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동포들을 위해 복수국적과 비자 및 병역문제 등에 대해 모국 법무부와 병무청 담당자가 직접 설명하고 질문답변도 갖는 합동설명회가 오는 11월26일(수) 열린다.
범무부와 병무청 합동 설명회는 11월26일 오후 6시 Bathurst-Finch 소재 (540 Finch Ave. W. North York) 노스욕 한인여성회(KCWA) 사무실에서 7시30분까지 약 70분간 예정으로 진행한다.
설명회에서는 △복수국적, 국적상실 등 국적관련 법령 및 제도 △재외동포 사증(F-4), 출입국 및 체류 요건과 절차 △ 국외여행허가 등 병역관련 절차 및 세부 내용에 대해 모국에서 온 법무부와 병무청의 실무 관계자가 직접 설명한다. 이어 참석자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도 가질 예정이다.
설명회 참석을 원할 경우 사전에 전화(416-340-1234, 1739) 혹은 토론토 총영사관 홈페이지나 여성회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등록해야 한다.
온타리오 주정부가 레지던트 의사선발 규정을 이달 초 갑자기 변경해 해외에서 의학을 공부한 영주권자 및 시민권자들이 반발하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변경된 정책은 지금도 심각한 가정의 부족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지난 10월8일 공지를 통해 내년도 레지던트 매칭(선발과정) 1차 라운드에 지원하는 해외 의과대학 졸업생(IMG)은 온타리오 주내 고등학교를 2년 이상 다녔어야 한다는 새로운 자격 요건을 발표했다.
이에따라 온주내에서 인가된 고교를 2년 이상(학기당 최소 2학기) 다녔다는 성적표 혹은 졸업장을 제출하지 못하는 국제의과대학 졸업생들은 의사선발 과정의 1단계(First Round) IMG포지션에 지원할 수 없고, 두 번째 단계(Second Round)에만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2단계의 경우 마취, 영상의학, 외과 등 인기 전문분야는 1단계에서 대부분 채워져 선발인원이 극히 적고 경쟁도 치열해 사실상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는 게 해당자들의 반발 내용이다.
온주 보건부는 주내에서 교육받았거나 연고가 있는 의료자원을 우대하고 보건인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책 변경이유를 밝혔지만, 선발을 준비 중인 해외의대 졸업생들은 물론 의료계에서도 돌연한 소급적 규정 변경이 신뢰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차별적인 조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현재도 250만여 명의 온주 주민이 가정의가 없어서 고충을 겪고 있는데, 국제의대 졸업자들 진입장벽을 높이면서 의사난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의사들은 온주에서 IMG 레지던트 포지션에 합격하면 졸업 후 최소 5년간 온주내에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한 서약을 체결하는 만큼, 의료인력 유출을 막겠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오는 11월 말 지원을 마감하는 선발시험을 준비 중이던 해외대학 졸업자들은 “캐나다 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참관 실습(observerships)까지 마치는 등 수많은 시험과 힘든 훈련,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는 등 어렵게 지원 준비를 해왔는데, 갑자기 벽에 부딪혔다”며 “주정부가 정책을 철회해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기회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와관련, 캐나다 해외 수련의사협회(Internationally Trained Physicians of Canada)는 온주정부의 레지던트 선발요건 급변경의 철회를 강력히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최근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자신이 아는 것의 경계와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지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모두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된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손안의 작은 화면을 통해 얻은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우리는 건강 전문가가 되고, 정치 평론가가 되며, 경제학자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태도입니다. 내 의견만 ‘정의’이고 나와 다른 생각은 ‘무지’ 혹은 ‘악의’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애국심이 없거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낙인찍힙니다.
이러한 현상의 뿌리에는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만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경험과 지식은 유한하며, 시선은 자신의 입장에 매여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 한계를 인정하는 것, 즉 건강한 ‘메타인지’야말로 성숙한 소통의 출발점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무지에 빠지게 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닫게 되며, 갈등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에게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이야 말로 완벽한 ‘메타인지’를 가지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스스로 한정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6-7) 라고 기록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 계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알지만 배우는 자리에 서셨고, 죄가 없지만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죄의 짐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인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다는 것은, 종교 활동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는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와 한계, 즉 나의 연약함과 죄인됨을 겸허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주장만을 절대선으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의견이 있지만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게 됩니다. 내 주장을 포기하거나 타협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대를 무조건 비난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존중과 겸손의 자세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이미 신앙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우리의 언어와 태도가 예수님의 겸손을 얼마나 닮아 있는지 돌아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직 신앙이 없거나 다른 믿음을 가지신 분들은, 기독교의 ‘믿음’이란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허함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유한함을 아는 지혜, 그리고 그 지혜 위에서 타인을 품는 마음. 이것이야 말로 분열과 갈등으로 지쳐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요? 깊어가는 가을, 우리 모두의 가정과 삶에 성숙한 지혜와 따뜻한 포용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