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시간’이 오고 있다

● 칼럼 2022. 3. 29. 10: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8일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고발된 삼성전자와 삼성 웰스토리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 성남시 삼성웰스토리 본사.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ㅣ법조팀장

 

검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정권 이양기에 때아닌 대형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분주한 모습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첫 번째 검찰 인사가 마무리되면, 준비 기간을 거쳐 주요 사건 수사를 본격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정권 교체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대형 수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사의 칼날이 벌써부터 문재인 정부를 향한다는 점에서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의 ‘코드 맞추기’에 공을 들이는 모습도 감지된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25일 산업통상자원부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데 이어, 28일에도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8곳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서다. 이 사건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산업부가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산하 기관장의 사직을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2019년 1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서울동부지검은 캐비닛 속에 묵혀둔 이 사건을 3년2개월 만에 꺼내 든 것이다.

 

검찰은 늘 그렇듯, ‘원칙대로 수사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산업부 사건과 유사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기다렸고, 이 의혹의 정점에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1월 징역 2년을 확정받은 만큼, 산업부 수사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비슷한 사건에 대한 사법적 최종 판단이 내려지고, 대선 기간에는 선거 개입 논란이 우려되는 탓에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으니, 선거가 끝난 뒤 수사에 나섰다는 설명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왜 꼭 지금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3년2개월을 묵혀왔는데 앞으로 새 정부 출범까지 남은 40여일은 왜 못 참은 것일까, 새 대통령 취임 전에 서둘러 강제 수사에 나선 것은 새 정부에서 수사가 시작되면 표적·보복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삼성 관련 수사도 검찰이 선제적으로 윤 당선자의 의중을 받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서울중앙지검은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고발된 삼성전자와 삼성웰스토리를 28~29일 압수수색했다. 삼성웰스토리는 급식 사업을 하는 삼성 계열사다. 주목할 점은 수사 자체가 아니라, 검찰이 수사에 나선 ‘시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검찰은 지난 아홉달 동안 사건을 묵혀두다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에서 이기기 무섭게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윤 당선자는 대선 후보 시절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특수관계로 설립한 회사에 일감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문제는 분명히 법에 저촉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집행을 하는 게 맞다”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취임도 하기 전에 납작 엎드려 대통령 당선자 심기를 살피며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검찰이 새 정부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공정성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윤 당선자는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해도 검찰총장이었다. 검찰 장악력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법전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검찰 위계를 암묵적으로 규율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대통령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검찰총장이 아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대통령-검사’ 동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한다. 그게 무서운 거지.” 대선 기간 공개된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음에서 윤 당선자 부인 김건희씨가 한 말이다. 김씨의 말 가운데 ‘경찰’을 ‘검찰’로 바꾸면, 작금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김씨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권의 시간이 다하면, 검찰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적 순환고리다.

 

다시, 또, 검찰의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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