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암살' 하려는 마녀사냥 막아야

● COREA 2026. 10. 3. 10:0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별점테러와 악플도배로 영화 망치려는 공격들
반세기 지나도 안 풀리는 육영수 피격 의혹들

 

조선일보가 영화 흠집내기에 최선 다하는 이유
고문과 조작 전문가 김기춘 수사 결과 안 믿겨

 

음모론이라는 국민의힘 비난에 돌려 줄 질문들
'내란의 밤'과 겹치는 저항 장면과 언론의 책무
과거의 어둠 넘어 오늘의 진실 촉구하는 영화

 

이번 추석 연휴에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는 1974년 8월 15일에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했다. 감독은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라고 밝혔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우파 진영의 비난과 공격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이 영화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정치적으로 '암살'하려는 마녀사냥의 수준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수만 명이 조직적인 별점 테러를 가하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지독한 악플들이 끝없이 달리고, 그 배우가 출연한 광고와 제품까지 찾아내 공격하고, 법적 조치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들을 괴롭히고, 집요한 공격으로 영화를 좋게 평가한 평론가들이 영상과 글을 내리게 만드는 야만적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이 영화는 1974년 광복절 당시 사건 현장의 경호를 담당했던 경찰관(철구)과 동성일보 사회부장(재환)이 정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사건 설명을 의심하며 진실을 쫓아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정희 독재정권의 민주주의 파괴나 폭압적 언론 탄압들을 보여주고, 이것을 1974년 하반기에 있었던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연결시킨다.

 

하지만 영화를 비판하는 국민의힘과 우파 정치인, 보수 언론들은 이 영화가 '질 낮은 음모론', '역사를 왜곡한 정치적 프로파간다', '역사에 대한 반역',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영화'라면서 맹비방을 가한다. 피격 사건은 당시 정부의 철저한 수사와 문세광의 자백을 통해서 '북한과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암살'로 이미 진실이 드러났다는 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 영화가 '중앙정보부가 암살에 관여했을 가능성'에 관한 의혹을 묘사한 것에 대해서도 '정보기관이 자기 정부 대통령의 부인을 죽인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발한다. 일부 지식인이나 역사학자마저 그런 점을 들어서 이 영화를 '386세대의 뒤틀린 정서에 기반한 공상이며 판타지'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당시 수사 결과는 5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상식적인 의문들을 전혀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의문과 의혹만 커져 왔다. 굵직한 의혹들만 봐도 매우 심각하다. 문세광은 어떻게 총을 가지고도 검문과 경호를 뚫고서 행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가? 당시 행사장에서 대통령 경호실은 왜 경호원들을 행사장에서 나오게 한 것인가?

 

비표가 없어서 행사장에서 나오게 된 문세광을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 이유는 무엇인가? 문세광은 자기 허벅지를 쏘는 오발 사고를 내고도 어떻게 암살 시도를 계속할 수 있었는가? 당시 문세광은 4발을 쐈다는데 7발의 총성이 울린 이유는 무엇인가? 박정희는 부인과 여고생까지 총에 맞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나머지 연설을 마치고 손을 흔들며 나올 수 있었나?

육영수 여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총알은 왜 수사기관으로 넘어가지 않았는가? 피격 사건이 발생한 것과 거의 동시에 문세광이 묵고 있던 호텔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문세광이 입을 열기 전이라는 시점에 조선일보는 어떻게 사건에 대한 자세한 보도를 할 수 있었는가? 일본 정부는 왜 문세광과 조총련에 대한 조사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나?

 

당시 수사에 함께했던 서울시 경찰국 감식계장 이건우 씨가 1989년에 "육영수는 문세광의 총에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내부 고발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문세광이 몇 달 만에 초고속으로 재판받고 사형당해 더 이상 증언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 모든 의혹은 명백한 물증이나 증인을 통해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혹은 풀리기가 어렵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나온 이건우 씨의 증언 - 방송 화면 갈무리 

 

이번 영화 <암살자(들)>뿐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에서 거듭해서 분명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이런 의혹들을 제기해 왔다. 이런 공중파와 공영 방송들이 충분한 취재나 조사를 하지 않고, 근거도 없이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요즘, 가장 앞장서서 영화 <암살자(들)>를 공격하고 있는 조선일보가 결정적인 반박 근거처럼 내세우는 것은 '2002년에 박근혜가 방북했을 때 이미 김정일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의 여러 언론 보도뿐 아니라 심지어 박근혜 자신이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던 가짜뉴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 조선일보가 이토록 사활을 걸고 <암살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에 앞장서는 이유는 알만하다. 1974년에 조선일보는 문세광이 입을 열고 자백을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하루 전에 자세한 보도를 했다. 타임머신이 없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보도였다. 결국,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수록 조선일보의 독재 유착, 가짜 뉴스의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셈이다.

 

무엇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주체가 도무지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 핵심 문제이다. 1974년 당시에 이 사건 수사와 결과 발표를 주도한 것은 당시 중앙정보부 법률보좌관이던 김기춘이다. 김기춘은 회고문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문세광에게 '스파이 소설 <자칼의 날>을 봤냐'고 묻자 문세광이 곧바로 모든 것을 다 술술 불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문세광에게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소설 《자칼의 날》을 읽었지요?' 문세광은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네, 읽었습니다. 선생님도 읽었는가요?' '나도 읽었소. 그런데 당신이 바로 자칼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자칼입니다.'...이렇게 해서 문세광은 말문을 열었다....문세광은 그림을 잘 그렸다... 자술서와 함께 그림으로 그렸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화면 갈무리 

 

'입을 꾹 닫고 있던 암살범이 자기와 같은 스파이 소설을 읽은 사람을 만나자 너무 반가워하면서 순순히 모든 걸 밝히며 하루 만에 그림까지 그려서 알려준 것이 이 사건의 진실'이라는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보다 더 재밌고 웃기는 점이 있다. 그래도 20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검찰총장, 국회의원, 법무장관까지 한 김기춘의 말을 믿어야하지 않냐고?

 

김기춘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토대가 된 유신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장본인이고,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1970년대의 각종 납북 귀환어부 간첩 사건들을 고문으로 조작해낸 사람이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당시에도 법무장관으로서 고문과 조작 수사의 책임자였다.

 

박근혜 정부 때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면서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만들어낸 책임자이다. 평생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수많은 고문과 조작 사건들에 관여한 대표적 인물의 말을 믿으라고 하면서, 그것을 의심하는 영화를 '공상이고 판타지'라고 하니까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가짜 뉴스를 앞세우고, 김기춘을 믿으라며 영화 <암살자(들)>이 제기하는 의혹들을 깔아뭉개는데 열심인 오늘날의 조선일보 같은 언론사와 기자들을 보자면, 영화 속에서 탄압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찾으려는 동성일보 사회부장 같은 기자들이 판타지나 공상 속의 인물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문제제기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고, 오늘날에도 의미가 크다. 반면 이것이 '음모론에 기반한 반인륜적 영화'라는 국민의힘과 보수 우파들의 비난은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그토록 찬양하며 관람을 권유하던 <건국전쟁>이야말로 민간인 수십만을 희생시킨 독재자를 찬양하는 반인륜적 내용 아니었는가?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윤석열과 황교안 같은 정치인들이 칭찬하면서 관람한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야말로 음모론에 기반한 영화 아니었는가? 지금 보수 우파 진영에서 제기하는 '허진호 감독이 중국 자본으로 북한 영화를 리메이크했다'는 비난이야말로 음모론 아닌가? 국민의힘은 왜 '중앙정보부가 대통령 부인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는지 스스로 자신들의 뿌리를 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이 정치적 뿌리로 여기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박정희 정권 때 대통령이 젊은 여성과 여성 연예인들을 데리고 유흥을 즐기다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을 암살한 것이 바로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다. 그것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 공작을 벌이던 어둡고 기막힌 시절이었다.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 8.15 저격 사건의 영향은 대체로 분명합니다. 북이 득을 본 게 없지만, 유신정권으로서는 득을 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박정희가 좋아했던 말대로 '총화단결'이 막 이루어진 것이죠... 1973년 동경에서의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한 불리한 여론을, 이 새로운 사건으로 어느 정도 덮어버릴 수 있었고요. 그리고 주요 적대 세력으로 간주됐던 조선총련에 대한 '조치'를 일본 정부에 큰 소리로 요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영화에서 경찰관 철구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거듭 다짐하던 '애국자'였다. 그런데, 자신이 사는 시대의 어두운 진실을 깨달으며, 이제 '애국가' 방송을 들어도 씁쓸하게 그냥 걸어가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걸어가는 철구와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올리고 다같이 서 있는 정보기관원들의 대비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됐다.

 

지금, '빨갱이가 만든 저질 음모론 영화'라면서 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선동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보수 우파들의 걱정과 공포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들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보고 의문을 품게 되는 일만은 절대 막고 싶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권력이 하는 말'과 '내가 알게된 현실'이 다를 때 의문을 품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 

 

그러려면 그 모순을 파헤치고 알려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언론이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영화에서 재환은 그 일을 한다. 따라서, 이것은 육영수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아서 무엇보다 언론과 기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영화다. 영화 속에는 '권력이 숨기려는 진실을 찾아달라'는 언론과 기자를 향한 감독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런데 박정희 군부독재도 아닌 오늘날,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보수적 주류 언론들은 거꾸로 스스로 권력 카르텔의 일부와 그 하수인이 되어서 진실을 숨기는데 공모하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윤석열 검찰-언론 카르텔 정권이었고, 만약 윤석열의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암살자(들)>에서 보이는 끔찍한 장면들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됐을 것이다.

 

'육영수를 죽인 것은 북한과 조총련이다'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를 믿지 않고 다른 주장을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던 그런 과거로 말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경찰과 폭력배들에 맞서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처절히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에서 우리가 목격한 장면과 너무나 비슷하다. 

 

결국, 이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빛의 혁명'으로 윤석열의 내란을 막아낸 덕분에 한국 사회가 볼 수 있게 된 최고의 정치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국민의힘과 보수 우파 세력의 마녀사냥은 '빛의 혁명'이 낳은 성과와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위한 반혁명적 공격의 중요한 일부라는 뜻이기도 하다.

 

허진호 감독은 어두운 시절에 대한 가슴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펼치며 우리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봄날은 간다> 같은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멋지게 만들어 내던 그 솜씨는 역사의 진실을 찾는 이 영화에서 더욱 정교하고 묵직해졌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에 버금가는 동성일보 사회부장 재환의 명대사가 계속 귓가를 울린다. “애국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실이다.”                                <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

 

 

 

민주정부에서도 살아 꿈틀거리는 국가보안법

● COREA 2026. 10. 3. 10:0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윤석열의 ‘반국가세력’ 색깔공격 근원인 국보법
윤석열 내란 시도 가능했던 것도 국보법 덕분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공안 혐의 압색에 동원돼

 

처벌 위험보다 공포 내면화로 더 타격받는 국민
극단과 혐오 부추기는 배타주의 사회로 전락해
반드시 폐지해야할 지배엘리트의 정신통제법

 

민주정부 하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일부 사람들은 “민주정부로 교체되었는데, 굳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상당수의 민주당 정치인들조차 국가보안법은 민주정부 하에서는 사문화된 법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것을 폐지하기 위해 굳이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민주정부는 국가보안법으로 국민들을 탄압하거나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국가보안법과 윤석열 일당의 내란

 

그러나 윤석열 일당의 내란은 노무현 정부 시기에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폐지가 좌절된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잘 보여준다. 윤석열 일당은 입만 열면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며, 내란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반국가세력’이 국가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색깔 공격에 몰두했다. 그런 사전 작업에 기초해 윤석열은 전격적으로 군대를 동원한 내란을 기도했지만, 다행히도 국민적 항쟁으로 실패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극우세력은 정권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빨갱이’, ‘좌경용공세력’, ‘종북세력’, ‘반국가세력’ 등이 국가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색깔 공격을 퍼붓고는, 그것을 명분 삼아 쿠데타나 내란을 일으킴으로써 정권 위기를 모면해왔다.

 

이때 극우세력이 사용하는 ‘빨갱이’나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은 형법에 기초해 범죄자 혹은 범죄집단을 규정하는 개념이 아니다. 형법 등의 법은 범죄 행동이나 범죄 모의처럼 반사회적·반국가적 행위만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국가보안법은 특정한 행위가 없더라도 머릿속 생각을 처벌할 수 있다. 윤석열 일당이 사용한 반국가세력이라는 용어는 그들이 보기에 머릿속에 불순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국가보안법에 기초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윤석열 일당이 감히 내란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 국가보안법 덕분이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윤석열의 내란 기도는 민주정부 하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할 경우, 훗날 극우세력이 그것을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민주정부에서도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재명 정부 들어와 발생한 국가보안법 사건들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최근 경찰은 통일시대연구원의 한 독서토론 모임에서 2년 전에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의 공개자료 등을 읽고 토론했다는 이유로 토론회 참가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지난 17일 이정훈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등 8명을 대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 가운데 5명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이 사건은 이재명 정부 하에서도 극우내란세력과 공안기관이 여전히 국민들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하면서 국민들의 정신과 마음을 검열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중민주당 압수수색을 마친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민중민주당에서 압수한 물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2024.8.30 연합

 

내면화된 국가보안법

 

사실 오늘날의 한국인들 중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일까? 누군가가 SNS로 친구를 사귀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에게 호감이 생긴 그가 “너는 어디에 살고 있냐?”라고 묻자 상대가 평양에 산다고 대답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는 상대와 더 친해지려고 할까? 아니면 깜짝 놀라 친구 관계를 끊어버릴까?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존재 유무를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도 북쪽 사람과 친구가 되면 위험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인지하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보안법이 한국인들의 마음과 행동을 의연히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중형에 처한다는 법이 제정되면 사람들은 처벌이 두려워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그 법이 시행된 지 수십 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이럴 때 심리학에서는 그 법이 내면화·내재화 - 사회적 차원에서는 관습화라고도 할 수 있다 - 되었다고 말한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중형에 처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하지 않는 것이 외적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런 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은 내적 감시나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나서 한동안 그것은 외적 공포로서 국민들에게 작용했지만, 최근에는 국가보안법이 국민들에게 완전히 내면화되었다.

 

외적 공포보다 내면화된 공포가 정신건강에 더 해롭다. 외적 공포는 적어도 공포의 대상을 인식할 수 있기에 그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내적 공포는 공포의 대상을 인식할 수 없기에 저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내면화된 상태가 장기화되면 한국인들은 국가보안법의 해악에 둔감해지는 동시에 그것으로 인한 정신건강 악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한국 사회의 배타성

 

정상인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도 공존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도 존엄한 사람이며 한국 국민이므로 그를 존중하고 그와 공존하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는 공존하지 않겠다고 믿는다면 어떨까? 나아가 그가 평소에 수첩에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놓았다가 나중에 죽이려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은 그를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정상인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들과 공존하려 한다. 반면에 정신이 병든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 공존은 정상인의 심리이고, 배타주의는 병든 사람의 심리이다.

 

국가보안법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 자신이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 공존하라고 권유하는 법이 아니라 그들을 적대하고 배타시하라고 강요하는 법이다. 한국 사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타협하고 공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를 적대시하면서 제거하려고 하는 배타성이 강하다. 한국인들은 70여 년 넘게 극우세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죽이고 처벌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이로부터 한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까지도 포용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사회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적대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려는 배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로 전락했다. 공존을 거부하는 배타주의는 극단주의나 혐오주의의 본질이다. 국가보안법은 한국 사회를 공존이 아닌 배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시킴으로써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첨예화·극단화시키고 있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연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2.1

 

국가보안법과 국민 개돼지론

 

국가보안법의 문제점과 해악에 대해서는 숱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는 한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국가보안법은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극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검열·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이다. 한국 정부, 특히 공안기관과 재판부는 국가보안법을 통해 국민들에게 이런 책은 읽으면 안 된다거나 저런 사상은 공부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검열하고 통제할 수 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사회가 아동·청소년들에게, 혹은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성인물이나 인종주의 같은 극단적인 내용이 담긴 자료들을 금지하는 것은, 아동·청소년들이 미성숙하여 그런 것들을 접했을 때 정상적인 발달이나 성장이 위협당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가 성인에 대해서 마치 아동·청소년을 대하는 식의 검열과 통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한국의 지배엘리트들이 한국 사회가 그런 검열과 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그들이 암묵적으로 국민들을 미성숙한 인간들 심지어 개돼지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성인 혹은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이것은 허용하고 저것은 금지하는 식의 통제를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절대다수 국민들에게 극소수 지배엘리트가 허용하는 세상만을 보게 만들고, 그들이 그려주는 세상만이 참이라고 믿게 만드는 극악한 정신통제법이자 무지몽매법이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제2의 내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정신적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공존적이고 화목한 사회를 위해서,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

 

 

중수청·공소청 역사적 출범 했지만 '어수선'
법무장관·공소청장·중수청장 모두 공석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 내부논쟁도 계속

 

현장도 어수선…기대한 첫날 아니지만
검찰청 폐지 의미는 커…제도의 현실화
새 기관 안착, 민주적 통제 등 남은 과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2일 서울 중구 르네스퀘어에서 중대범죄수사청 현판식을 하고 있다. 2026.10.2 [공동취재] 연합

 

수사권과 기소권을 손에 쥐고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해 온 검찰청이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기소와 공소유지는 공소청으로 분리하는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2일 첫발을 내디뎠다. 오랫동안 검찰개혁을 요구해 온 민주·진보 진영에선 역사적인 날이라 할 만하다.

 

특히 '검찰 공화국'이라 불린 윤석열 정권의 12·3 친위쿠데타를 극복하고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 4개월 만에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라는 제도적 변화를 현실로 만들었다는 의미는 크다.

 

다만 검찰개혁의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할 이날의 풍경은 기대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새 형사사법체계를 지휘해야 할 법무부 장관과 초대 공소청장(검찰총장)은 모두 공석이고, 중수청 역시 초대 청장이 없는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전종민 중수청 차장이 청장 직무대행으로 이날 개청식을 주재해야 했고, 공소청도 이정현 차장검사가 청장 직무대행을 맡는 체제로 첫발을 뗐다.

 

정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26일 물러난 뒤 후임으로 지명된 김승원 전 장관 후보자가 비위 의혹 등으로 자진 사퇴하면서 법무부 장관 자리는 한 달 넘게 비어 있다. 초대 공소청장은 아직 임명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의 공소청장 후보 추천 접수 마감일은 공소청 출범 이후인 오는 6일이다.

 

장관도 청장도 없었다…'대행 체제'로 출발

 

검찰개혁의 상징성이 있는 초대 중수청장 인선을 둘러싸고 여권 내부의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검찰청 폐지라는 오랜 숙원을 이룬 날, 정작 그 뒤를 이을 핵심 수사기관의 수장을 놓고 민주·진보 진영이 갈라져 논쟁하는 장면은 누구도 바라던 첫날의 풍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7일 검사 출신 김지용 변호사를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로 임명 제청했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 김 후보자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 당시 반대 성명 참여, 문재인 정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 입장 발표 등을 놓고 김 후보자가 초대 수장으로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란이 여권 내부에서 벌어졌다. 이른바 '친윤석열(친윤) 인사' 논란이다.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 대한 추가 검증을 지시했다. 이후 청와대는 "김 후보자에 대한 추가 검증 결과 당초 검증했던 결과와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고(성기홍 홍보소통수석 10월 1일 브리핑), 이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친윤 아닌, 굳이 말해 반윤 행적은 이미 언론 보도로 다 확인되는 사실"이라며, 김 후보자에 대해 직접 엄호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전날인 1일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재가해 임명 절차를 다시 진행하기 시작했다. 김 후보자의 과거 행적을 들어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과 검증 결과 결격 사유가 없다면 임명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은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공소청·중수청이 출범을 알린 이날도 엑스(X·옛 트위터)에서 김 후보자와 관련해 "친윤이라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겠나"라고 거듭 옹호했다. 한 누리꾼이 "김 후보자가 추미애 법무장관 시절 승진했다는 이유로 '친윤 검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윤석열도 괜찮은 검사라 할 수 있느냐"고 한 글에 대한 답변 형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100% 완벽한 후보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국민추천과 독립된 추천위원회의 4배수 압축, 행안부 장관의 제청을 무시하고 국회의 청문기회를 박탈해야 할 정도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일단 국회 청문회를 거친 후에 최종 임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2일 출범한 서울 서초구 공소청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6.10.2. 연합

 

공소청장·중수청장 등 인사 문제와 함께, 새 형사사법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할 인력 문제도 남아있다.

 

중수청의 경우, 인력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중수청은 출범을 앞두고 검찰청 검사와 수사관 등을 대상으로 두 차례 특례임용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1차 특례임용엔 2375명이 신청했지만 이 가운데 615명이 철회해 신청자가 1761명으로 줄었다. 출범 직전인 지난달 15일부터 2차 특례임용에 들어갔다. 두 차례 특례 임용 신청자는 1962명으로 정원의 68.3% 수준이다. 중수청법 부칙에 따라 검찰청·공소청 소속 공무원의 특례임용은 내년 4월 30일까지 계속 된다.

 

공소청 역시 당분간 인력 재편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공소청 정원은 옛 검찰의 1만 707명에 견줘 23.5%를 줄인 8182명으로, 검사는 2292명이다. 정원의 80~85% 수준인 약 1900명 선에서 출범하게 됐지만 여전히 검사들의 정원이 많다는 지적이 여권에서 제기된다. 추후 검사정원법 개정 등을 통한 인력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중수청 특례임용이 내년까지 계속되는 만큼 양 기관의 최종 인력 구조가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청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없애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역사적인 제도 개혁을 이뤘지만, 새로운 체제를 책임질 인사와 조직은 아직 안착하지 못한 셈이다.

 

어수선한 첫날이 개혁 의미 지우진 않아

 

인사와 인력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개문발차한 탓에 이날 대다수 언론에선 어수선한 공소청·중수청 출범 첫날 현장 풍경을 집중해서 다루고 있지만,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라는 개혁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기존 검찰은 직접 수사하고,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피의자를 기소한 뒤 법정에서 공소까지 유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단일 조직 안에서 행사해 왔다. 때로는 이 권한이 정치적으로 활용돼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기도 했다.

 

새 제도에서는 공소청이 직접 수사 기능을 갖지 않고 공소 제기와 유지에 집중한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부패·경제·방위산업·마약·내란외환·사이버 범죄 등 법률이 정한 중대범죄 수사를 담당한다. 기존 검찰의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지휘·감독권도 폐지됐다. 검찰이라는 단일 기관에 집중됐던 수사와 기소 권한을 분리한다는 원칙을 제도적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소청·중수청이 출범한 2일은 검찰개혁의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히 간판을 바꾸고 조직을 둘로 나누는 것만으로 검찰개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이를 운용하는 '사람'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수청이 과거 검찰 특수수사의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는 수사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 공소청이 직접 수사권을 잃은 뒤 본연의 기소와 공소유지 기능에만 충실한 기관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두 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중수청 출범 첫날 전종민 청장 직무대행이 강조한 것도 '절제'였다. 전 직무대행은 이날 개청식 인사말을 통해 "국가 권력을 입법과 행정과 사법으로 나누었듯, 이제 우리는 수사와 기소를 나눈다. 그러나 권력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나뉜 권력이 저마다 스스로를 절제할 때, 그 나눔은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중수청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2일 출범한 서울 서초구 공소청 앞에 서초경찰서, 공소청, 서울중앙지방공소청, 서울광역공소청 도로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2026.10.2. 연합

 

검찰개혁의 성패는 이제부터

 

검찰개혁은 민주·진보 진영에 오랜 숙제였다. 그간 민주 정부를 거치면서도 권력기관인 검찰의 권한을 어떻게 분산하고 통제할지를 놓고 수많은 논쟁과 시행착오가 반복됐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충돌이 벌어졌고, 개혁이 좌초되거나 후퇴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78년 검찰청 체제를 완전히 끝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커다란 진전이다.

 

물론 역사적인 개혁일수록 그 첫 장면이 중요하다. 법무부 장관도, 공소청장도 없이 새 체제가 출발하고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를 놓고 정부·여당과 지지층 내부에서 논쟁이 이어지는 지금의 모습은 검찰개혁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들이 기대했던 출발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청와대와 정부·여당에 더 무거운 책임이 남겨졌다고 할 수 있다.

 

당·정·청은 법무부와 공소청, 중수청의 지휘체계를 조속히 안정시키고 수사 공백이나 사건처리 지연으로 국민이 불편과 피해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수청장 인선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인사청문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와 후보자의 설명을 통해 충분히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 기관들이 또 다른 이름의 '검찰'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검찰청의 간판은 내렸지만, 검찰개혁의 성패는 검찰청의 빈 자리에 들어선 공소청과 중수청이 앞으로 어떤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통해 판가름 날 전망이다.

 

78년 만에 찾아온 검찰청 없는 첫날. 마음껏 웃고 축하하기에는 어수선한 출발이지만, 이제 정부와 국회가 집중해야 할 일은 검찰청 폐지로 시작한 변화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사사법체계로 안착시키는 일이다.

 

윤석열 정권 시작부터 검찰개혁을 줄곧 요구해 온 촛불행동은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청 폐지를 "기획수사, 조작수사, 공작수사 등으로 점철되었던 정치검찰을 해체하고 수사·기소 분리와 보완수사권 폐지를 요구해 온 국민들이 끈질기고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소중한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검찰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에 완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소권, 수사권 자체도 막강한 권력으로, 국민의 통제력, 통제권이 높아지지 않는 한 권력기관을 장악한 세력에 의해 언제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우리는 수십 년간 권력관계를 형성해 왔던 정치검찰들이 이대로 물러서지 않고 두 기관을 도로 검찰화하기 위해 호시탐탐 집요하게 교활한 공작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에 대해선 "과거 행적 해명과 개혁 의지가 불투명하다"며 우려를 나타낸 뒤, "청와대와 행안부는 검찰개혁의 성공을 바라는 국민들의 우려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 김성진 기자 > 

 

 

'중수청 비용' 언론의 걱정이야말로 거대한 낭비

언론들 철저한 준비 부족과 혈세 낭비 비판
검찰 공화국 체제 폐해와 사회적 비용은 외면
2500억 예산은 낭비 아닌 사법정의 위한 투자
냉소적 비관론 자체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은 12일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직접 수사 범위가 '9대 중대 범죄'로 규정되는 내용을 담은 중수청·공소청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모습. 2026.1.12 연합

 

2일 드디어 발족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두고 언론과 야권의 비판이 거세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쥐고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정치검찰’의 폐해를 근절하는 역사적 개혁”이라고 평가하는 언론도 있지만 대다수는 중수청에 대한 우려와 지적을 주로 내놓고 있다.

 

중수청에 대한 지적과 우려는 충분히 나올 만하다. 언론의 보도대로 수장 인선도 끝나지 않았고, 수사 인력도 정원에 미치지 못한 상태다. 인력 부족과 수사 지연이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최소 3~4개월 동안은 수사 공백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예상에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중앙일보 1일자 사설 <수장도, 손발도 없는 중수청·공소청, 피해는 국민 몫인가>가 이같은 비판을 요약하고 있다. 이 사설은 입법과 출범 준비가 졸속이었다면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오랜 세월 다듬어지며 안착해 온 형소법과 관련 제도를 정치 논리 때문에 졸속으로 뜯어고친 대가가 국민 개개인에게 전가될 우려가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 '오랜 세월 다듬어지며 안착해온 형소법과 관련 제도'라는 전제부터가 검찰개혁과 중수청 출범이 요청됐던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중수청이 전국 6곳 거점 청사의 사무실 임대료·관리비 명목으로만 25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출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2일자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직접 수사비 외에도 ‘방값’으로 매달 46억원씩 혈세가 투입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혈세 낭비’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것이다. “멀쩡한 검찰은 때려 부수고, 수천억 원에 이르는 새 사무실 비용을 혈세로 메우는 것에 동의할 국민이 몇이나 되겠냐”는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은 이같은 공세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조선일보 2일자 사설.

 

그러나 이 비판은 이 사안의 본질을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혹은 고의로 외면하고 있다. 현재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소요되는 자원이 비용이라면 그 비용은 또한 미래의 성과와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언론이 던져야 할 질문은 “새 청사를 짓는 데 2500억 원이 과도한가”가 아니다. “수십 년간 검찰의 권력 남용과 정치적 편향, 그리고 그로 인해 한국 사회가 치러야 했던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비용과 비교할 때, 이 비용과 투자는 과연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보수 언론과 정치권은 중수청 설치 비용을 마치 없어도 될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 비용은 한국 사회에는 일종의 투자랄 수 있다. 그것이 비용이라면 검찰 공화국 체제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과거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인 것이고, 투자라면 민주주의와 사법 정의의 정상화를 위한 내일을 위한 투자인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수사를 취사선택하고, 제 식구 감싸기로 공정성을 훼손했다. 검찰 권력의 남용으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 것에 따른 비용, 국가 시스템이 입은 신뢰 손실, 부당하게 꺾인 무고한 개인들의 삶, 그리고 왜곡된 사법 정의가 사회 전체에 안긴 유·무형의 손실은 2500억 원이라는 숫자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그 거대한 해악을 바로잡기 위해 수사 기소 분리와 새로운 수사 기관 설립에 나서는 일에 이 정도의 예산이 드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합리적이고 필수적인 투자다. 여기에 “혈세 낭비”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본말전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들은 ‘비용’을 내세우지만 그 같은 언론의 보도야말로 사실은 한국 사회가 치르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비용이다. 중수청의 태생적 한계를 부각하고 실패를 예견하며, 나아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듯한 냉소와 비관으로 가득 차 있는 언론의 보도야말로 내일을 위한 투자의 성공에 장애물을 놓는 것이다. 과도하게 지불하고 있는 비용인 것이다.

 

언론에 필요한 진짜 질문은 따로 있을 것이다. 

“이 정도 비용,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한국 사회가 수사 체제를 개혁할 만한 가치와 필요가 있는가?”

“검찰의 비대화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국민을 위한 수사 기관을 안착시키는 데 이 투자가 미칠 장기적 성과와 편익은 무엇인가?”

 

이러한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눈앞의 임대료 숫자만 부각하며 비관론을 퍼뜨리는 것야말로 한국 사회의 거대한 낭비다. 냉소와 비관 자체가 실패로 이끌어가며 큰 비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등 언론들은 검찰청 폐지 법안 통과로 수사·기소 분리 방침이 확정된 게 1년 전인데도 미리 철저히 준비하지 않았다고 질타한다. 조선일보는 “민주당 정권은 검찰 개혁만 외치고 핵심 기관들의 시스템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면서 “만약 민간 기업이 이렇게 했으면 책임자를 문책하고 기관은 퇴출되거나 파산했을 것이다”고 몰아붙인다. 이 신문은 4면에는 <'거악 척결' 상징이던 검찰, 李정부서 '거악'으로 몰려 간판 내려>에서 검찰이 부패 척결과 인권 보호의 상징이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전두환 정권 말기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거치며 검찰이 “인권 보호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했다.

 

중수청의 좌초나 표류를 염려하기보다는 사실상 ‘파산’을 기대하고 바라는 듯하다. 검찰 개혁을 '멀쩡한 거악 척결 기관'을 퇴출시키는 거악인 듯이 몰아가고 있다. 오랜 열망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탄생한 새 기관의 출범 첫 날부터 퇴출과 파산을 마치 예언이나 주문처럼 얘기하는 이같은 태도야말로 언론으로서의 하나의 '파산 상태'를 보여준다.   < 이명재 기자 > 

 

검찰 개혁의 겉과 속

홍순구 만평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은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냈느냐가 아니다. 처음 무엇을 약속했고, 그 약속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 결과로 증명된다.

 

유시민 작가가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개혁 발언을 두고 “국민을 속였다”고 비판하자 대통령실이 반박에 나섰다.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왜곡했다며 법적 대응까지 검토한다고 한다.

 

실제 검찰개혁의 ‘결과’만 놓고 보면 대통령실의 반박도 무리가 아니다. 현 정부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능을 나눴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원칙도 법률에 담겼다. 대통령실이 “약속한 대로 해냈다”며 억울해하는 이유다.

 

그러나 유 작가가 던진 질문은 단순히 결과물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2025년 9월 검찰청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정부와 여당은 시행을 1년 뒤로 미뤘다. 78년 된 검찰 조직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1년은 단순한 행정 준비기간만은 아니었다. 보완수사권은 어떻게 할 것인지, 검사가 새 수사기관의 수사에 개입할 여지는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원칙을 실제 제도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숙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정부안이 논란이 됐다. 공소청 검사가 중수청의 수사 개시를 통보받는 등 검사가 수사 과정에 관여할 가능성을 남긴 내용이 포함됐고, 민주당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관련 조항이 수정되거나 삭제됐다.

 

이 장면이 매우 중요하다. 검찰청을 없애는 것과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청의 간판을 떼는 것은 행정이다. 하지만, 검찰의 권한을 떼어내는 것은 개혁이다.

 

대통령실은 최종 결과를 놓고 말한다. “검찰청을 없애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했다. 그러니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반대했다는 주장은 왜곡이다.” 틀린 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시민은 그 과정에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1년의 시간은 왜 필요했는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숙의했는가. 왜 정부안에 다시 수사·기소 분리의 원칙을 흔들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갔는가. 그리고 왜 결국 민주당이 다시 고쳐야 했는가.

 

이 질문까지 ‘왜곡’이라고 한다면 논쟁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개혁은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원칙으로 출발했는지, 그 원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고쳤는지도 개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 작가의 “국민을 속였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거칠다. 이 대통령이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라는 거대한 제도 개편을 추진해온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남는 질문은 있다. 대통령이 생각한 검찰개혁과 국민이 이해해 온 검찰개혁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면, 왜 그 차이를 지금까지 설명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검찰청을 없앤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면 된다. 그 1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개혁했는지, 그리고 그 개혁이 당초의 약속보다 어떻게 더 크게 진척되었는지를 증명해 보이면 될 일이다. 굳이 과거의 말로 방어하려 애쓸 필요도, 현재의 성과를 외면한 채 ‘속였다’며 날을 세울 필요도 없다.

 

정치적 비판은 정치의 장에서 풀어야 한다. 유 작가의 표현이 거칠고 단정적이긴 하지만, 지지층과 대중이 체감해 온 개혁의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짚어내는 정치적 수사로 읽어낼 여지가 충분하다. 이를 곧바로 법적 조치로 대응하겠다는 태도는, 정부가 진영 내의 아픈 지적을 포용하기보다 억누르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비판을 법으로 다스리려는 순간 민주주의 공론장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정치는 말의 싸움이 아니라 기록의 싸움이다. 청와대가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다면 법적 칼날을 검토하기보다, 지난 1년 동안 수사·기소 분리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어떤 숙의를 거쳤고 제도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를 투명한 기록과 성과로 증명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태도일 것이다.

 

결국 국민이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은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냈느냐가 아니다. 처음 무엇을 약속했고, 그 약속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그 진실의 기록을 냉정하게 지켜볼 뿐이다.                              < 홍순구 시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