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군사 행동은 위험…"결정적 불쏘시개"


여러 중동 위기, 예측 불가 미국과 결합
이란 시위, 이슬람 공화국 모델 시험대
중동 혼란의 '감정적 진원지' 가자지구

"시리아, 국지적 사건 중동 이슈로 전환"
외국군ㆍ민병대ㆍ정보기관 중첩돼 작전
"이스라엘의 레바논 북부 전선 가장 위험"
"예멘 내전, 중동 다층적 복잡성 보여줘“

 

"지금 중동 전역이 끓어오르고 있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의 모하메드 아유브 명예교수(국제관계학)는 '중동은 비등점에 이르렀나'란 14일 자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반체제 유혈 시위가 진행 중인 이란을 포함해 중동 전역이 직면한 극한 충돌의 위험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면서 "여러 교차하는 중동의 위기들이 예측 불가한 미국과 결합해 이 지역에 격변의 2026년을 예고한다"라고 우려했다. 인도 출신의 아유브 교수는 이른바 제3세계 국가들의 안보 위협의 본질을 다룬 '종속적 리얼리즘' 이론을 만들고, 이슬람 분야 등에도 정통한 학자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9일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26. 01. 09 [AP=연합]

 

"지금 중동 전역이 끓어오르고 있다"
"여러 발화점들, 동시에 위험 증폭"

 

아유브 교수가 보기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 행동을 경고한 이란의 시위는 전례 없이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가 이끄는 이슬람 정권의 '회복력'을 시험하고 있지만, 이런 이란의 혼란이 중동의 유일한 불안 요인은 아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파괴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고, 시리아는 여전히 정치적 분열과 싸우고 있고, 이스라엘은 전장을 레바논으로 계속 확대 중이며, 예멘은 다층적 내전을 벌이고 있다.

그 와중에 튀르키예와 미국 등 역내와 외부 강대국들은 공세적이고 종종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들의 정책은 갈수록 여러 전장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교차하고 있다.

 

아유브는 "중동이 단 하나의 고립된 위기를 제공한 경우는 드물다"면서 "대신 다수의 중첩된 갈등을 보여주며, 그 충격파들은 난민, 미사일, 교역 흐름, 이념의 형태로 국경들을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중동이 '끓고 있다'고 확실히 느끼는 건 전쟁 하나가 격화돼서가 아니라, 여러 압력 지점이 동시에 달아올라 전역의 온도를 끌어올리고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순간의 특징은 위기의 새로움이 아니라 동시성이다. 이들 발화점은 더는 고립되지 않고 함께 전개되며, 위험을 증폭하고 외교 탈출구를 좁히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한다"라고 했다.

 

8일 이란 테헤란에서 통화 가치 하락과 생활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민병대인 '바시지' 대원이 거리의 불을 끄고 있다. 2026. 01. 08 [WANA=로이터=연합]

 

이란 시위, 이슬람 공화국 모델 시험대
"테헤란 내부 불안정, 내부적이지 않아"

 

아유브에 따르면, 이란의 시위는 이슬람 공화국 통치 모델에 대한 극단적 스트레스 테스트다. 수십 년의 제재와 정권의 실정으로 극한 상황에 놓인 경제와 민생, 정치적 탄압, 세대 간 갈등이 반복적 불안정의 악순환을 낳았고, 정권은 개혁 대신 무력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메네이 지도부의 대응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탄압 강화란 익숙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역사적으로 내부 압력을 커질 때 이란 정권의 대외정책은 자제와 저항 사이를 오갔다"며 "내부의 긴장은 종종 강경 세력을 강화한다. 이들은 (중동) 역내의 공세가 억지력과 혁명적 신뢰성을 확보하고 대중의 불만을 외부 행위자로 돌리는 데 필수적이라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헤즈볼라, 이라크와 시리아의 민병대,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이란의 관계는 테헤란의 내부 불안정이 결코 순수하게 내부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외부 파급을 걱정했다.

 

그러면서 "이는 이스라엘, 걸프 국가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의 리스크 계산을 바꾼다. 이들은 이란이 제약받으면서도 예측 불가해 보일 때 억지, 외교, 전략적 인내 중 무엇이 자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4일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 작전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자이툰 구역의 건물들 사이를 걷고 있다. 2026. 01. 14 [AP=연합]

 

중동 혼란의 감정적 진원지인 가자지구
"다음 폭발에 필요한 에너지 저장할 뿐"

 

아유브는 가자를 여전히 지역 혼란의 "감정적 진원지"이고 중동의 "정치적 가속기"로 봤다. 파괴, 팔레스타인 주민의 고통, 통치 문제 등 가자의 모든 일이 전 아랍 국가에 반향을 부른다. 가자는 아랍 대중엔 국제 외교의 불공정과 이중 잣대라는 서사를 강화한다. 이스라엘의 침탈에 무기력한 아랍 정권들엔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스라엘엔 실존적 안보 논쟁을 격화시키고 국제적 비난을 초래한다. 특히 트럼프가 '평화 프로세스' 주도를 결정한 뒤 가자는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결정적 시험대"가 됐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스라엘의 핵심 동맹인 동시에, 가자의 인도적 접근, 휴전의 지속성, 전후 체제를 만들 가장 강력한 나라이지만,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유브는 "동맹국은 미국의 결의를 의심하고, 적대국은 미국의 공정성을 의심하며, 지역 대중은 미국 외교를 변화를 주도하기보다 반응적이며 미국 유권자들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다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결과는 외교적 긴장뿐만 아니라 전략적 표류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가자를 위한 성공 가능한 정치적 지평이 없다면, 각각의 휴전은 해결이 아닌 일시 중지가 되고, 그 일시 정지는 단지 다음 폭발에 필요한 에너지를 저장할 뿐이다"라고 경고했다.

 

14일 시리아 알레포에서 군용 차량에 탑승한 군인들. 시리아 국영 통신사 SANA는 시리아 정부가 쿠르드족 주도의 시리아 민주군(SDF)을 겨냥한 공격 개시를 위협하며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리아군이 '데이르 하페르 전선'에 증원군을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2026. 01. 14 [로이터=연합]
 

"시리아, 국지적 사건을 중동의 이슈로 전환"

외국군ㆍ민병대ㆍ정보기관 중첩구역서 작전

 

아유브에 따르면, 시리아는 "동결된 분쟁"으로 불리지만, 진짜 현실은 다르다. 시리아는 여러 역내 경쟁 관계를 잇는 영구적으로 활성화된 단층선이다. 시리아의 파편화로 외국 군대, 민병대, 정보기관들이 중첩된 구역에서 활동하면서 국지적 사건을 중동의 이슈로 전환시킨다.

 

외부 행위자 중 튀르키예와 미국의 존재가 중요하다. 튀르키예는 PKK(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 조직)와 연계된 쿠르드 자치 정부 구축을 막고 난민 관리를 위해 북부 시리아에서 군사력을 운용하고 있으며, 쿠르드 세력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다. 미국은 대테러와 이란 영향력 억지를 위해 동부 시리아에 일부 핵심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유브는 "시리아가 불안정한 건 어느 한 행위자가 혼란을 원해서가 아니라, 누구도 포괄적인 해결을 강제하거나, 촉진할 의지나 능력조차 없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15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재래시장)에서 사람들이 걷고 있다. 2026. 01. 15 [WANA=로이터=연합]

 

아유브는 "튀르키예와 미국은 오늘날 중동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방관자는 아니지만, 결과를 통제하지도 못한다. 양국은 중첩되고 때로는 충돌하는 목표를 지닌 채 여러 전장에서 작전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튀르키예는 안보, 민족주의, 실용적 관여의 균형을 맞추는 지역 강대국으로 자신을 투사한다. 시리아 정책, 러시아‧이란과의 관계, 나토 회원국 지위, 가자 집단학살 비판 발언, 국내 정치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역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으론 강력하나 외교적으론 제약이 있고, 갈수록 국내 경제적 압력을 받는 등 그 영향력은 "불균등"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또한 글로벌 강대국으로서 미국은 이란을 억지하고,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동맹을 지원하며, 교역로를 확보하고, 대규모 전쟁을 피하고자 하지만, 그 결과는 주도적이기 보단 반응적이고, 특히 최근엔 트럼프 개인에 좌지우지되고 있어 중동 정세를 예측 불가하게 만들고 있다.

 

 15일,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레바논 남부 소모르 마을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친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 목표물들을 대상으로 공습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2026. 01. 15 [AFP=연합]

 

"이스라엘의 레바논 북부 전선 가장 위험"
"예멘 내전, 중동의 다층적 복잡성 보여줘"

 

역내 확전의 가장 즉각적 위험을 보여주는 곳을 이스라엘의 레바논 북부 전선으로 봤다. 그에 따르면, 양측 모두 '억지력'을 내세우지만, 제한된 타격, 보복 사격, 격화하는 말싸움은 갈수록 오판 가능성을 키우고 전면전으로 이어질 흐름을 만든다는 것이다.

 

예멘 내전은 중동 지역의 다층적 복잡성을 보여준다. 후티 반군과 합법적 예멘 정부 간의 투쟁에서 시작된 내전이 남부 분리주의자, 부족 세력, 지역 후원자, 해양 안보와 연계된 국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중첩된 갈등으로 진화했다.

 

후티 반군이 이란과 연계되면서 예멘은 테헤란과 워싱턴 사이의 광범위한 대결 구도 안에 놓였다. 홍해 안보와 연계된 미국의 해군 배치와 공습은 국지적 충돌이 어떻게 글로벌 우려 사항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반후티 세력 내의 분열,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정부군 지원)와 아랍에미리트(UAE, 남부 분리주의자 지원) 간의 균열은 대리인 연합이 장기전의 압박 속에서 국지적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어떻게 분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5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다. 2015년 전쟁이 발발한 이후 후티가 사나를 포함한 예멘 북부의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공고히 한 반면, 남부 분리주의 세력이 남부 대부분을 통제하면서, 예멘은 다시금 권력 투쟁 속에서 분열 위험에 놓여 있다. 2025. 12. 25 [EPA=연합]

 

"트럼프 이란 군사 공격은 불쏘시개,
중동 전역, 혼란의 도가니로 내몰 것"

 

예멘은 홍해에서 인도양으로 향하는 선박들이 통과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장악한 전략적 요충지다. 특히 세계 무역의 12%, 해상 석유 및 LNG 무역의 8~10%가 홍해를 통과한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최단 항로다. 어느 한 지점에서라도 통행이 차단되면 선박들은 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러면 항해 기간은 10~15일 늘어나고 비용은 급격히 상승한다. 후티 반군은 2024~25년 이스라엘의 가자 제노사이드(집단학살)와 파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과 이스라엘 선박을 공격했다.

 

아유브는 "중동이 '끓어오르는' 건 그 위기들이 더는 고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면서 ▲ 이란의 내부 불안은 중동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 가자의 파괴는 여론과 무장 세력의 전략에 영향을 주며 ▲ 시리아는 불안정을 수출하고 ▲ 레바논은 이스라엘과의 영구 대치라는 무게에 짓눌려 있으며 ▲ 예멘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변이하고 ▲ 이 모든 것 위에는 떠 있는 튀르키예와 미국은 영향을 줄 만큼 강력하지만, 결과는 결정 못 하는 세력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휘발성 높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군사 개입 위협이 실행된다면, 그것은 결정적 불쏘시개가 되어 중동 전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 이유 기자 >

 

시라 섬 요새에서 바라본 예멘 남부의 옛 아덴 항 전경. [AFP=연합]

 

이란 민중에 필요한 것은 제국의 폭격이 아니다

 

가자는 외면, 이란은 분노: 서방의 선택적 정의
트럼프가 '이란 민주주의'를 말하는 블랙코미디
팔레비와 마차도: 외세 침략 구걸하는 망명자들

미완의 혁명과 닮은꼴 독재: 79년이 남긴 교훈
제재와 폭격: 이란 민중을 옥죄는 이중의 굴레
장기적 혁명의 과정: 이란 민중의 6번째 봉기

제국주의 폭격기가 아니라 국제적 연대가 필요

 

최근 소셜 미디어와 서방 언론을 뜨겁게 달군 것은 젊은 여성이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에 불을 붙여 그 불꽃으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이 이미지는 서방의 자유주의 언론은 물론, J. K. 롤링과 같은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저항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며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영상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촬영되었는지는 불투명하지만, 서방 언론과 명망가들이 이 영상을 특별히 선호하는 현상은 이란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관점'과 서구적 편견을 보여주는 면이 있다. 야만적이고 중세적인 이슬람 체제에 맞서, 자유분방하고 서구화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아름다운 여성이 저항하고 있다는 서사가 그것이다.

 

이러한 '선택적 여성 해방'의 서사는 서방이 중동 개입을 정당화할 때마다 단골로 사용하는 도구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분노'가 나타나는 선택적 장소다. 지난 2년 동안, 서방 정부와 언론, 그리고 롤링과 같은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행한 집단학살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관심과 분노를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천문학적인 재정적 지지를 보내고, 미사일과 폭격기를 지원하며, 외교적 방패막이 역할을 해 왔다. 가자의 폐허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여성과 아이들의 삶은 그들에게 '저항의 아이콘'이 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하마스 지지자'이거나 '부수적 피해'로 처리되었다.

 

서방 진영의 이익과 부합할 때만 인권은 신성해지며, 그렇지 않을 때 인권은 지정학적 거래의 장애물일 뿐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은 현재 미국 트럼프 정권의 행보에서 나타난다. 트럼프는 '이란의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시위 진압을 비난하지만, 정작 미국 내부에서 그가 자행하고 있는 르네 굿 사살과 같은 일들은 이란 정권의 탄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트럼프와 하메네이를 풍자하는 만평 '우리는 정권의 정당성에 시위로 도전하는 국내 테러리스트들에게 총을 쏠 권리가 있다' - 출처: 트위터(X)

 

현재 미국 전역에서는 중무장하고 복면을 쓴 연방 요원들이 영장도 없이 가택을 급습하여, 단지 피부색과 이민 신분을 근거로 부모와 아이들을 갈라놓고 있다. 거리에는 가족을 빼앗긴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가득하다. 자국민을 '국내 테러리스트'로 낙인찍고 짓밟는 트럼프가 타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모순이자 블랙코미디다.

 

물론 트럼프 정권이 국내에서 아직 무차별적인 학살까지 저지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국경 밖에서 폭격을 통해 무고한 민간인을 대량 살해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망명 중인 이란의 레자 팔레비(Reza Pahlavi) 왕세자가 트럼프에게 이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요청한 사건은 비극적 농담의 절정이었다.

 

베네수엘라의 극우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그러했듯, 이제 망명지에서 자기 나라를 침략하고 폭격해 달라고 강대국에 구걸하는 행위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팔레비는 아마도 이러한 요청의 대가로 훗날 '노벨 평화상'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벨 평화상은 이미 베네수엘라의 경우처럼 서방의 군사 개입을 위한 사전 작업과 신호탄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란 민중이 겪고 있는 극심한 민생고와 물가 폭등의 책임도 부패한 이란 정권만이 아니라, 40년 넘게 지속된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에 결정적인 책임과 원인이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는 정권이 아닌 가장 가난한 민중을 겨냥한 '집단적 처벌'로 항상 작동해 왔다. 게다가 지난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란의 도시가 파괴되고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이란 내 민주주의 공간을 더욱 위축시켰다. 외부의 위협은 언제나 독재 정권이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반대파를 '외국 스파이'로 몰아세우는 데 완벽한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군사적 개입은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이란을 제2의 이라크나 리비아와 같은 지옥으로 만드는 길일 뿐이다. 

 

지난 주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뉴욕타임스 1월 14일

 

따라서 1979년 혁명으로 쫓겨난 전제 왕정의 후계자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트럼프에게 군사적 개입을 요청하는 행위는 이란 민중의 고통을 지정학적 체스판의 돌로 여기는 제국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팔레비 왕정 시절의 이란 역시 일당독재, 거대한 비밀경찰 기구(SAVAK), 반정부 인사에 대한 고문과 살해로 악명 높았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현재의 이슬람 신정 체제가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미국의 개입이었다. 1979년 혁명 당시 미국은 자신들의 하수인인 팔레비 왕정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이는 일부 이슬람 성직자 집단이 '반미'를 명분으로 혁명의 주도권을 낚아채는 결정적인 빌미가 되었다.

 

결국 이란 혁명은 제국주의의 속박에서는 벗어났으나,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민중의 열망은 신정 체제의 억압 아래 매몰되고 말았다. 오늘날의 성직자 엘리트 집단은 과거 왕정이 가졌던 모든 악습을 계승했다. 언론 통제, 비밀경찰, 노동 3권의 억압 등은 팔레비 시절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 당시 석유 수익이 서방 기업과 왕실에 집중되었듯, 지금은 부패한 신정 엘리트와 친정부 기업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반제국주의'는 이제 그들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과 이데올로기로 전락했으며, 그들은 시리아의 아사드와 같은 독재자와 손잡고 지역적 패권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저항의 축'을 자처하며 팔레스타인 연대를 말하지만,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이란 정권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맞서며 아랍 민중의 연대를 건설하는 데 별로 기여하지도 못했다.

 

지난해 리알화의 가치는 폭락하고 물가는 폭등하는데, 이란 정권은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누르며 치안 예산만 대폭 증액했다.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며 이란 민중은 다시 거리로 나오고 있다. 이슬람 정권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바자르(Bazaar) 시장 상인들까지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정권의 정당성이 바닥났음을 의미한다.

 

쿠르드족과 같은 소수민족, 차별받는 여성들, 대학생, 그리고 노동조합원들이 전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저항하고 있다. 이란 정권은 처음에는 몇 가지 당근을 제시하는 듯했지만 곧 채찍이 전면에 등장했다. 인터넷을 차단하고 무차별 발포가 이루어졌다.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이고 외국의 스파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시신 가방에 매달려 울고 있는 유가족 - 출처: 이란 출신 활동가 시야바시 샤하비 Siyâvash Shahabi의 페이스북

 

이 시위가 1979년 혁명 당시의 석유 노동자 파업과 같은 결정적 단계로 나아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오는 행위 자체가 이미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1999년 학생 투쟁, 2009년 녹색운동, 2022년 '여성, 생명, 자유' 운동 등의 뒤를 잇는 6번째 대중 봉기이며, 우리는 이를 장기적인 혁명 과정의 일부로 봐야 한다.

 

민주주의와 빵을 요구하는 자국민들 수천 명을 살해하는 독재 정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있다고 해서 '우리 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군사적 개입 또한 절대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국주의적 개입이 아니라, 국제 시민사회와 민중의 조건 없는 연대다.

 

사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란에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 이란 민중의 의사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권은 오히려 미국의 중동 패권에 더 강력하게 맞서며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친미 독재 정권들이 지금 이란 사태의 안정을 바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국의 급진적 흑인 지식인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죽은 모든 아이는 내 아이다. 울고 있는 모든 아버지는, 슬퍼하는 모든 어머니는 내 부모다. 유해를 나르는 모든 형제는 내 형제다. 돌아오지 않을 자매를 기다리는 모든 자매는 내 자매다. 이 모든 사람들은 우리다. 우리는 그들에게 속하고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다."

 

이것은 가자지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도, 테헤란 거리에서 총에 맞은 여성에게도, 그리고 미국의 거리에서 총에 맞은 르네 굿과 울부짖는 이주민들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이야기다. 서방 정부와 언론들은 이란에만 관심을 가지고 분노하고, 이란 정권은 가자의 고통에 공감한다며 자국에서는 억압을 자행하지만, 우리는 이런 선택적 정의를 거부해야 한다. 

 

이란 버스 노동조합의 성명서 이미지 - 출처: 이란 출신 활동가 시야바시 샤하비 Siyâvash Shahabi의 페이스북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2024)은 이란의 현실을 가장 예리하게 통찰한 영화 중 하나다. 영화는 판사로서 이란 독재정부의 말단 하수인이며 두 딸의 아버지인 가부장을 통해 이란의 현실을 보여준다. 가장 끔찍한 것은 시위하다가 산탄총을 맞은 딸의 친구 얼굴에 박힌 파편들을 주인공들의 엄마가 하나씩 떼어내는 장면이다.

 

남편을 편들던 엄마는 이 과정에서 두 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가족을 사랑한다던 가부장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장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결국 부인과 두 딸은 여성들의 저항과 연대로 그것에 맞선다. 영화의 마지막에 보여준 비극적 희망처럼 이란 민중의 저항은 이번에도 실패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승리하고 말 것이다.

 

하메네이는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향해 '오만한 왕과 파라오들도 결국 권력의 정점에서 무너졌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이것은 옳은 말이지만, 지금 그 화살은 하메네이에게도 향하고 있다. 이란 민중의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정의는 제국주의의 폭격기가 아니라, 거리에서 손을 잡은 민중의 연대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 전지윤 기자 >

 

이란 거장 자파르 파나히 "이 정권 이미 무너졌다"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석권 이란 영화 간판
정치범으로 악명 높은 예빈 교도소 수감 경력
8일 녹화 동영상 통해 "남아있는 건 껍데기뿐"

"16일 기점으로 반정부 시위 확산세 꺾였다"
하타미 "네타냐후ㆍ트럼프, 가혹한 복수" 경고
망명 레자 팔레비 "싸울 수밖에…다시 거리로"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의 자파르 파나히. 게티 이미지
 

"내 생각에 이 정권은 이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무너졌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상적으로, 심지어는 환경적 측면까지 무너져 내렸고, 남아 있는 것은 껍데기뿐이다."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했고 이란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자파르 파나히(65)가 고국의 반정부 시위 상황과 관련해 이슬람 정권은 사실상 붕괴했다고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녹화한 동영상에서 털어놓았다고 CNN 방송이 16일 보도했다. 왜 이렇게 늦게 보도했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파나히가 제3국으로 떠나 신변이 안전해진 다음 공개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는 최근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반정부 시위가 "(과거 시위와는) 상당히 다르다"며 "이 정권이 얼마나 오래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인권단체 집계에 따르면 동영상을 녹화한 다음날 갑자기 이란 당국이 초강도 진압에 나서면서 이날까지 최소 2403명의 시위 참가자가 사망하고 1만 8000명 이상 체포됐다고 방송은 전했다. 

 

파나히 감독은 정권이 붕괴한 뒤 이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어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는 자신의 최근작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과 관련해 "내게 중요한 것은 미래, 그리고 (이슬람) 정권 이후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죄수였던 남자가 과거 자신을 심문했던 것으로 보이는 인물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복수와 용서를 둘러싼 남자의 딜레마는 이란에 닥칠 수 있는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나 소련 붕괴 이후 협력자들이 본보기로 처벌된 사례를 언급하며 "그런 일이 우리 나라에서도 벌어질지, 아니면 우리가 좀 더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 속 모든 것은 결국 폭력의 굴레가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끝날 것인지라는 질문에 도달하기 위한 계기이자 장치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파나히 감독은 과거 테헤란의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이란과 이스라엘의 '12일 전쟁' 기간 교도소에 미사일이 떨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교도소 벽과 출입구가 무너지면서 죄수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이들이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잔해에 묻힌 심문관들을 구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죄수들이 심문관들을 용서한 게 아니고, 단지 그들의 인간적인 양심이 승리했던 것"이라며 "그런 양심이 죽는다면 인간도 죽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 안에서 일하는 개인들은 거대한 기계의 부품에 불과하다"며 "교도소의 하급 교도관들은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언제나 정치범들에게 호감을 보였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슬람 공화국이 무너질지 묻곤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난 이곳(LA)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 정신과 마음은 그곳(이란)에 있다"며 "과거 20년 동안 영화 제작을 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았을 때, 난 영화를 만들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파나히 감독 인터뷰는 불가능했다. 그는 2009년 선거에 관한 영화를 제작한 일로 이듬해 처음으로 구금됐다. 그는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단식 투쟁 후 보석으로 석방됐고, 20년 동안 해외 출장, 언론 인터뷰, 영화 제작이 금지됐다.

 

2022년, 파나히는 이란 내 반대파 탄압 중 체포된 동료 영화감독 모하마드 라술루프와 모스타파 알레아흐마드의 체포 경위를 조사하다 붙들려 2010년 선고 받은 실형을 복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또 다른 단식 투쟁 끝에 에빈 교도소에서 7개월을 보낸 후 2023년에 풀려났다.

 

여행 및 촬영 금지 조치가 해제된 후 첫 작품인 '그저 사고였을 뿐'은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베네치아, 베를린,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유일한 생존 감독의 영예를 누렸다.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이제 오스카 시상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공격이 여전하다. 지난달 이란 법원은 파나히에게 '정치 체제선전을 획책했다'며 궐석 재판 끝에 1년의 징역과 2년의 여행 금지 처분을 선고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는 판결 내용이 보도됐을 때 영화 홍보 중이었다. 파나히는 지난 4일 항소 심리를 받았으나, 변호사로부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LA에서 시상식 시즌을 언급하며 "정말로 캠페인 덕분에 내가 아직 여기 있을 수 있었다"면서 "모두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모두의 노력을 망치고 떠나는 건 윤리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파나히는 시상식 시즌을 마치면 이란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이란 남성이 16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발리아시 광장 전광판 앞을 지나치고 있다. 전광판에는 페르시아어로 '날 알아라. 난 이란이다'라고 적혀 있다. 테헤란 EPA 연합
 

한편 이란 당국이 연일 대규모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이날은 불안한 평온을 되찾고 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강경파 고위 성직자 아야톨라 아마드 카타미는 구금된 시위대에 대한 사형 집행을 촉구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지도부가 구금된 시위대 수백 명을 처형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유화적 메시지를 보냈다. 군사 공격 가능성을 낮추는 신호로 여겨질 수 있다. 처형과 평화 시위대 사살은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설정한 두 가지 레드 라인이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혹한 진압은 지난해 12월 28일 경제 침체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시작돼 신정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번졌는데 이제 기세가 꺾인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 계속되는 인터넷 차단에도 수도 테헤란의 쇼핑과 거리 모습은 정상화된 것으로 보이며 며칠 동안 시위의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당국은 테헤란을 뺀 다른 지역에서도 아무런 소요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800명 이상의 교수형을 취소했다. 이란이 취소한 사실을 매우 존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란의 누구와 통화해 처형 취소를 확인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 활동가 뉴스 에이전시(HRANA)는 16일까지 누적 사망자 수를 3090명으로 집계했다.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 일어난 다른 어떤 시위나 소요보다 많으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둘러싼 혼란을 떠올리게 하는 수치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AP는 독자적으로 사망자 수를 확인할 수 없으며, 이란 정부는 사상자 수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망명 중인 레자 팔레비 전 이란 왕세자는 미국이 개입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약속을 여전히 믿는다고 털어놓았다.  "행동이 취해지든 안 취해지든 이란인으로서 우리는 투쟁을 계속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이란으로 돌아갈 것이다. 17일부터 19일까지 다시 거리로 나서 달라."         < 임병선 기자 >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독립군과 광복군

● COREA 2026. 1. 18. 06:3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아직도 바로 잡지 못한 우리 국군의 역사


80주년 맞은 국방경비대, 국군 모체 아니야
명칭부터 정체성 논란, 업무 한계도 불명확해

누리집 의하면 육군이 해·공군보다 늦게 출발
부승찬 “국군조직법에 광복군 계승 명시해야”

 

대한민국 육군은 누리집(인터넷 홈페이지) 연혁의 첫머리에 “해방 후 미 군정하 1946년 1월 15일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방경비대는 육군으로 개칭되어 국군에 편입되었다”고 밝혀 놓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국방경비대’를 표제어로 올려 “1946년 1월 창설한 우리나라의 군대. 오늘날의 국군의 모체가 되었다”는 설명을 달았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육군박물관 앞과 종합경기장 입구에는 각각 ‘육군의 모체 국방경비대 창설지’ 표석과 ‘국군의 모체 국방경비대 1연대 창설기념비’가 서 있다.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앞에 세워진 국방경비대 창설지 표석.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

 

이에 따르면 이틀 전 15일이 육군, 혹은 국군의 모체의 탄생 80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렇다 할 행사를 치르지 않았다.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이 발행하는 국방일보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함께 출범한 제1연대의 후신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비호여단의 창설 80년 역사를 1월13일 소개한 것이 고작이었다.

 

국방경비대가 육군(국군)의 모체라면 그 창설일은 창군일이나 다름없을 만큼 중요할 텐데 왜 군은 이날을 기념하지 않는 것일까. 국방경비대는 과연 어떤 조직이기에 국군의 모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1946년 1월 15일 일본군 특별지원병훈련소가 있던 지금의 육군사관학교 자리에서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연대 창설식이 열리고 있다.

 

미 군정 들어서자마자 광복군 등 모든 군사단체 해산 명령

 

1945년 8월 15일에 맞은 우리 민족의 해방은 곧바로 우리나라의 독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반도 이남에 진주한 미 군정은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는 물론 중국 충칭(重慶)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광복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개인 자격으로 귀환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광복군 말고도 일제 징병 피해자들이 결성한 조선국군준비대, 학병동맹, 육해공군출신동지회, 건국치안대 등 크고 작은 군사단체가 난립해 있었다.

 

미 군정은 11월 13일 군정법령 제28호를 발표해 해방병단(海防兵團)을 제외한 이들 단체의 활동을 금지하고 국방사령부를 설치했다. 국방사령부 안에는 경비대 창설을 준비할 군무국과 경찰 업무를 관장하는 경무국을 두었다. 국방사령부는 1946년 국방부로 개명했다.

 

국군 창설 로드맵 없이 갈팡질팡했던 미국

 

남조선국방경비대는 창설 단계에서부터 갈팡질팡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나 군정의 청사진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군정청 요원들은 일본에 대한 민족 감정이나 항일과 친일 사이의 갈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군대 창설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지도 않았다.

 

미 군정의 무지함과 안이함은 온갖 문제를 낳았다. 군정은 군대 창설에 앞서 한미 간 언어 소통을 위해 12월 5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신학교 자리에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했다. 군사영어학교에 광복군과 일본군·민주군 출신을 안배해 입교시키겠다는 계획부터 무리였다. 이에 반발한 광복군이 입교를 거부하다 보니 친일 장교들이 주류가 됐고, 미군이 이들을 중용하는 바람에 건군기의 국군이 국민 신뢰와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60명의 첫 입교생 가운데 21명이 40여일 간 교육을 받은 뒤 이듬해 1월 15일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장교로 부임했다.

 

군정법령에 따라 창설되고 미군의 통제를 받다 보니 갈등도 적지 않았다. 일부 임시정부 요인은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경비대를 ‘미군의 용병’이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실제로 1946년 8월까지는 초대 마셜에 이어 2대 러셀 베로스 대령까지 미군이 총사령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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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하고 있는 남조선국방경비대 대원들

 

일본군 출신 득실댔던 남조선국방경비대

 

군사영어학교는 1946년 4월 30일 폐교될 때까지 10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78명이 별을 달았고 참모총장 13명, 합참의장 7명이 나왔다. 미처 졸업하지 못한 재학생 60명은 육사 전신인 조선경비대 사관학교로 편입돼 임관했다.

 

남조선국방경비대는 일본군 특별지원병훈련소가 있던 지금의 육사 자리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초대 사령관과 부사령관에는 존 마셜 중령과 광복군 출신 송호성이 각각 임명됐고 만주군 출신 원용덕이 사령관 보좌관을 맡았다.

 

그러나 부대는 일본군 출신 채병덕 중대장이 이끄는 제1연대 제1대대 A중대뿐이었다. 그나마 창설 이틀 뒤에야 187명으로 편성을 마쳤다. 뒤이어 본부중대(중대장 장석윤)와 B중대(중대장 정일권)가 출범하고 3개 중대를 지휘할 1대대장에 A중대장이던 채병덕이 임명됐다.

 

남조선국방경비대 대원들이 총검술 훈련을 하고 있다.

 

소련 항의 받고 ‘국방’ 뺀 경비대로 개칭

 

남조선국방경비대는 1946년 6월 15일 조선경비대로 이름을 바꿨다.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 대표가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군사조직을 창설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해방병단도 조선해안경비대로 개칭했다.

 

국방부는 통위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미 군정은 군정법령 86호를 공표해 국내경비부로 개칭했으나 한국 측이 반발해 재조정한 것이다. 통위부는 대한제국 당시 우영(右營)·후영(後營)·해방영(海防營)을 통합한 통위영(統衛營)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도 1945년 10월 12일 모든 무장조직 해산을 명령한 뒤 소련군 출신 조선인을 중심으로 보안대를 조직했다. 이듬해 2월과 6월 각각 인민군 제2군관학교와 제1군관학교 전신인 평양학교와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세운 데 이어 그해 8월 15일 보안대를 인민집단군총사령부로 개칭했다. 북한 역시 국방이란 단어만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의 군사 조직을 군정 초기부터 준비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군 지휘권 넘겨받은 것은 1948년 9월 1일

 

조선경비대가 3대대로 구성된 제1연대 편성을 완료한 것은 1946년 9월 18일이다. 뒤이어 2연대(대전), 3연대(이리·1995년 익산에 통합), 4연대(광주), 5연대(부산), 7연대(청주), 8연대(춘천)가 각 도에 창설됐다. 9연대는 제주가 1946년 8월 도로 승격된 뒤 그해 11월 합류했다.

1947년 12월 1일에는 1·7·8연대를 주축으로 38선 전역을 관할하는 제1여단이 서울에 창설됐다. 뒤이어 2·3여단도 각각 대전과 부산에서 깃발을 올렸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전까지 5개 여단 15개 연대 규모로 늘어났고 9월 1일 지휘권이 미 군정청에서 한국 정부로 넘어왔다.

 

9월 5일 조선경비대는 육군으로, 조선해안경비대는 해군으로 이름을 바꿔 국방군(국군)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1949년 4월 15일에는 해군 안에 해병대가 신설됐다. 1948년 5월 5일 창설된 조선경비대 항공부대는 육군에 편입됐다가 1949년 10월 1일 독립함으로써 육·해·공 3군 체제의 틀을 갖췄다.

 

이범석 초대 국방장관 훈령 1호는 경비대 편입

 

초대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 국방부 장관은 정부 수립 이튿날인 8월 16일 국방부 훈령 1호를 발령해 “오늘부터 육·해군(경비대를 뜻함) 각급 장병은 대한민국의 국방군으로 편성되는 명예를 획득하게 됐다”고 선언했다. 국방군(국군)이 경비대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편입했다는 뜻이다.

 

이범석 초대 국방부 장관

1995년 국방군사연구소가 펴낸 ‘국방정책변천사’도 “정부 수립 후 조선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국군으로 편입되어 각각 육군과 해군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육군 누리집 설명과 동일하다.

 

그러나 편입한 주체는 모호하다. 그러면 국군과 육군의 뿌리는 과연 어디인가. 국방경비대 시절 한국 측 인사들은 대한제국 군대에 기원을 두고자 했다. 미 군정이 국방부를 국내경비부로 바꾸려 할 때 통위부를 제안했고, 경비대 초기의 계급이나 구령 등도 대한제국 군대의 것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일제의 강요를 받은 순종의 황명으로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대한제국 마저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사라지면서 그 명맥도 끊겼기 때문에 대한제국 군대가 국군의 뿌리가 될 수는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못박고 있다. 대한민국 국군도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을 계승하는 것이 마땅하다. 광복군은 1940년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에서 창설됐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군과 의병에 맥이 닿는다.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창설식을 개최한 뒤 한국과 중국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산하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낸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2018년)과 『근현대 한국군의 역사』(2019년)에서 남조선국방경비대를 국군의 모체로 봤던 기존 입장을 수정해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했다. 육사의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이 일던 2023년에도 국방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2018. 3. 1 연합
 

해군 ‘창군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손원일 제독

 

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육·해군 비행대 편성을 기획하며 독립군 비행학교 설립을 추진한 1919년 11월 5일을 누리집 연혁의 맨 윗줄에 올려놓았다. 2020년 7월 14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윌로스 한인비행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원인철 공군참모총장 주재로 서울 강서구 공항동 국립항공박물관 앞에서 기념 조형물 제막식을 열기도 했다.

 

1920년에 촬영한 윌로스 한인비행학교 교관과 생도들의 모습. 사진 위에 ‘미국 가주(加州·캘리포니아주) 한인비행대, 로백린 장군 지휘 하에'라고 적어놓았다.
 

해군은 독립운동가 손원일을 ‘창군의 아버지’로 내세우며 그가 동지들을 규합해 1945년 11월 11일 조직한 해방병단을 모체로 삼고 있다.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은 누리집 인사말에서 “해군은 광복 직후 육·해·공군 중 가장 먼저 창설됐다”고 설명해놓았다. 육·해·공군의 누리집만 보면 국군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육군이 가장 뒤늦게 출발한 셈이 된다.

 

육군, 해군, 공군의 누리집. 창군 과정에 관한 설명이 각기 다르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4명은 국군조직법 제1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 한국광복군의 역사를 계승하고 국민의 군대로서”라는 문구를 추가하자는 개정안을 2024년 10월 14일 발의했다.

 

법 개정 이전에라도 육군은 누리집을 비롯한 각종 자료에 남조선국방경비대가 모체가 아니라 독립군과 광복군이 뿌리라는 사실을 밝혀놓아야 한다. 국방부도 국군 출범 이전의 역사를 소개하고 광복군 창설을 기념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육사에 놓인 국방경비대 표석과 기념비에도 ‘국군(육군)의 모체’란 단어를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희용 기자 >

이 대통령 면전서 보수-진보 정당 대조적 장면

천하람, 2차 종합특검법 거부권 행사 거듭 촉구
"여당이 '죽은 권력' 부관참시하려…나쁜 선례"
"통일교·공천특검 받아야"…신천지 특검엔 함구

용혜인 "윤석열, 사형 구형에도 실실 웃고 조롱"
"내란 동조한 국힘도 기세등등한데 죽은 권력?"
한창민 "종합특검만 안 된다는 건 모순적 주장"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왼쪽)와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KTV 영상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청와대 회동 당시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 면전에서 2차 종합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을 촉구하자 진보 정당인 기본소득당 용혜인,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가 나서 조목조목 반박한 장면이 정치권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불참한 가운데 보수정당에서는 유일하게 천하람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그는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차 종합특검법이 상정되자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약 19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 진행 방해)를 진행한 뒤 곧바로 청와대로 이동했다. 밤을 꼬박 샌 상태였지만 필리버스터 때 했던 주장을 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은 오찬 간담회의 모두발언에서 천 원내대표는 "제가 사실 19시간 정도 필리버스터를 하다가 와서 조금 군기가 덜 빠져 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2차 종합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려고 왔다"며 "3대 특검에서 부족했던 수사들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 부분들은 경찰 국가수사본부로 자연스럽게 다 인계가 된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통일교 특검 및 공천헌금 특검을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내놨다. 반면 민주당이 추진하고 국민의힘은 결사 반대하는 신천지 특검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천 원내대표는 "대통령님도 통일교의 정교 유착 문제를 굉장히 강하게 질타했었다"면서 "여야 가릴 것 없이 통일교 특검이라든지, 특히 이번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돈 공천 관련한 특검이라든지, 여당이나 대통령과 가까운 분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특검이라는 게 내가 쓰는 칼일 뿐만 아니라 정말 공정한 수단이라는 것을 대통령이 보여준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제와 정치 역사에 어마어마한 성취와 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정당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국민의힘 지도부는 불참했다. 2026.1.16. 연합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가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초청 정당 지도부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1.16. 연합
 

이에 다음 발언 순서로 마이크를 잡은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가 천 원내대표의 특검 관련 주장을 하나하나 논박했다. 용 대표는 "준비한 말씀을 드리기 전에 2차 특검 관련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천하람 대표가 12·3 내란을 '죽은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는데, 내란 공판 과정을 보면 (윤석열이) 사형이 구형되는 그 순간까지도 실실 웃으면서 국민을 조롱했던 모습을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것"이라며 "그리고 내란에 동조했던 내란 정당 국민의힘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이게 과연 죽은 권력에 대한 문제인가 라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2차 종합특검법에는) 외환, 군사 반란 혐의, 노상원 수첩, 양평 고속도로 문제까지 3대 특검의 미진한 수사 대상들이 정밀하게 나열돼 있다. 예산 문제도 말해주셨는데, 검찰 예산의 1% 정도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개혁신당이 국민의힘과 공조해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은 개혁신당을 위한 선택이겠으나 정치의 본질은 국민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회와 정부는 힘을 합쳐야 하고, 그런 부분을 더 깊이 천하람 원내대표도 헤아려 주기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마지막 발언자인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도 "2차 종합 특검은 죽은 권력에 대한 부관참시가 아니라 진실에 근거해 역사를 바로잡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정쟁의 사안이 아니라 내란을 겪은 대한민국이 민생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고, 특검이 짧은 (수사) 기간에 많은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한계를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천하람 원내대표는 국가수사본부에서 수사하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게 또 다른 정쟁을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정한 특검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면서 "돈 공천 특검과 통일교 특검은 하자고 하면서 종합 특검은 국가수사본부에 맡기자는 것은 모순적인 상황이다. (종합 특검에도) 함께 동의해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천 원내대표는 모두발언만 하고 식사는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천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과 민주당에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수용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17일에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사흘째 단식 투쟁을 벌였다.  <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