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체포동의안 445자…이재명 땐 1만 1252자

● COREA 2025. 9. 12. 12:4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정성호, 1분 26초 간략 설명…동의안 가결
권성동 자신은 결백하다며 '셀프 찬성표' 쇼

이재명 땐 한동훈, 30분간 노골적 피의사실 공표
국회의장 주의도 무시하고 정치행위 일삼아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동료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김건희 특검이 국회에 송부한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의원 표결을 통해 처리됐다. 2025.9.11. 연합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11일 가결된 가운데, 과거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무죄 추정 원칙도 무시한 채 노골적으로 정치 편향 발언을 하며 피의사실을 공표해 파문을 일으킨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체포동의 요청 이유 설명 장면이 회자된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재석 177명 중 찬성 173명, 반대 1명, 기권 1명, 무효 2명으로 통과시켰다. 투표는 무기명 비밀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결에 앞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권 의원의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했다.

 

"김건희와 명태균 권진법사 관련 국정농단 및 불법 선거개입 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는 지난 2025년 8월 28일 권성동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습니다.

범죄 사실의 요지는 권성동 의원이 2022년 1월 5일 통일교 관계자로부터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통일교의 정책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고, 정부 예산 및 조직 인사 등을 통해 통일교의 대규모 프로젝트와 행사를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고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식당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원 등 명목으로 현금 1억 원의 정치자금을 기부받았다는 것입니다.

특별검사에 따르면 권성동 의원은 현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공여자의 일관된 진술 및 다이어리, 문자메시지, 사진 등 객관적 증거에 의하여 혐의가 입증되고 사안의 중대성과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 등에 비추어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가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특별검사 위 구속영장 청구에 따라 서울지방법원 판사 남세진은 2025년 8월 29일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 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하였고 이에 법무부는 정부를 대표하여 국회법 제26조에 따라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를 국회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정 장관이 약 1분 26초에 걸쳐 읽은 체포동의 설명 이유는 문장 부호와 공백을 제외하고 445자였다. 역대 가장 길었던 지난 2023년 9월 21일 한동훈 전 장관의 이 대통령에 대한 체포동의 이유 설명 1만 1252자와 비교하면 무려 1만 자 이상 차이가 났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김건희 특검이 국회에 송부한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의원들 표결을 통해 처리됐다. 2025.9.11. 연합
 

한 전 장관은 당시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약 30분 동안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면서 범죄로 확정되지 않은 내용들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 "전례없이 파격적이다" "말도 안되는 청탁을 들어준 것이다" "국제안보까지 위협한 중대 범죄 행위이다" 등 감정이 섞인 사견을 노골적으로 덧붙였다. 법치를 중시해야하는 법무부 장관이 오히려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장관이냐 검사냐" "법무부 장관 사퇴하라"며 현장에서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지만, 한 전 장관은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김진표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한 전 장관에게 "지나치게 한쪽 주장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그동안 관행에 맞지 않고 잘못하면 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요약해서 설명해달라"고 주의를 줬지만, 한 전 장관은 의장의 요청도 무시하고 준비한 18쪽을 거의 그대로 읽었다. 사실상 행정부의 일개 장관이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를 무시한 셈이다.

 

과거 법무부 장관들이 길어야 1100~1400자 안팎으로 체포동의 이유를 설명하며 대략적인 개요를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과 비교했을 때, 한 전 장관의 체포동의 이유 설명은 정치적인 의도가 명백했다.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한동훈 법무장관이 취지 설명을 하던 중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김진표 국회의장이 짧은 설명을 주문하고 있다. 2023.9.21. 연합
 

한 정 장관은 그에 앞서 지난 2023년 2월 27일에도 이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동의 요청 이유 설명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가장 긴 5459자를 읽었다. 그러면서 "개발 이권의 주인인 성남시민에게 천문학적 피해를 줬다"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 아니라 단군 이래 최대의 손해라는 말이 어울린다" "변명이 통할 순 없을 것이다" 등의 자위적인 표현을 썼다.

 

2022년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할 때에도 피의사실을 낱낱이 공표하면서 "노웅래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는 녹음파일이 있다. (중략) 노웅래 의원의 목소리, 돈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되어 있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한편 이날 권 의원은 정 장관의 체포동의 이유 설명 뒤, 신상발언을 통해 "특검이 저에 대해 제기한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공여자(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가 1억 원을 전달했다는 그날은 제가 공여자와 처음으로 독대한 자리였다"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어느 누가 처음으로 독대한 자리에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주고받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저는 과거에도 불체포 특권을 헌정사 처음으로 포기한 바가 있다. 이번에도 불체포 특권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당당하고 결백하기 때문"이라고 거듭 주장하며 "그래서 저는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민주당에 무죄를 호소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한 분도 빠짐없이 저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찬성해달라"고 했다.

 

표결에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고, 권 의원 본인은 투표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권 의원은 투표 직후 찬성을 뜻하는 '가'라고 적힌 투표 용지를 접지 않고 국회 본회의장 카메라에 잡히도록 의도적으로 내보였다.                               < 김성진 기자 >

 

 

'3대 특검 기간 연장 포기' 국힘과 합의에 발칵
이 대통령 "내가 시켰단 여론, 비난 엄청 쏟아져"
"정부 조직 개편과 내란 규명 어떻게 맞바꾸나"
"그런 건 협치 아냐"…'야합'과 '협치' 철저 구분

민주 의원들과 지지층 격앙…"타협할 사안 아냐"
김병기 "긴밀 소통해…정청래 사과하라" 직격탄
정청래, 비공개 의총서 "부덕의 소치" 결국 사과
당 지도부-원내대표단간 소통에 문제있었던 듯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11일 국회에서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5.9.11. 연합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3대 특검의 수사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지 않고 인력 증원도 최소화한다는 내용을 국민의힘과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강력 반발하고 지지층도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등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그건 협치도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국민의힘과의 합의는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 그 과정에서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불협화음과 갈등이 표출되는 등 민주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놓고 근본적인 의문이 커지고 있어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전망이다.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 판단으로 이런 무리수를 뒀다고 보기는 어려워 혹시 이 대통령의 '협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지지층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까지 원망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판의 화살이 엉뚱한 표적으로 향하자 여론에 민감하고 국민과 소통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 본인이 이 사안에 관해 직접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협치'와 '야합'은 다르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5.9.1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란 특검의 연장을 안 하는 조건으로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주기로 했다고 오늘도 좀 시끄럽더라"며 "그런데 이걸 이재명이 시킨 것 같다는 여론이 있더라. (국민의힘과의) 협치, 타협을 얘기한 걸 보니까 분명히 (합의)하라고 뒤에서 슬쩍 시킨 것 같다는 여론이 있어서 저한테 비난이 엄청 쏟아지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저는 몰랐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하길 바라지 않는다"면서 "정부조직법을 고쳐서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것과, 내란의 진실을 규명해 그야말로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서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내란이라고 하는 군사 쿠데타가 벌어지는 않도록 하는 이 당위를 어떻게 맞바꾸냐라는 게 제 생각"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또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자는 거지, 정부 조직 개편 안 한다고 일을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란의 진실을 규명해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서 다시는 꿈도 못 꾸게 만드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본질적인 가치 아닌가? 그걸 어떻게 맞바꾸나?"라며 "그런 건 타협이 아니다. 저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런 거는 협치도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1일 국회에서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5.9.11. 연합
 

정청래 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어제 협상안은 제가 수용할 수 없었고 지도부 뜻과도 다르기 때문에 어제 (밤에) 바로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사전에 정 대표와 상의 없이 김 원내대표가 결정을 내린 것이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원내대표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도부 뜻과는 많이 다른 것이어서 저도 어제 많이 당황했다"며 "특검법을 개정하자는 것은 핵심 중의 핵심이 기간 연장이기 때문에 연장을 안 하는 쪽으로 협상이 된 것은 특검법 원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김 원내대표를 사실상 대놓고 질타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전날 저녁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국회에서 회동을 마친 뒤 3대 특검 수사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지 않고, 수사 인력 증원도 특검별로 '꼭 필요한' 10명 미만으로 최소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내란·김건희 특검은 수사 기간을 현행 최장 150일에서 180일로, 해병 특검은 최장 120일에서 150일로 각각 30일 더 늘리고 인력도 대폭 증원할 수 있도록 한 '더 센 특검법' 개정안을 처리한 바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법사위 간사로 선임되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나 의원의 간사 선임을 강하게 저지해왔다. 대신 국민의힘은 특검법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하지 않기로 했다. 또 정부 조직 개편과 관련해 자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소관인 금융감독위원회 설치 사안에 관해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 2025.9.10. 연합
 

이처럼 3대 특검법 개정안에 국민의힘 요구를 대폭 반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즉각적으로 분출했다. 법사위원장으로 지난 4일 특검법 개정안의 법사위 처리를 주도했던 추미애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특검법 개정은 수사 인력 보강, 수사 기간 연장 등으로 내란 수사와 권력형 부패 비리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합의가 필요치는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현희 최고위원도 "3대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은 특검 수사 인력 확대와 기간 연장"이라며 "완전한 내란 종식과, 파도 파도 양파 같은 김건희 국정농단 부패범죄를 철저히 수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글을 올렸다. 한준호 최고위원 역시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은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그 많은 의혹을 짧은 기한 내 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합의를) 재고해 달라. 부탁드린다"고 썼다.

 

이 밖에 "특검 기간 연장, 인원 증원 사수! 타협은 NO!"(서영교) "내란 종식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 원내 지도부 발표는 당내 충분한 논의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박주민) "특검, 특히 내란 특검은 반드시 기간이 연장돼야 한다. 안 그러면 내란 끝장내지 못한다."(박선원) 등의 항의가 빗발쳤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오른쪽)과 김병기 원내대표가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정된 '더센 특검법(3대 특검법 개정안)'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 처리를 지켜보고 있다. 2025.9.11. 연합
 

이에 김병기 원내대표는 당초 방침에서 물러나 합의를 하루 만에 철회하긴 했지만 정청래 대표를 향해 강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터뜨렸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하라"고 '대표' 직함도 붙이지 않은 채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이 국민의힘과 '합의'로 발표한 전날 협상을 '1차 협의'라고 표현하면서 '합의 파기'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했다. 정 대표가 주재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도 불참했다.

 

이어 페이스북을 통해 "3대 특검법 개정 협상은 결렬됐다. 법사위에서 통과된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며 "그동안 당 지도부, 법사위, 특위 등과 긴밀하게 소통했다"고 공지했다. 지도부를 비롯해 당내 주요 관계자들과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법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수사 기간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다. 그 의견을 국민의힘에 제안했으나 거부했다"면서 "결국 추가 협의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해서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대표에 대해 격분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를 비롯한 원내 지도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협치를 주문한 상황에서, 특히 정부 조직 개편의 주요 과제인 금융감독위 설치를 위해서는 특검법 협상에서 양보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금융감독위 설치를 위해 필수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 정무위원회 문턱부터 넘어야 하는데 윤한홍 정무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정 대표와도 사전에 충분히 상의했는데 막상 협상 결과를 발표한 뒤 의원들과 지지층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자 정 대표가 나 몰라라 한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시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의 공개 사과 요구에 침묵하던 정 대표는 이날 오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본인의 부덕의 소치"라고 결국 고개를 숙였다. 의총 뒤 김현정 원내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정 대표는 "여야 간 협상 과정에서 협의된 부분 (관련) 의총에서 수정안이 도출되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 대해 당원과 국민, 의원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한다"며 "본인의 부덕의 소치로, 앞으로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과 대상에 김 원내대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2025.9.11. 연합

 

연합뉴스TV에 따르면 의원총회에서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잇따라 발언을 신청해 서로를 겨냥하면서 또 충돌이 빚어졌다고 한다. 의총 말미에 추가 발언에 나선 정 대표는 "특검법 수정안을 원내(지도부)에서 처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법사위나 당 정책위에서 만드는 게 좋겠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성안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것이다.

 

이어 발언자로 나선 김 원내대표는 "특검법 수정안 협상이 수사 기간 때문에 문제라고 말씀하시는데, (특검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원안과 합의안의 수사 기간 차이가 15일이다. 15일 때문에 정부조직법 등 합의가 다 깨진 게 맞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기존 법안에 특검 운영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이 이미 포함돼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기존 법안대로 먼저 연장하고 그때 가서 수사 기간을 연장해 수정 발의하는 방법은 왜 생각을 못하느냐"고 항변했다.

 

이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를 통해 먼저 처리하고, 향후 필요에 따라 특검법을 다시 발의하는 전략을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후 사실관계를 제대로 모르면서 비난하지 말라는 얘기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국민의힘과의 합의 사항에 반대한다고 페이스북 등에 글을 올린 의원들을 향해서도 "글을 쓰기 전에 원내에 물어보셔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서는 김병기 원내대표가 지도부와 야당과의 협상안을 논의하기는 했지만, 특검의 기간연장 철회와 검사증원 축소 등 국힘쪽과의 합의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던 데서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초의 특검법안이 크게 후퇴하지 않는 선에서 양보하되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를 받아내겠다는 식의 윤곽만을 보고했다가 막상 합의안을 본 당지도부와 법사위원, 당원, 지지자 등이 "이건 아니지 않나"며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합의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도부 간에 마찰은 있었지만 민주당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수사 기간을 30일 추가로 연장하고 수사 인원도 늘린 3대 특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전날 여야 합의 내용 중 일부를 반영해 수정안을 상정, 처리했다. 특검 수사 기간이 끝나고 사건을 국가수사본부에 이첩한 뒤엔 특검의 수사 지휘를 배제하는 것으로 고쳤고, 특검이 기소한 사건의 재판 중계도 조건부로 허용하는 것으로 했다. 수사 대상 가운데 자수하거나 타인을 고발할 경우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 김호경 기자 >

 

정청래 “우린 동지이자 전우, 함께 뛰자” 화해 손길에…김병기 ‘침묵’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안의 작은 차이가 상대방과의 차이보다 크겠느냐”고 말했다. 전날 여야가 합의한 ‘3대(김건희·내란·채 상병) 특검법 개정안 수정’ 파기 문제로 불거진 김병기 원내대표와의 갈등 봉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이날 특검법에 대해선 전혀 언급도 하지 않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먼저 자리를 떠났다.

 

정 대표는 이날 “어제(11일) 3대 특검법 개정안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고 당 방침에 협조해주신 의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특검의 수사 기간을 연장하고 수사 대상과 인력을 증원하는 주된 내용은 법사위(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원안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우여곡절이 많은 걸로 보여도 역사는 결국 하나의 물줄기로 흘러간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어제 ‘내란은 나라의 근본과 관련한 것이어서 쉽게 무마하거나, 덮거나, 적당히 타협할 요소가 못 된다’고 강조했다”고 짚었다. 전날 여야 원내대표 합의 파기 논란으로 당내 투톱(당대표-원내대표)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내란을 제대로 단죄할 수 있도록 특검의 수사 기관을 연장하고 수사 인력 등을 강화한 게 정당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 대표는 그러면서 “우리 안의 작은 차이가 상대방과의 차이보다 크겠느냐”고 했다. 이어 “우리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이자 동지”라며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가 찰떡같이 뭉쳐 차돌처럼 단단하게 원 팀, 원 보이스로 완전한 내란 종식과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 함께 뛰자”고 했다. 전날의 갈등 상황을 뒤로 하자며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정 대표의 이런 발언에 화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나 이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대 특검법 통과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이날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과 관련해 “코스피 5천 시대를 열기 위해 오늘 회의 마무리를 ‘코리아 프리미엄’이라고 외치고 마무리하자”는 박홍배 의원의 제안에도 홀로 웃음기 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먼저 자리를 떴다.

                                                                                                 < 김채운 기자 >

 

미국 내 한국 노동자 체포의 정치경제학적 의미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지난 8월 26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를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라고 하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 대통령 앞에 기죽지 않고 ‘선수’를 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며 회담 성공을 자축할 만했다. 그런 식으로 한미관계의 궁합이 잘 맞아들어 갈 듯했다. 그런데 그 뒤 10일도 채 지나지 않은 9월 4일, 현대차그룹과 엘지(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미국 당국이 느닷없이 한국인 350여 명을 포함, 약 470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를 체포했다. ‘뒤통수’를 맞은 셈!

 

필요한 비자 발급수 제한하면서 비자 없다고 체포

 

미국 주류·담배·총포 담당국(ATF) 애틀랜타 지부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린 글에서 “국토안보수사국(HSI), 이민세관단속국(ICE), 마약단속국(ICE), 조지아주 순찰대와 함께 조지아주 서배너에 위치한 현대차그룹-엘지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을 벌였다”며 “불법 체류·노동자 475명을 체포했으며 이는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려는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미 당국 관계자는 영상물에서 “우리는 국토안보부다. 우리는 현장 전체에 대한 수색영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공사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이 ‘불법’ 노동자인 이유는 원래 단기 사업용인 B1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입국한 관광객 신분으로 임금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만일 국내 기업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위해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하려면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비자는 연간 8만 5000명 수준으로 제한된다.

 

이미 한국은 지난 7월 3500억~6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조건으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그에 따라 미국이 요구하는 대대적 투자를 위해 한국 기업이 움직이려면 ‘H-1b’ 비자가 발급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불법’ 내지 ‘편법’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025.9.6. 연합뉴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이번에 체포된 이들은 단기 체류 목적 무비자협정에 따른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여행객처럼 미국에 들어와 단순한 관광이나 방문 목적이 아닌 임금 노동을 했기에 ‘불법’이 됐다. 한 관계자는 “해당 공장은 내년 초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체포된 상당수가 공장 건설을 위해 고용된 협력·하청 업체 관계자들이고 한국인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미국 당국이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고 입국해 단순노무 등 노동을 하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하긴 했는데, 이번처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공장에까지 진입해 체포 작전을 벌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에서 벌어진 폭력과 약탈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9월엔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에스케이배터리아메리카(SKBA)의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시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13명이 전자여행허가를 받고 일하다 체포된 뒤 자진 출국한 바 있다. 한국 기업들이 불법적인 관행을 계속해온 셈이다. (2021 바이든 정부와 2025 2기 트럼프 정부 이래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이라는 강제 아래 한국 기업은 눈물을 머금고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있는데, 지금까지 22곳, 총투자액 138조 원 규모다. 미국 요구대로라면 지금보다 3배 이상 더 투자해야 한다. 약탈적 수준!) 물론 이는 한국 기업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대적인 단속과 체포 사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합법을 빙자한 폭력, 그리고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과 사실상의 약탈,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에나 한국에서 상당한 충격파를 던진다. 이른바 ‘불법 노동자’를 단속한다면서 군헬기, 무장 병력, 장갑차, 총기류 등을 동원한 500여 군단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사태와 관련,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을 정리해 본다.

 

첫째, 이번 단속의 직접적 계기는 트럼프와 동일한 정당인 공화당 소속 극우 성향 정치인 토리 브래넘(Tori Branum)이 이민세관국(ICE)에 조지아 주 내 한국 기업들이 ‘불법체류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고 있다고 제보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토리 브래넘이 페이스북에서 스스로 밝힌 바다. 브래넘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미 해병대 출신의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논리는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불법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취지다. 얼핏 반자본의 논리 내지 불법 근절의 논리를 보여주지만 평소 그녀의 성향으로 볼 때 본심은 다르다는 해석이 많다. 그것은 그녀가 조지아주 제12지역구 연방 하원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시민은 SNS에서 “선거 캠페인에 더 많은 관심과 돈을 끌어들이려는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워싱턴D.C. 성경 박물관에서 열린 백악관종교자유위원회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9. 08 [AP=연합]
 

쇼비니즘적 보호주의 정책 펴는 ‘피스 브레이커(peace breaker)’

 

둘째,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토리 브래넘과 같은 특정 개인의 이익과 관련해서만 볼 순 없다. 트럼프의 국가 경영 방식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트럼프 정부의 쇼비니즘적 보호주의 정책이 한편으로 불법 이주나 불법 노동을 규제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미국 내 제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나 기후위기 같은 글로벌 이슈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이기에 이번 단속 대상 기업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은 ‘꼴도 보기 싫은’ 짓일지 모른다. 나아가 정치가라기보다 비즈니스맨에 가까운 트럼프는 이번 단속을 계기로 돈이나 기술 전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전문가를 불러들여 미국 노동자를 훈련해 직접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 약탈과 고용 약탈에 이어 기술 약탈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서 트럼프는 ‘피스 메이커’라기보다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 내지 ‘피스 브레이커(peace breaker)’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의 ‘국경차르’로 통하는 톰 호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조지아 현대차 공장에서 한 것처럼 사업체에 대한 대규모 이민 단속을 많이 할 건가”라는 질문에 “간단히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단호히 말했다. “우리는 직장 단속 작전을 더 많이 할 것”이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협상을 한 끝에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번 주 안에(9월 10일) 전세기를 띄운다는 계획”을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눈에 보이지 않은 거래를 암시한다. (과연 체포, 구금된 노동자들의 ‘전세기 귀국’으로 사태가 완결된 것인가?)

 

셋째, 이런 현실의 기저에 깔린 자본의 논리를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세계를 무대로 가치증식 운동을 하는 자본은 경향적으로 일국 국경을 넘어 세계로 향한다. 자본은 늘 이윤을 추구하기에 이윤율이 높으면 지옥까지 달려갈 판국이다. 따라서 자본이 이윤을 버는 원천인 노동력의 가치가 낮을수록 자본에게는 유리하다. 자본은 경향적으로 노동력의 가격이 싼 쪽으로, 동시에 이윤율이 더 높은 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이윤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 노동은 어떤가? 인간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그 노동력의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동력의 가격을 더 많이 인정받는 쪽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본운동의 방향과 노동이동의 방향이 서로 같거나 조화롭다면 별 문제 없지만, 방향이 다르거나 조화가 깨진다면?

 

‘세계 전쟁’까지 준비할지 모르는 자본의 ‘대리인들’

 

이 경우에 국가라는 이름의 공권력(폭력)이 동원된다. 이 공권력은 노동 쪽보다는 자본 쪽을 더 경청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원리가 가진 일차적 문제는 노동자 즉, 사람이 능멸을 당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체포 당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은 마치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나 도망 노예처럼 손발이 쇠사슬로 묶여 어거정어거정 걸어야 했다. 수치심이나 모욕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차적 문제도 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자본과 국가의 대응은 중장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도 해롭다는 점! 미국 당국이 말하듯, 불법 체류나 불법 고용은 범죄로 규정된다. 그러나 모든 불법 고용을 일거에 근절한다면 미국 경제나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게다가 이렇게 보호주의 내지 자국이기적 정책들을 편다면 국가 간, 민족 간, 인종 간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위험이 크다. 그간 ‘세계화’란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부르짖던 위선마저 (그것이 더 이상 미국 자본주의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자)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는 이 고약한 행태가 향후 (자본의 이윤 위기가 더욱 고조될 때) ‘세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미 구미 각국에서는 나치 히틀러를 부활시키려는 극우들의 준동이 심각한 수준이지 않은가? 설사 비자 문제 등이 ‘합리적’으로 해소된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진정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되려면 세계를 압도하는 헤게모니(패권) 위에서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무한정 뽑으려는 패러다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 정부에서 그런 기대는 불가하다. 설사 트럼프가 (일각의 기대나 예측처럼) 10월의 경주 APEC 회담에 오기 전에 북한을 방문, ‘평화협정’을 맺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한 조치가 될 리 만무하다. 차라리 그런 평화협정은 미국 자본의 새로운 이윤 공간을 위한 수단(예: 원산갈마-마식령 관광지구 개발 등)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공화당의 트럼프도, 민주당의 바이든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작금의 행태는 ‘파쇼적 약탈’ 모양을 띤다.

 

‘탈(脫)자본, 진(進)생명’ 기치 내건 아래로부터의 국제 연대

 

바로 이런 눈으로 이번 사태를 읽어 낸다면, 이재명 정부의 과제도 달라진다. (우리들 다수가 꼭 성공하길 바라는) 이재명 정부가 단순히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아닌, ‘패러다임 메이커(paradigm maker)’가 되려면 정치경제적 지도급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형식적 만남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을 넘어서는) ‘세계생명평화동맹’ 같은 새로운 연대관계를 ‘아래로부터’ 하나씩 구축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자본주의 성장과 착취, 약탈과 파괴가 아닌, ‘탈(脫)자본, 진(進)생명’의 길이 인류가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이런 철학을 먼저 전 세계에 공표하고 그 방향에 공감하는 나라들을 광범위하게 모아 나가야 옳다. 그리하여 그간 세계자본이 초래한 세계적 불평등과 기후위기, 사회경제적 위기 등을 범지구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극복하려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당’ 별칭을 가진 야당 대표와도 회담을 갖고 여야 공동으로 ‘민생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함으로써 ‘하모니 메이커(harmony maker)’가 됐다. 동일한 맥락에서 세계를 무대로,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진영을 막론하고 ‘글로벌 민생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그 철학적 기초가 곧 ‘탈(脫)자본, 진(進)생명’이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세상이 ‘생산, 소비, 성장’에 대한 맹목적 질주를 계속할 때 총체적 파국이 필연적으로 오기 때문이다.

 

정직한 절망’의 힘으로 죽임의 패러다임 넘어서야

 

지구와 인류가 ‘정상적으로’ 공존할 마지노선인 1.5도(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를 이미 작년에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도 “2024년은 산업화 이전 대비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됐다”고 연초에 밝힌 바 있다. 이제 2도를 넘는 건 시간문제이고, 그 이후는 마치 높은 산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듯 지구 위 인류 문명이 급속히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올해 봄 곳곳의 산불사태, 그리고 여름의 홍수와 산사태를 겪으면서도 ‘강 건너 불 구경’만 하다간 바로 우리 자신이 참사의 희생자로 전락할 것이다. 지혜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여, 범지구적 파국에 빠지기 전에 (자본주의 황금기의 부활만 생각하는) ‘국익’ ‘성장’ 경쟁‘ ’이윤‘ 등 죽임의 패러다임을 넘어 진정 ‘함께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슬기롭지 않은가? 과연 이런 경고에 누가 얼마나 귀 기울일까? 차라리 우리는 참된 ‘패러다임 메이커’가 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정직한 절망’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