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노남석의 생활칼럼

● 칼럼 2011. 4. 26. 15:31 Posted by Zig
우유와 달걀

많은 사람들은 제가 음식먹는 모습을 보면서 “야~ 참 복스럽게 먹는다~!” 라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어릴 때 나이드신 분들은 “밥을 복스럽게 먹어서 복받겠다!” 하셨습니다. 저의 형수님은 제가 ‘쩝쩝’소리를 내지 않고 밥을 먹는다고 “삼촌은 정말 신사네!” 하면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무슨 음식이나 맛있게 먹어서 음식을 해주는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신이나서 음식을 해주었고 그러다 보니 음식솜씨가 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저의 아들들은 저의 밥먹는 모습을 보면서 질색(?)을 하는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가끔 찬밥을 우유에다 말아서 김치하고 먹는 것입니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못 마땅한 것 같았습니다. 오만상을 찌프리곤 했습니다. “아빠~, 제발 밥을 우유에다 말지 말아요!” “왜~ 어때서~” “그게 뭐예요?” “야~ 너희들은 Cereal을 우유에다 타서 먹지?” “……” “난 밥을 우유에다 말아서 먹는데 다를게 뭐냐?” “Oh~ boy~!” “그리고 아빠는 너희들 처럼 우유를 꿀꺽꿀꺽 마시면 금방 설사를 해~” “……” “그래서 이렇게 밥을 말아서 꼭꼭 씹어 먹으면 침이 잘 섞여서 설사를 안한다구~!” “에~이구~~!” “좀 이상해 보여도 이해를 해줘!” “그럼 아빠 혼자서 있을 때만 하세요” “알았어~”

제가 어릴 때는 우유가 아주 귀했습니다. 저는 우유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6.25 동란 후에는 분유를 학교에서 도시락통에다 배급을 주었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손으로 분유를 움켜쥐고 입에 털어 넣으면 입주위는 온통 분유로 범벅이 되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변소(요즘엔 변소라고 하면 질색을 한다던데 그때는 분명히 변소였다)에 드나들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분유를 밥 위에다 찌는 것이었습니다. 밥솥에서 쪄낸 분유를 과자처럼 깨물어 먹었습니다. 우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없어서 못 먹던 우유가 살이 찐다! Cholesterol이 많다! 하면서, 그 좋은 Milk fat을 몽땅 제거한 Skim milk를 저희도 마시고 있으니… 또 어떤 사람들은 피부에 좋다고 우유를 목욕통 속에 퍼붓고 목욕을 한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두번째는 아내가 방금한 따끈따끈한 밥을 접시에 퍼주면, 저는 냉장고에 가서 날달걀을 한개 꺼내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얼굴부터 찡그렸습니다. “아빠~ 또~?” “미안! 이 달걀에는 아빠의 어릴 때 추억이 담겨있으니까 너희들이 이해해라!” 접시에 담긴 밥을 약간 옆으로 밀어내고 가운데 공간을 만든 다음에 달걀을 깨서 넣습니다. 소금을 뿌리고, 옆에 밀어 놓았던 따끈따끈한 밥을 달걀 위에 덮고 정성스럽게 비빕니다. 그리고 나서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저의 생각은 어느듯 50년 전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불평을 해도 이해를 바랄 뿐 밥을 달걀에 비벼 먹는 습관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먹는 게 귀했던 시절에 달걀을 지져서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저의 도시락 반찬은 항상 국물이 줄줄흐르는 김치였으니까요! 후에 누군가의 기발한 Idea에 의해서 구제품으로 나온 병에 든 음식(지금 생각해 보니 Baby food였던 것 같다)을 먹고 난 후에 병에다가 김치를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간혹 버스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의 가방을 무릎에다 받아주었는데, 그 때 잘못하면 김치 국물이 여학생의 치마에 흐르는 경우도 발생하곤 했었습니다. 너도 나도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오가는 인정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달걀은 일년 중 생일 때나 아니면 죽도록 아플 때 한개 얻어 먹으면 다행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달걀이 한개 생기면 동생들과 함께 밥을 모두 커다란 냄비에 넣고, 그 귀중한 달걀을 깨서 넣고 비비고 또 비벼서 노란 색갈이 골고루 섞인 다음에 누가 더 많이 먹을세라, 한 숟갈씩 차례로 돌아가면서 퍼먹었습니다. 밥알에 노란 색갈만 묻어 있으면 천하일미였습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동생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어머니는 따끈따끈한 달걀을 한개 제 손에 쥐어주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영양식이라고… 그러나 제 손에 쥐어주신 따뜻한 달걀은 음식이 아닌 보약(?)이었습니다! 아니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똑같았을텐데, 입시준비를 하는 저에게만 달걀을 주셔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우유에 밥을 말아먹고, 따끈따끈한 밥에 달걀을 비벼서 먹을 때, 저는 추억을 먹는 것입니다.
“좋은 세상에 사는 이 녀석들아~! 너희들이 애비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

<수필가 - 어진이의 이민수기 필자>

“예로부터 광대는 건들지 않았다.” 정치평론가 공희준의 말이다. 맞다. 교회가 권력의 중심이던 16세기 유럽, 프랑수아 라블레는 풍자소설을 통해 “악마에게 잡아먹혀라, 더러운 사제들아!”라고 질러댔다.
18세기 탐관오리가 판치던 이 땅에서도, 양반의 위선을 조롱하는 봉산탈춤이 뭇 백성의 분을 풀어줬다. 하지만 해코지 입은 광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조선 중기, 자신을 풍자한 남사당패를 의금부로 끌어가 혼쭐낸 왕 연산군 말고는. 그런 보복은 미치광이나 할 짓이라는 이야기다.
코미디언 김미화, 수난의 연속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연한 SBS 프로그램 사회를 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 방송 사장으로부터 ‘김미화는 친노가 아니다’라는 확인서를 받고, ‘친노’라고 모해한 몇몇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이겼지만 소용없다. ‘선동꾼’ ‘좌익운동가’라는 무도한 빨간색 색칠하기는 여전하다.
이런 일각의 광기에 이성 회복을 촉구해야 할 거대 방송사 경영진은 되레 부화뇌동하며 ‘김미화 죽이기’에 일조하고 있다. 코미디언을 무대 밖에서까지 우습게 여기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것이 분뇨·가스통을 들고 지저분한 위세를 떨치는 ‘애국’ 진영만의 행태는 아닌 듯하다. 재담꾼 김제동은 <한겨레>  ‘직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사회를 맡았을 때 “십자포화 안티를 맞았다. 한쪽에서는 명계남·문성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을 놔두고 너 따위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엄숙주의 탓이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끈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석연찮게 사라졌다. 재미가 없다는 제작진 내부 평가가 구실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그 유행어, 마음에 안 든다’는 여당 의원의 압박 때문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안윤상의 재기 넘치는 성대모사만 나오면 큰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진정한 재미는, 흉내 대상 인물의 호칭은 다 생략해도 이명박만은 ‘대통령’ 직함을 꼭 넣어주는 센스다. 행여 각하가 노여워하실까 염려한 탓이리라.
또한 요즘 이래저래 유명한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얼마 전 ‘욕설 쓰는 연예인’이라며 김구라의 퇴출을 요구했다. 무명 시절 ‘뜨기 위해’ 거친 표현을 삼가지 않은 과오, 유명인이 돼 거듭 참회해도 소용없다. 고상하지 않은 ‘육체의 언어’를 쓴 죄는 밥줄 끊어 마땅한 중죄로 본 연유다.

1970년대 ‘후라이보이’ 곽규석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멋대로 휘갈긴 그림을 보고 “피카소 작품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 ‘남산’에 불려가 사달 났다. ‘공산당원 피카소’의 정체를 몰랐던 탓이다.
이런 저열한 시대에 독재자와 맞서 싸우다 훗날 보수정치인이 된 이들, 요즘은 곽규석이 아닌 다른 코미디언의 숨통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자신이 싸운 괴물과 닮지 말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당부, 마치 이들을 겨냥한 듯하다.
폼 잡고 심각한 말을 해도 대중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그래서 동정도 받는 코미디언. 이들을 울리는 세력의 온전한 노후는 없었다.
곽규석에게 공포감을 안긴 그때 그 지도자는 흉탄에 맞아 죽었고, 두상이 흡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방송 출연을 막아 이주일을 낙담케 한 당대 지도자는 여태 ‘전재산 29만원뿐인 영세민’이라며 조롱받고 있다. 김미화는 “더이상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사회가 안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를 호소 아닌 경고로 새겨듣는 이가 진정 현자일 것이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 >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연설을 통해 “대운하 사업을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조건을 달았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발언이다. 적어도 이 대통령 임기 안에는 대운하 사업이 시작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대운하 포기라기보다는 유보에 가까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믿음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그의 발언에는 대운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에 대한 답답함과 임기 내 추진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물씬 풍겨난다. 이는 대운하 사업이 자신의 임기 뒤라도 추진되기를 바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가 대운하 건설을 포기하거나 백지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대운하 사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대운하 건설의 1단계 사업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의 대운하 반대 글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답답한 건 국민들이다. 대통령은 아직도 국민 다수가 왜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 대운하 건설이건 4대강 살리기건 이런 사업을 반대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한반도의 생태계 파괴와 4대강의 수질 악화다. 정부가 추진중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런 측면에서 보면 대운하 건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지 않는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대운하 건설은 하지 않을 테니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지지해 달라고 하니 너무 답답하다.

이 대통령은 청계천을 예로 들면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는 심각한 비교 대상의 오류다. 청계천과 4대강은 그 생태계나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청계천은 도심을 가르는 조그만 콘크리트 구조물일 뿐이다. 이는 마치 건설회사 경영 경험이 많으니 나라를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런 착각과 오만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국민들은 날마다 뼈저리게 목도하고 있다. 제발 대운하 사업은 물론 4대강 살리기 사업도 어서 깨끗이 포기하기 바란다.

아이를 낳아라, 제발 낳아라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주어야 할 세대는 꿈쩍도 안 한다. 지자체마다 이런저런 도움을 주겠다고 홍보하지만 그 정도의 보조금을 받고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게 대세다.
문제는 아이는 ‘돈 덩어리’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 인식의 잘잘못을 떠나서 아이를 키우는 데 천문학적으로 돈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복 중에 제일 큰 복은 부모 잘 만나는 복, 즉 돈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할까. 돈 없는 부모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식 눈치 보이고 개똥밭에 아이를 던져놓은 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나이 든 세대는 마흔이 다 돼 가는 자녀들이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고 한탄이다. 자녀들이 결혼을 해야만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 세대들이다.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야만 비로소 부모의 의무에서 해방되는데, 결혼 연령이 늦어지니 걱정이 태산이다.
자녀를 결혼시킨 부모들은 자녀들한테 위협을 받는다. 조금의 노후자금을 장만하고 아흔이 될지 여든이 될지 모르는 인생 마지막까지 자식한테 손 벌리지 않고 살겠다는 세대는 자녀들이 무섭다. 노골적으로 아이 낳으면 뭐 해줄 거냐고 손을 내민다. 돌잔치는 어떻게 해줄 것이며 유치원 교육이 어떻고 과외의 종류와 필요성을 나열하면서 온갖 비용의 명세서를 들이민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자 볼 생각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도 곁들인다. 손자 하나 정도는 어떻게 쥐어짜서 도와줄 수 있지만 두셋이 되면 실제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를 세대는 3040세대이다. 3040세대는 사회에 진입하면서 IMF의 직격탄을 맛본 세대다. 돈을 벌기 시작한 것도 돈을 번 기간도 길지 않다. 한편으로 선배 세대를 보면서 마흔이 넘으면 직장에서 명예퇴직이 시작된다는 것도 아는 세대다. IMF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 빈부격차가 한층 커지고 기러기아빠니 해서 조기유학이 유행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그사이에 사교육비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어떤 부모가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고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겠는가.
주무기관의 장이 최저출산국의 문제는 이민으로 푼다고 했다. 문제의 핵심을 피해간 처방이다. 그러나 30년 뒤쯤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민자의 가정에서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결혼이민자의 자녀들 취학 건수가 2만명에 이르고 결혼 건수도 전체의 11%를 넘었다.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가 50년 뒤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오히려 돈 많은 부모 만난, 복 많은 아이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이런저런 과외와 이런저런 외국의 화려한 학벌을 갖고 돌아와, 돈복 부모복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본다.

이 정부의 관계자들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 생각 대신 홍보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교육 전분야에 무한경쟁을 미화하고,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부추긴다. 그 경쟁은 돈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교육시장의 번창, 건강보험 민영화, 교육시장 개방 등 나오는 정책마다 아이 낳기를 더욱더 두렵게 한다.
대운하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 쌍둥이인 4대강 살리기도 접어야 한다. 수십조에 달하는, 시행하는 동안 수십조가 늘어날 수도 있는 계획이다. 그런 정책은 10년, 20년의 계획으로 진행해도 된다. 10분의 1만 쓰고 나머지는 교육에 돌려야 한다.
온갖 말과 홍보는 필요 없다. 진정으로 저출산이 걱정된다면,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면, 아이를 마음껏 낳아라.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하면 된다. 그것만이 정답이다.

<김선주 -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