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전투기·헬기 대거 동원, 100발 쏘고 1대도 못 맞춰
"북한 무인기 또 출몰" 전투기 출격…확인 결과 새떼

대통령실 "윤 대통령이 우리 무인기 북에 보내라 지시"
9·19군사합의 무력화…사태 관리할 소통 수단도 없어

'원치 않는 사태' 비화 우려…남북, 대결 일변도 바꿔야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2.27 연합뉴스

북한 무인기가 서울 수도권 한복판까지 휘저었으나 우리 군의 대응은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

27일 오후 인천 석모도 일대에서 북한 무인기가 또 출몰했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했지만, 군 당국이 전투기까지 출격시키는 소동 끝에 새떼로 판명됐다. 앞서 인천시 강화군은 이날 오후 3시쯤 석모도 지역에 무인기가 관측됐다며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 무인기 5대가 26일 오전 10시 25분쯤부터 5시간 넘도록 서울 북부와 강화도, 파주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 상공을 휘젓고 다녔다. 우리 군은 공중전력을 대거 투입했지만 단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들 5대 중 한 대가 대낮에 용산 대통령실 일대 상공까지 넘어온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의 대공 방어망에 중대한 허점을 노출했다. 그러나 합참 공보실은 “용산 상공을 비행한 항적은 없었다”고 이 같은 내용을 부인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국가안보를 위협할 긴급 비상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국군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김성한 안보실장 중심으로 실시간 대응을 했다고 밝혔다. 5시간 동안 윤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무기기 5년만에 남한 영공 침범

 

 북한 무인기 쫓는 아군의 항공기 비행모습. 2022.12.26 [KBS 화면 캡쳐]

북한 무인기로 추정되는 ‘항적’이 우리 군에 포착된 시점은 26일 오전 크리스마스 연휴 다음 날인 26일 오전 10시 25분쯤이었다.

합참에 따르면 총 5대 가운데 한 대는 김포와 파주 사이 한강 중립수역으로 진입해 곧장 서울 북부 상공까지 직진한 다음 서울을 벗어났으며, 그후 3시간 가량 비행한 뒤 북한으로 돌아갔다. 합참은 부인했으나, 이 무인기는 용산 대통령실 상공까지 넘어와 그 일대를 촬영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머지 네 대는 강화도 서쪽으로 진입해 강화, 파주 일대까지 휘젓고 다니며 교란 작전을 편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무인기가 남측 영공에 머문 시간은 5시간여로 군은 파악했다.

우리 군 조종사가 육안으로 식별한 무인기 한 대는 전장 기준 2ⅿ급이었다. 이 무인기는 2017년 6월 강원도 인제에 추락한 무인기와 유사한 형태로 보였다고 한다.

 

27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안보관광지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2.12.27.

 북한은 무엇을 노렸나…북 관영매체들 ‘침묵’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북한은 침묵하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27일 노동동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사회주의헌법 제정 50돌 기념 보고대회, 조선소년단 제9차 대회 소식을 전했을 뿐이다.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하면서까지 이런 도발에 나선 북한의 의도를 두고 몇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선은 남한의 대비 태세를 탐지하기 위한 정찰의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서울 북부 상공에 진입한 무인기 한 대가 용산 대통령실 일대 촬영하고 복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다음은 최근 미군 정찰기의 MDL 인근 비행에 대한 대응 조치의 성격도 있을 수 있다. 주일미군 소속 정찰기 RC-135V 리벳조인트가 지난 21일 서해로 북상해 MDL 남쪽의 수도권과 강원도 상공을 왕복 비행한 바 있다.

또한, 취약한 정찰 능력 제고를 위한 정찰위성 완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이전에는 무인기를 통한 적극적인 정찰 활동을 벌여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승오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이 브리핑. 2022.12.26

 군, 한대도 격추 못해…도리어 경공격기 1대 추락

군은 북한 무인기가 포착되자 경계 태세를 2급으로 올려 대응했다. F-15K와 KF-16 전투기와 KA-1 경공격기, 아파치 코프라 공격헬기를 포함해 군용기 약 20대가 출격했다. 그러나 KA-1 한 대는 이륙 중 추락했다. 다행히 조종사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우리 군의 대비 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전투기와 경공격기, 헬기 등을 대규모로 동원해 대응했지만 북한 무인기를 단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초음속으로 기동하는 전투기들은 저속으로 비행하는 무인기 공격에 적합하지 못해, 결국 헬기의 20㎜ 기관포로 100여 발 쏘았으나 실패한 것이다.

이에 군 관계자는 “민가와 도심지 등이 있는 상공이다 보니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있을) 우리 국민의 피해를 고려해서 그런 지역에서는 사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중전력 위주 대응도 무인기 대처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본적으로 북한 무인기 작전은 지상의 국지방공레이더와 이 레이더의 정보를 받는 벌컨포 운용 대공 방어부대에서 맡도록 되어 있다. 군은 육군·해병대의 대공 방어부대가 무인기 작전에 참여했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조종사가 없는 무인기를 향해 우리 경고 방송을 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우리 군은 북한 무인기의 MDL(군사분계선) 침범에 상응하는 조치로 군단급 무인정찰기 ‘송골매’ 2대를 MDL 북측으로 보냈고, 유인정찰기인 ‘백두’와 ‘금강’도 9·10 남북 군사합의상의 비행금지구역을 넘어 MDL 근처까지 접근시켰다. 남북 모두 9·19 합의를 깬 셈이다.

한편, 합참은 27일 '입장'을 내고 전날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무인기 대응 전력 강화를 다짐했다. 강신철 합참 작전본부장은 "적 무인기 5대가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했고, 우리 군은 탐지 추적했으나 격추시키지 못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국민에게 많은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말했다.

 

국무회의 개회 선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2022.12.27. 연합뉴스

 안보 책임자들 인책 불가피…대통령 안이한 인식 도마

우리 군의 대응이 총체적 부실로 판명되지, 군 당국은 부랴부랴 진상 조사에 나섰다. 합참 전비태세 검열실은 27일 현장 작전부대들을 찾아, 작전 전반에 대한 적절성 여부를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후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책임은 현장 지휘관에게만 있는 것이다. 군의 대비 태세를 이토록 허술하게 놓아둔 대통령과 국방안보 라인 고위 인사들의 책임이 더 크다.

특히 1000만 명 이상이 사는 서울 한복판 상공에 북한 무인기가 출현해 휘젓는 긴급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NSC조차 주재하지 않는 ‘한가한’ 모습을 보인 것은 무슨 말로도 변명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은 “2017년부터 드론에 대한 대응 노력과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이 아주 전무했다”면서 사태를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린 데서도 확인된다. 국정 책임자라면 모름지기 이런 위험천만한 사태를 ‘통제’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도, 늘 그래왔듯이 ‘남 탓’부터 하고 나선 것이다.

윤 대통령 본인의 안이함도 문제이지만, 대통령을 그렇게 ‘보좌’한 국가안보실장과 1차장 등 핵심 참모, 국방장관·합참의장 등의 책임은 절대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세계 6위 군사대국인 한국이 ‘종이 호랑이’인 것이 드러났다. 북한이 앞으로 남측을 가지고 놀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일벌백계를 해야 군이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며 국방안보 고위책임자들의 징계를 주장했다.

 

한반도 인근에 전개한 미국 B-52H, F-22, C-17이2022.12.20 [국방부 제공]

 한반도 군사긴장 고조…남북, 대결 일변도 정책 바꿔야

북한 무인기 사태는 당장은 남측의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던지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보란 듯이 깨고 도발을 감행했고,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남측도 무인정찰기를 MDL 북쪽으로 보내는 상응 조치를 했다. 이로써 9·19 군사합의 자체가 무력화된 셈이다.

이번엔 무인기였지만, 앞으로 유사한 또는 좀더 강도 높은 도발이 있거나 도발 가능성이 있을 때, 남과 북이 사태를 관리할 상호 소통 수단이 없어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작은 사건이 국지전과 같은 ‘원치 않는 사태’로 한 순간에 비화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한 쪽이 자극하면 다른 쪽이 좀더 강하게 대응하는 식으로 서로 상승 작용을 하다보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력 충돌로 확대될 수 있다.

국가안보실 등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건 비례성의 원칙에 따른 것이자, 확전을 각오한 상황 관리였다. 대통령이 그만큼 상황을 엄중하게 본 것"이라고 여러 언론에 밝혔다. 무인기 침투에 대통령실이 '확전 각오'까지 거론해 군사적 긴장감을 더 고조시킨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최고조에 이르고 이에 맞선 한미, 한미일의 초강도 연합훈련 등 대북 군사 압박도 심해지면서 한반도는 언제 무력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75년간 지켜온 ‘전수방위’(공격받을 때만 반격) 원칙을 대놓고 깨면서, 적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 능력을 갖춘 군사대국으로 치닫는 일본의 위험스러운 움직임을 감안하면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한반도에 사는 7000만 민족의 생명과 재산이다. 남과 북 모두 지금은 대결 일변도의 정책을 버리고 평화 정착을 위한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