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11일 엄수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주화 운동가' 고 배은심 여사의 노제를 겸한 영결식이 11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엄수됐다. 이날 노제 겸 영결식은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운동 중 경찰의 최루탄에 숨진 뒤 민주화·인권 운동 등에 헌신해왔다.

 

이날 오전 10시께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의 발인을 시작으로 유해는 5·18 민주광장으로 운구됐다. 장례위원회가 애초 계획했던 5·18 민주광장까지의 도보 운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취소됐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87년 잔인한 국가폭력에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워 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한평생을 편한 집 대신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며 “약자를 품어 안은 시대의 어머니셨다. 이 땅의 수많은 민주시민은 어머니의 강인한 눈빛과 따뜻했던 품을 기억할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고인의 장녀인 이숙례씨는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친 배 여사의 유해는 지산동 자택을 들른 뒤 망월동묘역 8묘원에 안치됐다. 장지는 1999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고 이병섭씨 바로 옆이며, 아들 이한열 열사가 묻힌 옛 망월동 5·18 묘역(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직선거리로 1㎞ 정도 떨어져 있다. 김태형 기자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영결식에 앞서 상영된 추모 영상 중 고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직후 사진이 보이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사회장이 열린 11일 오후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옛 묘역)의 이 열사 묘소에 배 여사의 영정과 훈장이 놓여 있다. 고인의 유해는 이 열사의 묘지를 들러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으로 옮겨져 남편 고 이병섭(1999년 4월 별세)씨 곁에 안장됐다. 아들 묘에선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광주/연합뉴스

 

“‘만인의 엄마’로 살아준 엄마 감사해요”…배은심 여사 눈물의 영결식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에서 장녀 이숙례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만인의 엄마’로 자리 잡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만나시고, 한열이와 영면하세요. 삼일동안 장례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 영결식에서 장녀 이숙례씨가 인사말을 했다. 5남매의 장녀인 이씨는 지난 9일 황망하게 세상을 뜬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오늘 눈도 내리고 춥네요, 엄마.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분이 모여 있어요. 항상 엄마 마음을 아리게 했어요. 아들 가슴에 묻고 35년을 사셨던 엄마. 아들 보고 싶어 부르던 피맺힌 절규도 이젠 들을 수 없겠네요”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시대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 영결식이 치러진 광장엔 유가족과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빈소가 차려진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노제가 열리는 5·18 민주광장으로 유해를 운구했다. 노제에선 연세민주동문회 이인숙 회장이 고인의 연보를 낭독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1987년 6월9일 아들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7월5일 숨진 뒤, 민주·인권운동에 헌신해 민주화 운동가로 거듭났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 퇴원했지만, 사흘 만에 다시 쓰러져 회복하지 못했다.

 

11일 오후 고 배은심 여사의 유해가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장돼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한동건 상임장례위원장(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인사말에 이어 생전 배 여사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배 여사는 생전 영상에서 “다시 천막을 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을 쳤습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생전 고인의 가장 큰 바람은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되는 것이었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 운동 참가자 예우를 담은 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처리는 무산돼 온 법안이다. 1960~90년대 말까지 민주화운동 참가자를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교육·취업·의료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어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대표와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전남추모연대 박봉주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했다.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이 노제와 겸해 열리고 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망월동 옛 5·18묘지에 있는 아들 이한열 열사의 묘지를 들러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으로 옮겨져 남편 고 이병섭(1995년 10월 별세)씨의 곁에 안장됐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아들의 묘에선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이 묘역은 이 열사의 묘소를 마주 보고 있다. 정대하 기자

 

“한열이 문 열고 들어올까”…고 배은심 여사 집 ‘역사교육관’ 조성될까?

 

 1987년 6월항쟁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가 살았던 집.

 

지난 10일 오후 찾은 광주시 동구 지산동 고 배은심 여사의 집 안팎엔 적막 만이 흘렀다. 마당 한쪽으로 오래된 호랑가시 나무가 겨울 볕을 받아가며 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이한열 열사가 네살 때인 1970년부터 살던 집을 어머니는 평생 지켰다. 최근 집을 수리하면서 큰길로 새 문을 냈지만, 옛 작은 문은 그대로 뒀다.

 

지난 8일 고인이 세상을 뜨기 직전 이 집을 찾은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어머니는 항상 ‘아직도 한열이가 집 문을 열고 금방 들어올 것 같다’고 하셨다”며 “‘왜 집에 와서 밥을 먹지 그랬냐’고 하시며 정겹게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이렇게 황망하게 가실 줄 몰랐다”고 말했다.

 

고 이한열 열사가 자랐고 배 여사가 50년 남짓 살았던 지산동 집이 앞으로 ‘역사 교육관’으로 조성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고 이한열 열사가 살았던 집 한쪽에 있는 옛 대문.

 

임택 동구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역사적인 공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이한열 열사가 성장했던 331㎡규모의 집과 터를 매입해 추모와 민주·인권·평화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배은심 여사와 상의해왔다”며 “어머니가 지난해 9~10월께 거의 결심을 굳히시고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 등을 듣고 싶어 하셨는데 갑자기 별세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구는 지난해 고 이한열 열사의 집과 인근 ‘시인 문병란의 집’, 고 오지호 화가 생가 등을 이어 2.6㎞ 길이 ‘뜻 세움길’을 조성했다. 고인은 동구에서 자택을 역사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계획과 관련해 ‘아들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점때문에 주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순 집행위원장은 “어머니도 (그 집에서) 머무를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셨는지 역사공간 만드는 일을 진행하자고 하셨지만, 공간을 만들면 일단 그 집을 비워줘야 하니까 결심이 쉽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

 

고인은 아들이 경찰의 최루탄에 피격당했던 1987년 6월9부터 세상을 떴던 7월5일까지 일을 파노라마처럼 기억했다. 그리고 해마다 그 시간이 오면 극심한 고통을 앓았다. 고인은 2017년 3년상을 치르는 세월호 유족들에게 “여러분은 3년이 됐는데 난 30년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다’고 하는데 30년이 되도 똑같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을 딛고 전국 곳곳의 민주화 시위와 사회적 약자의 집회에 참여했다. 그것이 아들의 뜻을 잇는 길이라고 여겼다. 김순 집행위원장은 “따뜻한 성품이시지만, 원칙을 어기는 법이 없으셨다. 추모회 일로 출장을 가면서 시외버스 프리미엄 좌석 표를 샀다가 혼난 적이 있을 정도로 폐끼치는 것을 싫어 하셨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염원은 민주화 유공자 예우법 통과였다”고 기억했다.

 

     고 이한열 열사의 묘.

 

한편, 고인은 11일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 남편 고 이병섭(1999년 4월 별세)씨의 옆에 안장된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아들 이한열 열사의 묘가 있는 망월동 옛 5·18묘지에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정대하 기자

 

한열 동산’ 모인 시민들, ‘민주화 운동가’ 배은심 여사를 기억하다

추위에도 300여명 모여 추모

 

10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동산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30년을 살다 보니까 이렇게 왜 살고 있지? 내가 나한테 물어보고도 싶고 괴롭습니다…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노랑옷 가족이 돼버렸네요. 그래서 가족의 힘으로 이 나라가 조금 밝아질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경험입니다. 우리 애기들의 모습 잊지 마시고. 그 모습 잊지 않으려고 (나는) 30년 동안 대중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이 시작되기 전, 배 여사의 생전 육성이 울려 퍼졌다. 2017년 5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찾았을 때 남긴 메시지다. 1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 마련된 ‘한열 동산’에서 이한열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배 여사의 추도식에는 추운 날씨에도 3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자리를 지켰다. 한 손엔 핫팩, 한 손엔 추도사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선 이들은 20대 청년부터 머리가 희끗한 50대, 60대 장년까지 다양했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서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에 참여한 시민들.

 

추도식은 야외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됐지만 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묵념을 하거나 “세월이 이렇게 갔구나”라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6월 합창단 등이 준비한 추모의 노래를 끝으로 추도식이 끝나자 참석자 모두 나와 흰 국화를 헌화했다.

 

이날 추도사를 낭독한 김거성 전 이한열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배 여사의 생전) 사진을 찾으려 사진첩을 뒤적여봤다. (하지만) 2020년 6월 대통령에게 모란장을 받을 때에도 사진엔 어머니의 마음속 그늘이 찍혀 나왔다. (2020년 6월9일) 경찰청장이 찾아와 용서를 구할 때에도 어머니는 ‘33년이 지났어도 나한티는 87년 그날이여. 그래서 마음이 아퍼요’라고 말하셨다”고 했다. 그는 “그 아픔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해맑은 웃음 (찾으실) 그날 위해 다시 다짐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청년들도 배 여사를 추모했다. 연세대 학생들이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단체 ‘열의걸음’ 강새봄 대표는 추도사에서 “5·18 역사공부를 해 본다고 5월 광주를 찾아가면 (배 여사는) 무더운 날씨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버선발로 달려오셨다”며 “배은심 어머니와 이한열 선배, 그리고 다른 열사분들이 바라던 세상은 지금 모습이 아닐 것이다. 열사들이 물려주신 유산은 어떤 시련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였다. 우리 시대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청년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이한열 장학생’, 6·10항쟁 참여 시민도 “뜻 잇는 분, 많이 있으니…”

배은심 여사 서울 분향소 마련

추모하는 시민들 방문 이어져

 

 1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 차린 배은심 여사 분향소. 오른쪽으로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 보인다. 연합뉴스

 

“이한열군이 숨졌을 때 20대 직장인이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6·10항쟁에 참여했어요. 엄마가 돼보니 자녀가 먼저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요. 배은심 여사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직접 왔어요.” (경기 부천 63살 황영희씨)

 

10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서울 분향소가 차려진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는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하루종일 계속됐다. 이한열기념사업회 등은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를 꾸려 배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외에 이한열기념관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를 찾은 이들은 어머니에서 ‘민주 투사’로 살아가며 한국 현대사에 발자국을 남긴 배 여사의 삶을 되짚으며 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신영옥(65)씨는 “이한열 열사의 관에 쓰러지듯 엎드려 오열하던 여사님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문진수(59)씨는 “배은심 여사는 인생 자체가 헌신이며 이 시대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마음의 평안을 얻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송이(21)씨는 “대학 역사동아리 친구들 네 명이 함께 조문왔다. 그간 많이 힘들게 지내셨을 것 같아서 수고하셨다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이한열 장학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2009년부터 학기마다 10명 안팎의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분향소 자원봉사자로 온 김평강(26)씨는 “장학금을 받게 돼 저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배 여사를 두어번 뵀는데 차분하면서 올곧으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따뜻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며 “배 여사가 떠나게 돼 먹먹하지만 슬퍼 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분의 뜻을 잇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진리(37)씨는 “힘들었을 때 장학금을 받게 돼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빈소를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배 여사를 ‘늘 곁에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수동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전 회장은 “배 여사님께서 민주화 관련 행사마다 참석하셨다.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고 했다. 정명호 한국전쟁유족회 상임대표는 “두 달 전 집회에서 마지막으로 뵀다. 좋은 일,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오시던 분이다. 정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분향소에는 150여명의 시민, 정치인들이 찾았다. 이주빈 기자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 동산’.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에서 꽃을 올려놓았다.

 

배은심 여사 조문 온 윤석열에 대학생들 거센 항의시위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10일 배은심 여사 빈소 찾아 조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대학생들의 항의를 받으며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장례식장 들머리에 나와 있던 장례위원들은 장례식장에 도착한 윤 후보에게 “어머님이 마지막까지 외쳤던 것이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라는 목소리였다”며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윤 후보는 “법안 내용과 경위를 잘 모르다보니 제가 (서울) 올라가서 그 부분은 원내지도부에게 검토를 요청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장례위 관계자는 “정말 부탁드리겠다. 어머니 마지막 소원이셨다”라고 재차 당부했다. 윤 후보는 이후 빈소를 찾아 헌화와 분향을 마치고 배 여사의 아들 이훈열씨를 위로한 뒤 장례식장을 나섰다.

 

윤 후보가 조문하는 동안 장례식장 주변에서는 진보 성향 대학생 단체 회원들이 조문 반대 항의가 이어졌다. 이들은 “전두환이 5·18빼고 정치를 잘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추모를 하냐, 어떻게 열사를 기억하냐”고 외치고, `민주화운동을 정치적 홍보용으로 여기지 말라', `당신에게 필요한 건 멸콩 아닌 열공' 등의 손팻말을 든 채 거세게 항의했다. 김태형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0일 오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고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대학생 진보 단체들의 시위인파 가운데로 장례식장을 향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은심 여사 빈소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별세…아들 이어 민주투사로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돼 왔다”

 

 고 이한열 열사의 34주기 추모행사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지난해 6월9일 오후 배은심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2.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전날 퇴원했다. 퇴원 후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루 만에 다시 쓰러졌다. 가족이 배 여사를 발견하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들 뜻을 이어받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 온 배 여사는 아들이 떠난 지 35년 만에 아들 곁으로 갔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이 모두 병원에 도착하는 대로 부검 여부 및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1987년 6월9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이 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아들의 죽음은 배 여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배 여사는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배 여사는 ‘한열이의 이름으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1929-2011)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고 박정기(1928-2018)씨 등과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현장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힘을 보탰다.

 

배 여사는 유가협 회장을 맡아 1998년부터 422일 동안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2019년에는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아 힘을 보탰다. 배 여사는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고 이소선 여사 등과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배 여사는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서른세 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배 여사는 앞서 2018년 6월 이 열사가 다니던 연세대학교와 이한열기념사업회가 함께 주관해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1번째 추모제에서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한 발짝씩 온다. (열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믿는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허호준 기자

 

광주 고 배은심 여사 장례식장, 문재인 대통령 직접 조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조문

‘1987’ 강동원 “이렇게 다시 봬서 안타깝다”

영화 <1987> 이한열 열사 연기한 강동원 배우 조문 눈길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상호 의원 등 각계 인사들도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를 연기했던 배우 강동원씨가 9일 광주 조선대병원장례식장을 찾아 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추모하고 있다.

 

“함께 투쟁하고 슬픔을 공유했던 어머님들이 한두분씩 세상을 떠나니 마음이 아프다. 항상 투쟁에 앞장섰던 배은심 여사도 어찌 다 잊고 가셨겠냐. 부디 하늘에서 한열이와 잘 있기를 바란다.”

 

9일 오후 3시께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오영자(79) 여사는 “하나둘씩 이렇게 세상을 떠나버리면 서러워서 어떻게 사냐”며 통곡했다. 오 여사의 딸 박선영 열사는 서울교대 2학년 때인 1987년 2월 전두환 정권과 비민주적 학사 운영을 규탄하며 산화했다.

 

이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과 장례식장을 찾은 오 여사는 “이소선 여사와 배 여사 등 가족을 잃은 우리는 서로 마음이 통하며 30여년간 함께 투쟁했다. 아직 떠날 시기가 아닌데 이렇게 가버리니 원통하다”고 말했다.

 

박관현 열사 누나 박행순(73)씨도 “아들을 잃은 배 여사님은 아들 몫까지 한다는 마음으로 민주화 투쟁에 항상 앞장섰다. 역사의 큰 틀을 만드는 데 아들이 역할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엄마로서 정말 손색없이 살아가려면 뭐든지 열심히 하셨다”고 기억했다.

 

이날 오후 4시50분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도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6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배 여사의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었다. 또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의원, 정세균 전 총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조문했다.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를 연기했던 배우 강동원씨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강씨는 “영화 촬영 이후에도 배 여사님에게 자주 연락을 드렸다.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날 밤 8시20분께 빈소를 찾아 “세상 일 다 잊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앞서 오후 6시께에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들러 “늘 거리에서 뵙던 어머님이 없어 허전할 것 같다. 온몸으로 실천하셨던 민주주의를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이한열열사기념사업회, 유가협, 광주전남추모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광주에서 삼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서울에는 별도로 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각계 추모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진보연대와 민주노총 광주본부, 이용섭 광주시장 등은 각각 이날 성명을 내어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김용희 기자

 

문 대통령 “배은심 여사 헌신이 오늘민주주의를 만들어”

광주 장례식장 찾아 직접 조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9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한열 열사 모친 고(故)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빈소를 조문하고 “6월 민주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와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간 배은심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은심 여사 빈소를 찾아 유가족과 호상을 맡은 우상호 국회의원에게 “고인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에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냐”고 위로를 건넸고, 유가협 어머니들은 “이렇게 아픔을 어루만져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 8분 동안 머물렀다.

배은심 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시민사회단체의 원로들이 고문단을 맡고 오랜 인연을 이어온 우상호 의원이 호상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6월 10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배은심 여사에게 민주화 공로를 인정하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직접 수여한 바 있다. 이완 기자

 

“민주주의의 어머님 편히 쉬시라” 정치권 일제히 추모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한열이를 살려내라’ 조형물 제막 및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종근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9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대선 후보들과 정치권이 일제히 애도의 메시지를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6월의 어머님, 민주주의의 어머님인 배은심 여사께서 아들 이한열 열사의 곁으로 가셨다”며 “오직 민주주의 한 길 위해 노력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고 추도의 글을 올렸다. 그는 “숱한 불면의 밤을 수면제를 쪼개어 드실지언정 전국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의 일이라면 전국을 다니셨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과 6월 항쟁 기념식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참석자들 한분 한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회고하며 “이제 남은 일은 걱정마시고 이한열 열사와 함께 편히 쉬시라”고 적었다. 아울러 “어머님의 뜻을 가슴 속에 깊이, 단단히 새기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반드시 지켜가겠습니다”고도 덧붙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분들과 이한열기념사업회 여러분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윤 후보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께서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35년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해오셨다”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이한열 열사와 배은심 여사님의 그 뜻, 이제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한열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님’이신 배은심 여사님의 명복을 빈다”는 추모의 글을 냈다. 안 후보는 “어머님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더 많은 우리의 아들딸들이 똑같은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집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걸음에 달려가서 우리 아들딸들을 지켜주셨다”며 “‘이한열의 어머님’에서 ‘우리의 어머님’으로 ‘더 큰 자녀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대한민국 미래세대 모두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키셨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숭고한 정신과 꼿꼿함을 우리 모두에게 남기셨다”며 “어머님의 뜻을 잊지 않고 깊이 새기면서 살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어 “6월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 열사 사망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오셨다”고 추모했다. 이어 “고인의 삶을 추모하며 우리 사회의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아들아, 엄마가 갚을란다” 배은심 여사 별세…각계 애도 물결

“민주주의는 피와 땀과 눈물이 범벅돼 한 발짝씩 온다”

 대선 후보 등 정치권·시민사회 애도 물결 이어져

 

고 이한열 열사의 34주기 추모행사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지난해 6월9일 오후 배은심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다 풀고 가거라. 엄마가 갚을란다. 한열아! 한열아! 가자, 우리 광주로!”

 

1987년 7월9일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 속에 열린 이한열(당시 22) 열사 장례식에서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아들 대신 싸우겠다”고 절규했다. 배 여사는 그날 이후 '6월의 어머니'가 됐고, ‘거리의 민주투사'가 됐다. 연세대학교에서 서울시청으로 이어진 장례식 길에는 1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렸고,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구호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이 열사 장례식 한 달 전인 6월9일 오후 배 여사의 넷째 중 큰아들이었던 이 열사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다가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 열사는 26일 뒤인 7월5일 숨졌다. 피 흘린 그의 모습은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이 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아들의 죽음은 배 여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평범한 주부였던 배 여사는 아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뒤 배 여사는 그해 8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세상을 떠난 열사들의 유가족이 모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창립 1주기 행사에 참석했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배 여사는 ‘한열이의 이름으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1929-2011)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고 박정기(1928-2018)씨 등과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 투쟁이 있는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연대했고 연행되기도 했다. 34년을 그렇게 투쟁했다.

 

배 여사는 유가협 회장을 맡아 자식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목소리를 냈고,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을 통해 억울하게 숨진 민주열사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2009년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2016년 백남기 농민 사망, 2017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정에서도 배 여사는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힘을 보탰다. 지난해에는 군부 쿠데타로 시민들이 희생되는 미얀마인들을 만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죽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죽어서도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한 활동도 벌여왔다.

 

배 여사는 이러한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고 이소선 여사 등과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배 여사는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서른세 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배 여사는 앞서 2018년 6월 이 열사가 다니던 연세대학교와 이한열기념사업회가 함께 주관해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의 31번째 추모제에서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한 발짝씩 온다. (열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믿는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18년, ‘제31주기 이한열 추모제’에 참석한 배은심 여사.

 

배 여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대선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의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에 “6월의 어머님, 민주주의의 어머님,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님 배은심 여사께서 아들 이한열 열사의 곁으로 가셨다. 민주주의 한 길을 위해 노력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고 침통해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페이스북에 “배 여사께서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35년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해오셨다.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이 열사와 고인의 그 뜻,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애도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배 여사는 이한열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님이셨다”며 “자식에 대한 사랑을 대한민국 미래세대 모두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켰다”고 추모했다.

 

송영길 대표도 페이스북에 “계룡산 자락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아니 우리 시대 모두의 어머니셨던 배 여사님의 부음을 마주한다. 한 많은 평생이었으되, 이제라도 앞서간 한열이를 만나 못다 한 모정을 다 베푸시길,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이 열사의 희생을 겪으시며 스스로 민주투사의 길을 걸으신 ‘시대의 어머니’. 여사님은 투쟁이 필요한 곳에 늘 함께하셨다. 여사님의 삶은 6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됐다”고 애도했다.

 

정의당도 “고인은 이 열사 사망 후 유가협에 참여해 전국을 돌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오셨다”며 “고인의 삶을 추모하며 우리 사회의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발검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문정현 신부는 페이스북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고 했고,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해서 시술받고 일반 병실로 옮겨서 전화통화까지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라며 애통해했다.

 

배 여사는 지난 2017년 6·10항쟁 30돌을 맞아 가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아들을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좋아도 좋은 것도 모르고 항상 마음이 괴롭게 살았던 나날들”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한열아, 왜 그때 그 자리에 서 있었어?' 물어보고 싶은 것밖에 없어요. 30년 동안 갖고 있던 질문. 그냥 왜 그랬느냐고 묻고 싶고, 그것뿐이에요.”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아들을 만나는 데 35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들의 죽음 이후 “엄마가 갚겠다”며 온몸을 바쳐 투쟁했던 어머니가 이제 아들을 만난다. 아들에게 묻고 싶었다는 질문, 엄마는 이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발인은 11일 오전 9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이고, 장지는 광주 망월동 8묘역(예정)이다. 허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