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언어로 말 못해종이에 쓰인 것을 읽고 있을 뿐"

"아베노마스크·여행 장려 바보같은 잘못"아베·스가 비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일본의 정치가가 최악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무라카미는 일본 주간지 다이아몬드 온라인판에 27일 보도된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문제에 각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비교해 본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못 한다"고 일본 정치인의 가장 큰 문제를 꼽았다.

코로나19는 처음 겪는 일이므로 실수하거나 전망이 틀리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자신의 메시지를 내놓지 못해 상황을 더 꼬이게 한다는 것이다.

무라카미는 "이런 혼란이므로 사람이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아베노마스크를 배포한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고투를 지금 하는 것은 잘못한 것이었다'고 제대로 말로 인정하면 된다"고 예를 들었다.

아베노마스크는 아베 정권이 밀어붙인 천 마스크 배포 사업을, 고투는 스가 정권이 공을 들인 여행장려 정책 '고투 트래블'(Go To Travel)을 의미한다.

무라카미는 "그런데도 많은 정치가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쓸데없이 정치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는 것이다. 일본 정치가의 근본적인 결함이 코로나19로 드러났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본 스가 총리

그는 자신의 언어로 유권자와 소통하려고 노력했던 정치인으로 미국 대통령이던 존 F. 케네디와 일본 총리를 지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등을 꼽고서 "이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지금 많은 일본 정치인은 어떻게 봐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서툴다"고 평가했다

무라카미는 "지금 총리도 종이에 쓰인 것을 읽고 있을 뿐이지 않냐"며 기자회견이나 국회 답변 때 질문과 상관없이 준비된 원고를 마냥 낭독하는 스가 총리를 꼬집었다.

그는 스가 정권이 학문의 자율성을 훼손한 사례로 비판받고 있는 일본학술회의 인사에 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무라카미는 학자나 예술가가 주류와 다른 발언을 하는 것을 배제하면 "세상이 유연성을 잃게 된다""학술회의에 총체(總體·사물 전체)의 의견과 다른 무언가 문제가 있더라도, 오히려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는 일본 정부 정책에 반대한 학자들을 학술회의 회원 임명에서 배제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를 비판한 셈이다.

영국 MI6 요원으로 옛소련에 정보 제공

체포 뒤 영국감옥 수감 도중 탈옥해 소련행

“6·25 전쟁 때 미군 무차별 폭격보고 전향

       

영국과 옛소련의 이중 스파이였던 조지 블레이크가 200162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출판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냉전시대의 전설적 이중 스파이 조지 블레이크가 25일 러시아에서 9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50년대 영국 대외정보기관 MI6의 요원으로서 옛 소련(이하 소련)에 기밀 정보를 넘겨줬던 블레이크가 이날 사망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특별한 용기로서 인고의 세월을 겪은 뛰어난 전문가라고 애도했고, 러시아 대외정보국(FIS)은 이날 블레이크는 우리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기렸다.

블레이크는 1950년대 영국 정보기관 요원으로 일하면서 9년간 소련에 기밀정보를 전달하다가 체포돼, 4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60년부터 영국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1966년 영화처럼 탈옥해 소련으로 도망가는 또 하나의 전설을 남겼다.

그는 1922년 네덜란드에서 셰파르디(스페인계 유대인)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때 18살의 나이로 나치 독일에 맞서는 레지스탕스 운동의 연락책으로 일하다가 3개월간 복역했다. 영국으로 도망간 그는 정보기관 암호 요원으로 활약했다. 전쟁 뒤에는 베를린에서 대소련 첩보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영국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등 본격적인 소련통으로 활약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6·25 전쟁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한국에 파견된 그는 1·4후퇴 때 서울에서 나오지 못하고 체포됐다. 이 때 그가 세뇌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는 당시 미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나중에 밝힌 바 있다. 수감중 소련대사관이 보내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고서, 자발적으로 전향해 소련을 위해 일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는 1953년 귀국 때부터 체포될 때까지 500여명의 서방 스파이들을 소련에 노출시키고, 그 중 42명의 목숨을 잃게 하는 정보를 누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폴란드 비밀요원이 서방으로 망명한 뒤 영국 정보기관 내에 이중스파이가 있다고 제보해 블레이크의 이중스파이 행각은 끝이 났다.

그는 당시 기준으로 14년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종신형 다음인 42년형을 받았다.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의 탈옥을 돕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는 1966년 반핵 활동가 2명과 동료 재소자의 도움으로 탈옥했다. 그는 여러 집에 숨어지내다 동독으로 밀항에 성공한 뒤 소련으로 망명했다.

블레이크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고, 강고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서 생을 마쳤다. 그는 배신자라는 비난에 대해 배반하려면 먼저 어디에 속해야 하는데, 나는 결코 어디에 속한 적이 없다는 주장으로 변명, 조국없이 떠돈 유대인으로서 신산하고 복잡한 삶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의길 기자

 

 

재정 자문하던 갑부 론 버클이 2200만달러에 매입

 

마이클 잭슨의 네버랜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초호화 저택 '네버랜드'가 매물로 나온 지 5년 만에 애초 가격에서 약 80% 낮은 수준으로 지인에게 팔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24일 갑부 론 버클이 네버랜드를 2200만달러(2428천만원)에 매입했다고 공식 문서와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잭슨의 네버랜드가 2015년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가격인 1억달러(11035천만원)5분의 1 수준이다.

버클은 2000년대 중반 잭슨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당시 조언을 해주던 사이로, 최근 하늘에서 이곳을 내려다본 뒤 당시엔 매물로 나와 있지 않던 네버랜드를 사기로 했다고 WSJ는 전했다.

네버랜드는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약 64떨어진 곳에 있으며, 1987년 마이클 잭슨이 1950만달러(2152천만원)에 사들였다.

11규모 부지에 저택, 수영장, 영화관, 테니스장, 농구장 등이 있으며 놀이공원 분위기로 꾸며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잭슨이 대출을 갚지 못하면서 부동산 투자 신탁 회사 '콜로니 캐피털'2008년 네버랜드의 채권을 인수해 공동으로 소유해왔다.

잭슨이 이듬해 세상을 떠나자 네버랜드의 이름은 '시카모어 밸리'(Sycamore Valley)로 바뀌고 놀이 시설들은 철거됐다.

네버랜드가 매물로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는 동안 가격은 지난해 3100만달러(342억원)까지 떨어졌다.

비싼 가격과 이 지역의 가뭄, 산불 등이 그동안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배경으로 꼽혔다.

성취를 운으로 여기는 불안심리범죄물 보며 가라앉혀

정신상담 유투버와 인터뷰잘 먹고 잘 자는 게 우선

 

저신다 아던(왼쪽) 뉴질랜드 총리와 정신상담자 존 커완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튜브

 

지난 10월 재선에 성공한 저신다 아던(40) 뉴질랜드 총리가 가면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본인의 성취를 능력보다 운 때문이라 여기며 불안해 하는 심리증상인데, 아던 총리는 텔레비전 범죄물을 보면서 이를 가라앉힌다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21일 뉴질랜드 럭비선수 출신의 정신 상담자 존 커완(56)과의 인터뷰에서 가면 증후군을 겪은 경험을 토로하며 자기 회의를 더 긍정적인 것으로 돌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 인터뷰는 커완이 진행을 맡은 정신상담 관련 유튜브 계정(Mentemia)35분 분량으로 올라왔다.

37살이던 2017년 당시 최연소 여성 총리에 당선된 아던은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정치로 호응을 얻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심리적 불안이 있다고 밝힌 아던은 잘 자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우선이고, 범죄물을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현실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본인에 대한 의심을 좀 더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그런 자의식과 자신감의 결여가 있고, 이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했다. 아던은 나는 이런 생각(회의)내가 왜 이걸 걱정하지, 내가 더 준비해야 하나, 더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나'라는 쪽으로 쏟아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가 되고 평소 즐겼던 걷기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자기 전과 일어난 뒤에 두 살짜리 딸과 함께 동요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한다고 말했다.

워킹맘으로서 고충도 털어놨다. 아던 총리는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딸을 덜 보게 되자, 다시 그 힘든 게그리워졌다며 아침에 출근할 때 딸이 울기도 해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보낸다. 모든 부모가 겪는 일이려니 한다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그의 임기 중에 발생한 몇몇 비극은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며, 기념일들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을) 처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요리책을 보고 요리하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자신은 활동적인 휴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최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