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정 전체 재구성 수준의 개혁 해야
개헌·극단주의 감시·검찰개혁 완수 필요
플랫폼 권력과 인지전 세력 민주적 통제도
민주공화정 지키는 마지막 힘은 시민에게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제도의 시간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된 적이 없었다. 시민들은 무너질 때마다거리로 나와 민주공화정을 다시 붙들어 세워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막연한 위기의식이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을 실제로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입니다. 그리고 그 개혁은 단순한 정책 조정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헌법과 사법, 검찰과 선거제도, 플랫폼과 시민교육까지 민주공화정 전체를 다시 재구성하는 수준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정의 자기방어 원리를 제도화하는 일입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를 반복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 때만 지속될 수 있는 정치질서입니다.

 

12·3 내란은 바로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일회성 정치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내부에 극우와 검찰권력, 혐오정치와 역사왜곡, 플랫폼 인지전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보여준 경고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독재를 무너뜨렸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정부를 반복해서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권력구조와 극우생태계, 검찰권력과 혐오정치, 역사왜곡과 승자독식 정치구조는 충분히 개혁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극우는 반복해서 부활했고, 마침내 윤석열 내란이라는 위험한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민주공화정이 더 이상 무기력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본격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어떻게 다시 공동체의 삶과 공적 질서 속에 뿌리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헌법 전문 개헌 완수와 민주공화정 정신의 재정립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선거와 정권교체 중심으로 이해해온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민주공화정은 단순한 선거체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주권과 권력분립, 공공성과 책임정치, 차별과 혐오의 배제, 공동체 윤리와 시민적 연대를 포함하는 살아있는 질서입니다. 특히 이제는 “5·18광주민주항쟁 정신 계승”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재명대통령의 천명, 국회의장의 관철 의지, 그리고 민주진영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지난 5월 국회에 이러한 내용이 상정되었으나, 국민의힘은 이를 이미 거부한 바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재추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관철해야 합니다.

 

20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차량 시위를 재현하는 ‘민주기사의 날’행사가 열리고 있다. 2026.5.20. 연합
 

5·18광주민주항쟁은 단지 과거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아닙니다. 국가폭력과 군사독재에 맞서 시민이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대한민국 헌정사의 결정적 기준점입니다. 독일이 나치 범죄와 파시즘에 대한 반성을 헌법질서 안에 제도화했듯이, 한국 역시 민주주의 수호의 역사를 헌법정신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헌법정신은 실정법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광주민주항쟁 왜곡과 식민지근대화론, 부정선거 음모론과 내란미화 선동은 단순한 의견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공화정 자체를 허무는 정치행위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민주공화정의 핵심 가치와 헌정질서를 조직적으로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실질적 대응체계를 법률 차원에서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역사논쟁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의 역사적 정통성과 헌정질서를 지키는 문제입니다.민주공화정은 무기력한 방관 체제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방어할 헌법적 의지와 제도적 장치를 가질 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국회 산하의 극단주의·헌정질서 수호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한국 극우세력이 더 이상 인터넷 하위문화 수준이 아니라 실제 헌정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단순한 국내 정치집단이 아닙니다. 미국 MAGA 세력과의 국제적 연결, 극우 개신교 네트워크, 온라인 플랫폼 기반 조직력, 역사왜곡과 혐오정치, 음모론 선동체계를 동시에 갖춘 복합적 정치생태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이러한 극단주의 움직임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할 제도적 장치를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이미 나치 경험 이후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스스로를 방어하는 민주주의(wehrhafte Demokratie)’ 원칙 아래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을 중심으로 반헌법적 극단주의 세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한국 현실에 맞는 민주공화정 방어체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은 권력남용 방지입니다. 과거 정보기관들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시민사회를 탄압했던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국회 산하 독립기구 형태의 가칭 ‘민주공화정수호위원회’ 설치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부가 직접 통제할 경우 정권에 따라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영 역시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당 중심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 법조계, 언론계, 인권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 역할 역시 단순한 처벌기관이 아니라 극단주의 네트워크와 혐오범죄, 조직적 허위정보 유통과 내란선동 흐름 등을 상시적으로 분석하고 공론화하는 역할에 가까워야 합니다. 결국 이것 역시 민주공화정의 공론장과 공동체 신뢰를 지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민주공화정은 서로를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할 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매듭짓고 완수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와 12·3 내란 사태는 한국 사회가 검찰권력과 사법권력의 정치화를 얼마나 위험하게 방치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검찰은 오랜 시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독점하며 사실상 초헌법적 권력처럼 기능해왔습니다. 검찰권력의 정치개입과 선택적 수사 논란은 반복되어왔지만 근본적 개혁은 번번이 지체되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시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느렸고, 기득권 권력구조는 충분히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검찰권력은 다시 정치권력으로 재조직되었고, 결국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역사는 이미 충분히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위협했던 권력구조를 충분히 개혁하지 못하면 그것은 다시 정치권력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는 이제 단순한 조직개편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독점을 차단하고 민주공화정을 방어하기 위한 핵심 개혁과제가 되었습니다.

 

사법개혁 역시 본격 추진되고 완수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사법 불신을 강하게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법원이 시민의 상식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법관 증원과 국민참여재판 확대, 배심제 강화 등을 통해 사법권력의 폐쇄성과 엘리트주의를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법은 소수 법률 엘리트의 독점영역이 아니라 시민주권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 민주공화정의 핵심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12·3 내란 주범자들에 대한 법원의 연이은 솜방망이 판결은 사실상 민주공화정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법권력이 극단주의 정치의 안전판처럼 기능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핵심은 권력기관을 공동체의 민주적 통제 아래 다시 돌려놓는 데 있습니다.

 

넷째, 플랫폼 권력과 인지전 세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극우정치는 더 이상 전통적 정당조직 중심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 정치와 결합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혐오와 조롱, 음모론과 허위정보는 클릭 수와 광고수익 구조 안에서 빠르게 확산됩니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부정선거 음모론과 혐중 선동 콘텐츠는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반 조작영상과 자동화된 허위정보 유통까지 확산되며 인지전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롱과 혐오의 밈 정치는 단순한 인터넷 놀이문화 수준을 넘어 민주공화정의 공론장 자체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기업이 아닙니다. 이미 민주주의의 정보질서와 사회적 감정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정치적 권력에 가까워졌습니다.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9. 연합
 

특히 플랫폼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체류시간과 반응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극적 혐오 콘텐츠와 음모론, 극단적 감정동원 콘텐츠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혐오와 분노가 곧 수익이 되는 구조 속에서 공론장은 점점 감정시장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지전의 핵심은 사람들의 사고체계와 감정구조 자체를 흔드는 데 있습니다. 과거 독재가 국가폭력과 검열에 의존했다면, 오늘날 극우정치는 알고리즘과 감정동원, 혐오와 조롱을 통해 일상 속으로 침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공론장은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민주공화정의 핵심 기반인 사회적 신뢰 역시 함께 붕괴하게 됩니다.

 

따라서 허위조작정보 대응체계 구축과 알고리즘 투명성 강화, 혐오선동 알고리즘 규제, 정치 콘텐츠 투명성 강화와 극단주의 콘텐츠 수익구조 제한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정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정을 파괴할 권리까지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플랫폼 개혁은 민주공화정의 공론장을 복원하는 문제입니다.

 

다섯째, 승자독식 정치구조를 넘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앞선 칼럼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현재 한국 정치는 지나치게 승자독식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는 협력과 숙의보다 적대와 진영동원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선거는 시민의 다양한 의사를 조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 진영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전쟁처럼 변질되었습니다. 승자독식 구조가 강할수록 정치세력들은 중도층 설득보다 강성 지지층 동원과 혐오정치에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극단주의 정치가 성장하기 쉽습니다. 특히 지금 한국 정치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모두 결선투표제가 부재합니다. 그 결과 전체 유권자의 폭넓은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도 강력한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결선투표제를 운영하는 이유 역시 극단주의 정치가 단순 지지층 결집만으로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선투표제는 단순한 당선 절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극단주의 정치가 반드시 폭넓은 시민적 동의를 거치도록 만드는 민주공화정의 안전장치에 가깝습니다.

 

비례대표 확대 역시 중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다수의 승리를 정당화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다양한 사회세력과 공동체의 의사를 제도 안으로 포괄하고 조정하며 공존시키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구조에서는 수많은 표가 사표로 버려지고 있으며, 다양한 정치세력과 사회의제가 제도정치 안으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 불신은 심화되고, 양당 적대정치는 더욱 극단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 확대는 단순한 기술적 선거제도 개편이 아닙니다. 다양한 시민의 의사를 민주공화정 안으로 다시 포괄하기 위한 구조개혁에 가깝습니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민주공화정을 승자독식 체제가 아니라 시민공존 체제로 재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여섯째, 정당민주주의 확대와 시민참여 강화가 필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만 치르는 체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감시하며 토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나 한국 정당정치는 여전히 계파주의와 공천권 중심 정치, 특정 정치인 중심 구조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의 위기는 특정 정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정치 전체가 시민주권보다 계파와 권력관리 중심으로 움직여온 구조적 한계를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주권자의 의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실천의 문제입니다. 당원민주주의 확대와 정책 중심 정당체제 강화, 시민참여 확대 없이 민주공화정은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권력의지는 정치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정에 대한 철학적 확신 없이 권력의지만 앞설 경우 정당은 쉽게 시민주권의 조직이 아니라 권력집단의 연합체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권력 자체보다 권력이 어떤 가치와 철학 위에서 행사되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체제입니다. 민주공화정은 특정 정치인의 권력을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국가의 주권자로 참여하는 질서입니다.

 

일곱째, 차별금지법과 시민교육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극우정치는 언제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통해 성장합니다. 혐오가 일상화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토대 역시 흔들리게 됩니다. 민주공화정은 시민의 동등성을 전제로 작동합니다.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반 역시 함께 무너지게 됩니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소수자 보호 차원이 아닙니다. 성별과 종교, 성적 정체성 등 모든 인권 영역에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국제규범이고, 세계인권선언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2025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맞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27. 연합
 

로마교황청역시 차별금지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 개별 인권문제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통해 극우세력이 차별과 혐오를 정치동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구조 자체를 제도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개혁 역시 중요합니다. 민주공화정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시민교육과 역사교육, 공론장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없이 민주주의는 쉽게 혐오와 선동에 흔들리게 됩니다. 교사들의 정당선택권 역시 보다 폭넓게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교사의 수업내용을 사사건건 시비 걸고 교사 개인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극우적 압박과 위협으로부터 교사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인지전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스스로 허위정보와 선동을 비판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극우는 언제나 사람들의 불안과 피로, 좌절과 분노를 먹고 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공화정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법 몇 개를 만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혐오와 조롱,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공존과 연대, 책임과 공공성을 다시 회복하는 일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공화정을 다시 공동체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일입니다. 민주공화정은 참여와 감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개혁 위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민의 손으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극우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민의 질서 위에 세우는 길입니다.

 

 

■ 민주공화정은 왜 끊임없이 시민을 요구하는가

 

대한민국 시민들은 민주공화정을 지켜온 ‘극한직업’의 수행자였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누려온 역사라기보다 무너질 때마다 시민들이 다시 몸으로 붙들어 세운 역사에 가까웠습니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항쟁과 6월항쟁, 촛불혁명과 윤석열 내란 빛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시민들은 수없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완성된 체제가 아니다. 시민의 참여와 감시, 공론과 연대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고단하고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역사를 만들어낸 위대한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시민의 힘으로 반복된 탄핵과 정권교체를 비교적 평화롭게 수행하며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혀온 나라입니다. 독재와 군사권력, 검찰권력과 내란 위기를 시민의 힘으로 돌파하며 민주공화정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축적해온 삶의 경험이자 사회적 진화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번 7부작에서 제가 계속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류가 오랜 시간 공동체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해온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표현은 단순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표현은 공동체의 질서를 구성하는 힘입니다. 어떤 표현은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그러나 어떤 표현은 혐오와 폭력을 퍼뜨리며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소수가 권력과 질서를 독점하려는 욕망이 존재해왔습니다. 왕정의 절대권력과 자본독점, 전체주의와 파시즘은 그 반복된 형태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 역시 인간사회가 끊임없이 반복해온 자연스러운 권력 본능의 일부인지도 모릅니다. 약육강식의 질서는 자연세계에서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사회적 진화 과정을 거치며 경쟁과 지배만으로는 공동체를 지속시킬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확인해왔습니다. 협력과 공존, 공론과 숙의, 책임과 연대가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발전에 더욱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온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경험이 정치제도로 발전해온 결과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그리고 민주공화정 체제입니다. 반대로 힘 있는 소수가 모든 권력과 부, 질서를 독점하려는 성향 또한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오늘날 그것은 극우적 세계관과 혐오정치, 권위주의와 배제의 정치 형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정과 극우적 세계관은 인간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민주공화정은 느리지만 공존을 선택합니다. 토론과 숙의, 절차와 합의를 통해 함께 살아갈 질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반면 극우적 세계관은 빠른 결정과 강한 지배를 선호합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승자와 강자가 정하는 질서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이성보다 감정동원을 더욱 중시합니다. 혐오와 차별, 조롱과 배제는 바로 그 감정정치의 핵심 도구가 됩니다. 오늘날 플랫폼 알고리즘은 혐오와 조롱, 분노와 배제를 놀이처럼 소비시키고 증폭시키는 거대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조롱은 밈이 되고, 혐오는 콘텐츠가 되며, 거짓은 클릭 수와 광고수익 속에서 빠르게 확산됩니다. 그 결과 공동체의 신뢰와 공론장은 조금씩 무너져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함께 살아갈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인류는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관과 지배와 독점을 추구하는 세계관 사이의 충돌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혐오와 배제, 조롱과 지배의 질서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더디고 불완전하더라도 공존과 숙의, 시민적 존엄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개혁 과제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실현해나가느냐에 따라 그 선택의 방향 역시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이미 여러 차례 그것을 증명해왔습니다. 결국 민주공화정을 지키는 마지막 힘은 언제나 시민에게서 나옵니다.

 

민주공화정은 헌법 속 문장이 아니라 시민이 매일의 삶 속에서 끝없이 지켜내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 이병권 인문연구가 >

 

 ‘배재고 지역 혐오 응원’이라 쓰고, 거기에 담긴 공격성을 명시해야

 

 
▲ YTN뉴스 ‘광주 학교에 "스벅 가야지" 망언 후폭풍… 배재고 조사 착수한 교육청’ 보도 갈무리
 

충격적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당시 서울 배재고 더그아웃에서 나온 구호를 들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광주제일고를 맞아 결전을 치르던 배재고 선수들은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며 ‘응원’을 펼쳤다. 더그아웃 어디선가 “탱크데이”라는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충격’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이 사태가 주는 여러 황망함이 있다. 야구장 한복판에서나온 “스타벅스 가야지”는 지난 5월 스타벅스 코리아가 열었던 5·18 민주화운동과 고(故) 박종철 열사를 폄훼하는 내용의 ‘탱크데이’ 이벤트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더군다나 메시지의 수신자로 광주제일고를 타기팅했다는 점에서 지역 혐오의 맥락을 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구호를 외치는 배재고 선수들의 기세등등함이다.

 

해당 경기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교 야구 대회의 왕중왕전이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될 만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공식 석상에서 소속 학교를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고, 단체로 바로 눈 앞의 상대를 향해 혐오 발화를 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아연실색케 한다. 이에 대한 지적마저 대회 주최 측이나 배재고가 아닌 광주제일고 코칭스태프가 나서서 이뤄졌다는 것 또한 충격적이다. 혐오에 즉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피해 당사자의 항의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언론은 이 일을 대서특필했다.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림’이라는 뜻의 ‘조롱’으로 응원을 수식하는 보도가 많았다. 그러나 5·18 당시 광주에서 자행된 무차별적 학살과 광주제일고가 갖는 당사자성을 감안했을 때 “스타벅스 가야지”를 단순 ‘놀림’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태도다. 배재고 야구부를 ‘얼빠진’으로 수식하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다. 당시 선수들의 행태는 ‘정신이 없어지다’라는 의미의 ‘얼빠진’ 상태에서 한 일이라기엔 명확한 타깃이 있는 공격의 형태를 취했다.

 

가장 흔한 헤드라인은 ‘배재고 응원 구호 논란’이었다. 앞서 언급한 수식들 뒤에도 꼭꼭 ‘논란’이 따라 붙었다. 이는 이슈의 성격 규정을 회피하는 언론의 전형적인 태도다. 명백한 혐오성 이슈가 언론에 의해 ‘논란’으로 프레이밍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의 ‘논란’이라는 명명은 이슈에 담긴 피해·가해 구도를 지우고 이슈를 ‘온라인 설전’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표준국어대사전상 ‘논란’의 정의는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이다. 맥락상 “스타벅스 가야지”가 지닌 의미나, 발화된 방식을 따져봤을 때 이것이 혐오성 공격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 현재 여론의 향방도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툰다’는 의미의 논란과는 다르다.

 

▲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2021년 7월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이는 2021년 도쿄올림픽 당시 ‘양궁 3관왕’ 안산 선수를 향한 공격들을 ‘논란’으로 무화시켰던 언론의 전적을 떠올리게 한다. 안 선수는 ‘쇼트커트’ 머리를 했으며 특정 신조어를 사용하고 광주 출신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메달을 반납하라”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당시 한국의 수많은 매체가 이를 ‘페미 논란’으로 명명한 것과 달리 로이터와 BBC 등의 외신은 이를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로 규정했다. 뉴욕타임스도 ‘공격(attack)’, ‘학대’(abuse) 등의 단어를 써서 이것이 단순히 서로 다투는 일이 아닌 피해자 안산을 향한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가해 행위임을 짚었다. 여성과 지역을 교차하는 혐오가 문제의 본질임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 야구 선수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진 광주제일고는 5·18 직후 운동장이 계엄군에 점령되는 바람에 그 해 청룡기 대회에 불참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계엄군은 선수들에 총검을 들이댔고, 야구부 소속이었던 선동열 선수의 아버지 선판규 씨가 군인들에 읍소해 겨우 피해를 막았다는 일화가 지금껏 선수들 증언으로 전해져온다(유튜브 채널 ‘전설의 타이거즈’ 중). 광주제일고 선수들에게 5·18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고, 이들을 향한 ‘스타벅스’ 발언이 직접적 ‘공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를 비롯한 혐오 발화가 공식 석상에서 조직적으로 흘러나오는 한편, 이에 대한 제재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정확한 현실 규정이 필수적이다.

 

혐오를 혐오라고 부르는 일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날 배재고의 응원은 ‘논란’이  될 수 없다. ‘배재고 지역 혐오 응원’이라 쓰고, 거기에 담긴 공격성을 명시하자. 그것이야말로 언론이 무책임하게 행해온 ‘논란’에의 관성을 딛고, 혐오에 관한 일벌백계를 꾀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 이슬기 기자 >

 

"스벅 가자" 배재고 야구단, 혹은 배재고의 '기획된 사고'

광주 연고 학교 상대로 반복된 '레퍼토리'
교풍에 의해 육성된 학생들의 일탈 아닌가
이승만 동상 세워 '자랑스런 선배'로 기려
선수단 넘어 학교 자체에 책임 물어야 마땅
반일 독립 투쟁의 산실 역할한 역사에 먹칠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벌인 '스타벅스 가자' 응원 사태는 일부 선수들의 우발적 탈선 행위일까. 학교 측과 일부 여론은 이를 일부 선수들의 돌출행동으로 정리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사건의 정황과 학교의 교풍과 역사를 함께 들여다보면, 이는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예견 가능했던-예견됐어야 할-사고라고 봐야 맞을 듯하다. 나아가 오히려 ‘준비된 사고’ ‘기획된 일탈’이라고 봐도 마땅해 보인다.

 

동영상 자체가 돌발적인 사고라는 점을 부정하고 있다. 덕아웃에서 터져 나온 응원가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구호라고 보기 힘들었다. 가사와 박자가 맞춰진 응원가 형식으로 제창됐다는 것은 사전 연습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결과물로 보인다. 한 경기에서 즉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완성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내 운동장이나 야구부 시설 등에서 미리 맞춰봤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올 만하다.

 

더구나 이같은 행위가 광주일고에게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같은 광주 지역의 동성고, 진흥고를 상대로도 반복되었다는 점은 그같은 의심을 더한다. 일회성 해프닝이라면 한 번으로 그쳤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같은 패턴이 여러 학교, 여러 경기에 걸쳐 되풀이됐다는 것은 이것이 우발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야구부 내에서 하나의 '레퍼토리'로 굳어진 관행이었음을 보여준다. 광주 지역에 연고를 둔 학교를 상대할 때마다 미리 준비해서 꺼내든 계획적 카드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경기 중 이 응원이 터져 나왔을 때 감독이나 코치가 즉각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는 의심을 굳힌다. 지도자가 모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알고도 막지 않았다는 점은 이 응원 문화가 선수단 내에서 최소한 묵인된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용인, 독려돼 온 관행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단 차원에서의 방조와 기획으로까지 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재고 교정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의 전신상. 

 

일부 선수를 넘어서, 코치진을 포함한 선수단 전체의 사안이란 것을 넘는 것은 물론, 배재고의 학풍과 교내 문화 자체가 이번과 같은 사고를 ‘배양’하고 ‘육성’했을 수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될 수 있다. 배재고 교정에는 국내에 단 4개 남은 이승만 동상 중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현존하는 이승만 동상 중 가장 오래된,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에 세워진 동상이다. 학교의 중심 공간인 배재동산에서도 한가운데에 우뚝 선, 이 학교 졸업생인 이승만의 동상 비문에는 "한평생을 항일과 반공, 자유민주주의에 바친 겨레의 큰 스승에 대한 추모"라는 미화된 문구만이 새겨져 있다. 독재를 기도한 사사오입 개헌이나 3·15 부정선거, 양민 학살 등 숱한 죄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배재고 기숙사 이름도 이승만의 호를 따 '우남학사'로 붙여져 있다. 학교 홈페이지 '자랑스러운 배재인상' 코너는 2000년 수상자로 이승만을 소개하며 그를 '건국대통령'으로 표기하고 있다. '건국대통령'이라는 표현은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으로 탄생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헌법 전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지만 무시되고 있다.

 

독재와 부정선거로 국민들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은 배재고 학생들에겐 '훌륭하기 그지 없는 선배'로 기려지고 있다. 배재고 출신 자녀의 어느 학부모는 “역사 교과서에서 4.19를 배울때 이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피 흘려 지킨 민주주의 가치와 이를 지키기 위한 희생에 대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라고 말한다.

 

이 학부모는 “(그래서) 이번 사건은 철없는 아이들의 일회성 행동이 아니고 교장, 교감, 교사들까지 일관되게 유지돼 온 유구한 '학풍'의 결과라는 합리적 의심을 한다. 준비된 도발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승만 숭배는 배재고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배재학당 재단의 대전 배재대학에도 이승만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난 1987년 2월 졸업생 명의로 건립된 동상은 그해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학교에 독재자의 동상이 있으면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에 의해 곧바로 철거됐다. 그러나 1990년 학교 측이 보관 중이던 동상을 기어코 다시 세웠고, 학생들의 계란·페인트 투척 시위 끝에 1997년 자진 철거됐다가, 2008년 배재대와 배재학당 총동창회가 건국 60주년을 명분으로 또다시 세웠다. 그해와 2018년 두 차례의 철거 시위에도 동상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학교법인 배재학당은 '이승만 탄생 150주년과 서거 60주년'인 2025년을 맞아 새로운 '우남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까지 제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차원에서 이승만에 대한 숭배 현양 작업을 수십 년간 집요하게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규연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 교장이 전국 고교야구대회 도중 발생한 상대팀 배재고등학교의 응원 구호 논란과 관련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30일 서울 송파구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를 방문하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광주일고와 경기 중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라고 외쳤다. 2026.6.30 연합
 

지난해 한겨레 등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극우 세뇌교육 논란을 빚은 리박스쿨의 교재로 활용된 책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를 서울 초중고교들 중에서 가장 많이 보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학교 전자책도서관에는 '5.18 북한군 개입' 허위 사실로 징역 2년이 확정된 지만원 씨의 5.18 '혐오 모독' 도서도 비치돼 있었다. 이번 사고가 야구장에서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학교 측의 이승만 숭모와 리박스쿨 참여, 5.18 혐오의 사실상 권장 등과 어울려 '체계적으로 준비'된 것이라고 해도 될 만하다.  

 

이같은 배재학당의 행태는 배재학당이 스스로 자부하는 역사와도 상당 부분 배치된다. 배재학당은 1885년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중등교육기관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반일 투쟁의 산실 역할을 했던 곳이다. 현직 교사와 재학생, 졸업생들이 3·1운동 전후 다양한 형태로 독립운동에 참여해 체포되고 옥고를 치렀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한글학자 주시경, 사회운동가 신흥우 등이 이 학교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동문들이다. 그런데 정작 친일 세력을 중용하고 독재로 민주주의를 압살한 인물을 학교의 대표 인물로 떠받드는 모순이 수십 년째 이어져 온 것이다. 독립운동의 산실을 자처하면서도 그 독립운동가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짓밟은 인물을 추앙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배재고 선수들이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봐도 될 듯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고는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이벤트가 일부 직원의 실수나 과오가 아니라 조직문화 전체의 산물이었던 것과도 닮아 있다. 배재고 야구단의 '스타벅스 가자'라는 말 자체가 신세계그룹 총수로부터 비롯된 기업 조직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었듯, 선수단의 탈선행위도 선수 개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학교의 교풍과 문화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올 법하다.

 

여기에 학교의 사회경제적 위치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권에 소재하고 학비가 고가인 자율형 사립고라는 점, 보수 개신교 재단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이번 사고를 낳은 토양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학교측의 사과나 '일부 선수'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로 이번 사태를 수습하거나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든 이유다. 선수단을 넘어서 학교 자체에 책임을 물어야 마땅해 보인다.                                                     < 이명재 기자 >

 

“탱크데이” 배재고 혐오발언에 “비통하고 분노 느껴”

배재고 야구부, 광주일고 경기에서 ‘스타벅스’ ‘탱크데이’ 거론
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개최 예고 “필요한 조치 진행”
배재고 “부적절한 행동” 사과했지만… 사과문엔 AI 워터마크

 

 
 
▲배재고와 광주일고 경기 중 배재고 학생들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라는 응원구호를 사용했다. 사진=MBC 유튜브 화면 갈무리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경기 중 5·18민주화운동 비하 파문을 일으킨 스타벅스를 거론하며 응원을 하고 “탱크데이”라고 외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사건 경위 파악에 나섰으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도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29일 광주제일고등학교와 배재고등학교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5·18민주화운동 혐오 발언이 나왔다. 경기 후반 배재고 학생들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응원 구호를 사용한 것이다. 지난달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사태를 연상하게 하는 조롱성 구호다. 광주제일고 측이 심판진에 항의하고, 이후 심판진이 배재고 측에 주의를 줬다.

 

이후 경기 영상이 SNS에서 확산됐고, 각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30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를 방문해 항의서한을 제출했다. 이 교장은 서한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아직도 그로 인한 분노가 채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 경기를 치르는 학생 선수들의 입을 통해 부적절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이뤄진 것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지적하면서 “응원을 접한 선수들은 물론 광주일고 재학생, 교직원, 학부모는 물론 4만명이 넘는 동문을 넘어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수많은 분들이 비통함과 분노를 함께 느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장은 “정정당당하게 서로를 존중하는 교육의 장인 이곳 고교야구 경기장에서 혐오와 조롱의 언어가 여럿의 목소리로, 큰 소리로 울려 퍼진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서는 경기 전, 경기 중, 경기 후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일체의 응원이나 표현을 금지해 주시기 바란다. 이러한 내용을 위반한 선수와 지도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조치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입장문을 내고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하거나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은 교육적으로 절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학생 스포츠 현장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담당 부서가 배재고를 방문해 사안 발생 경위와 현장 제지 여부, 학생 선수 지도 과정, 학교의 후속 조치 및 재발 방지 교육 계획을 종합적으로 확인·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개최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현재 관련 경위와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해 사실관계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정위원회를 개최해 규정에 따라 공정하고 엄정한 절차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기념재단 등 오월단체 역시 30일 성명을 내고 “이번 일을 학생 몇 명이 일으킨 단순한 일탈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학생들이 한 행동은 ‘광주’와 ‘5·18민주화운동’을 비하한 것이고, 특정 지역을 혐오한 것”이라며 “언행을 한 야구부원들이나 이를 방조한 야구부 지도자, 경기 심판, 대회 관계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잘못한 학생과 지도자 등 관계자의 책임을 물으라. 잘못을 즉각 제지하지 못한 심판과 대회 운영진 등이 책임을 져라”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 잘못한 사람들이 반성하고, 합당한 책임을 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5·18민주화운동을 지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 29일 배재고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우측 하단 생성형AI 제미나이 워터마크가 있다.
 

이런 가운데 배재고는 지난 29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일부 학생 선수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로 광주제일고등학교 선수단과 학부모님, 동문, 광주 시민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깊은 상처와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해당 응원은 상대학교와 지역사회를 존중해야 하는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으며 역사적 의미와 지역사회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에 생성형AI 제미나이의 워터마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번 사과문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 윤수현 기자 >

 

“전라도가 뒤통수 잘 친다고? 우리 얼굴 보고도 그런 말 할 수 있나”

[5·18 왜곡대응 프로젝트] 광주고 김양균 학생회장, 정은탁 홍보부장 인터뷰
5·18역사왜곡, 지역혐오에 상처받는 청소년… “싸우기도 했지만, 이젠 체념”
광주 윤석열 탄핵반대 집회 “민주화 도시, 내란세력 지키는 장소 전락해”

 

 

▲광주고등학교 학생회를 비롯해 광주 지역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등이 지난달 16일 광주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민주평화대행진에 참석했다. 사진=광주교육청

 

“호남 지역혐오 글을 너무 많이 보다보니 체념하게 됐다. 영원히 지역혐오 정서가 없어지지 않을까 겁이 난다.”(김양균 광주고 학생회장)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정은탁 광주고 학생회 홍보부장)

 

5·18민주화운동과 호남 지역은 온라인에서 조롱과 비난 대상이 됐다. 5·18민주화운동이 북한이 계획한 ‘폭동’이란 주장은 여과 없이 온라인을 떠돌고 있으며, 호남 지역에 대해선 ‘홍어’·‘외국’·‘뒤통수’라는 수식어가 자리잡고 있다. 혐오와 역사 왜곡은 온라인에서 장난처럼 소비되고 있으며, 편견으로 굳어지고 있다.

 

혐오와 역사 왜곡의 가장 큰 피해자는 광주·호남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이다. 인터넷에서 호남 지역 혐오와 5·18민주화운동 역사 왜곡이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 청소년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내 고장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폭동이 아닌지 의심하고, 자기 지역을 부끄러워하는 일도 발생한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광주고등학교의 김양균 학생회장, 정은탁 학생회 홍보부장과 인터뷰를 진행해 광주 지역 청소년들이 지역혐오, 5·18민주화운동 역사 왜곡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물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화상전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이후 서면 인터뷰를 추가로 진행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5월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면피성 꼬리자르기 사과 정용진 회장 규탄, 스타벅스 불매운동 전국화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국민중행동 등 참석자들이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
 

- 실제로 5·18민주화운동, 호남 지역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역사왜곡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가.

 

김양균 “광주에 살다 보니 실제 혐오 발언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다만 학교에선 그런 표현을 종종 접한다. 다들 아는 것처럼, 현재 청소년 세대가 극우화된 경향이 있다. 온라인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홍어’, ‘전라디언’ 등 지역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분명 있다. 물론 누군가를 혐오하고 공격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쓰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장난처럼 말한다. 이렇게 혐오 표현이 특정 세대에서 하나의 문화처럼 퍼지고 있는 점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 온라인에서도 지역혐오 콘텐츠 많이 목격할 것 같다.

 

김양균 “인스타그램에서 혐오 콘텐츠를 많이 본다. 특히 호남·광주를 다루는 콘텐츠 댓글을 보면 도를 넘는 막말이 이어진다. 지역 혐오도 일상적이다. 처음엔 화가 났다. 우리한테 왜 그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어 직접 대댓글을 달아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지금은 그런 글을 봐도 별생각이 들지 않는다. 너무 많은 혐오에 노출되다 보니 무뎌지고, 체념한 것 아닐까. 다만 내가 무뎌진 것과는 별개로, 혐오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될 필요는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내 또래일 것이다. 혐오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교육 없이 성인이 될 것이고, 이런 인식이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질까 우려된다. 영원히 지역혐오 정서는 없어지지 않을까 겁이 난다.”

 

정은탁 “유튜브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뒤통수를 잘 친다’는 표현을 너무 많이 접했다. 어릴 땐 ‘정말 전라도 지역민들이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비난을 하니까, 우리 잘못이라고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 같다. 우리 앞에서,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인터넷이라는 익명 뒤에 숨어서, 혐오를 퍼트리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난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촬영자=나경택, 사진=5.18기념재단

 

- 5·18 역사왜곡 콘텐츠 온라인에서 본 경험은 있는가.

 

김양균 “물론 있다. 처음엔 황당했다. ‘6·25 당시 북한에 올라가지 못한 인민군이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봤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터무니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다른 나라 역사도 아니고, 한 나라에서 벌어진 역사적 진실을 이렇게 왜곡할 수 있을까. 5·18민주화운동 당시 참여자들이 ‘북한 고위직 인물’이라는 콘텐츠도 봤는데 황당했다. 당시 현장 사진에 나온 시민들이 북한 고위직이라는 주장인데, 눈이나 코가 조금만 닮아도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 이런 걸 진지하게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답답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5·18 역사왜곡을 하면서 허위사실이 확산되는 모습도 목격했다. 전한길씨도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DJ 세력과 북한이 주도한 내란’이라고 했는데, 이런 말이 나오면 추종자들이 이를 확산시키면서 믿음을 키워나간다. 그렇게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둔갑되는 모습을 보니, 서글펐다.”

 

정은탁 “어렸을 때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5·18 민주묘지도 방문하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많이 알아봤다. 그런데 지역 민심과 온라인에서 접한 주장은 상반됐다.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매도하고,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혼란이 왔다. 허위주장이 삭제되지 않고 있으니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마음에, 내 고향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생겨 더 이상 허위정보에 휘둘리진 않게 됐지만, 온라인에 퍼진 허위정보가 어린 세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체감하게 됐다. 광주에 거주하고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느끼고 있는 내가 그랬는데, 다른 지역의 학생들은 어떻겠는가. 특히 문제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가 지역혐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 같다. 시작은 5·18민주화운동 혐오 논란이었는데, 인터넷 댓글을 보면 호남 지역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다. 역사적 논란이 지역혐오 감정으로 발전한 것 같다.”

 

▲2025년 2월 15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을 사이에 두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왼쪽 사진), 반대(오른쪽 사진)하는 집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연합
 

- 지난해 2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광주에서 열렸다. 당시 광주 분위기는 어땠는가.

 

김양균 “당시 전한길씨도 광주에 왔다. 현장 상황이 어떤지 궁금해 찾아가봤다. 거리에서 극단적 발언이 나왔고, 분노가 가득찼다. 광주에서 그런 집회가 열린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특히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수호한 지역인데, 이런 곳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화도 많이 났고. 현장에서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험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은탁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광주 시민이 많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집회 현장이 집 근처였고, 나 역시 방문해봤다. 도로에는 관광버스가 수십 대 줄지어 있었다. 타 지역에서 집회 참석을 위해 관광버스를 대절해 광주로 온 것이다. 민주화를 지켜낸 광주라는 도시가 내란을 일으킨 사람을 지키기 위한 장소로 변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 이 같은 혐오, 역사 왜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김양균 “정부나 유명인들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 지역혐오 발언이 문제라는 것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 왜곡이나 지역혐오 발언이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쿨해 보이니까 장난처럼 혐오 발언을 하는 거다. 장난으로 생각한 말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어떤 파급력을 끼칠 수 있는지, 누군가는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온라인 환경 개선도 시급하다. 플랫폼 사업자와 협력하여 명백한 역사왜곡 콘텐츠에 팩트체크 라벨을 부착하고, SNS와 커뮤니티 내 혐오 왜곡 발언에 대한 신고 및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청소년이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에 올바른 역사 정보 콘텐츠를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은탁 “역사 인식에 대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보면 정치적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근현대사에 대한 비중이 작은 편이다. 5·18민주화운동이 뭔지 간단히 설명은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온라인에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왜곡이 일상화됐는데, 이게 문제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재미로 시작된 역사왜곡이 문화로 자리 잡게 될 수 있다. 최근 젠더, 지역 등 사회 곳곳에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젠 다 같이 화합해야 하는 시기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젠 멈춰야 하지 않을까.”

 

- 학생회가 사회적 문제 앞장서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터뷰 응한 이유도 궁금하다.

 

김양균 “1960년 4월19일 광주고등학교 선배들이 수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가 가두시위를 벌였고, 이는 4·19 혁명의 시발점이었다. 선배님들이 피와 땀으로 이뤄낸 혁명 정신을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여러 사회활동에 참여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광주고등학교 학생회는 5·18민주화운동 헌법전문 수록을 위해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선배들의 희생을 기리고, 광주시민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타벅스 사태처럼 5·18민주화운동과 호남 지역에 대한 혐오 발언이 일상화된 지금, 시민들에게 우리의 의견을 전해주고 싶었다. 쉽게 던진 혐오 발언에 우리 학생들이 상처받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광주고등학교 학생회는 단순히 학교 안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와 지역사회가 요청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행동으로 응답해왔다. 4·19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선배들의 용기가 오늘의 학생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으며, 그 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혐오와 왜곡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일수록, 상처받는 이들의 곁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학생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15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서 배포된 스카이데일리 특별판 신문과 홍보물.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 기존 언론에 바라는 점은 있는가.

 

김양균 “스카이데일리처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역사왜곡을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보통 언론사 기사를 볼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근거가 있으니 저런 주장을 하겠지’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믿기 쉽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있는 건데, 이런 신뢰를 악용해 역사왜곡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거짓말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언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독자들이 언론을 신뢰하는 만큼, 언론은 그 신뢰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왜곡은 단순한 오보가 아니다. 잘못된 역사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는 통로가 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광주고등학교 학생회는 언론이 최소한의 사실 확인과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임을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                                                 < 윤수현 기자 >

 

리박스쿨 댓글팀 배후에 '극우' 자유민주당 있었다

● COREA 2026. 6. 28. 00:4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리박스쿨 댓글조작 사건 재판에서 그 정체 드러나

계엄 옹호와 음모론 확산 활동을 벌이는 극우 정당

 
 
 

리박스쿨 댓글공작팀인 '6.3자유승리댓글단(자승단)'의 배후가 극우 정당인 자유민주당이었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확인됐다. 자유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리박스쿨 손효숙 대표에게 댓글공작팀 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댓글 활동의 대가로 ‘장학금’까지 지급했다. 

 

지난해 6월 뉴스타파는 리박스쿨이라는 단체에서 댓글공작팀(자승단)을 만들어 댓글 여론을 조작하고, 초등학교 교육에도 침투해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불법 댓글공작팀' 잠입 취재..."손가락 군대로 나라 구하자") 당시에는 리박스쿨의 댓글공작팀을 지원하는 배후까지는 밝히지 못했는데, 재판 과정에서 그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드러난 리박스쿨 댓글팀  배후는 극우 정당 자유민주당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박옥희 부장판사) 심리로 리박스쿨 댓글조작 사건 세 번째 공판이 열렸다. 리박스쿨 사건 재판 피고는 모두 16명에 이른다. 손효숙 대표와 운영진 최정미 씨 등 리박스쿨 간부들과 이석우 사무총장, 이석복 고문 등 자유민주당 간부들, 그리고 자승단에 소속돼 댓글을 작성한 사람들이다.

 

왼쪽부터 이석복 자유민주당 고문, 이석우 사무총장,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
 

자유민주당은 전국에 '윤석열이 옳았다', '이재명의 개 민주당 해체', '5.18 북한개입' 등의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내걸며 계엄 옹호와 음모론 확산 활동을 벌이는 극우 정당이다. 초대 당대표 고영주 씨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이석우 사무총장은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이 정당은 지난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를 공식 지지했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리박스쿨 자승단의 출범 배경은 이렇다. 

지난해 4월 28일 오후 4시, 자유민주당 사무실에서 상임고문단 회의가 열렸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석복 고문은 이날 회의에서 자신이 댓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육사구국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예비역 장군이다. 이 고문은 “이날 회의에서 댓글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시니어들이 전혀 댓글을 잘 못하기 때문에 댓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참여해서 활성화시키는 게 바람직하겠다”고 안건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후 고영주 당대표와 이석우 사무총장이 댓글 교육 (안건)을 받아들이고 (리박스쿨에) 요청을 했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제안으로 자유민주당이 리박스쿨 측에 댓글팀을 조직했다는 것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석우 사무총장도 자유민주당의 안건을 손효숙 대표와 의논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석우 사무총장은 상임고문단 회의를 마치고 저녁 6시 44분경 손효숙 대표에게 전화해 “이석복 장군님이 댓글을 하자고 안건을 올렸다. 손 대표님한테 전화를 먼저 드렸으니까 실행 조직을 짜줬으면 좋겠다”면서 “주요 인터넷 기사들 댓글 참여를 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짜서 바로 시작하자고 의결이 났다. 회원들이나 당원들한테 공지를 해서 교육도 시키고 조직화도 시키자”고 제안했다.

 

리박스쿨 자손군(자승단) 모집 공고 포스터와 활동 요령.
 

같은 날 저녁 7시 36분, 두 사람은 다시 통화를 나눴다. 이때 손효숙 대표는 “청년 리더 몇 명과 통화를 했고 하루 2시간 정도 한 달 정도는 가능하겠다. 리더들이 글을 올리면 시니어가 눌러주는 방식으로 하자. 그리고 저희가 그렇게 했을 경우에 50만 원 내지 60만 원을 얘기하거든요”라며 이석우 사무총장에게 댓글 작성 비용 지급을 요청했다.

 

그러자 이석우 사무총장은 “그건 알겠습니다. 금액은 한 50으로 생각하고 있겠습니다”며 “총 150명 정도 있어야 된다”고 답했다. 이석우 사무총장은 자유민주당과 리박스쿨의 연결고리가 되어 댓글팀을 기획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정리하면 리박스쿨의 댓글공작팀은 자유민주당 이석복 고문의 제안  → 자유민주당 이석우 사무총장이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에게 의뢰 →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의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 과정이 재판에서 드러난 셈이다. 

 

자유민주당 사무실에서 열린 자승단 출범식

 

자유민주당 고문단 회의 일주일 뒤인 5월 3일, 자유민주당 사무실에서 6.3자승단 출범식을 겸한 댓글 작성 교육이 열렸다. 강의 내용은 네이버 댓글 쓰는 방법과 베스트 댓글을 만드는 법 등이었다. 교육 후에는 청년 리더와 사수를 지정했다. 청년 리더는 네이버 기사에 댓글을 달고, 나이가 많은 시니어 사수는 공감을 누르는 역할을 맡았다.

 

자승단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도 이날 만들어졌다. 단톡방은 ‘6.3 자승단 전체 멤버 방’과 ‘6.3 자승단 리더방’이라는 제목으로 개설됐다. 단톡방을 만든 사람은 자유민주당 사무원 이 모 씨였다. 이 씨는 이석우 사무총장으로부터 자유민주당 명의 휴대전화인 ‘당 폰’을 지급받아 단톡방을 만들었다. 2007년생인 이 씨는 당시 미성년자였다.

 

자승단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6.3 자승단 전체 멤버 방’(왼쪽)과 댓글 샘플(오른쪽).

 

자유민주당, 댓글 활동비 지급 정황

 

자승단 활동가들에게 금전이 지급된 정황도 드러났다.

2025년 5월 5일, 이석복 고문은 손효숙 대표에게 200만 원을 송금하며 입금자명에 '자승단 청년 장학금'이라고 기재했다. 같은 날 이석우 사무총장도 위헌정당해산국민운동본부(위국본) 계좌에서 리박스쿨 계좌로 200만 원을 송금했다. 위국본은 자유민주당 등 여러 보수 단체들이 모인 연합체 격의 단체로, 더불어민주당을 위헌 정당으로 간주해 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석우 사무총장은 재판장에서 “이 돈은 현수막 게시 비용”이라고 주장했지만 손효숙 대표는 "실질적으로는 청년 장학금 목적이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손효숙 대표가 해당 자금을 자승단 청년 리더들의 댓글 활동비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관련 계좌 내역을 확보한 상태다.

 

재판에서 드러난 내용을 종합하면 ▴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장악에 앞장섰던 자유민주당 원로들이 리박스쿨 댓글조직을 기획하고 ▴당 지도부가 댓글팀 지원을 추진했으며 ▴리박스쿨은 청년 모집과 운영을 맡아 대선 한 달 전 ‘댓글여론전’을 펼쳤다. 지난해 뉴스타파가 추적했던 '자승단'의 배후에 자유민주당이 있었던 것이다. 

 

다음달 13일 열리는 다음 재판 기일에는 직접 자승단으로 활동했던 장 모 씨 등에 대한 신문이 열릴 예정이다.                                < 박종화 최혜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