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특검팀이 요청하면 제출 가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기록관리단체협의회,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4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들머리에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정아무개씨의 대통령기록관장 임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달 대통령기록관장 채용 절차를 중단했다. 김혜윤 기자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골프 시설로 검토됐던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내 미등기 유령 건물 자료를 대통령 경호처가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해 대통령기록관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료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경호처장의 뇌물 혐의 수사에 필요한 것들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유령 건물 존재를 처음 밝혀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 건물 공사 자료 일체(계약서, 시방서·견적서, 구매 물품 목록 및 가격표, 예산·지출 내역)를 제출해 달라고 경호처에 요구했다. 경호처는 17일 윤 의원실에 “지난 정부 자료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현재 경호처가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경호처는 윤석열 정부 시기 생산한 전자·비전자 기록물 527만4966건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다.

 

임기 5년을 꽉 채운 문재인 정부 경호처가 47만5310건을 이관한 것과 비교하면 11배 이상 많다. 윤 의원실은 “경호처가 미등기 건물 자료 등을 5월9일부터 6월3일까지 일반기록물로 분류해 이관했다고 한다. 민주적 통제 등 자체 개혁안을 만든다고 홍보하던 시기에 대통령 직무와 무관한 공사 자료까지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해 이관한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1월 미등기 유령 건물 공사비 일부가 대납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고,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윤석열·김용현 두 사람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이전 및 공사 관련 불법 행위는 민중기 특별검사팀(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대통령기록관은 한겨레에 “일반기록물의 경우 경호처가 비공개로 분류했더라도 특검팀에서 요청하면 제출 가능하다”고 했다. 국회는 특검법을 만들 때 열람 조건이 훨씬 까다로운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경우 압수수색 영장 발부 기준을 완화(고등법원장→지방법원장)한 바 있다. 한국기록학회·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이 모인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지난 16일 “그간 경호처에 대해 기록물 폐기 등 증거인멸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며 “열람 요건 완화로 특검 압수수색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대통령기록관이 기록물 목록조차 공개하지 못한다면, 내란 등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윤 의원실은 12·3 내란 모의가 있었던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 리모델링 관련 자료도 요구했지만, 경호처는 이 역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 ‘개 수영장’ 의혹이 제기된 관저 내 시설물 공사 자료에 대해서는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 김남일 기자 >

 

윤석열 부부, 국정원에 ‘공천 탈락’ 김상민 검사 자리 만들어줬나

국정원장 법률특보 ‘위인설관’ 의혹
검찰, 윤석열 직권남용 가능성 조사

 
김건희 여사가 2024년 9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해 총선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공천 배제된 김상민 전 부장검사가 총선 뒤 국가정보원장 법률특보로 임명된 과정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수사 중인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은 최근 김 전 검사가 국가정보원장 법률특보로 임명된 배경과 절차를 확인 중이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김 전 검사 공천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 데 이어 국정원에 자리까지 만들어줬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김 전 검사는 김영선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 의창구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건희 여사가 김 전 의원 대신 김 전 검사를 이 지역구에 공천하려 했다는 게 공천 개입 의혹 중 하나다.

 

명태균씨 쪽은 지난해 2월16∼19일 사이에 김 여사로부터 “김상민이 의창구 국회의원이 되게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 여사가 김 전 의원에게도 “김상민 검사가 당선되도록 지원하면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얘기했다는 게 명씨 쪽 주장이다. 다만 총선 당시 윤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등을 빚으며 김 전 검사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 전 검사는 공천에서 배제된 뒤인 그해 8월 국정원장 법률특보에 임명됐다.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도 김남우 국정원 기조실장이 검찰 출신인 상황에서 김 전 검사를 법률특보로 임명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은 법률특보가 총선 공천을 받지 못한 김 전 검사 임명을 위해 신설된 자리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위인설관 인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수사팀은 이런 인사가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가 될 수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국정원 인사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김 전 검사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웅동학원 채용 비리 사건을 맡아 수사했다. 김 전 검사는 총선 출마 선언 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부인 빈소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윤 전 대통령이 “상민이 초임 때 부장으로 같이 근무하며 지켜봤는데 일도 잘하고 센스도 있어 어떤 일도 잘할 것”이라며 격려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명태균 수사팀은 김 여사의 도움으로 2022년 6월 지방선거의 경선 기회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김진태 강원지사도 지난달 말에 조사했다. 김 지사는 5·18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2022년 4월14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배제됐으나 ‘대국민 사과’를 조건으로 경선 기회를 부여받아 공천을 받았다. 김 지사는 조사 과정에서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여부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건희 특검’을 이끄는 민중기 특별검사는 이날,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김 여사의 대면 조사와 관련해 “수사가 이뤄지리라고 생각한다”며 “(조사 방향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고 특검보 임명이 되면 차츰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배지현  김지은  이나영 기자 >

 

“그쪽서 주가 관리” 김건희 육성 나왔다…‘시세조종 인식’ 정황

검찰, 김건희 녹음 파일 수백개 확보
‘수익금 40% 과도 요구’ 취지 발언도

                        김건희 씨와 도이치모터스 건물 이미지 사진. 연합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재수사 중인 검찰이 김 씨가 주가조작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할 만한 녹음파일 수백개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김 씨의 계좌에서 주가조작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김 씨가 이를 인식하고 있었으면 주가조작 범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17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고검 형사부(부장 차순길)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하고 김 씨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롭게 확보했다. 이 녹음파일에는 ‘그쪽에서 주가를 관리하고 있다’, ‘계좌 관리자 쪽에서 수익금을 40%가량으로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취지의 김 씨의 발언이 담겼다고 한다. 정상적인 수준보다 높은 수익금 배분을 약정하는 경우는 계좌를 제공한 ‘전주’(돈줄)가 시세조종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가 된다.

 

앞서 법원은 김 씨의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컨트롤타워로 꼽히는 미등록 투자자문사 블랙펄인베스트에서 운용했다고 판단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차 시기 ‘주포’ 이아무개씨도 검찰 조사에서 2009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자신에게 “주식 수익의 30~40%를 주겠다”고 말할 당시 김 씨가 동석했다고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선 ‘현장에 김 씨는 없었다’고 말을 바꾼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8월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
 

또 검찰은 김 가 자신 명의 증권 계좌의 인출액과 잔액 등이 적힌 ‘김건희 엑셀 파일’을 미래에셋증권 직원에게 보낸 뒤 이를 함께 검토하는 내용의 녹음파일도 확보했다. 앞서 검찰은 블랙펄인베스트 압수수색을 통해 파일명 ‘김건희’라고 적힌 엑셀 파일을 확보했는데, 주가조작에 동원된 계좌 현황을 김 가 증권사 직원과 점검하는 대화가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씨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김 여사가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은 최근 김 여사 쪽에 출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혜민 기자 >

 

윤 정부, 대통령실 홈페이지 자료 옮기면서 김건희 사진 싹 지웠다

“다른 자료 어떤 게 추가로 지워졌는진 알 수 없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2024년 10월9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나온 라오스 쪽 인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홈페이지 데이터를 대통령 기록관으로 넘겨 열람할 수 없게 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씨의 사진 등 일부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17일 대통령실이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대통령실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전하며 “함께 있던 자료 중 어떤 자료가 추가로 삭제됐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실 홈페이지와 관련된 데이터, 홈페이지를 구동하기 위한 소스코드 등을 모두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같은 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된 이상 명확한 사유가 없으면 열람할 수 없다”며 “지금은 홈페이지 구동 매뉴얼만 열람 허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홈페이지를 만든 업체와 협업해 사이트를 복원하는 중”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현재 임시 홈페이지 리뉴얼을 완료한 상태로, 이를 곧 공개할 예정이다. 관계자는 “며칠 동안 날밤을 새며 완성했다. 급하게 완성한 만큼 오류가 생겨 국민께서 실망하실지 걱정되지만, 우선은 임시 홈페이지 상태로라도 공개하려고 한다”고 했다. 또 “복구 방안을 찾은 덕에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수천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 정부 기조대로 (적은 돈으로) 기존 홈페이지를 잘 살려보겠다”고 했다. < 고경주 기자 >

드레스덴, 쾰른 지나 본에 정착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 앞에 설치됐던 평화의 소녀상. 이 소녀상은 지난 4일 독일 본 여성박물관으로 영구 이전됐다.

 

독일 쾰른에 임시 설치됐던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동마이’가 본 지역 여성박물관 앞에 영구 설치됐다. 4년 가까이 떠돌던 소녀상이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이다.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는 쾰른 나치기록박물관 앞에 세웠던 소녀상을 지난 4일 본 여성박물관 부지로 이전했다고 17일(현지시각) 말했다. 지난 3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년을 맞아 준비한 기획 전시 일환으로 쾰른에 세워졌던 소녀상은 지난 1일까지만 박물관 앞에 놓일 수 있었다. 그러나 쾰른과 30㎞ 이내 거리에 있는 본 지역의 여성박물관이 동상을 이어 받아 영구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여성박물관이 코리아협의회 제안을 수락하면서 ‘동마이’가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

 

1981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본 여성박물관은 작가로 활동하는 마리아네 피첸(77)이 만든 사립 박물관이다. 옛 백화점 건물을 개조해 지어진 박물관은 여성의 관점에서 본 현대예술과 문화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진행한다.

 

이곳에 소녀상을 설치하려던 건 처음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재독 동포단체 풍경세계문화협의회 제안으로 본 여성박물관은 2017년 박물관 앞에 소녀상을 전시하기로 했다. 당시 박물관은 시유지였던 자리에 소녀상 설치를 추진했지만 일본 총영사관과 담당 시청의 강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해당 부지를 박물관이 완전히 매입하면서 일본 정부나 지자체가 압력을 행사할 명분이 사라졌고, 이번엔 갈등 없이 소녀상을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소녀상은 지난 2021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으로 드레스덴 주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기간 처음 설치된 뒤 창고에 방치됐다가, 쾰른 전시를 계기로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한편, 베를린 미테구 공공부지에 설치된 소녀상 ‘아리’는 베를린 행정법원 결정으로 9월28일까지 존치 결정을 받은 상태다. 미테구청은 소녀상의 가치와 예술의 자유를 우선한 법원 결정은 존중하면서도, 사유지 이전을 제안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는 구청과 협의에 나서되 소녀상의 상징성을 고려해 사유지로 옮기는 것엔 부정적인 입장이다.

 

독일에 설치된 소녀상과 함께하는 행사도 활발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카셀 지역 교회인 ‘노이에 브뤼더키르헤’(새로운 형제들 교회)는 유엔(UN)이 정한 세계전시성폭력 추방의 날(6월19일)을 맞아, 교회 앞에 설치된 소녀상 ‘누진’과 19일 관련 행사를 열 계획이다.

 

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 시민모임은 예술가 그룹 ‘다섯번째 목소리(The Fifth Voice)’와 함께 27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소녀상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카셀, 본을 찾아 공연을 연다. 일본 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철거된 소녀상을 다시 세우는 정의와 저항을 예술로 표현하고, 이를 독일 시민들에게 알리는 목적이다.  <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

리박스쿨 사무실 문건 입수...  우파 사상 개발 여론 확산 계획 세세 열거

 
서울 종로구 인사동 리박스쿨 사무실이 2일 오전 닫혀있다. 김영원 기자 

 

“우파 전략과 논리를 개발”, “유튜브 활용”, “각 사회단체로 확장”, “작가·기자·연예인 발굴”.

 

2018년 8월24일, ‘언론 자유 없이 자유민주주의 없다’는 제목으로 작성된 문건은, 우파 사상 개발과 여론 확산 계획을 세세하게 열거했다. 한해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우파 세력을 두고, “(우파) 리더들은 과격한 시위를 자제토록 한다”, “국민저항권 행사 못함” 등 온건성을 문제로 지적한 뒤, 문건이 제시한 전략의 핵심은 여론전을 통한 영향력 확대다. 이 문건은 2025년, 21대 대선에서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발견됐다.

 

한겨레는 17일 서울 인사동 리박스쿨 사무실에 있던 공식 문서, 비공식 회의·보고 자료, 행사·강좌 전단, 기자회견문, 사업 계획서 문건 수십건을 확보해 그 내용을 살펴봤다. 2017년부터 최근까지 리박스쿨과, 사무실을 함께 사용한 여러 단체(육사총구국동지회(육총), 전군구국동지연합회(전군연), 대한민국역사지킴이 등)이 작성하거나 관리하던 것들이다.

 

문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형성된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 단체들의 연합, 이들이 공유한 황당한 뉴라이트 역사관, 그를 전파하기 위한 온라인·교육 전략, 제도권에 대한 접근 흔적을 담고 있다. 일부에선 폭력과 위법을 넘나드는 과격한 모습도 관측된다. 댓글 조작과 제도권 침투 의혹 등 최근 문제된 리박스쿨 활동이, 한 단체의 일탈이 아닌 ‘극단적 보수 세력들’ 사이에서 최소 9년 가까이 논의해온 체계적 전략의 단면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언론 자유 없이 자유민주주의 없다’(2018년 8월24일) 문건. 독자 제공.

 

우파 결집: “청와대 공격” 계획과 리박스쿨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인 2017년 리박스쿨 사무실 문건들에선, ‘보수우파 대통합’과 ‘결집’을 강조하는 주장이 이어졌다. 전군연이 2017년 10월31일 만든 ‘구국포럼(강령, 정관)’ 문건에는 “보수 우파의 대통합을 목표로 세력을 결집하는 애국시민운동”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로 적혔다. 최근 드러난 리박스쿨 활동이 기독자유통일당, 자유연대, 위헌정당해산국민운동본부, 자유교원조합 등 숱한 우파 단체와 결합돼 나타나는 건, ‘결집’을 강조한 이들 활동 방식이 이어진 결과로 보인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구국포럼(강령, 정관)’(2017년 10월31일) 문건. 독자 제공.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연계도 눈에 띈다. 리박스쿨 사무실을 함께 쓴 육총 명의로 2020년 8월4일 작성된 ‘8·15행사 계획 보고/토의’ 문건은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광복절 집회 계획 논의를 담고 있다.

집회 계획에는 “청와대 행진 [공격]”이라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군대를 편성하듯 결집 단체들(17곳)을 1~3제대로 나누고 “공격(행진) 개시 시간”까지 적은 계획에서, 리박스쿨은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공격 방향을 향하는 2제대에 포함됐다. 당시 경찰 대응으로 실제 청와대 ‘공격’은 이뤄지지 못했다. 다만 경찰 버스를 파손하는 등 결집된 이들의 시위는 과열된 양상을 보였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8·15행사 계획 보고/토의’ 문건(2020년 8월4일). 독자 제공.

 

뉴라이트: “감옥 갈 각오” 하면 성인 추앙

 

리박스쿨과 관련해 특히 논란이 된 ‘뉴라이트 역사 인식’ 또한 많은 문건에서 과격한 형태로 논의되고 적혔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운영한 대한민국역사지킴이, 프리덤칼리지장학회 등 18개 단체가 이름을 올린 제주4·3특별법폐지시민연대의 2020년 8월10일 ‘제주4·3 특별법 개정안과 여순사건 특별법안 강력하게 반대한다!’ 기자회견문에는, 4·3 사건이 ‘폭동’으로 규정됐다. 이들은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가짜”라며 “가짜보고서에 의해 고등학교 교과서도 왜곡 서술되어 있다. 좌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문은 “제주 평화공원(폭도공원) 안의 사료관 전시물도 가짜”라고 적었다.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김대중 등의 내란음모에 의한 폭동으로 결론 났다”는 황당한 주장을 담은 문건도 있다. 2019년 ‘5·18 폭동’ 발언으로 이종명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당에서 제명될 위기에 놓이자, 이를 규탄하기 위해 육총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종명 의원 제명 조치에 대한 규탄 성명서’에서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제주 4·3특별법 개정안과 여순사건 특별법안 강력하게 반대한다!’ 기자회견문(위)과 ‘이종명 의원 제명 조치에 대한 규탄 성명서’(아래). 독자 제공.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여러 부 발견된 ‘4·15 총선 부정의혹 요약’ 문건은,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전산 프로그램 개표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최근까지 이어지는 부정선거론 내용을 고스란히 담았다.

 

특히 문건에 첨부된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측면에서 본 국민들의 분류’라는 제목의 글은 “양심을 속이는 언론인, 법조인”을 “짐승보다 못한 급”으로 분류했다. 반면 “자유대한민국 수호를 위해서 감옥 갈 각오를 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성인급”으로 추켜세운다. 부정선거론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사람의 수준을 나누는 식이었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측면에서 본 국민들의 분류’ 문건. 독자 제공.

 

여론 침투: “자손군 전성시대” 꿈꿨나

 

손효숙 대표를 비롯해 리박스쿨 관계자들이 강사로 참여한 ‘폰 잘 쓰는 교실 5월 교육’ 회원 모집을 홍보하는 2021년 전단지에는 “자손군 전성시대를 위한 열정과 노력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의 줄임말인 ‘자손군’은 최소 4년 전에도 이들 사이에 널리 쓰인 표현이었고, 노인들을 상대로 한 스마트폰 교육이 사실상 노골적인 댓글 공작이었던 셈이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폰 잘 쓰는 교실 5월 교육’ 전단지. 독자 제공.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발견된 문건 곳곳에는 유튜브·댓글·블로그를 활용해 온라인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 흔적이 담겨 있다. 한 회원이 전군연에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에는 “다단계식 (SNS) 전달망” “매크로 프로그램 개발” 등의 내용이 적혔고, 작성 주체와 시점이 불분명한 또다른 문건은 기사 제목과 댓글, 공감 클릭 수를 엑셀로 정리해 출력했다. ‘폰 잘 쓰는 교실 5월 교육’ 전단지에 적힌 교육 주제 또한 “맘카페 커뮤니티”, “국회가입 청원”, “베스트 댓글” 등이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문건. 독자 제공.

 

온라인을 통해 저변 확대를 꾀하고, 여러 단체가 결합해 과격한 주장을 이어가던 이들 단체의 영향력은 아스팔트를 넘어 제도권까지 진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5일 ‘이승만바로알기국민연합 출범식’ 초대장에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축사를 하는 것으로 적혔다.

실제 정 전 총리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행사에 참석했다. 국민연합에는 대한민국지킴이 리박스쿨, 전군구국동지연합회, 트루스포럼 등 2017년 이후 결집한 우파 단체들의 이름이 ‘함께하는 단체’ 명단으로 포진했다.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나온 이승만바로알기국민연합 출범식 초대장. 독자 제공.

 

공론장 파괴: 윤석열 우군 자처하며 세력 키워

 

21대 대선 댓글 조작 핵심 단체인 리박스쿨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아스팔트 우파’ 단체들의 주장과 행동 방식을 두고 전문가들은 “민주주의의 바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모습”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리박스쿨 사무실 문건’에서 나타난 이들 단체의 모습이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온 상식을 부정하는데다, 표출 방식에서도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공격적인 양상을 보이는 탓이다. 특히 이들이 긴 시간 공교육(늘봄학교)과 온라인(댓글 조작), 정치권 등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조직적인 댓글 달기 등 이들의 ‘여론전’은 민주주의 기반인 ‘공론장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전문가들은 짚었다. 책 ‘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를 쓴 윤비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17일 한겨레에 “개인 차원의 댓글 가운데 비합리적인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특정 세력이 조직적으로 여론을 몰고 가려 했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장 자체를 망치는 행위”라며 “특히 정부나 관련 기관, 조직이 이들과 연결돼 있다면 ‘의견을 표출한 것뿐’이라는 해명으로 덮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리박스쿨 등 우파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은 일부 사례에 한정된 의혹에 그치지만, 최소한 이들 단체가 윤석열 정부의 우군을 자처하며 영향력을 키운 흔적은 여러 문건들에서 발견된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는 2022년 11월15일 80여개 우파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자유와연대’ 창립총회에 참석해 ‘홍보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담당하며 여론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유와연대는 ‘우파 단체들이 모여 윤석열 정부를 향한 공격에 맞서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공유하는 단체들이 교육을 통해 사회적 합의로 쌓아온 상식에 반하는 국가관·역사관을 전파하려 한 시도 또한 위험 신호다. 리박스쿨 사무실 문건에서 우파 단체들은 제주 4·3과 관련된 공식 기록이 모두 ‘가짜’라고 주장하거나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며, 늘봄교육 같은 방과후 교육활동을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인식을 전파하려고 시도했다.

 

뉴라이트와 한·일 극우 세력을 연구해온 강성현 성공회대 사회융합학부(사회학) 교수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일정 기준에 미달해, 이미 교과서 검인정 체제에서도 채택되지 않은 관점”이라며 “공식 교육 과정에도 없고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교육하는 것은 일종의 선전·선동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리박스쿨이 사실상 ‘정치 동원형 교육 플랫폼’으로 기능했다”고 덧붙였다.

 

“짐승보다 못한” 식의 과격한 표현으로 편을 가르고, “청와대 공격”을 계획하며 상대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공격성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나타난 지지자들의 폭력적인 모습과 연결된다. 한상원 충북대 교수(철학)는 “동료 시민을 갈등과 경합을 하면서도 함께 공화국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아닌, 제거해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폭력은 다른 정치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겠다는 뜻을 상징하며, 이는 우경화에서 극우화로 변질돼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 김가윤  박찬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