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반복되면, 에너지 인프라 완전 파괴" 트럼프 "카타르 또 때리면 가스전 날릴 것" 걸프 국가들, 이란에 대한 군사 대응 경고 사우디 "실낱같은 신뢰 완전히 산산조각"
이스라엘이 이란의 가스전을 폭격하면서 중동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2‧28 ‘불법 공격' 19일째인 18일 이스라엘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조율을 통해 이란 북부의 반다르 안잘리 해군 기지와 함께,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와 이와 연결된 남서부 해안 아살루예의 천연가스 정제시설 단지를 폭격했고, 이에 이란 당국은 걸프 전역의 석유‧가스 인프라 완전 파괴 가능성을 경고한 뒤 실제로 일부 보복 타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란 국영방송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은 3,4,5,6 광구에서 불이 나 가동이 중단됐으며, 아살루예 단지도 손상을 입고 불이 났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이란의 연료 탱크를 공격한 적은 있지만, 에너지 생산시설을 공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이란의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2014. 01. 22 [AFP=연합 자료사진]
이스라엘, 이란 가스전 폭격…금지선 넘어 이란 "반복되면, 에너지 인프라 완전 파괴"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날 X를 통해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비난한다"면서 "그런 공격적 행위들은 적인 시온주의-미국과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전 세계를 집어삼킬 통제 불능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도 "새로운 단계의 대결이 시작됐다"라고 선언했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성명을 통해 "이란의 에너지 기간 시설을 공격한 것은 큰 실수다...보복 조치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며 "이 같은 공격이 다시 반복되면 에너지 인프라가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추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사시 미국의 이해가 걸려있는 걸프 인접국들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전면 공격을 하겠다는 얘기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전쟁의 방정식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전쟁의 추는 제한된 전투에서 '전면적 경제 전쟁'으로 옮겨졌다"고 논평했다. 통신은 "오늘 밤부터 레드라인은 바뀌었다"며 "적이 이번 공격으로 이란이 물러서도록 압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전적으로 오산이다. 이란은 '보복'이라는 카드를 쥐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2일 카타르 라스 라판 산업 도시에 위치한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 전경. 2026. 03. 21 [로이터=연합]
이란, 카타르‧UAE‧사우디 에너지 시설 타격 파르스 "전면적 경제 전쟁으로 옮겨졌다"
이란은 공격 대상으로 카타르의 메사이드 석유화학 단지, 메사이드 홀딩 컴퍼니, 라스 라판 정유단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삼레프 정유시설, 주바일 석유화학 단지, 그리고 아랍에미리트(UAE)의 알 호슨 가스전을 지목했다.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피격 소식에 브렌트유가 5%, 유럽 가스 가격이 6% 급등했다. 카타르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하는 상황에서 이번 공격은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며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은 전 세계 에너지 안보, 중동의 시민들, 환경에 대한 협박"이라며 "필수적 시설 공격을 피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당사자들은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세계 LNG 공급량의 20%를 맡는 카타르의 노스돔 가스전은 이란의 사우스파르스 가스전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란은 보복 경고를 일부 실행에 옮겼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노스돔 가스전과 연결된 카타르의 라스 라판 핵심 가스 시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합산 가스 시설은 공격 이후 폐쇄됐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유시설 2곳이 공격받았다.
앞서 이란은 사우디 라스 타누라 정유시설, 카타르에너지 LNG 생산라인, UAE 루와이스 정유·석유화학 단지와 푸자이라 석유 산업단지, 바레인 밥코 정유시설 등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한 걸로 보도됐지만, 이란 당국은 자국의 행위가 아니라 그 공격의 배후로 미국‧이스라엘을 지목하고 걸프 국가들에 진상 조사를 위한 합동 조사단을 구성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교장관이 19일 리야드에서 열린 아랍 및 이슬람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6. 03. 19 [AFP=연합]
걸프 국가들, 이란에 대한 군사 대응도 경고 사우디 "실낱같은 신뢰마저 완전히 산산조각"
이날 이란의 공격을 다시 받은 걸프 국가들의 태도도 완연히 달라졌다. 심지어 군사 대응 경고도 나왔다. 먼저 카타르는 외무부 성명을 통해 "이란의 노골적인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고 비난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번 공격을 위험한 확전이자 노골적인 주권 침해이며, 국가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한다"면서 "이란 측은 지역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이 위기의 당사자가 아닌 나라들까지 분쟁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확전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타르는 이란 대사관의 군 및 안보 무관들을 '기피 인물‘로 선언해 24시간 안에 카타르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
아랍뉴스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이란에 남아있던 실낱같은 신뢰마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고 관계 파탄을 선언했다. 사우디의 파이살 빈 파르한 외무장관은 19일 아랍‧이슬람 외교장관 긴급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사우디와 파트너들은 상당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가 보여준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 그것이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일주일이 될지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파이살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군사적 조치를 취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며 군사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이 카타르를 다시 공격하면 이란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 전체를 날리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2026. 03. 18 시민언론 민들레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 조율설 부인 트럼프 "카타르 또 때리면 가스전 날릴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사우스파르스 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한 메시지로 이를 지지했다면서 이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추가 공격은 원하지 않고 있다고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 소셜을 통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한 분노로 이란의 사우스파르스가스전으로 알려진 주요 시설을 격렬하게 공격했고, 전체 중 비교적 작은 부분이 타격받았다"면서 "미국은 이번 공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위의 보도를 부인했다. 그는 "카타르도 어떠한 형태로든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카타르 라스 라판 가스 시설에 대한 이란의 공격을 "정당화할 수 없고 불공정하다"고 비난한 뒤 "이란이 어리석게도 매우 무고한 대상(지금은 카타르)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이 극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에 대한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은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경우엔 미국은 이스라엘의 도움이나 동의가 있든 없든, 이란이 이전에 결코 보지도 목격하지도 못한 수준의 강도와 힘으로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전체를 대대적으로 날려버릴 것이다"라고 위협했다. 트럼프는 "나는 이란의 미래에 미칠 장기적 영향 때문에 이런 수준의 폭력과 파괴를 승인하길 바라지 않지만, 카타르의 LNG 시설이 다시 공격받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8일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트럼프는 미국 전역의 석유, 가스 및 기타 원자재 운송 비용을 낮추기 위해 100년 된 해운 규정(연안무역법)을 일시적으로 유예했다. 이는 자신이 주도한 이란과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조치다. 2026. 03. 18 [UPI=연합]
알자지라에 따르면, 18일 현재 이란 전쟁에서 인명 피해는 ▲ 이란(사망 1444명, 부상 1만8551명) ▲ 이스라엘 사망 17명, 부상 3727명 ▲ 미국(사망 13, 부상 200명) ▲ 바레인(사망 2명, 부상 수십 명) ▲ 이라크(사망 58명, 부상 수십 명) ▲ 요르단(부상 28명) ▲ 쿠웨이트(사망 6명, 부상 수십 명) ▲ 레바논(사망 912명, 부상 2221명) ▲ 오만(사망 3명, 부상 15명) ▲ 카타르(부상 16명) ▲ 사우디(사망 2명, 부상 12명) ▲ UAE(사망 8명, 부상 58명) 등이다. < 이유 기자 >
호르무즈 봉쇄 푸는 유일 해법은 미국의 전쟁 중단
미국의 이란 체제 전복 시도는 실현 불가능
이란은 전쟁 부담 키우며 전략적으로 움직여
더 근본적 문제해결 방식은 이란 제재 푸는 것
북핵도 마찬가지, 제재 해제 뒤 협상 통해 풀어야
미군 주둔이 안보 보장 못한다는 점 분명해져
미국이 전쟁 그만두도록 동맹국들이 설득해야
중국 해운회사가 운영하는 석유 제품 운반선 창항풍차이호가 2026년 3월 18일 신베이시 선샤오항의 액화석유가스(LPG) 공급 및 유통 서비스 센터 구역에 정박해 있다. 3월 18일, 이라크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여 터키를 통한 석유 수출을 재개한다고 발표하면서 유가가 하락했고, 월가에서 기술주 주도의 상승세에 힘입어 증시는 올랐다. 2026.3.18. AFP 연합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 목표로 내걸고 있는 이란의 ‘체제전환’(반미 신정체제 전복)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원래 이란은 체제기반이 강고하다. 부당한 공격을 받은 이상 자국 방위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스라엘이) 선전포고도 없이 국가원수인 최고지도자를 느닷없이 군사적 수단으로 살해한 것은 국제법으로도 유엔 헌장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다. 이란은 철저히 항전을 계속할 것이다.
미국의 이란 체제전복 시도는 실현 불가능
게다가 지금 이란은 혁명수비대가 주도하는 군사체제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의 죽음으로 혁명수비대가 추대하는 차남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가 됐지만, 모즈타바는 권위있는 종교지도자도 법학자도 아니다. 최고지도자에 선출된 뒤에도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혁명수비대에 의해 떠받들여진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알리 하메네이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어서 혁명수비대를 억제하는 무게를 갖고 있었다. 모즈타바에겐 그런 힘이 없다. 이제 혁명수비대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2025년 6월 22일에 촬영된 호르무즈 해협 지도의 그림. 2025.6.22. 로이터 연합
“이란은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멈추면 호르무즈 봉쇄도 풀려
마쓰나가 야스유키 일본 도쿄외국어대 교수(이란정치)는 19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 모즈타바 체제를 무너뜨릴 가능성은 없다며 이란이 “무작정 (전쟁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을 멈추면 금방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은) 처음에는 페르시아만 연안국가들에 있는 미군기지 시설이나 미국 대사관부터 시작해서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경제 인프라를 대상으로 반격을 가했다. 이제 그것을 서서히 확대해 전쟁 계속에 따른 비용을 키움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려 하고 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시장을 통해 미국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이란도 에너지 수출국가인 이상 호르무즈 봉쇄가 길어지고 항행 불능상태가 계속되면 자국 이익에도 반하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을 멈추면 금방 (호르무즈 해협) 항행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호르무즈 봉쇄를 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국적 호위 군함 파견을 통한 군사적 대응이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이란 제재 푸는 것
그는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 제재가 계속되면 정전(종전) 뒤의 부흥(재견)과 인프라 복구를 위한 지원이 불가능하다. 경제제재로 이란의 방침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효과 없는 제재를 계속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효과 없는 제재를 계속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북핵도 마찬가지···제재 해제 뒤 협상 통해 풀어야
이는 북한에 대한 제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국 등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와 관련해 표방하고 있는 가장 큰 목적은 북한의 핵 농축과 핵무기 생산, 그것을 탑재해서 쏘아보낼 미사일 개발을 제재로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그것은 효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의 핵 개발을 재촉하고 그것을 정당화해 준 꼴이 됐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북이 어느새 핵무장국이 됐다는 것은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계속하는 것은 잘못된 관성이거나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악의 축’이라는 영구 낙인을 찍어 제재를 가하고 남북 대립을 격화시킬 경우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존재들은 누구일까?
북한의 핵무장이 기정사실이라면 제재를 가하면서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것보다 제재를 해제하고 관계를 정상화한 뒤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다.
2026년 3월 16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인도의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시발릭호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인도 구자라트 주 문드라 항에 도착하고 있다. 2026.3.16.로이터 연합
미군 주둔이 안보 보장 못해
마쓰나가 교수는 이란과 이웃한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관계에 대해, 이번 전쟁으로 미군의 주둔이 주둔국 안보를 반드시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 이상, 이웃 산유국들이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쌍방의 대립이 격화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왜냐면) 페르시아만 국가들에게 미군기지가 있는 것이 자국 안전보장에 반드시 보탬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 (이번 전쟁을 통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 의존하기보다)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리스크(위험)를 줄이는 길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란의 약점···제재로 인한 빈곤화와 민심 이탈
마쓰나가 교수는 이란은 지금 체제 존속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중대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며 두가지를 꼽았다.
“이란은 계속 경제제재를 받아 왔기 때문에, 그로 인한 심각한 인플레가 국민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빈곤화를 재촉했다. 전력과 물 공급을 위한 인프라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졌다. 이번 공격으로 그런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9000만 이상의 인구를 지닌 나라 이란의 인프라를 복구시키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국민의 마음이 체제로부터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초에 걸쳐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체제)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체제(정부) 쪽은 힘으로 그것을 억압했고 많은 희생자를 냈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과의) ‘12일 전쟁’ 때 볼 수 있었던 국민의 단결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 다수가 체제에 비판적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태에서 설사 지금 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가시밭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운 사정도 미국이 전쟁을 멈추면 이란도 바로 호르무즈 봉쇄를 풀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조건들 중 하나다.
미국이 전쟁 그만두도록 동맹국들이 설득해야
마쓰나가 교수는 지금 상황을 바꾸려면 미국 동맹국들도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을 설득해 전쟁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의 동향을 중시한다. 이대로 공격을 계속하면 원유가격이 올라가고 세계경제가 침체돼 실업률도 올라갈 것이다. 하루 빨리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마쓰나가 야스유키 도쿄외국어대 교수
호르무즈 봉쇄와 유가 급등에 따른 세계경제 불안과 침체를 단번에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법, 그것은 미국이 전쟁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마쓰나가 교수는 얘기하고 있다. < 한승동 기자 >
이재명 정부가 과거 간첩 조작 사건에 가해자로 등장했던 이들이 받은 보국훈장을 무더기로 박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노컷뉴스가 19일 보도했다. 보국훈장은 국가 안전 보장에 기여한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 등 국가유공자에게 주어지는 명예훈장이다.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 단체들은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과거사위원회 조사, 재심 등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무죄를 밝히고 있는데, 가해 공무원들은 국가 유공자 혜택을 누린다는 지적을 꾸준히 해왔다.
관보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국무회의에서 11명에 대해 '국가안전보장 유공' 정부포상을 취소했다. 보국훈장 서훈자는 국가유공자로 분류된다. 국가보훈대상자로 선정될 경우 보훈예우수당이나 보훈병원 치료비 감면, 학습 보조비 지급, 자녀의 대입 특별전형 자격, 채용시험 가산점, 아파트 특별공급, 저금리 대출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번 취소 대상자 11명 모두 옛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 소속 또는 파견 공무원으로 훈장이나 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 상훈법 8조 1항 1호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해 포상이 취소됐다.
이번 서훈 취소는 2020년 이후 6년 만에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서훈 취소 대상자 11명 중 2명으로부터 실제 훈장 등을 돌려받았다. 9명은 이미 사망했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등의 이유로 포상을 회수하지 못했다.
1968년 구로공단(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회 무역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우선 김해영(사망) 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이 1970년 11월 받은 홍조 근정훈장이 취소됐다.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구로농지 사건' 수사와 소송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훈장을 받았다.
이 사건은 1961년 박정희 정권이 구로공단 조성을 명목으로 1950년 농민들에게 분배된 서울 구로동 땅 30만평을 국유지로 편입하면서 벌어졌다. 해당 토지 소유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정부는 오히려 이들을 불법으로 연행해 구타하고 고문하는 등 인권을 짓밟았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국가 공권력 남용 사건으로 보고 재심 대상으로 규정해 다시 소송전이 벌어졌고 2016년 대법원에서 피해자 유족들의 승소가 확정됐다. 합법적으로 분배 받은 농지를 빼앗긴 이는 900명이 넘었다.
60년 전 일인 데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자세히 살펴본다. 당시 농민들은 "1950년 4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서울시로부터 적법하게 분배받은 땅"이라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이 땅이 서류상 군용지였다는 점을 내세워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지를 뺏긴 A씨 등은 땅을 되찾기 위해 1964년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내 1,2심에서 승소했으나 이후 파기환송을 거듭하며 세 차례 대법원 판단을 받은 끝에 1973년 패소가 확정됐다.
A씨 외 농민 다수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대부분 승소했다. 그러자 구로공단 조성의 차질을 우려한 박정희 정권이 검찰을 동원, 1968년부터 농민과 관련 공무원에게 소송 사기 혐의를 적용해 수사토록 했다.
수사 결과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는 이유로 농민 뿐 아니라 "농지분배 사실을 알고 있다"는 취지로 증언한 농림부 등의 담당 공무원들까지 사법처리됐다.
그런데 대법원 승소 10년이 흐른 뒤에야 가해자 김 전 실장의 서훈이 취소된 것이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 '미법도 간첩 사건'에도 등장한다.
나머지 10명은 간첩 조작 사건 유공자들이다. 한철흠(사망) 전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등 3명은 1982년 4월 '미법도 간첩 사건' 수사 유공으로 받은 포상이 취소됐다. 한 전 단장은 보국훈장 삼일장, 다른 직원 둘은 각각 보국훈장 광복장과 보국포장을 받았다.
인천 강화도 근처 미법도에 거주하던 정모씨는 1965년 10월 황해도 은점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납북돼 한 달 만에 귀환했다. 안기부는 1982년 정씨를 불법 연행해 간첩 혐의로 수사했다가 무혐의로 풀어줬다. 1년 후 다시 안기부에 불법 연행된 정씨는 간첩 활동 자백을 강요받고 허위자백을 해 1984년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정씨는 1998년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조개를 캐다 북에 끌려간 주민은 모두 112명이었다. 그래서 '미법도 집단 납북 사건'으로 불렸다. 이들 중 104명은 다시 송환됐다.
당시 조개잡이를 하던 박남선(2005년 사망)씨도 납북될 뻔 했다가 급히 달아나 납북을 면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1978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중심으로 한 경찰들이 납북됐다가 송환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았다.
납북되지 않았던 박씨도 간첩 조작에 내몰렸다. 이근안은 북한에 있는 삼촌을 통해 공작원을 소개받고 이적행위를 했다며 박씨를 불법 체포한 뒤 고문해 강제자백을 받았다.
박씨는 1심부터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북에 있는 삼촌이 왔다갔다는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남훈씨와 박남선씨의 아내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7년을 채우고 만기 출소한 박남선씨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05년 사망했다. 박남훈씨도 세상을 등져 당사자들이 모두 사망한 가운데 유족들은 2019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재판이 시작됐고, 43년 만인 2021년에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누명을 벗었다.
박남선씨의 아들 박영래씨는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늘 아프셨고 분노를 참지 못해 밥상을 엎는 등 억울해 하셨다"며 "그런데 이근안씨가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체포되는 과정에 총을 쏘고 저항했다며 소설 쓰듯 재미로 써 분노가 일었다"고 토로했다.
'구미 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황대권은 '야생초 편지'로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구미(歐美)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건인데, 이 사건 수사 유공자들도 서훈 취소 대상에 포함됐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미국과 서독 등 유학생들이 북괴에 포섭된 뒤 국내에 잠입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에서 알게 된 유학생 양동화, 김성만, 황대권('야생초 편지' 저자), 재미교포 이창신 등이 동아투위 해직자로 해외한민보 편집인인 서정균에게 포섭돼 한국에 들어와 극렬 운동권 학생에게 공작금을 주는 등 간첩으로서 활동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길게는 65일 동안 남산 안기부 건물 지하실에서 불법구금 상태로 조사를 받았고 양동화와 김성만은 사형을, 황대권과 강용주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모두 15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광복절에 검찰이 주범이라고 지목한 양동화, 김성만, 황대권은 풀려났는데도 강용주는 전향서를 내지 않아 장기수가 되었다. 강용주는 준법서약조차 거부하다가 1999년 2월 사면돼 세상에 나왔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광주트라우마센터(지금은 국립트라우마센터) 초대 센터장으로 일했다.
검찰이 양동화, 김성만에 대해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재판부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돼야 하는 국가보안법 해석원리를 들어 해당됨이 없다고 보고 검찰측 항소 이유를 기각했고, 2021년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간첩으로 낙인 찍힌 지 36년이 지나서였다.
같은 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 재판부는 황대권, 이원중과 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편 보훈부가 제주 4·3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의 책임자인 고(故)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제주 4·3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유족회 등으로 구성된 제주 4⋅3 범국민위원회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공동성명을 내 "정부가 국가유공자 지정에 대해 원점 재검토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 매우 늦었지만 일단 환영의 입장을 밝힌다"며 "이는 보훈부 차원에서 사실상 박진경에 대한 국가유공자 취소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또 공동성명을 통해 "박진경 뿐만 아니라 4·3 관련해 논란이 남아 있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공정한 검증체계를 마련해 잘못된 서훈이나 기록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제 정부와 국회는 4·3 왜곡에 대한 처벌 규정과 서훈법 개정 등을 담은 법안을 신속 처리해 줄 것을 다시 촉구한다"고 밝혔다. < 임병선 기자 >
기득권 카르텔과 '검찰공화국'의 구조적 뿌리 약자에게 더욱 잔혹한 통제 없는 권력의 실체 독점 권력 구조적 문제 '시스템 에러' 제거해야 개혁과 반개혁의 격돌을 또다시 물타기한 언론 2019 '조국 사태'와 이번 싸움이 달랐던 이유
2023년 9월 1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3.9.12 [공동취재] 연합
미국의 이란 침략 전쟁이라는 국제적 격변이 한반도에도 먹구름을 몰고오고 있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권력기구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중대한 과제가 한 고비를 넘고 있다. 바로 ‘검찰 개혁’이다. 이 과제는 단순히 특정 정당의 정략적 목표가 아니다. 지난 ‘빛의 혁명’ 당시 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이 품었던 뜨거운 열망의 하나이자,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핵심 의제이다.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이른바 ‘검찰공화국’이 바로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파괴하려던 12·3 쿠데타의 뿌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 권력의 본질은 그들이 휘두르는 ‘칼날’의 방향성에 있다. 특수부를 정점으로 한 검찰 권력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거나 결이 다른 정치 세력을 철저히 파괴해 왔다. 그 칼날은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후 문재인과 이재명이라는 정치적 상징들마저 제거하려고 했다.
윤석열 시대의 검찰이 이재명 현 대통령(당시 야당 대표)에게 가한 압박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검찰은 이재명을 350번 넘게 압수수색했고, 7번 소환했으며, 6번 기소했고, 5건의 재판에 회부했다. 이로 인해 이재명은 1주일에 3일까지 100번이나 재판정에 불려 다녀야 했다. 이것은 수사가 아니라 명백한 정치적 고문이자, 야당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국가 폭력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엑스(X) 갈무리. 2026.3.4. 시민언론 민들레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주변을 샅샅이 뒤지던 검찰의 행태도 비열함의 극치였다. 전 대통령의 과거 사돈이 운영하는 목욕탕까지 찾아가 수십 차례의 전화와 메시지까지 보내며 압박을 가한 사례는 검찰이 권력을 어떻게 사유화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당시 검찰은 '사돈을 감싸려다가 아들이 큰일 난다'며 협박에 가까운 언사로 압박했다.
이는 철저한 ‘선택적 표적 수사’였다. 야권 인사에 대해서는 먼지떨이식 수사를 이어가면서도, 윤석열과 김건희, 최은순 그리고 그 측근들과 관련된 사건들은 전부 줄줄이 덮어졌다. 검찰에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원칙이 아니라, 자기 편에는 방패가 되고 반대 편에게만 창이 되는 무기일 뿐이었다.
정치 검사들이 이토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족벌 언론, 재벌, 그리고 기득권 우파와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이 사회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이익을 보장해 주며 한국 사회의 상층부를 점유하고 지배 구조를 공고히 했다. 이 카르텔의 생존 전략은 명확하다.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들이 정치권력을 잡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막으려 했다. 자신들의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검찰의 문제를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만의 관심사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와 착각이다. 검찰 권력의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리며, 그 피해는 결국 평범한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 개혁 입법인 중수청법·공소청법 관련 기자회견에서 추미애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6.3.17. 연합
돈과 권력에서 거리가 먼 보통 시민들일수록 검찰의 힘 앞에 더욱 속수무책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극명한 사례가 바로 지난해, 16년 만에 무죄가 밝혀지며 억울한 누명과 감옥살이에서 벗어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부녀다. 이 사건에서 담당 검사는 증거 조작과 강압 수사, 그리고 선정적인 언론 플레이를 서슴지 않았다. 검찰의 각본 아래 이들은 ‘근친상간을 하고 존속을 살해한 악마들’로 몰렸다.
그러나 진실은 달랐다. 부녀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난했으며 지적장애까지 갖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도 대형 로펌이나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도 없었다.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만들어 내기도 어려웠다. 검찰은 이들의 취약점을 이용해 허위 자백을 유도했고, 반대 증거들을 묵살했다.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뒤에야 밝혀진 무죄는, 검찰 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기록이다.
물론 이것은 검사 개개인의 인격 문제도, 모든 검사가 악당이어서의 문제도 아니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 공소유지와 형 집행권 등을 모두 독점하고서 정치권력과 유착해 사건을 덮어서 돈을 벌거나, 사건을 파헤쳐서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의 문제였다. 즉, 악의를 막기에는 견제 장치가 너무 부족한 ‘시스템 에러’ 상태가 문제였다.
이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검찰 개혁의 과제였고, 그것은 항상 강력한 저항과 반발 속에 실패해 왔다. ‘빛의 혁명’을 거치고 나서도 상황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의 1차 검찰 개혁안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내부 고발자 역할을 해온 임은정 검사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이라고 실망할 정도였다. 기득권의 저항은 그토록 집요하고 강력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왼쪽 다섯 번째)을 비롯한 의원들과 참여연대, 민변 관계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ㆍ공소청법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3.11. 연합
누구도 기존의 구조에서 누려온 돈과 권력을 쉽게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검찰개혁을 ‘추윤(추미애-윤석열) 갈등’이라고 물타기했던 친검찰 언론들은 이번에도 ‘추나(추미애-나경원)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국회 법사위에서 전개된 개혁과 반개혁의 충돌을 물타기했다. 구조적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을 정치인들의 사적인 대결로 치부함으로써 대중의 피로감을 유발하기만 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검찰 통제에서 벗어난 경찰이 멋대로 사건을 덮으면 성폭력 피해자 등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는 논리로 철저한 검찰 개혁에 딴지 걸고 나섰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정부와 민주당, 민주당 내부, 지지자들 간에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거기에는 개혁의 결과가 혹여나 또 다른 권력의 남용이나 치안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우려들도 섞여 있었다.
그 논쟁은 감정적 대립과 불신으로까지 발전하다가 결국 마무리되고 있다. 제기된 비판과 우려들을 대부분 반영해 수정한 검찰개혁 법안이 곧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수정된 방안을 보면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철저한 검찰개혁을 기대하던 이들의 요구가 상당 부분 담겼다. 이것은 그동안 번번이 저항에 직면해 실패했던 검찰개혁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장 2019년 '조국 사태'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당시에 개혁 시도는 검찰과 언론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그러면서 시작된 것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로 포장된 거대한 '조국 일가 마녀사냥'이었다. 검찰-보수 언론은 기득권 우파를 모두 결집하고 '이러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 검찰 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중도층과 심지어 일부 진보 좌파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검찰-언론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그것은 먼저 상황과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박근혜 정권 탄핵의 '촛불혁명' 이후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윤석열이 쿠데타까지 시도했다가 실패한 '빛의 혁명' 이후라는 점이 다르다. 더구나 당시에 검찰은 박근혜의 비리를 파헤쳐 탄핵에 기여했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검찰은 오히려 윤석열 쿠데타의 공범이라는 굴레 속에 갇혀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검찰의 수사를 ‘정의로운 칼날’로 신뢰하지 않는다.
촛불행동이 10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재명 정부의 철저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촛불행동 페이스북
게다가 당시에 기득권 우파는 문재인 정권 중기로 접어들면서 위기와 분열을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초기인 지금 기득권 우파는 아직도 위기와 분열 속에 헤매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조건의 차이가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쪽과 그것을 막으려는 쪽의 서로 다른 대응과 세력 균형을 낳았다. 2019년에는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논쟁의 주도권을 쥐고서,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이 오히려 고립됐다.
반대로, 이번 논쟁은 검찰 개혁 찬성과 반대가 아니라 검찰 개혁의 방식과 내용, 강도의 차이가 문제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결국 철저한 개혁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의도적인 전술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검찰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이 프레임을 설정하고 주도권을 잡았다.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들 간의 논쟁과 갈등 속에서 개혁을 반대하는 쪽은 공개적으로 나서기 어려웠고 주변화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 조건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먼저 이번 검찰 개혁이 허점을 드러내거나 부작용을 낳는다면 그들은 '그것 봐라' 하고 나올 것이다. 모든 것을 '검찰 개혁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이 더욱 범죄 피해에 노출되며 고통받게 만들었다'라는 결론으로 연결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다시 검찰 개혁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차이를 이용해 '강경파'와 '온건파'를 갈라치고 특정 인물과 세력을 매도하고 탓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미 이번에도 그런 현상은 어느 정도 나타났다. 이것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부추기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런 반격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서 어느 때라도 불거질 수 있는 비리 의혹에 대한 선택적 표적 수사와 결합한다면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질 것이고 다시 중도층과 일부 진보 좌파까지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수사권을 돌려주자'고 편들지 모른다.
검찰 개혁은 단순히 법안 하나가 통과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법이 시민들의 삶을 실제로 어떻게 보호하고 권력의 횡포를 어떻게 막아내는지 끊임없이 증명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다. 보완수사권 논란도 아직 남아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더 치밀하게 감시하고, 더 치열하게 논쟁하고, 더 단단하게 연대해야 한다. < 전지윤 기자 >
'보완수사권'은 별건수사 만능키…열쇠 회수해야
검찰개혁 큰 진전에도 형소법 개정안 우려 남아
보완수사권은 개혁 전체 무력화 할 수도 비대한 검찰 조직 실질적 정상화의 관건 예외 허용하면 예외가 원칙처럼 굳어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검찰 개혁 입법인 중수청법·공소청법 관련 기자회견에서 법안 처리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26.3.17. 연합
17일 발표된 당정청 합의는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진전처럼 보인다. '검찰청' 간판을 떼고 '공소청'으로 전환하며 수사와 기소를 확실히 분리하겠다는 선언은 분명 개혁의 마침표를 찍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화려한 간판 뒤에 숨겨진 '보완수사권'이라는 작은 문구를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이 합의가 얼마나 위태로운 타협인지 목격하게 된다.
한국 검찰의 본질적 문제는 권한 규모가 아니라, 그 권한이 정치적으로 남용되는 구조에 있다. 한국은 검사 1인 책임제와 기소편의주의로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쌓아왔다.
검찰 권력의 본질은 '기록'이 아니라 '행위'에 있다. 지금까지 검찰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법리를 검토해서가 아니다. 직접 사람을 부르고, 집을 뒤지고, 캐비넷에 정보를 쌓을 수 있는 '직접 수사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의 핵심은 이 물리적인 칼날을 거두고 검사를 순수한 공소유지인으로 되돌리는 데 있다.
그 캐비넷의 뿌리는 길다. 일제 고등계 형사가 사상범을 분류하던 서랍장,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하던 파일철이 그 원형이다. 기관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정보를 쥔 조직이 권력을 쥔다'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검찰 수사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그 캐비넷의 운영에는 조직이 필요하고, 조직 운영에는 법적 근거와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보완수사권 논쟁의 핵심 쟁점이 있다.
이번 합의문과 연계하여 검토 중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직접 보완수사권'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 조항의 존치는 개혁 전체를 무력화할 잠재적 폭탄이다. 보완수사권이 '요구권(Request)'이 아닌 '직접 행사권(Action)'으로 남는다면, 기존의 거대한 수사 조직과 인력은 '보완'이라는 명분 아래 그대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이름만 공소청일 뿐, 내부에는 여전히 수백 명의 수사관과 정보 부서가 상주하며 언제든 캐비넷의 먼지를 털어낼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보완수사권은 '캐비넷'을 여는 유일한 마스터키다.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는 예외가 인정되는 순간, 송치된 사건과는 무관한 별건 수사의 문이 열린다. "공소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한마디면 검찰은 다시 현장으로 나갈 명분을 얻는다. 이는 결국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는 대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며, 검찰을 다시금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세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한국검찰의 구조적 후진성
한국 검찰의 후진성은 권한 규모가 아니라 남용을 막지 못한 구조적 결함에 있다.
독일 검찰은 직접수사권과 경찰 지휘권을 가지지만, 국가수사위원회의 엄격한 감독과 철저한 영장주의로 정치적 중립을 강제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이는 한국의 기소편의주의와 상급자 지휘 남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영국은 검찰의 수사권을 대폭 제한하고 경찰이 주도적으로 수사를 맡도록 하며, 기소 전문기구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설계해 검사들의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했다. 반면 한국은 검사 1인 책임제 하에서 수사부터 공판까지 독점하며 통제 장치가 부재하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왼쪽 네 번째)을 비롯한 의원들과 참여연대와 민변 관계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ㆍ공소청법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3.11. 연합
일본 역시 특수부서를 통해 정치·경제 범죄를 직접 수사하지만, 내부 감사 체계를 강화하고 장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운영 방식을 택했다. 한국은 정권 교체 시 정치 보복 수사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불안정성을 반복해왔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견제와 균형 장치를 마련해 권력남용을 방지한다. 한국 개혁이 나아갈 길은 권한 회수와 함께 이러한 국제 표준 통제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반론이 있다. 경찰 수사가 부실할 경우 검사가 직접 보완하지 않으면 공소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찰 수사 역량의 문제이지, 검찰에 직접 수사권을 존치시킬 근거가 될 수 없다. 부실 수사의 해법은 경찰 역량 강화와 국가수사위원회 감독으로 풀어야 한다. 경찰권력 비대화의 문제는 행정부의 힘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다.
예외를 허용하면 예외가 원칙이 되는 것은 법 집행 역사가 수없이 증명해온 사실이다. 요구권+기한제+불이행 제재를 명문화하고, 보완 범위를 본건만으로 제한하라.
진정한 검찰개혁은 검사의 손에서 직접 수사라는 '도구'를 완전히 회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족한 수사는 경찰에 다시 하라고 요구하는 '요구권'으로 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대해진 검찰 조직이 슬림화되고, 비로소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원리가 사법 체계에 뿌리내릴 수 있다.
정치권은 '공소청'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검찰 조직의 생존 퇴로를 열어주는 기만적 합의를 멈춰야 한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 '직접 보완수사'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요구권'으로 명문화하지 않는 한, 어제의 합의는 개혁이 아니라 기득권 수호를 위한 '세련된 분식회계'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이 요구한 것은 간판 교체가 아니라, 성역 없는 권력의 해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
배심 · 참심제로 사법민주화…사법 카르텔 뿌리 뽑아야
시민단체 주도로 '사법주권 개혁안' 발표 판결문·재판자료 공개 '사법 블랙박스' 제거 시민참여, 사법 투명성·책임성·접근성 강화 "사법권의 원천은 대법원장 아닌 국민"
사법대개혁을 위한 연속 세미나를 열어온 법학자 변호사 시민들이 ‘한국형 사법 주권 개혁안’을 발표했다. 시민인권위원회와 정철승변호사무죄판결을위한시민변호인단은 18일 지난해 12월부터 가진 7차례 세미나의 종합토론회를 서울 청계천로 전태일 기념관에서 열고 한국 사법부가 ‘근대적 낙후성’을 끝내고 ‘현대적 민주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연속 세미나를 통해 아테네의 고대 민주주의부터 미국, 독일, 일본, 대만의 사법 제도를 면밀히 검토해 이같은 개혁안을 도출했다.
18일 서울 전태일 기념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연속세미나 종합토론회의 모습. 사진 시민인권위원회
이날 발제에 나선 이원영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과 김종서 배재대 명예교수는 사법 민주화의 핵심 방향으로 주체·과정·책임·접근성을 꼽았다.
첫째, 사법 주체의 민주화다. 현재 1.2%에 불과한 유명무실한 국민 참여 재판을 전면 확대하고, 정치·기업인 범죄 등 주요 사건에는 시민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필수적 배심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또한 전문 영역에는 시민 법관이 판사와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는 ‘참심제’ 도입이 제안되었다.
둘째, 사법 과정의 민주화다. 미국의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벤치마킹해 재판 전 당사자들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도록 하고, 판결문과 재판 자료를 시민들에게 전면 공개해 '사법 블랙박스'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사법 책임의 강화다. 판사가 악의를 가지고 법을 왜곡할 경우 처벌하는 ‘법 왜곡죄’를 신설하고,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사법 뇌물’을 뿌리 뽑기 위한 강력한 징계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넷째, 사법 접근성 제고다. 하급심 법관을 획기적으로 증원하고 법원 수를 늘려 시민들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서비스를 누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민생 사법 개혁안이 담겼다.
이에 대해 토론자 5명은 한국 사법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과 개선을 위한 제언을 내놓았다.
정철승 변호사는 "사법 카르텔이 모든 분야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사법 권력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된 현실을 비판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지만, 사법 민주화는 지난 30년간 법조 엘리트들의 방해로 제자리걸음이었다"고 진단하면서, "법원, 검찰, 변호사단체, 법학계가 사법 카르텔을 형성해 사법개혁을 비롯한 사회 개혁들의 걸림돌이 되어왔는데, 시민들이 주체가 된 사법개혁, 사법 민주화만이 그런 견고한 카르텔을 깨뜨리고 재판의 신뢰성을 높이는 길"이라며 2026년을 사법 민주화의 원년으로 삼자고 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법조계의 특권 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인 가치관의 전환을 주문했다. 대구시민헌법학교 설립자인 최 변호사는 '가치 삼권분립'이라는 말을 제시하며 "돈을 추구하면 권력을 포기하고, 권력을 잡으면 가난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은 판사 하다가 옷 벗고 바로 돈 벌고, 다시 국회로 가는 '패륜적 법조인'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저임금 대법관'론을 펼쳐 주목을 끌었다. "대법관의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주면 정말 사명감 있는 사람만 남을 것"이라는 제안이다.
최자영 전 부산외대 교수는 “직업 법관이 독점한 '결정권'을 시민에게 실질적으로 넘기는 것이 핵심"이라며, ”재판은 법 기술이 아니라 '상식'으로 하는 것이다. 영국이나 그리스처럼 시민이 주체가 되는 사법 시스템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우민재 판사가 그림자배심원들을 대상으로 국민참여재판과 그림자배심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림자배심원은 국민참여재판 과정을 지켜본 뒤 유무죄나 양형에 모의 평결을 하고 재판제도 개선을 위한 의견도 낸다. 2025.6.24. 연합
황치연 홍익대 교수는 ‘시민 법관’ 도입을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위헌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황 교수는 "사법권은 민주적 정당성이 가장 취약한 권력이다. 직업 법관 제도가 재판권을 독점한다는 해석은 틀렸으며, 배심제와 참심제를 통해 이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김창록 경북대 교수는 법률가 양성 제도에 대해 질타했다. "윤석열, 한동훈, 조희대 같은 인물들이 나타나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체질의 문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법률가를 길러내지 못하면 사법 개혁은 백약이 무효다.” 김 교수는 "로스쿨 학생들은 만 개가 넘는 대법원 판례 요지만 암기하느라 판결문 전문을 읽거나 시대의 아픔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며, 변호사 시험을 자격 시험화해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학교수 출신의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총평을 통해 최근의 사법 현실을 ‘사법 내란’이라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온 국민이 생중계로 본 내란 사범들을 법원이 느슨하게 대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절망했다”며, 법관의 성역화를 인정하지 않는 시민들의 강력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곽 전 교육감은 또한 사법개혁이 정당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당 주도의 개혁은 필연적으로 정쟁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하고 제왕적 대법원장제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헌법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개헌에 대한 장기적 비전 없이 단편적인 입법에만 매달렸다면서 이를 위해 개헌을 염두에 둔 중장기적 비전 아래 시민 주도의 상시 개혁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함께한 한인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사법권도 국가 권력의 일부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는데, 법 전문가들이 마치 사법권이 국민과 무관한 ‘성역’인 양 시민들을 속여왔다”고 비판하고 특히 판사들이 사법권의 원천을 국민이 아닌 ‘대법원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현실을 ‘제왕적 사법 체제’의 폐단으로 지적했다. 한 교수는 특히 “아무리 떠들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야말로 권력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라며, “국민 참여 재판,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수사·기소 분리 입법 등은 과거에는 ‘미친 소리’ 취급을 받았으나, 시민들이 10년, 20년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기에 현실이 되었듯이 지금의 사법 개혁 논의가 비록 ‘씨를 뿌리는 단계’일지라도, 시민들이 물을 주고 가꾼다면 반드시 ‘민주적 사법’이라는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시민인권위의 이원영 공동위원장은 “이번 세미나는 사법부의 주인은 법전에 적힌 글자가 아니라, 광장에 모인 시민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자리였다”면서 “법관 위에 국민이 있고, 법관 위에 헌법이 있다는 믿음으로 사법개혁을 위한 시민 연대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명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