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所村)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에 서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된 수조의 20124월 모습.

                                   

핵연료 재처리공장 안전대책 승인·전면 가동시 연 7t 추출

2022년 가동 목표"경제성 낮고 핵 비확산에 어긋난다" 비판

일본 사용후핵연료 포화상태재처리공장 없으면 원전 중단 가능성

                 

일본이 핵무기 수천발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이미 보유하고 있음에도 플루토늄 추출 공장의 가동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데 대한 의문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 당국은 핵연료 재사용을 위해 플루토늄 추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발전용으로 플루토늄을 소비할 시설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의 사업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 일본 내에서는 경제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핵 비확산 기조에 어긋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완공 24년 연기된 재처리공장 집요하게 추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이하 위원회)13일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있는 니혼겐엔(日本原燃)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에 대해 내린 결정이 플루토늄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위원회는 재처리공장의 안전대책이 새로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심사서안을 승인했다.정식 결정은 아니지만, 재처리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핵심적인 안전 심사에서 사실상 합격 판정을 내린 셈이다.

니혼겐엔의 계획으로는 나머지 행정절차 등을 거쳐 20221월에 재처리 공장을 재가동하는 것으로 돼 있다. 재처리공장은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사성 물질 화학 공장이다.

길이가 4정도인 사용후 핵연료를 34크기로 절단해 질산으로 녹인 후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분리·정제해 분말 상태로 저장한다.

14일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액이 나오며 합계 면적 약 35에 달하는 6개의 건물에 방사성 물질을 분산 수용한다. 방사성 물질이 존재하는 면적이 통상 원전의 약 10배에 달해 위험성이 크며, 사고 등에 대비한 엄격한 안전 기준이 요구된다.

재처리공장은 1997년 완성을 목표로 1993년 착공했으나 공사 지연, 설계 변경 등으로 지연됐고 시험 가동 중이던 2009년에 배관에서 고준위 폐액이 누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24차례나 완공 시기가 연기됐다.

7600억엔이던 건설비는 4배가 넘는 29천억엔으로 늘었고, 설비 유지 비용과 폐지 조치를 포함한 사업비는 작년 6월 기준으로 139천억엔(159827억원)에 달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플루토늄 핵무기 수천발 분량 보유"핵연료 재사용" 주장

일본은 핵연료를 재사용하는 핵연료 주기(사이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재처리공장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플루토늄 산화물과 우라늄 산화물을 섞어서 만든 혼합산화물(MOX)을 연료로 쓰는 원자력발전을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많은 의문을 낳는다.

롯카쇼무라 소재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 모습

일본은 MOX 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이른바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는 고속증식로 '몬주'를 후쿠이현에 건설했으나 1995년 나트륨 유출 사고, 2010년 로내중계(爐內中繼)장치 낙하사고, 2012년 기기 점검 누락 발각 등의 문제가 이어졌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612월 몬주 폐로를 결정했다. 1조엔이 넘는 국비가 투입된 꿈의 원자로 전체 운전 기간은 250일에 불과했다.

일반 원전에서 MOX 연료를 사용하는 플루서멀 발전에서 플루토늄이 사용되지만, 그 양은 미미하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전면 가동하면 연간 최대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 약 7t의 플루토늄을 회수할 수 있지만, 현재 일본에서 플루서멀을 하는 원전은 4기뿐이라서 소비량이 연간 2t 정도에 그친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플루서멀 발전 계획이 있는 원전은 이 밖에도 더 있으나 심사나 지방자치단체의 동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플루서멀을 실행하기 쉽지 않은 원전이 많다.

일본은 몬주의 후속으로 프랑스와 함께 고속증식로 '아스트리드'(ASTRID) 개발을 추진했으나 프랑스 측이 비용 등 문제로 사업을 축소하기로 하면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재처리공장 사업을 계속하는 것은 핵폐기물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에 따르면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니혼겐엔은 "재처리 사업이 현저하게 곤란해진 경우는 사용후연료를 시설 외부로 반출하는 등 조치를 강구한다"는 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만약 재처리를 포기하는 경우 재처리공장 수조에 보관 중인 약 3t에 달하는 사용후핵연료를 각 원전업체로 돌려보내야 하며 각 원전 내 보관 장소가 거의 포화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롯카쇼무라의 사용후핵연료를 되돌려 보내는 경우 원전을 가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미 대량의 플루토늄이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약 45.7t의 플루토늄을 보유했다.

2017년 말에 원자폭탄 약 6천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인 약 47t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약간 감소했지만, 여전히 대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잠재적 핵보유국'인 셈이다.

재처리공장 사업에 드는 막대한 비용, 안전성에 대한 우려, 제한된 플루토늄 소비처 등을 고려하면 일본이 굳이 플루토늄 생산 시스템을 고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아베 신조 정권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법제를 변경하고 헌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어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다.

일본 정부는 사가현 소재 규슈전력 겐카이(玄海)원전 3호기의 MOX 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 640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에서 2012년부터 제외한 것이 2014년 일본 언론의 보도로 드러나기도 했다.

보고 누락한 플루토늄은 핵폭탄 약 80발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일본은 IAEA에 누락분을 추가로 보고했다.

플루토늄 보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일본 내각부 원자력위원회는 2018년에 보유량을 더 늘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일본 안보 관련 문제로 인식찬반 엇갈려

일본 언론은 핵연료 주기 정책이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4일 사설에서 "3년 전 일미 원자력협정 연장을 둘러싼 교섭에서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가 핵확산으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안전보장의 문제도 있어 주기 정책에서 바로 손을 떼는 것은 곤란하다"고 논평했다.

진보 성향 언론은 일본이 추진하는 핵연료 주기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4일 사설에서 일본의 핵연료 주기 정책이 "이유 없는 국책"이라고 규정하고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위원회 결정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원전에서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려내고 다시 원전에서 태우는 핵연료 주기 정책은 이미 파탄했다. 재처리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핵 비확산이나 경제성 에너지안전보장 등 여러 면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아사히는 "이미 선진국 다수는 핵연료 주기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철회했다. 지금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핵보유국뿐이며 국가가 채산을 도외시하고 추진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플루토늄을 줄이겠다고 공언해놓고 플루토늄을 새로 추출하면 일본이 플루토늄을 줄일 의도가 있기는 한 것이지 혹은 핵보유국이 될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등 "엉뚱한 의심조차 받게 될 수 있다"고 신문은 우려했다.

반면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우리나라의 전력공급에 도움을 주는 큰 진전"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신문은 "핵연료 주기의 확립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확보하는 생명선"이라고 강조했다.

‘12·28 합의윤미향 미리 알았다? 굴욕적 내용은 발표 전까지 은폐

 

윤미향 외교부 3가지만 사전통보, 책임통감·총리사죄·국고거출

기자들에도 같은 내용 미리 알려일본에 얻은 것만 발췌통보한 셈

            2015년 당시 취재기자가 본 전말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의 7일 기자회견으로 촉발돼 이를 빌미로 한 이른바 윤미향 논란이 일파만파다.

논란은 크게 두 축이다. 한 축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상한 회계 처리를 둘러싼 언론의 의혹 제기이고, 다른 한 축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20151228일 합의(12·28 합의) 전후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의 이른바 말바꾸기논란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자는 정대협 대표를 거쳐 정의연 이사장을 맡은 바 있다.

정의연의 이상한 회계 처리논란은, 언론의 의혹 제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모금한 돈을 목적과 달리 쓰거나 개인이 유용한 사례는 드러나지 않았다. 국세청 쪽도 일부 잘못 기재된 게 있지만, 재무제표 결산상으로는 정상적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잠정 판단을 내놨다. 한경희 사무총장이 11일 기자회견에서 데이터(회계) 처리에 대해서는 저희가 사과드린다. 고쳐나가겠다고 밝히는 등 정의연 쪽이 거듭 사과개선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논란의 다른 한 축인 이른바 윤미향 말바꾸기논란은 그 전개 양상이 아주 고약하다. 이 문제는 ‘12·28 합의당시 한국 사회의 대응 태도와 닿아 있어 정확한 사실 관계 확인과 진실 규명이 절실하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합의 기반을 침식하고, -일 관계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어서다.

윤미향은 미리 다 알고 있었나? 언론의 관련 보도를 압축하면,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가 한-일 국장급 협의 당사자인 이상덕 당시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한테서 사전에 주요 내용을 다 듣고 긍정적 반응을 하고는, 합의 발표 직후 돌연 반대 태도로 돌아서 협상 당사자들이 당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청와대·외교부 관계자들”(<중앙일보> 9일치 10), “당시 협상 과정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조선일보> 9일치 4), “전직 외교부 최고위 당국자”(<동아일보> 12일치 12), “당시 협상을 총지휘했던 전직 외교부 고위당국자”(<국민일보> 13일치 5) 따위다. 모두 익명 주장이다.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1차장이던 조태용 미래한국당 당선자가 10“‘위안부 합의에 대해 윤미향 대표에게 사전설명을 했다는 외교부의 입장을 분명히 들었다. (윤미향 당선자의) 말바꾸기를 주목한다고 한 게 유일한 실명 주장이다. 12·28 합의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이병기 비서실장, 외교부의 윤병세 장관과 이상덕 국장이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윤미향 당선자는 외교부에서 실제 일본과 합의 관련 내용을 통보받은 때는 20151227일 저녁이다. 일본 정부 책임 통감, 총리 사죄, 국고 거출 세 가지뿐이라고 밝혔다. 정의연도 11일 기자회견에서 정대협 법률자문위원회가 외교부 통보를 두고 (논의한 결과) -일 정부의 합의 발표 공식 기자회견 이후로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계를 20151228일로 돌리자. 기자는 당시 외교부 출입기자로 합의 발표 앞뒤 상황을 취재해 보도했다. 1228일 낮 12~1시 외교부 1·2차관과 차관보가 세 곳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논설위원들을 상대로 ‘12·28 합의를 사전 설명했다.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은 공식 발표 때까지 보도 유예(엠바고)”를 조건으로 발표 요지를 미리 알려줬다. 당시 군의 관여, 일본 정부 책임 통감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 세 가지가 핵심이다. 윤 당선자와 정의연의 기자회견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외교부 청사 3층 국제회의장에서 질문도 받지 않는 일방적 기자회견에서 합의 사항을 각자 발표하기 딱 2시간30분 전까지도 박근혜 정부는 얻은 것만 밝혔을 뿐, 일본에 한 약속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누가 거짓말을 하나? 윤미향인가, 12·28 합의 주역들인가? 익명의 합의 주역은 윤 당선자가 주요 내용 설명을 듣고는 고생했다’ ‘(결과가) 괜찮다’ ‘감사하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까지 보냈다고 언론에 주장했다.(<동아일보> <국민일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데, 설혹 그랬다 한들 윤미향 말바꾸기의 근거가 될 수 없다.

12·28 합의 발표로 상황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임 차관 등이 언론에 미리 밝히지 않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 자제한국 정부는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 노력이라는 숨겨진 비수가 드러난 것이다.

정작 당혹감에 사로잡힌 이는 익명의 12·28 합의 주역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인권·양심세력이다. 보수지 출입기자는 이거 완전 제2의 을사늑약이네라고 탄식하며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에 관한 한 일본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선생은 합의 발표 직후 이번 합의는 일본이 너무 이겨 버렸다. 피해자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 정부의 외교 실패라고 탄식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에 구성된 ·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이하 보고서’, 20171227)에서 12·28 합의에 비공개 부분이 있음을 밝혔다. 굴욕적이다 싶게 내용이 고약하다.

태스크포스 보고서를 보면 이런 식이다. 일본 쪽이 3국 위안부 관련 상·비 설치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함이라 하자, 한국 쪽은 한국 정부로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라고 답한다. 일본 쪽이 한국 정부는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함이라 하자, 한국 쪽은 직답을 피한 채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함이라 답한다. ‘성노예표현 사용은커녕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외교부에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일본 쪽이 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지,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음이라고 하자, 한국 쪽은 공개 발표 을 재확인한다. 합의 발표 당일 기시다 외상이 일본 기자들한테 “(소녀상은)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일본 쪽이 정대협 등이 불만을 표명하면 한국 정부가 설득해주기 바람이라 하자, 한국 쪽은 설득을 위해 노력함이라 답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병기-야치 쇼타로(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사이의 비공개 고위급 협의가 12·28 합의를 주도했으며, 합의 발표 여덟달 전인 2015411일 이 창구로 최종 합의와 유사한 잠정합의를 한 사실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른바 윤미향의 말바꾸기가 논란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12·28 합의 주역들의 굴욕적 대일 약속과 발췌 통보’, 은폐가 문제다.

한국 사회가 난데없는 윤미향 논란으로 휘청이는 와중에도 13일 정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1439회 수요시위가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열렸다. 199218일 첫 집회 이후 한주도 거르지 않고 꼬박 29년째다. 12·28 합의 발표 당시 47명이던 생존 피해 할머니(정부 등록 기준)는 이제 18명뿐이다. 12·28 합의 발표 이듬해인 2016년 김숨이 장편소설 <한 명>을 발표했다. 평생을 자책하며 숨어 지내던 피해 할머니가 공식 피해 생존자 두 명중 한 명이 숨져 오직 한 명만이 세상에 남았다는 뉴스를 듣고는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며 세상 속으로 걸어나오는 이야기다. 피해 할머니 없는 세상, 한국 사회가 미구에 맞닥뜨릴 참혹한, 그러나 예견된 미래다. 한국 사회는 허깨비와 씨름할 시간이 없다. < 이제훈 선임기자 >


중국 상하이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지난 7일 마스크를 쓴 채 수업하고 있다. 상하이/로이터 연합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가을학기도 온라인으로

트럼프는 반드시 학교 열어야주지사들 압박

중국 선양시, 환자 재발에 개학 일정 연기

유럽도 학생들 분산된 시간표 짜서 개학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전세계가 개학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아이들을 계속 집에 붙들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시 학교로 보내자니 백신과 치료제도 없는 바이러스 감염과 재확산이 두렵다. 세계 곳곳에서 불안한 개학을 둘러싼 논란과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48개 주와 워싱턴디시의 초··고교와 대학들은 지난 3월부터 원격수업으로 대체하고 있다. 미국 최대 4년제 공립대인 캘리포니아주립대는 12일 가을학기 수업의 거의 전부를 원격수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대학은 23개 캠퍼스에 걸쳐 학생 수가 48만명에 이른다. 다른 학교인 캘리포니아대(학생 수 30)도 가을학기에 캠퍼스를 열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등교 개학은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어 경제활동 등을 정상화한다는 가장 가시적이며 상징적인 조처다. 이 때문에 조속한 정상화를 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부 내 보건 전문가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트럼프는 13일 백악관에서 재러드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 등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당신들이 절대적으로 학교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이 전날 상원 청문회에서 학교 문을 여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 데 대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답변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다시 열기를 원한다. 학교들이 닫혀 있으면 우리나라가 복귀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 문을 열자는 쪽은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집에서 가르쳐주는 부모가 없는 빈곤층 아이들이 1년 동안 배울 수 없게 된다”(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고 주장한다. 젊은층의 코로나19 치명률이 낮다는 점도 이유로 든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무증상인 채로 가족에게 전파해 세컨드 웨이브’(2차 폭증)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코로나19와 연관성이 의심되는 어린이 괴질이 유럽과 미국으로 번지는 점도 우려한다.

미국의 각 주와 지역들은 각자 상황에 맞춰 대처하고 있다. 감염자가 적은 몬태나주는 지난 7일부터 지역별로 학교 문을 열 수 있도록 했다. 문 손잡이 소독과 손세정제 제공, 운동장 출입 금지 등이 수반된다. 반면, 미국 내 최악 감염지인 뉴욕주의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13, 학교 재개 일정에 대한 질문에 “8, 9월에 우리가 어떤 상황일지 모른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상황이 비교적 안정된 나라들도 마음을 못 놓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의 경우, 수도 베이징이 427일 고3을 시작으로 다음달 8일까지 초등학교 1~3학년을 제외하고 전면 개학에 들어간다. 최대 피해 지역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는 6일 고3 수험생만 먼저 등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랴오닝성 선양시는 13일 하루 신규 확진자 2명이 나오자 15·18일로 각각 예정했던 중·고교 개학을 다시 연기했다.

유럽의 개학 실험도 제각각이다. 독일과 헝가리는 학년말 시험을 보는 고학년부터 개학에 들어갔다. 독일의 일부 고등학교에는 운동장에 학생들이 직접 코로나19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됐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음성 판정을 받으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

프랑스는 가정 내 방치·학대 우려가 큰 유치원생과 저학년부터 등교시켰다. 네덜란드는 지난 11일부터 학년별로 분산된 시간표를 짜 학교 문을 다시 열었다. 덴마크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4월 중순부터 학교를 다시 열었는데, 수천명의 부모들이 감염을 두려워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했다. < 워싱턴 베이징/황준범 정인환 특파원 >


캘리포니아·뉴저지 등 15개 주와 워싱턴서 발병 사례

영국에 첫 보고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서도 확인

                

아홉살 소년 바비 딘이 탈수증과 복통, 심박수 증가 등의 증상으로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당시 모습. 바비는 병원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입원 엿새 뒤인 지난 10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로체스터/AP 연합

                         

유럽과 미국에서 코로나19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이 괴질 환자가 잇따르고 있다. 고령자보다 코로나19 감염에서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어린이들에게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자, 개학을 앞둔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지사는 12일 정례브리핑에서 주 보건당국이 102건의 어린이 괴질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이들 중 71%가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43%는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주가 지난 9일 어린이 73명에게 괴질이 나타나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한 이후, 비슷한 환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은 이날 캘리포니아와 코네티컷, 뉴저지 등 15개 주와 수도 워싱턴에서 발병 사례가 보고됐다고 전했다.

어린이 괴질 사례는 지난달 영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도 잇따라 확인된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14살 사망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100여명의 어린이가 관련 증상으로 치료를 받았고, 대부분 빠르게 회복됐다고 전했다.

괴질을 앓는 어린이들은 고열과 발진, 붉은 눈, 붓기 등 가와사키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지만 코로나19의 대표적 증상인 폐나 호흡기에는 큰 문제가 없다. 런던 임피리얼칼리지대 리즈 휘터커 박사는 코로나19 정점 3~4주 뒤 새로운 현상의 정점이 보인다는 점에서 감염 후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 뒤 항체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반응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이정애 기자 >

CDC, 코로나19 관련 '어린이 괴질' 경보 발령

"고열·염증 등 관련 증상 발견시 보고코로나 사망사례 조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1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이 '괴질'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CDC는 해당 증상을 '소아 다기관 염증 증후군'으로 지칭하고, 관련 임상 사례를 소개해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지역 또는 주 보건당국에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CDC는 또한 의료진이 코로나19로 사망한 모든 어린이의 사례를 들여다봐야한다고 강조했다.

CDC에 따르면 현재 또는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됐거나, 바이러스에 노출된 경우, 최소 24시간 동안 38도 이상의 고열 증세나 입원이 필요한 중증 질환을 경험한 경우, 혈액검사 상 염증 지표가 나타났거나, 심장·신장··피부·기타 신경기관 중 최소 2개 이상의 장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명한 징후가 나타난 경우가 이에 포함된다.

CDC가 제시한 병명이나 사례 정의는 해당 질환이 처음 보고된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명칭과 유사하다.

보도에 따르면 뉴욕에서만 최소 110명의 어린이 괴질 환자가 보고됐으며, 다른 주에서도 사례가 보고됐다. 사망자도 발생했다.

일부 어린이 환자는 붓기와 심장 질환을 동반하는 가와사키병 쇼크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CDC는 해당 질환이 모두 어린이와 관련이 있으며, 성인에게서도 같은 증세가 나타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