서는 세번, 트럼프와 조 바이든 대선 때는 코로나19로 두번만 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토론 최소화를 정당화하려 미국 사례를 들었겠지만, 미국 사례는 윤 후보가 그토록 토론을 기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1960년 존 에프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처음으로 텔레비전 토론을 벌인 이후로 미국에서 텔레비전 토론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논쟁은 계속돼왔다. 여러 연구의 대체적인 결론은, 토론이 유권자들의 후보 판단에 도움은 되지만 대선 승부에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2019년 하버드경영대학원 연구진이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에서 치러진 31차례의 대선에서 있었던 56차례의 텔레비전 토론을 분석한 결과는, 토론이 부동층 유권자들로 하여금 후보를 결정하도록 도운 것도 아니고, 기존에 선택한 후보를 바꾸게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72%의 유권자들이 대선 두달 이전에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1988년부터 2016년까지 미 대선을 살펴본 결과, 유권자의 약 60%가 텔레비전 토론이 후보 선택에 ‘매우 또는 다소 도움이 됐다’고 했으나, ‘후보 토론들이 열리는 기간 또는 그 뒤에’ 후보를 결정했다는 응답은 10%(2012·2016년)였다.

 

가까이 지난해 트럼프와 바이든 대선 때 두차례의 토론 직후마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토론의 승자는 바이든이었다. 특히 1차 토론은 트럼프가 쉼 없이 상대방의 말을 끊는 등 사상 최악의 토론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실제 대선은 투표 뒤 승자를 가리기까지 나흘이나 걸린 접전이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의 대결 때도 미 언론은 일제히 클린턴을 토론 승자로 꼽았다. 트럼프는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난타를 당하고, 클린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등 태도에서도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대선은 트럼프의 승리였다. 토론 승패와 대선 결과는 별개인 셈이다.

 

결국, 토론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기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후보에 대한 태도를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갖는다는 게 공통적인 분석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진 미국에서는 토론의 영향력이 더욱 제한적이다. ‘정권교체냐, 정권유지냐’로 팽팽하게 맞선 한국 또한 예외라고 할 수 없다. 소셜미디어 등 후보를 접할 수 있는 수단도 갈수록 다양해져, 전체 선거에서 토론이 차지하는 비중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후보 입으로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며 노골적으로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토론은 여전히 유권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후보들을 비교하면서 가치관·정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 누가 더 나은 대통령감인지 따져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박빙 판세에서라면 토론에서 보여준 역량이나 실수가 대선 승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회와 위험 요인은 모든 후보가 공통으로 떠안는 것이다.

 

말하기 편한 텃밭 지역에 가서 상대 후보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면서 토론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의 검증과 선택을 받겠다고 나선 이의 자세가 아니다. 토론의 내용보다도 토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이미 유권자들에게 커다란 판단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