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접촉의) 단초 될 수 있는 (미국 쪽의) 어떤 성의 차원 조치 정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김정효 기자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며칠 내로 어떤 새로운 진전 사항이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변화를 시사했다. 다만 해당 움직임이 북-미 대화 재개나 본격적인 협상 국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당국자는 5일(현지시각) 워싱턴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월 방중 계획과 관련해 “우리(한국)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미국에 설명했고, 미국의 협조도 명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며칠 내로 어떤 새로운 진전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이 나오면 ‘이 자리에서도 언급됐던 사안’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국자는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는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고, (북-미 접촉의) 단초가 될 수 있는 (미국 쪽의) 어떤 성의 차원의 조치 정도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당국자는 “북-미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다”며 “현재 북한의 입장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상당히 확고하다. 이 부분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자 설명을 종합하면 한국 정부가 미국에 북한과 관련한 전향적 조치를 요청했고, 미국 정부가 이와 관련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김원철 기자 >

“미국의 오랜 비확산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내용”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이유로 대한국 관세 인상을 압박하면서 안보·원자력 협력 논의 전반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4명이 한국에 핵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한 비확산 조치를 요구하는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 팩트시트가 미국의 오랜 비확산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에드 마키·제프 머클리·크리스 밴 홀런·론 와이든 상원의원 등 4명은 지난달 30일 발송한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분리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중대한 정책 전환”이라며 “이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역내는 물론 전 세계적인 핵 확산과 군비 경쟁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든 핵 협력 협정에 ‘가장 강력한 비확산 기준(gold standard)’을 적용해 한국의 농축 및 재처리 활동을 명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의회 내 초당적 모임인 ‘핵무기·군비 통제 워킹그룹’ 소속이다.

 

지난해 11월 13일 한미가 공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평화적 목적을 위한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의원들은 이 표현이 핵무기용 핵물질 생산으로 전용될 수 있는 농축·재처리 기술 확산을 막아온 미국의 초당적 정책을 뒤집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한국의 과거 핵무기 개발 시도와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을 함께 문제 삼았다. 서한은 “한국은 1970년대부터 핵무기에 관심을 보여 왔고 유엔 조사를 받은 불법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2016년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4년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핵 확산 위험 국가를 뜻하는 ‘민감 국가’로 지정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북한 억제를 위해 핵무기 보유가 필요할 수 있다고 시사한 사실도 함께 언급했다.

 

의원들은 2015년 갱신된 한·미 원자력 협정(미 원자력법 123조에 따른 '123 협정')의 개정 방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해당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기술을 활용해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를 하려면 반드시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의원들은 “행정부가 123 협정을 개정할 의사가 있는지, 의회에 이를 사전에 보고할 계획이 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서한은 또 미국이 승인한 한국의 원자력 추진 공격형 잠수함(SSN) 건조 계획도 문제 삼았다. 의원들은 팩트시트에 건조 장소와 핵연료 조달처가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건조 주체·연료 종류·생산지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요구했다. 또한 현행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을 잠수함 추진을 포함한 "어떠한 군사 목적"으로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상원의원들의 공개적인 문제 제기는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원자력 협력 사안의 후속 조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나왔다. 한국 정부는 안보실 태스크포스(TF)와 범정부 원자력 협의체를 가동하며 재처리·농축 문제 해결을 모색하고 있지만, 관세 압박 이후 안보 협력 논의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의원들은 서한 말미에서 “한국에 잠재적 핵무기 능력을 허용하는 것은 한반도 안정은 물론 미국의 글로벌 비확산 정책 전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행정부는 어떠한 수정된 핵 협력 협정에서도 가장 강력한 비확산 장치를 포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김원철 기자 >

헨리앤파트너스가 지난 2025년 6월 '헨리 고액 자산가 이주 보고서 2025'를 발표한 직후 국내 언론은 대부분 한국 부자 이주 전망치가 2배 늘어난 요인을 '경제 및 정치적 격변'으로 보도했지만, 지난해 9월 정치권에서 상속세 완화 논의를 시작하자 '상속세 탓'으로 바꿨다. ⓒ 문화·동아·조선일보
 


"높은 상속세 때문에 부자 2400명이 한국을 떠났다"는 언론 보도는 결국 오보였다. 애초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통계 조작 의혹까지 제기된 헨리앤파트너스의 공신력 없는 통계를 인용한 잘못이 크지만, 그동안 보고서 내용을 사실 검증 없이 보도한 언론 책임도 적지 않다                (관련 기사 : [오마이팩트] "상속세 때문에 부자 2400명 떠났다" 거짓 https://omn.kr/2gy5b).

영국 이민 투자 컨설팅업체인 헨리앤파트너스 통계 조작 의혹과 별개로, 그동안 기업 승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속세 완화를 요구해온 재계 의도까지 반영돼 오염된 자료를 대다수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확산시켰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지난해 7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과 조세정책협회(Tax Policy Associates),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UK)가 데이터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헨리앤파트너스의 '고액 자산가 이주 보고서'는 자료의 신뢰성이 의심 받고 있지만, 2025년 보고서가 발표된 지난해 6월만 해도 이 같은 사실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보수 언론도 처음엔 "12·3 비상계엄이 촉발한 혼란 탓"

헨리앤파트너스는 지난해 6월 24일 한국의 고액 자산가 이주 전망치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 원인을 '경제 및 정치적 격변' 상황을 꼽았다.

국내 언론도 처음부터 '상속세 탓'을 한 건 아니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해 6월 25일 기사(한국 떠나는 한국의 부자들, 세계 4위로 많다는데…1위는?)에서 "헨리앤파트너스는 올해 유출 급증 이유로 "한국의 경제 및 정치적 격변"에 주목했다"면서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한국 사회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치·사회적 혼란과 갈등, 안보 불안과 경기 침체 등이 부자들의 이주를 자극한 배경으로 풀이된다"라고 해석했다.

당시 한국은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한 뒤, 12.3 내란 사태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이었다. 보수 성향 매체인 <문화일보>는 지난해 6월 27일 기사(올해 한국 '부자 유출' 세계 4위…유출자산 20조7000억원 "경제 및 정치적 격변")에서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이자 국제관계 전문가인 파라그 카나 박사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부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대만(순유출 100명)과 한국을 한데 묶어 '지정학이 게임의 규칙을 빠르게 바꿀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고 평가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치권 '상속세 완화' 움직임에 "부자 탈한국은 상속세 탓" 보도 등장

부자의 탈한국 원인이 '상속세'로 바뀐 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을 언급한 직후였다.

<한국경제>는 9월 21일(한국 부자 '이민' 이렇게 많다니…'세계 4위' 빨간불 켜졌다)에서 헨리앤파트너스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한국의 자본 유출을 가속하는 원인 중 하나는 상속·증여세 부담이 꼽힌다"라고 했고, <아시아경제>는 9월 25일(상속세 부담에 엑소더스 빨라진 슈퍼리치…"韓, 올해만 2400명 떠날 듯") "보고서는 급격한 증세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라고 주장했다. 재계 목소리를 대변해 온 경제지에서 정치권의 상속세 완화 논의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보고서를 활용한 것이다.

<동아일보>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10월 20일('韓 백만장자' 탈한국 러시…상속세 부담에 올해 2400명 짐싼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높은 상속세율이 자산가들의 해외 이주를 가속화시켜, 조세정책을 국가 경쟁력 유지의 전략적 도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라고 상속세 문제를 부각했다.

상속세 완화 위해 '죽은 통계' 되살린 대한상의, 대형 오보 사태 유발

대한상공회의소는 3일 헨리앤파트너스 통계를 인용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가 이날 자정께 “해당 통계는 산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학술적·공식 통계로 인용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통계 인용 자제를 요청했다. ⓒ 대한상공회의소


지난해 7월 통계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공신력 없는 '마케팅 자료'로 전락한 죽은 보고서를 되살린 건 대한상공회의소였다.

대한상의는 지난 3일 낮 12시 엠바고(시한부 보도 유예)로 주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면서 "50~60%에 달하는 상속세가 자본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상의 관계자 분석을 덧붙였다.

이같은 분석은 헨리앤파트너스 보고서는 물론, 이날 언론에 함께 배포한 대한상의 보고서 원문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대한상의는 이날 '상속세수 전망분석 및 납부방식 다양화 효과 연구' 보고서에서 상속세율 인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연납 기간 연장, 상장주식 현물 납부 등 납부 방식을 더 다양화해 기업 승계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작 언론은 '상속세 때문에 부자 2400명 탈한국'이란 대목에 더 집중했다. 이미 지난해 6월에 추정해서 발표한 '2025년 잠정치'였고 공신력도 없는 통계였지만, 일부 언론은 실제 지난해 부자 2400명이 상속세 때문에 한국을 떠난 것처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월 4일 지면 기사("상속세 부담에 부유층 탈한국")에서 “고액 자산가 순유출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2배 급증했다”라며 이 수치가 순유출 ‘잠정치’란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 조선일보


특히 <조선일보>는 2월 4일 지면 기사("상속세 부담에 부유층 탈한국")에서 "상의는 높은 상속세율이 자본 해외 이탈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분석했다"면서 "고액 자산가 순유출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2배 급증했다"며 '잠정치'란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 언론은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 50%는 명목세율일 뿐이고, 실제 각종 공제 혜택을 반영한 실효세율은 20~30% 정도라는 사실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관련기사 : 한국의 세율 매우 높다? 상속세 여섯가지 오해 https://omn.kr/28uw6 ).

대한상의는 3일 자정께 "해당 통계는 산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학술적·공식 통계로 인용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언론에 '통계 부분 인용 자제'를 요청했지만, 이미 수많은 오보를 양산한 뒤였다.

결국 상속세 완화를 위해 이미 죽은 보고서까지 되살린 재계와 언론이 아전인수 해석이 대형 오보 사태를 낳은 셈이다.                                           < 김시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