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편리함은 변질을 가져옵니다"

● 교회소식 2022. 11. 21. 15:4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김치길 목사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공생애가 끝날 무렵,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맞이하여 성전에 올라가셨는데, 성전이 마치 장사터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성전 입구에 돈 바꾸는 사람과 짐승을 파는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은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 일반 동전을 사용할 수 없고, 성전에서 사용하는 동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먼 지역에서 제물로 쓰일 짐승을 끌고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루살렘까지 오는 동안 짐승에 흠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물로 쓰일 수 없었기에, 성전 입구에서 제물을 살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돈 바꾸는 일과 제물이 될 짐승을 파는 것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기에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성전 입구에서 제물을 파는 것은 순수하고 깨끗한 짐승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한 것이 그 제도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핵심이 사라져버리고, 사람들은 편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제물을 가져오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하고, 아무도 제물을 가져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제사를 잘 드리게 하려는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지만, 이렇게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세월이 흐르며 변질된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동안 대면예배를 중단하고 비대면 영상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함께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는 정말 좋은 대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엔데믹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온라인 예배, 비대면 예배로 만족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편의주의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문화 속에 가득합니다. 편의주의에 익숙해지면, 편의주의가 영적 세계에까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영적 영역에서 사람들의 편의에 초점 맞추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편의주의가 예배 속에 들어오면 신앙이 변질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동기로 출발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할지라도 사람들의 편의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변질되는 것입니다. 편의를 추구하며 의무적인 행위만 남았을 때, 변질에는 속도가 붙습니다. 이런 변질은 이스라엘과 교회 역사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월 30일,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으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제물이나 형식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마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숫양의 기름보다 우리의 마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드리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가를 보십니다.

 

이 시대 우리는 신앙생활의 편의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편의주의에 물들면, 자신도 모르게 신앙이 변질되고, 점점 병들어 가며 죽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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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칼럼]

리노베이션을 하여 보기좋은 집에 무조건 현혹되지 말자.

Buyer와 함께 집 Showing을 하다보면 탁트인 오픈컨셉에 새로이 리노베이션이 되어있어서 Buyer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물을 자주 접하게 된다. 좋은 가격에 쉽게 팔기위해 최근에 리노베이션한 집들이다.

Buyer의 입장에서 보면, 집이 마음에 들다보면, 다른 단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구입하려는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이러한 매물일수록 좀 더 꼼꼼하고 세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사례1>.

1년 전 A씨는 워터루에 있는 콘도를 팔고, 학교문제로 미시사가 지역에 주택을 찾고있던 중 가격도 좋고, 마음에 쏙드는 매물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이 리노베이션 된 단독주택이었는데, 부엌과 리빙룸이 탁트이고 규모는 작지만 나름대로 잘 꾸며진 집이었다.

그러나 꼼꼼이 살펴보니 복도(Hallway) 와 리빙룸사이의 벽이 리노베이션으로 인해 제거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드라이월로 공간을 막아놓았던 벽이라면 상관없겠지만, Structual Support (구조적 지탱물) 이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천정을 살펴보았다. Sagging(내려앉음 )의 흔적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리스팅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어, 건축허가(Building Permit)를 보여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에이젼트는 말하기를 구조물을 건드리지 않고 내부공사만 하였기 때문에 건축허가(Building Permit)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Buyer인 A씨는 재촉한다,. 꼭 이집을 사고 싶다고….

A씨의 성화에 에이전트의 입장으로는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에, 건물검사를 컨디션으로 넣고 오퍼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몇 차레 오퍼가 오고 간 후에 오퍼는 성사되었고, 건물검사를 하던 중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예상대로 오픈 컨셉을 위해 Structual Support인 벽을 제거하였고, 천정은 이미, Sagging이 시작되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측과의 계약은 깨졌지만, 며칠 후 그 집은 다른 Buyer에 의해 No Condition으로 좋은 가격에 팔렸음을 알 수 있었다.

 

<사례2> .

2014년 4월, Macdonald 씨는 New Market 지역에 2년 전 구입한 주택의 1층 천정이 조금씩 꺼지고 있다(Sagging)는 느낌을 받고, Structual Engineer(구조 전문가) 에게 의뢰하여 진단을 받은 결과, 전 주인에 의해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Critical Supporting Wall (심각한 구조 지탱물)이 제거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당장 집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면, Temporary Construction Jack (임시 구조 지탱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섬뜩한 경고를 듣게된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에 Macdonald 씨는 변호사를 찾게된다.

2년 전의 Seller에게 크레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변호사와 상의 끝에 Title Insurance Company에 보상을 청구해 보기로 한다.

Title Insurance Company 의 Policy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주택의 어느 부분이 Building Permit 없이 건축되었고, 이로 인한 하자가 발생하였고, 해당 지방단체로부터 이의 시정명령을 받았을때 Title Insurance는 이의 복구를 위한 비용을 보상한다“

그러나 Macdonald 씨가 그 집을 구입하였을 당시, 해당 지방단체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또한 애매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다시말해, 그 주택이 Building Code를 따르지 않았고, 해당 지방단체가 이를 몰랐을 때에는 보험적용이 되지않는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 Chicago Title Insurance는 보험적용을 거부하게 된다. 그 이유는 “회사의 Policy는 전 주인에 의해 행하여진 건축하자까지 보상해 줄 수 없다“ 는 것이다.

재판까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Macdonald 씨는 전 주인을 향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홀로 삭여야만 했으리라….

교훈을 얻어보자.

리노베이션을 하여 보기좋은 집에 무조건 현혹되지 말자.

보이지 않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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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칼럼] "칼은 칼로 망하느니…"

● 칼럼 2022. 11. 21. 15:3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검찰공화국 소묘

대한민국은 지금 검찰이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됐다. 검사가 곧바로 대통령이 되면서 역시나, 다들 우려하던 ‘검찰공화국’이 드디어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설마 처벌이 될까”, “구속이라니 말도 안돼”라고 이구동성 말들 하지만, 검찰은 희한한 기교로 올가미를 씌우고 교묘히 판사의 저울추를 움직여 구속영장을 받아낸다, “그런 적 없다”고 단언하던 사람들이 검사실에 불려 다니더니 갑자기 증인으로 돌변해 ‘검찰 앞잡이’처럼 굴어댄다. “그 사람은 탈북자”라고 입을 모아 공언했던 공직자들이 돌연 태도를 바꿔 “탈북으로 조작했다”고 거들어 전직 장관과 청장을 옥에 잡아넣고, 이젠 그 ‘윗선’을 문초하겠다고 벼른다. 그야말로 거칠 게 없고 눈에 보이는 게 없다. 불가능이 가능한 게 대한민국 검찰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 검찰의 칼끝이 전 정권 수뇌부와 야당대표를 겨누고 질주하면서 한국 정치가 완전 실종상태에서 혼돈에 빠졌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삿대질과 악담만 떠돌고 있다. 어쩌면 의원들도 언제 검찰 칼날에 찔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신경이 곤두선 것 일지도 모른다. 설마하고 믿기지 않던 일들이 현실화하고, 도대체 죄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를 엮어 범죄자로 발라내는 칼 솜씨에 멸문지화를 당한 사례들을 똑똑히 보았으니 어쩌겠는가.

 

‘조직에 충성’하는 일편단심으로 마침내 검찰공화국을 만든 주역이어서 마냥 즐거운 것일까. 어둠이 내려앉으면 부하들과 어울려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던 습벽이 여전한 듯,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주취소식은 여전히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벌써 5개월이 지났건만 지금도 검사 습성에 충실한 나머지 정치를 특수수사로 해결하려 한다. 정치인 쯤이야, 막말과 욕설로 다루던 피의자 xx들로 여긴다. 국정의 파트너라느니 협치라는 말은 사치스런 고전적 정치용어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들도 여럿 잡아 넣었는데 갓 물러난 대통령 예우나 거대야당의 대표가 무슨 대수인가. 정치가 실종됐다니, 무슨 실종? 보기싫은 자들 내가 부리는 검사들 쌍칼에 날아가거나 굴종하면 모든 게 잘 되는 거야, 감사원도 이젠 내 손안에 있지 않나… 경제난 생계난에 안보 위기까지, 국민들의 불안과 국정의 표류는 안중에 없는 ‘무사’(武士)태평이다.

그렇게 암담한 검찰공화국의 ‘실행자’로 보이는 그 수하의 사람도 무소불위 안하무인인 것은 빼닮은 것으로 보인다. 검사에서 장관으로 직행했으니 검사의 습성 또한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국회에서 기고만장을 넘어 오만방자한 태도는 ‘절대 권력’ 검찰의 칼을 내비치며 ‘검찰왕국의 왕자’라고 박박 우겨대듯 오기가 넘친다. 국회의원들이 무시당하는 양태를 보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권위나 삼권분립도 실종상태가 됐다. 미사여구로 아부하는 언론은 융숭히 대우하며 특종감을 던져주고, 집요하게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은 ‘스토커’라며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는 현실에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언론이 궤멸상태가 된 것도 당연하다. 그런 권력자들에게 국민들이 과연 ‘주인’일까, ‘개 돼지’일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너무도 보복적이고, 정치적이며, 지역주의적이었다. 개탄스러웠다. 권력에 굴종하다 약해지면 물어뜯었다. 나라가, 검찰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서 우려스러웠다." 일찌기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게 검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어디 김 전 대통령 뿐인가. 역대 정권에서 권력의 앞장이로 활개치다가 기우는 권력에는 하이에나처럼 물고 뜯고 날뛰는 검찰의 흑역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곳곳에 얼룩져 있다.

이승만의 조봉암 제거, 박정희의 조용수 처형과 민족일보 폐간, 인혁당 사법살인, 전두환의 내란음모 날조 등 갖가지 패악에 검사들이 수족노릇을 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권력 아부의 망언, 무고한 퇴임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파렴치 수사…. 독립투사들을 괴롭히던 친일검사들부터 자유당 때 설치던 반공검사들, 그리고 역대 독재정권과 그 아류 부패정권에서 정치수사와 조작의 주역은 검사들이었다.

오늘의 심각하고 위험한 현실은 그런 검찰권력이 ‘통치권력’ 마저 손에 쥐었다는 것과, 그들이 민주적 시스템과 합법으로 포장한 채 선택적이고 감정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병화(私兵化)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대로’ 라는 합법의 기치를 내세워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 행사하는데 제동을 걸 장치는 현 ‘공수처’가 열 개라도 부족하다. 국회와 법원이 막아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기대할 만한가.

소위 선진국이라는 어느 나라에 이런 흑역사가 이어지는고. 참 불안하고 답답한 형국이다.

하지만 ‘칼은 칼로 망한다’는 경험칙적 금언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오래가지 못한다는 역사적 사실도 새겨둘 일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한국적 저항의식과 오늘의 민주한국을 일군 정의감은 세계 최강이다. 검찰의 전횡이 미완에 그친 검찰개혁의 절실성을 절감시킨다는 역설도 희망이다.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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