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소속 이혜훈 전 의원이 2016년 6월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동성애 퀴어 축제 반대 국민 대회’에서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발언하는 모습. 홍성수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의힘 소속 이혜훈 전 의원이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가운데, 인권법 전문가인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가 “도대체 왜 이런 인물이 이 나라의 국무위원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혜훈 장관 후보자가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우연이나 실수일 수 없는 문제”라며 “내란과 같은 국가의 최고 중대사에 대해 정치인이 분명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는데, (불과 1년도 안 되어) 번복한다거나, 후회한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해명’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라고 짚었다.
홍성수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홍 교수는 이어 이 후보자가 과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며 했던 발언들을 문제 삼았다. 홍 교수는 “나는 이혜훈을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던 정치인으로 또렷이 기억한다”며 “그는 대충 소극적으로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에서 직접 ‘발표’를 하고 반동성애 집회 연단에 올라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하던, 매우 적극적인 행동가였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2016년 6월 이 후보자가 ‘동성애 퀴어 축제 반대 국민 대회’에서 “동성애가 이런 위험이 있다고 얘기하면 처벌받는 법, 이게 오히려 역차별 아니냐”라고 발언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함께 올렸다.
홍 교수는 “(이 후보자가)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한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가 확신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생각했었다”며 “그는 자신의 동성애 혐오를 위해 질병관리본부의 과학적 입장도 배척하고, 예술도 비난하고, 유엔과도 싸우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근거 없는 허위사실 유포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자의 또 다른 과거 발언을 소개했는데 “질병 예방에 앞장서야 할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는 동성애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에이즈 길라잡이를 배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두고) 이런 대중매체들이 동성애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답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게 만든다” 등이다. 지난 2017년 2월 이 후보자가 기독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이다.
홍 교수는 이 후보자가 지난해 4월 한 정책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밝히며 한 발언도 소개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차별금지법을 두고 “동성애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반동성애자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동성애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자유를 박탈하고 평등권을 침해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인권단체들도 이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으며 후보자 지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이 후보자는 2019년 바른미래당 의원 시절 10대 성소수자를 비하하고 차별금지법에 성적지향이 포함되면 종교인들이 설교 내용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거짓 내용을 발언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 인물”이라며 “이렇게 민주주의와 인권에 반하는 인물이 국가재정을 담당한다면 국가 예산은 어디에 쓰이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혐오 정치인을 장관 후보자로 내정하는 것은 현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가 없음을 선언한 것에 다름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장현은 기자 >
이혜훈 “이재명 불구속 尹구속 불공평” “이재명 내란세력” 발언 괜찮나
한겨레·중앙에 “계엄 잘못, 발언 후회” 번복? 민주당 “입장 바꾼 게 중요” 내란 청산 정권 장관 하긴 부적절하지 않나 “내일 도어스테핑 하겠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2월15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들의 헌재앞 탄핵 반대 집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 구속이 부당하다면서 석방하라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코리아드림뉴스 영상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이 지명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이재명 내란세력’, ‘탄핵 반대’, ‘윤석열 석방’ 발언들이 도마에 올랐다. 위헌·불법 계엄 후 내란을 청산하겠다는 정권의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언동이 아니냐는 지적에 이 후보자는 미디어오늘에 ‘도어스테핑에서 밝히겠다’고만 답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는데, 일단 민주당 대변인은 이 후보자가 입장을 바꾼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혜훈 후보자는 28일 이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직후 국민의힘에서 제명 결정이 나기 직전까지 국민의힘 서울중구성동을 당협위원장이었다. 이 후보자는 지난 2월15일 ‘탄핵반대 당협위원장들의 헌법재판소 앞 집회’ 때 참석해 당시 윤 전 대통령 체포와 구속을 두고 “공평하지 못한 수사다. 이재명에게는 야당 대표라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하고, 도주할 수 없는 우리 대통령을 그냥 체포했다. 구속시켰다. 정당하냐”라며 “대통령은 우리 국민 아닌가. 불법 탄핵 중단돼야죠. 불법탄핵 중단하라. 대통령을 석방하라”라고 촉구했다.
이 후보는 지난 3월22일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 서울 여의도 집회에서도 “대한민국 역사 내내 있었던 탄핵을 모두 합한 거보다 이재명 한 사람이 밀어붙이는 탄핵이 더 많다. 이렇게 나라를 흔드는 세력이 내란 세력 아니냐”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7일 탄핵표결 때 표결 불성립 결정한 것을 두고 “표결 정족수는 다 맞췄는데 찬성 숫자가 모자라는 것은 부결이며, 부결되고 나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은 같은 회기 내 재발의 못하게 되어 있다. 불참한 105명의 표도 부결 반대 표시로 간주된다. 이를 어기고 재발의해 통과시킨 탄핵 소추 자체가 불법이다. 기각까지 따질 것도 없다. 바로 각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3월22일 세이브코리아국가비상기도회 집회에 참석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발의 자체가 불법이라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세계로교회 영상 갈무리
이 후보는 앞서 지난 1월2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계엄과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두고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가 믿는 바가 다르고, 극단적으로 괴리를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 하나 예단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라며 “아직까지 사법적 판결이 나지 않았고 진실이 뭔지 결정나지 않았는데 ‘초법적 쿠테타’, ‘폭력’, ‘폭동’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너무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좀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드린다”라고 발언했다.
이 같은 후보자 발언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 외치고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했던 국힘의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에 앉히는 인사, 정부 곳간의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의 파기”라며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비판했다. 이언주 의원도 “계엄을 옹호하고 국헌 문란에 찬동한 이들까지 통합의 대상인가”라며 “적어도 ‘진심’이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정의롭고 공정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좀 더 노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라고 썼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1월2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서부지법 폭동에 대해 그런 표현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MBC 100분토론 영상 갈무리
이에 이 후보는 2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계엄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도 잘못된 계엄의 결과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당협위원장으로서 당(국민의힘)의 입장을 따라간 적이 한 번 있기는 하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일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도 28일 기사 <尹 탄핵 반대했던 이혜훈 “분위기 휩쓸려…후회한다”>에서 이 후보자가 “계엄이 발발한 순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내 첫 일성이었다”며 “원외당협위원장으로 당시 (탄핵 반대) 분위기에 휩쓸려 잠깐 따라간 건 잘못된 일이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9일 국회 소통관 백브리핑에서 ‘이 후보자가 윤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하고 탄핵 반대를 공개적으로 발언했다가 입장을 바꿨으니 괜찮다는 입장이냐’라는 미디어오늘 기자 질의에 “현재 입장은 명확하게 입장 표명을 바꾼 걸로 지금 (언급)하셨고 그거를 포함해서 이 후보와 관련된 것들이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다뤄지면, 그걸 보고 인사청문위원들과 국민들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혜훈 후보는 과거 공개집회 때 ‘윤석열 석방하라’, ‘불법 구속’, ‘불법 탄핵’, ‘계엄은 결단’ 등의 발언과 ‘폭동이라 단정해서는 안된다’라고 한 MBC 100분 토론 발언이 진심인지, 아직도 같은 생각인지, 내란청산 정권의 장관으로 부적절한 언동이 아니냐 등을 묻는 미디어오늘의 질의에 “내일 09:00 도어스테핑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 조현호 기자 >
이재명 정부 첫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국민의힘 소속 이혜훈 전 의원이 28일 지명되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탕평인사”란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 전력이 있는 이 후보자를 두고, 당 안에서조차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국혁신당 쪽에서도 “이혜훈 발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당 안에선 이 후보자가 직접 자신의 과거 행보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말들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대통령실이 7개 장·차관 인선을 발표한 이후 공식 서면 논평을 내지 않고, 구두 논평으로 갈음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 등 보수 정당 출신 인사들을 기용한 데 대해 “이 대통령의 중도 실용주의적 인사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됐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 결정을 내렸던 것처럼 “전문성을 감안해 적재적소에 탕평인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김 대변인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 3선 의원이긴 하지만 경제 쪽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위촉된 김성식 전 의원도 경제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국민의힘이 제명 결정을 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서울 중구·성동을)이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미래통합당 소속으로 3선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의 경우, 한나라당과 국민의당 의원으로 재선을 했다.
다만 여당에서도 이 후보자가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등 극우적 행보를 보인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럿 나온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계엄을 옹호하고 국헌문란에 찬동한 이들까지 통합의 대상이냐”며 “윤석열 정권 탄생에 큰 기여를 했거나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의 대상이어야 하는가는 솔직히 쉽사리 동의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국민 통합 차원에서 대화와 타협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어려움을 함께 딛고 만들어낸 이재명 정부의 중요한 역할까지 맡기는 게 맞는 건지도 (동의가 안 된다)”며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뭔가 최소한의 동지적 의식은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진심’이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좀 더 노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도 덧붙였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인사는 국민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상징 언어”라며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 외치고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했던 국힘의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에 앉히는 인사, 정부 곳간의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의 파기다.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혁신당을 비롯한 진보개혁 정당들도 이 후보자의 ‘전력’을 문제 삼았다. 박병언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혁신당은 이혜훈 지명자에 대한 인사 검증을 위해, 윤석열과의 결별 여부를 확인하고자 한다”며 “이 후보자의 능력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도, 윤석열 탄핵을 외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신다면 이혜훈 발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박 대변인은 또 “이재명 정부는 확대 재정정책을 기조로 하고 있는데, 이혜훈 지명자는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 정책적 기조 측면에서도 해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본소득당과 사회민주당은 아예 “깊은 우려와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논평과 성명을 냈다.
민주당 쪽에선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이 후보자가 청문회 전까지 과거 행보에 대해 명확히 ‘입장 정리’를 해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민주당 4선 의원은 한겨레에 “솔직히 ‘그렇게 사람이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며 “빛의 혁명으로 국민이 만든 정권인 만큼 내란에 대해 어떤 식으로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 김채운 고한솔 기자 >
이재명 "명확히 소명, 국민 검증 통과해야" 강조 '모두의 대통령' '통합과 실용' 메시지 우선 방점
"민주당은 중도보수, 가짜 보수 몰아내야" 지론 국힘 존립 기반 무너뜨리려는 헤게모니 전략도
박원석 "극우 정당 가두고 정치 지형 재편하려" 장동혁, 실제 '윤 어게인' 노선 더 강화 방침 시사
같은 보수 정당도 "보수 굉장한 위기 초래" 비판 이준석 "이재명 자신감…보수 외연 확장 불가능"
정규재 "이러다 국힘엔 장동혁, 전한길만 남아" 민주 "이혜훈 역량 등 청문회 통해 철저히 검증"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5.12.29. 연합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두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폭탄을 맞은 듯 아우성이고 진보 진영에서도 적지 않은 반발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혜훈 후보자를 둘러싼 크게 두 가지 문제, 즉 12·3 비상계엄을 옹호했던 행보와, 확장재정보단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온 정책적 이력에 대해 이 대통령은 '본인의 명확한 단절 의사 표명' 및 '격렬한 토론을 통한 접점 만들기'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9일 이 후보자의 불법 계엄 옹호 등과 관련한 언론보도 등을 보고받고 "과거 용납할 수 없던 내란 등에 대한 발언에는 본인이 직접 좀 더 충분히 소명해야 하고, 그 부분에 있어 단절 의사를 좀 더 표명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며 "이 후보자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정부를 구성한다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일지언정 격렬한 토론을 통해서 견해 차이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그 과정 자체가 새롭고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가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지를 모아가는 과정에서 차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이 차이를 잘 조율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의견을 도출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인사권이라는 게 지명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지명을 통해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아야 하고 이 검증 과정에서 국민 검증도 통과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이 후보자가 제대로 소명해서 '국민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지명 철회'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어떻게 대처할지가 핵심이지만 이 후보자는 그에 앞서 30일 오전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대통령실 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청와대 본관으로 첫 출근하고 있다. 2025.12.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 대통령이 진보 진영과 지지층 일각의 반대가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 출신 이 후보자를 발탁한 배경에는 '통합과 실용'이라는 인사 철학의 양대 축이 작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강유정 대변인도 "이혜훈 후보자는 통합의 메시지로 선택된 후보자가 맞다"고 부연했다.
'실용' 측면에서 대통령실은 "이혜훈 후보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정책과 실무에 능통한 분이다.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재벌의 불공정거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면서 "다년간 의정 활동을 바탕으로 곧 출범하는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해 미래 성장동력을 회복시킬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사 철학 이외에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보수 표심을 끌어오는 한편, 더 장기적인 전망에서 국민의힘을 철저히 극우 내란 정당의 테두리 안에 가둠으로써 한국 정치 지형을 재편하려는 공격적인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미 대선 전인 지난 2월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정치권을 들썩이게 한 일이 있는데, "진짜 보수와 진보가 힘을 모아 가짜 보수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야 한다"는 '진짜 보수'론은 이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보수 인사 영입은 단기적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임기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김성식 전 의원. 연합
이와 관련해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단순한 인재 영입이 아닌 공세적 헤게모니 전략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김성식(신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 보수 진영 인사를 기용한 것은 단순한 정책 스펙트럼 확장이 아니다"라며 "이는 정치적 정당성과 대표성을 최대화하고 나아가 독점함으로써 경쟁 세력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공세적 헤게모니 전략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이 같은 공세적 전략 실행이 가능한 이유는 상대 진영의 '자멸적 궤도' 때문이다. 윤 어게인 세력, 극우 유튜버들과 손잡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하는 위헌 정당, 극우·극단 세력이 지배하는 컬트 정당, 수권 가능성을 상실한 영남 지역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이 대통령이 과거 보수의 수권 능력과 유능함을 상징했던 인사들을 흡수하는 것은 정책의 스펙트럼 확장을 넘어 자멸하는 보수 정당을 영구적으로 그 궤도에 가두고 정치 지형을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렇게 되면 한쪽은 전문성과 합리성의 포괄적 연합으로 확장하고, 다른 한쪽은 협소한 정체성 정치와 내부 충성 경쟁으로 수축하는 명확한 비대칭성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한 번 형성된 '합리성의 독점' 구조는 자기 강화적 메커니즘을 갖는다. 유능한 인재들은 미래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고, 남겨진 조직은 더욱 극단화하며, 이는 다시 이탈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즉 상대 진영에는 구조적 악순환을 고착시키고, 자신은 선순환 구조를 제도화하려는 헤게모니 전략이 가동된다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은 "물론 성공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만약 성과를 거둔다면 그 결과는 일시적 정세 변화가 아니라 향후 한국 정치의 기본 틀을 규정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이 될 것"이라며 "단순한 정책 논쟁이나 선거 전략 차원에서 접근할 수 없는 심층적 재배치 과정이고, 정당 체계 자체의 재편(경쟁적 양당제의 퇴조와 지배적 중도보수 정당의 등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9일 오후 전남 해남 솔라시도 홍보관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29. 연합
'정책의 스펙트럼 확장을 넘어 자멸하는 보수 정당을 영구적으로 그 궤도에 가두고 정치 지형을 재편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도는 이미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29일 전남 해남군 소재 솔라시도 홍보관에서 만난 취재진이 "이재명 정부에서 보수 인사를 영입한 만큼 국민의힘도 중도 확장에 속도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오히려 우리가 보수 정당으로서 가치를 보다 더 확고히 재정립해야 하고, 당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국면"이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영입에 극도의 경계심이 발동해 폐쇄적인 '윤 어게인' 극우 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더욱 분명히 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스스로 고립 노선을 강화하는 선택을 한 셈이다. 한 술 더 떠 '당원 게시판 사태' 징계 문제 등과 관련해 한동훈 전 대표와 당내 한동훈계 인사들을 상대로 조만간 '과감한' 결단을 내리겠다는 암시도 내놨다.
장 대표는 "우리가 그동안 보수 가치를 확고히 재정립하지 못하고 당성이 부족하거나 해당 행위를 하는 인사들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을 배신하고 당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4일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두고 "장장 24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노고가 많으셨다"고 유화 제스처를 보인 바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날도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를 향해 "정권 몰락의 시발점" "역사에 길이 남을 부역 행위" 등 원색적인 공격이 줄을 이었지만, 같은 보수 진영에서도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에서 '보수의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는 신랄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29. 연합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혜훈 전 의원은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 강을 건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며 "거국내각은 보통 정권 말기의 레임덕 국면에서 등장하는 유화책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이런 파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라고 파악했다.
이어 "반면 보수 진영은 그동안 내부 동질성 강화만 외쳐 왔고, 이제 더 이상 외연 확장이 불가능해졌다. 보수는 닫혀가고, 민주당은 열려가고 있다"면서 "탈영병의 목을 치고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지금은 이혜훈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여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고 나름대로 절박감을 토로했다.
천하람 원내대표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민의힘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배신자라고 맹비난하는 것은 안 맞다. 어쨌든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하는 중요한 자리고, 진영을 초월해서 인사하면 기본적으로는 좋은 일"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인사에 있어서 보수 진영 인물들을 많이 포용한다고 하는 건 보수 진영에 굉장히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 시절에 이혜훈 후보자나 김성식 같은 합리적인 중도 보수 성향의 인물들이 기용이 잘 됐느냐?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아가 "합리적인 중도 성향 인물을 많이 뺏기는 것도 뺏기는 거지만, 이제 정말 보수 진영이 어젠다나 어떤 주도권 모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나 민주당에 뺏기는 그런 구도로 가고 있는 게 아닌지 굉장히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러다가 유승민 전 대표 같은 분이 총리를 하겠다고 그러면 어떡하느냐"면서 "만약 그렇게 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엄청난 찬사를 받고, 가뜩이나 이념적으로나 의석수로나 쪼그라들어 있는 국민의힘 같은 경우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수 진영 인사들을 가져가는 건 전략적으로는 굉장히 뛰어난 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유튜브 '정규재TV' 화면 갈무리
보수 논객인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유튜브 채널 '정규재TV' 라이브 방송에서 이 후보자를 강성이 아닌 '부드러운 보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진 않지만 파격적인 탕평, 실용, 통합을 상징하는 그런 인사가 전격적으로 단행됐다"며 "복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최저임금을 상당한 정책적 과제로 제시하는, 유승민과 유사한 형태의 부드러운 보수라고 볼 수 있다. 이 후보자가 정책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 쪽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정 전 주필은 "국힘당이 정말 속 좁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낀다. 이 후보자에게 축하를 하고 여러 가지 정책 목적을 잘 달성해 주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네주는 것이 국힘당이 해야 할 일"이라며 "국민의힘이 보편적 정당으로 복귀하지 못한다면, 정국은 소위 이 대통령의 탕평주의적 인사 속에서 일방적으로 흘러갈 것이 뻔하다. 만일 그렇다면 누구라도 이 대통령이 손 뻗으면 (당을) 나가고, 남는 건 장동혁과 전한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에선 대체로 이 후보자 지명을 이 대통령의 실용·통합 의지의 재확인이라는 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국가 예산을 기획·편성·총괄·관리하는 요직에 국민의힘 출신 전직 의원인 이혜훈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출신과 이념을 넘어 '오직 민생과 경제'를 위해 적재적소의 인재를 기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탕평'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국민의힘의 비난은 인사를 하지 말라는 발목잡기이자 몽니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당 출신 인사는 측근 인사라며 비판하고, 국힘 출신 탕평 인사는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면 그 누구를 기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이혜훈 후보자가 장관직 지명을 수용한 배경은 무엇인지, 장관으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등은 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면 될 일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청문회 준비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며 "대한민국을 살리는 것에는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다. 민생 살리는 정책에도 파란 정책, 빨간 정책이 없다. 인사에서마저도 갈라치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 통합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게 자명하다"고 단언했다.
실용 통합은 책임 회피나 기억 삭제가 아니다 바로 수정 안 하면 국민은 다시 광장으로 간다
윤석열 대통령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이혜훈 국민의힘 전 의원.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 부른다. 국민이 주권자이며, 국정의 최종 판단 기준은 시민의 삶이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쳤던 수많은 국민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들의 요청이 지금 이 정부의 국정 운영에서 과연 얼마나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요구들이 '이미 지난 일' '이제는 접어야 할 이야기' '국정 안정에 부담이 되는 목소리'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윤석열 탄핵은 단순한 정권 교체의 계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 앞에서, 국민이 거리로 나와 헌정 질서를 직접 방어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광장은 분노의 집합이 아니라 주권의 실천이었고, 이재명 정부의 정통성은 바로 그 국민의 광장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정부란 무엇보다도 그 광장의 요구를 국정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읽히는 것은 긴장과 책임감보다는 지나친 자신감이다. 선거 승리와 정권 교체는 언제나 권력에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부여한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나 이 확신이 비판을 밀어내기 시작할 때였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통합'은 국민의 요구를 국정의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권력 운영의 부담을 관리하기 위한 언어처럼 작동하고 있다.
통합은 갈등을 삭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끝까지 드러내고, 왜 그런 갈등이 발생했는지를 묻는 과정이다. 윤석열 탄핵을 요구했던 국민들의 외침은 단지 한 인물의 퇴진을 넘어, 권력 남용, 검찰 권력의 비대화, 헌정 질서의 후퇴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실용·통합 기조 속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이제는 경제다' '국정 안정이 우선이다'라는 말 속에서, 국민의 정치적 요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현수막.
이러한 태도는 인사 문제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고, 헌정 질서의 회복이 아니라 윤석열 석방을 공개적으로 외쳤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결정은, 국민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헌법 질서를 위협한 권력을 정치적으로 비호했던 인물이 '통합'과 '능력'의 이름으로 국정의 핵심 자리에 오르는 현실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번 인사가 드러내는 명백한 이중잣대다. 군인들에게는 내란 사태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엄정한 징계와 책임을 요구하면서,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고 내란적 상황을 사실상 옹호했던 정치인은 통합의 대상이 된다면, 이 정부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임을 말할 수 있는가. 위로 갈수록 가벼워지고, 아래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책임의 구조를 국민이 정의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인사 논란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하는 정부가 과연 주권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다.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권력의 중심부에서는 희석되고, 명령 체계의 말단에서만 강화된다면, 국민의 분노는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광장에서 가장 크게 외쳤던 '책임 정치'의 정면 부정이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실용·통합이 이런 선택까지 정당화하는 언어라면, 그것은 실용이 아니라 책임회피이며 통합이 아니라 기억의 삭제다. 더 심각한 일은 이러한 선택들이 '우리가 하면 다르다' '우리는 관리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그런 자신감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행위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순간, 정부의 말은 설득력을 잃고 국민의 신뢰는 급속히 무너진다.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탄생시킨 국민과의 긴장 관계 유지다. 비판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광장의 목소리를 '과거의 소음'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시민사회의 비판을 '과도한 요구'로, 문제 제기를 '개혁 피로감'으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부는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정부가 아니라, 자신의 지지자들을 조용히 실망시키는 정부다.
실용이라는 말 역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 누구에게 실용적인가. 노동, 불평등, 권력 감시와 같은 문제는 본질적으로 불편하고 갈등적이다. 이를 실용의 이름으로 정리하려 할 때, 대개 피해는 국민에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간다. 실용이 국민의 요구를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민주적 언어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열린 '국민소통 행보 2탄, 충청의 마음을 듣다'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2025.7.4 연합
국민주권정부란, 국민 앞에서 늘 불안해하는 정부여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수록 더 많이 묻고, 더 자주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감이며, 성찰보다는 속도다. 지나친 자신감은 언제나 화를 불러왔다. 그것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구조적 유혹이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이 정부는 자신을 탄생시킨 국민들로부터 가장 먼저 질문받는 정부가 될 수 있다. 국민은 다시 침묵하지 않고, 민주주의는 다시 광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자신감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의 두려움 위에서만 유지된다. 이 단순한 진실을 잊는 순간, 어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