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드 논란의 미래

● 칼럼 2016. 2. 12. 21:20 Posted by SisaHan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공론화 단계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기 위한 방어책의 일환으로 사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부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드’라는 나무만 보는 사이 ‘미사일방어’(MD) 체계라는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리고 ‘사드 이후의 한국’을 아무도 상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MD 체계는 적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복합 네트워크다. 탐지부터 요격, 반격까지 지상과 해상 그리고 해저와 우주에서 입체적으로 구성된 미국 패권의 아이콘이다. MD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해야 한다’는 신념체계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진화하고 확대되는 유기체다. 이 유기체는 인공위성과 각종 레이더로 구성된 탐지체계라는 촉수가 촘촘한 그물로 구성된다. 사드는 패트리엇 PAC3, 이지스 미사일방어체계, 전방센서, 지휘통제전투관리통신(C2BMC)과 연동되는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 요소다. 즉, 사드는 MD의 구성요소이지, 독립된 무기체계가 아니다. 사드는 곧 MD다.


한·미·일 군사협력의 핵심이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이라고 믿는 미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기 위한 제재보다는 북한을 끝내려는 제재를 중국에 압박한다. 동시에 한국에 사드 배치를 내밀었다. 사드 배치는 한국을 미·일 동맹에 편입시킬 수 있는 고리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방기한 북한의 핵능력은 동북아에서 MD망을 확대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 영토의 사드는 일본의 MD망과 연계되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연동되는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의 연결고리다. 한국이 MD에 참여하면 한·미·일 동맹이 중국 견제용 동맹 네트워크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사드 배치는 방기된 북한 핵을 구실로 중국을 포위하는 반중국 동맹의 일원으로 한국을 끌어들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균형 전략의 완성이다.


중국은 미국의 항모전단이 중국 근해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들로 항모 킬러 미사일 등을 활용한다. 이를 반접근 거부 전략(A2/AD: Anti-Access, Area Denial)이라고 한다. 중국에게 한국의 사드 배치는 미국 MD의 핵심 촉수가 베이징 턱밑까지 전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우리가 아무리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고 외쳐도,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미국의 주장처럼 허튼소리로 들릴 것이다. 중국에게 한국의 사드 배치는 미국의 공세적 대중국 봉쇄 전략으로 보일 뿐이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실효적 정책보다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MD 확대로 활용하는 미국과 협력하는 한국을 비난할 수밖에 없다.


사드가 북한만 겨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공학과 안보학 그리고 국제정치학적 사실이다. 그 사드는 중국도 겨냥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안보 날라리’들은 사드 배치를 동맹의 이름으로 지지한다. 그들은 사드 배치가 한국을 미·중 초강대국 국제정치의 서슬 퍼런 작두 위에 올라서게 할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그 작두 위에는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라는 국익도, 통일이라는 갈망도 없다.


사드, 도입하려면 하라. 그러나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포기하고 6자회담도 폐기하라. 앞으로 중국과의 외교적 협력도 중단하라. 우리 아이들에게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과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사회적 기회를 꿈도 꾸지 말라고 하라. 주변국 협력 외교보다 군사동맹의 중요성만 국정 교과서에 기술하라. 이것이 사드 이후 한국의 모습이 될 것이다.
< 최종건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교수 >



빌라델비아장로교회 유아·유치부 어린이들의 세배에 바울회 어른들이 기뻐하는 모습.


고운 한복을 입고 교회 어른들에게 세배하는 염광교회 어린이들.


설날을 하루 앞둔 2월7일 주일 각 교회에서는 설맞이 전통행사로 성도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염광교회(담임 이요환 목사: 905-415-9115)는 전통민속 체험행사로 각종 민속놀이를 즐겼고, 빌라델비아장로교회(담임 김경진 목사: 416-444-1716)는 유아·유치부어린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드려 흐뭇하게 했다.



만약 내가 나의 발걸음을 전속력으로 주 하나님의 증거(복음)에로 돌리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목적으로 나의 행실을 생각하고 있는가? 이 세상 창조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전능하심은 나타나셨다.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1:10)” 이처럼 태초에 주님께서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에 즉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또, 만물이 그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골1:17). 또한 주 하나님의 본성 안에 인자하심의 근원이 있음을 알자!. 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주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자비 하시며”, 그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그를 찾고 그에게 호소하는 모든 자들에게 “인자 하심이 크시도다”.(시145:8).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주시려고 하시며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용서해 주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향하여 모든 성도들이 영원한 할렐루야가 찬송될 것이다. 내평생 사는동안 하나의 자비가 끝나는 것이 다른 자비의 시작인 것과 같이 하나의 감사가 끝나면 그것이 다른 감사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쉼쉬고 있는 동안 나의 입이 하나님의 감사와 영예를 끝까지 말하고 살아가자! 호흡이 있기 때문에 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우리 호흡의 향기가 된다. 또한 우리는 은혜의 시대 아래 살고 있기때문에 더 큰 유익을 얻고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나아져야만 한다. 어떻게 살면 삶의 최상이 되는 복음에 입각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복음>은 천박하거나, 헛되거나, 가혹한 것이 개재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성서와 정직한 사역자들의 설교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다니엘 7:1-8), 그리고 사역자들은 그들의 설교에서 기록된 사건들의 대략(요지-要旨)을 진술해야 한다.


세상은 흉흉한 바다이고 흉흉한 바람은 거대한 동요를 일으킬 것이다. 지구상에는 네개의 바람이 패전을 다투고 있다. 미래에 어떤 폭동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것이 바람속의 전투처럼 난폭하게 싸우고 있는 세상, 열왕들의 전쟁이라 아니 할수 있겠는가? 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은 사탄들 (즉 세상 통치자 및 위정자들)의 교만한 야심들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이 본 네 짐승(사자, 곰, 표범, 로마제국-천주교)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추호도 믿지 않는 세상 권세들 (유럽, 북미, 러시아)과 랍비(유태인)들이 손을 잡고 세상 부(富)만을 목표로 삼고있다. 결국 네번째 짐승의 죽음에서 우리는 “오, 주여! 주님의 모든 적들은 멸망 될 것이며, 주님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아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교만하고 잔인한 적들은 분명히 멀지않아 심판을 받아 낮아지게 될 것이다.


<복음>의 선포에 의해서 이 세상 안에 세워진 <메시아>의 나라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이 세상으로 오시며, 그의 성령으로 통치 하시기 위해서 또한 그분의 모든 성도들은 “주 하나님을 위해서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유의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감추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사역자와 목회자들은 주 하나님의 일들을 자기 마음에 쌓아두고 그것을 잘 소화 하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필요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으로 즉시 표현하려면 <복음>을 우리 마음에 항상 갖추어 두어야 한다. 항상 부요함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은 누가 그 부(富)를 거둘는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부가 누구의 것이 될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자비를 구하려고 하는 자는 자기 죄를 먼저 통회자복, 회개 해야만 할 것이다.


재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귀를 열어, 그들의 죄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훈계와 명령을 듣게 하신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고, 그 진리의 능력과 권위에 복종 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잘못된 길로부터 되돌아 올 것이다. 재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속박 하시는데도 부르짖지 아니하는 자들은 죄에서 떠나거나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 곳곳에 재난과 재난이 계속되는 현세대에 <우리가 녹지 아니 했기때문에 여호와 께서는 우리를 계속 풀무불에 가두고 그 풀무를 살피셨으니, 풀무를 더욱 뜨겁게 하기 위해서 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무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깊은 생각(숙고)의 부족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행한 봉사에서 교훈을 배우고, 들을 수 있음에 대해 주 하나님께 감사하자! <재난>은 마치 풀무불 속에 있는 은이 불순물에서 정제되는 것처럼, 저들을 시험한다. <재난>은 마치 헛간 속에있는 밀이 키질되어 까불러지는 것처럼 그들을 깨끗하게 만든다. 또 <재난>은 마치 더러운 옷이 세탁공에 의해서 깨끗해지는 것처럼 저들과 그들을 희게 만들 것이다. “진리는 위대하며, 결국은 승리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