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에 중립적 입장을 정강정책으로 결정한 보수당 대회.


정강정책 표결로 변경‥ “가치·원칙에 대한 공격” 반발도

연방보수당이 동성결혼에 대해 중립적 입장으로 정강정책을 변경했다.
보수당은 지난주 말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 밴쿠버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결혼을 남녀 간 일대일 결합으로 정의한 정강정책 조항을 삭제, 동성결혼에 대한 시각을 중립화했다.
전당대회는 결혼의 정의에 관한 정강정책 변경을 표결에 부쳐 1천36대 462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정책 변경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던 종래의 입장이 중립적으로 공식화했다.


안건이 통과되던 순간 장내에는 환호가 터졌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표결 후 발언에서 캘거리 출신의 미셸 렘펠 의원은 “우리당이 비로소 보다 캐나다적인 정당이 됐다”며 “당에 새 이정표일 뿐 아니라 모든 캐나다인에 이정표가 됐다”고 정강정책 개정을 반겼다. 그는 “오늘에 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며 “캐나다는 평등을 구현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동성애자인 에릭 로렌젠 의원은 “우리당이 어떤 다른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정책 입장을 표방한 적이 있었는가”라며 동성애에 대한 예전 입장을 지적했고 퀘벡 출신의 막심 베르니에르 의원은 “이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상대에 대한 자유와 관용의 문제”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전통적 보수당 지지 기반의 손상을 우려하면서 “정강정책 변경은 개인 가치를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당의 가치와 원칙에 대한 공격”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정강정책이 단지 중립적으로 바뀐 것임을 들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개인적 원칙을 자유롭게 고수할 수 있는 타협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동성결혼에 반대하면서도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한 의원은 시대가 변하고 사람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당 정강정책과 달리 이미 캐나다에서는 동성결혼이 제도·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대권 꿈? 고국 들쑤신 반기문

● COREA 2016. 6. 7. 15:50 Posted by SisaHan

방한 엿새 정치행보 파장… 유엔서도 처신 논란

국내 휘젓고 다닌 뒤 “과대해석 말라”
총장 퇴임 직후 정부직 금지 “알고있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시사 발언의 불똥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 브리핑장까지 튀었다. 반기문 총장이 5월 25일 관훈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강력 시사한 뒤,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과정에서 기자들은 이 문제를 이틀째 물고 늘어졌다. 세계 모든 곳의 현안을 다뤄야 하는 유엔의 브리핑에서 사무총장의 처신이 쟁점이 되는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태 전개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의 ‘정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이 국제 외교가의 쟁점으로 번질 조짐이다.


한 기자는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정부직 진출을 제한한 유엔 1차 총회 결의 11(Ⅰ)호의 존재를 반 총장이 알고 있는지 따져물었다. 다른 기자가 한국의 모든 신문이 ‘대선 출마 시사’라 보도한 사실을 상기시키자, 부대변인은 “총장이 말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피해갔다.
26일 한 기자는 “그런데 김원수 유엔 군축고위대표 직무대리는 무슨 자격으로 반 총장의 방한 직전에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사전 브리핑을 한 것인가”라고 따졌다. 이 기자는 “어떤 사람들은 그걸 정치적 행위(political work)로 받아들인다”고 짚었다. 유엔 고위 관리인 김 직무대리가 신분을 망각한 채 반 총장을 사적으로 돕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부대변인은 “반 총장의 한국 방문은 공식 출장이며, 김 직무대리는 수행원 자격으로 브리핑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반 총장 귀임 후 스테판 두자릭 대변인은 31일 가진 브리핑에서 ‘1946년 결의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직후 정부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지금도 적용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물론이다. 그(반 총장)는 그 결의를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추측일 뿐”이라면서 반 총장의 퇴임 후 거취는 반 총장이 그 시점에 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1946년 결의 조항에는 “어떤 회원국도, 적어도 퇴임 직후(immediately on retirement)에는, 사무총장에게 정부 직책을 제안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그가 가진 비밀스러운 정보가 다른 회원국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무총장 자신도 그런 직책을 받아들이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서 한국을 엿새간 방문한 반 총장은 대선 후보 캠프에서 짠 듯한 촘촘한 방한 일정을 소화했다. 반 총장은 출국을 앞두고 “저의 방한 일정과 활동에 오해가 없길 바란다”며 “과대해석과 추측은 자제해 달라. 당혹스럽다”고 두루뭉수리 답했다. 김종필(JP) 전 총리를 전격 예방하고 여당 텃밭인 경북지역을 훑은 거침없는 ‘정치 행보’ 논란을 식히려는 발언이지만, 정치권은 “출마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6일”로 평가했다.
반 총장은 30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비정부기구(NGO) 콘퍼런스 기조연설 뒤 회견에서 ‘방한 일정 중 유엔 사무총장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개인 반기문에 대한 집중도가 높았다’는 질문에 “국제행사에 참여·주관하기 위해 온 것이지 어떤 개인적 목적이나 정치적 행사와 무관하다. 그 과정에서 관훈클럽 비공개 간담회 내용이 좀 과대, 확대, 증폭된 측면이 없지 않아 당혹스럽다”고 둘러댔다.


방한 첫날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내년에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를 고민하고 결정하겠다”고 한 발언이 대선 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한 것으로 비치자 진화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대선 출마 안 한다’는 말 대신 “추측하지 말라”고만 했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이 도와달라”면서도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제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또다시 여운을 남겼다. 정치권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의지를 ‘상수’로 두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3선 의원은 “반 총장이 정치적 지방투어를 통해 TK(대구•경북) 민심 등 판단 자료를 안고 떠났다. 국내에 큰 애드벌룬 하나를 띄워놓고 간 것”이라고 했다.
< 이제훈·김남일·김일우 기자 >



해양감시기구 소속 독일 구조요원이 리비아 근해에서 익사한 아기 시신을 안고 있다.


올해 벌써 2500명 지중해 익사

유럽에 진입하려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익사한 난민이 올해 벌써 2천500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윌리엄 스핀들러 유엔난민기구(UNHCR) 대변인은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실태를 밝혔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지중해에서 익사한 난민은 모두 2천51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1천855명보다 무려 35%가 증가했다.
스핀들러 대변인은 지중해 기상이 좋아지면서 난민들의 쇄도가 시작된 지난주에 숨진 이들이 무려 880명에 이른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올해 지금까지 현황을 보면 난민들의 이동이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엎드려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발견된 세 살짜리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전 세계 사람들을 울렸고 난민 위기의 참상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해가 바뀌도록 난민 위기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복잡하게 꼬여가는 가운데 쿠르디를 연상시키는 익사한 난민 아기의 비극적인 사진이 또 한 차례 공개됐다. ‘죽음의 바다’가 된 지중해의 참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사진은 지중해 난민 구조에 나선 독일 구호단체 ‘시워치’가 유럽 당국에 난민들의 안전한 경로를 확보하도록 촉구하고자 배포했다고 주요언론이 보도했다.
사진 속에서 돌도 지나지 않았음 직한 아기는 잠을 자는 듯이 평온한 얼굴로 구조대원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다. 이 아기는 리비아에서 출발한 나무배가 전복되는 사고로 숨진 45명 중 하나다.



[한마당] 카인의 제사와 토론토의 5.18

● 칼럼 2016. 5. 31. 19:31 Posted by SisaHan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으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 열린 광주 망월동 민주묘지의 5.18민주화운동 제36주년 기념식은 예상대로 ‘카인의 제사’였다. 제창을 무산시킨 ‘고집불통’ 보훈처장은 희생자 유족들에게 떠밀려 행사장에서 쫓겨났다. 그가 빈정대는 듯 웃음을 띠며 현장을 떠난 뒤, 국무총리는 미사여구로 가득찬 기념사를 읽었다. 나라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꿈 같은 이야기들을 ‘5.18정신의 승화’라는 말로 포장해 의미없이 읽고 있는 그의 얼굴은 마치 로봇 같았다고나 할까.
광주 현지의 보훈지청장이 읽은 경과보고라는 것도 5.18 실상과는 거리가 먼 하나의 사건묘사에 불과했다. 계엄군의 살상과 발포는 간 곳 없이 군과 민간인이 공연히 대치하다 벌어진 불상사처럼 두루뭉수리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으로 소개된 식순에서 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희극-, 참석자들이 일어나 따라 부를 때, 국무총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무표정하게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합창이 끝나자 마자 “이상으로~” 식을 마친다는 사회자의 선언으로, 그렇게 정부 주관 5.18기념식은 단 20분만에 지극히 간단하고 허망하게 마무리 됐다. 사람들이 “이게 무슨 기념식을 이야” 라고 외쳤으니 역시 ‘카인의 제사’였는데, 총리와 정부인사들은 못들은 체 총총 걸음으로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법적으로도 이미 결론이 난 민주항쟁이고 국가기념일이다, 불의한 쿠데타 무리들이 권력찬탈과 학살범죄가 명백히 입증돼 단죄를 받았는데도, 극우보수가 설치자 그에 편승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5.18을 부정하고 인정하기 싫은데서 나아가 아예 깔아 뭉개려는 작태까지 보인다. “나는 광주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온 쿠데타 주역은 이제 기억상실의 치매경지에 접어들었다고 치자. 그들과 같은 뿌리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인지, 현 정부도 5.18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국가기념일 행사는 어쩔 수 없이 주관하지만, 적당히 지워버리고 싶은 그들의 숨은 뜻을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저 핑계요 곁가지일 뿐이다. 노래하나 부르냐 못부르냐는 차원이 아닌, 바로 5.18 자체를 수용하기 싫다는 가해 세력의 정면 도전에 다름 아니다.


이른바 보수정권 10년에,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는 친일 희석과 이승만·박정희 찬양, 국정교과서 강행, 그리고 군위안부 졸속 합의 등에 이어 5.18 물타기 라는 ‘거꾸로 시리즈’의 종결편으로 내닫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워싱턴 주재 대사관 등 일부를 제외한) 해외 한국공관들의 5.18 기념식 외면까지…. 참 비겁하고 저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토론토의 5.18은 우리에게 위안과 자부심을 안겨 주었다. 일찍이 유신독재 당시부터 조국의 민주화를 외치며 성원했던 원로들이 올해 ‘5,18 민주화운동기념회’의 얼굴로 등장해 기념식 주관단체로 무게감을 갖춰 주었다. 캐나다연합교회 총회장을 지낸 이상철 목사가 고문을 맡아 기념식장에 좌정했고, 윤택순 21대 한인회장과 김병권 전 민주평통 회장이 이기석 한인회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으로 나섰다. 특히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전하며 감격과 회한으로 목이 메인 윤택순 전 회장은 가슴에 간직해왔던 토론토와 캐나다 동포들의 조국 민주화 투쟁사를 생생히 전해 기념식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윤 전 회장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학살장면을 당시 TV에서 보고 동포들이 분기탱천해 규탄시위를 하고 기금을 모아 피해자들에게 전했던 일과 추도식을 가졌던 일 등 활동상을 모두 기억해 들려주었다. 당시 조직된 광주의거 추도회와 뒤이은 기념사업회 회장을 자신이 맡았었기에 더욱 뇌리에 선명히 남았을 기록들이다. 눈물을 훔치며 몇차례 말을 잇지 못한 그는 당시 참여했던 단체들 이름과 동지들을 한명 한명 거명하다 끝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분들이 정말 애석하다”며 오열해, 숙연히 듣고있던 참석자들이 박수로 위로하는 감동적 장면이 이어졌다. 정봉희 시인의 가슴 뜨거운 창작 추모시 낭송과 금국향 무용가의 살풀이 춤, 그리고 의기충천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까지. “한국에서 열린 정부 주최 기념식보다 훨씬 뜻깊고 감명깊은 기념행사였다” 어느 참석자가 밝힌 소감 그대로, 정말 그랬다. 선배 한인들의 자랑스런 발자취를 되새기며 캐나다 한인으로서의 자긍심도 부풀린 토론토의 5.18 기념식. 그래서 자리를 같이한 보수단체 임원들도 “행사가 좋았다”고 입을 모았던 것일 게다.
올해 모처럼 ‘임석’했던 총영사관 영사는 어떤 보고서를 올렸을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