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가처분 기각됐다 헌법소원 인용땐 혼란 극심"

한덕수 '후보 발표지 지명 아니다' 궤변 안 받아줘
헌재 당분간 '7인 체제'…대선까지는 그대로 갈 듯

민주당 "위헌적 인사 쿠데타 시도 국민께 사과하라"
비상행동 "즉시 재판관 지명 철회하고 한덕수 사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6일 결식 아동들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해온 울산 뚠뚠이 돈가스에서 사장과 직원들을 격려한 후 물을 마시고 있다. 2025.4.16. 연합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에 대한 지명을 강행하면서 벌인 '제2 친위쿠데타' '인사 쿠데타'가 8일 만에 제압됐다. 윤석열 파면 직후, 내란 잔당들이 벌인 기습적인 도발로 한때 긴장감이 고조됐으나, 헌법재판소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전원일치 인용 결정하면서 대선 전까지 변수를 원천 차단한 모습이다.

 

헌재는 16일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행위'가 위헌인지 판단해달라며 김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도담)가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이로써 한 대행이 지난 8일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행위의 효력이 일시 정지됐다. 정지 기한은 김 변호사가 낸 '재판관 임명권 행사 위헌확인' 헌법소원의 선고 시까지다. 헌재는 한 대행이 지명에 잇따르는 인사청문요청안 제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송부 요청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등 일체의 임명 절차도 진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재판관을 지명하여 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피신청인(한덕수)이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하는 행위로 인해 신청인(김정환)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에 의하여 임명된 '재판관'이 아닌 사람에 의해 헌법재판을 받게 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성재 법무부 장관 탄핵 심판 선고가 열린 대심판정에 입장해 대기하고 있다. 2025.4.10. 연합

 

아울러 헌재는 가처분과 헌법소원 본안 결정의 결론에 따라 발생할 불이익을 비교한 뒤, 설령 본안 헌법소원이 기각되더라도 가처분을 받아들여 지명 행위의 효력을 정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가처분을 기각할 경우 이 사건 후보자(이완규·함상훈)에 대한 임명 절차가 그대로 진행돼 피신청인이 이 사건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게 될 것"이라며 "(한 대행에게) 임명할 권한이 없다면 피신청인의 임명행위로 인해 신청인만이 아니라 계속 중인 헌법재판 사건의 모든 당사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했다. 또 "가처분이 기각됐다가 헌법소원 심판 청구가 인용될 경우 이 사건 후보자가 재판관으로서 관여한 헌재 결정 등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헌재의 심판 기능 등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특히 본안심리 결과 한 대행에게 임명권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난다면 두 후보자가 관여한 재판에 대한 재심이 크게 늘어나는 등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심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부적격 재판관'에 의한 결정이 효력을 갖는 셈이 돼 "헌법재판의 규범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헌법재판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가처분을 인용한 뒤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기각됐을 때 발생할 불이익보다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됐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후보자 발표만 했을 뿐 지명·임명한 것은 아니므로 각하돼야 한다'는 한 대행 쪽의 궤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8일 열흘 뒤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왼쪽)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2025.4.8 

 

가처분 인용 결정에 따라 오는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 재판관이 취임하지 못해 헌재는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헌재가 심리를 서둘러 본안 헌법소원 사건의 결정을 선고하거나, 6월 3일 대선 이후 새 대통령이 취임해 후보자를 다시 지명할 때까지는 현 상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헌재가 만장일치 결정을 내려서 7인 체제에서도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낮은 만큼 대선까지 현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한 대행의 '제2의 친위쿠데타' '인사 쿠데타'가 제압된 데 대해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내며, 한 대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헌재의 효력정지 가처분 전원일치 인용에 대해 "당연한 결정"이라며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권한대행이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어불성설이었다. 헌재에 내란 공범 혐의자를 알박기 하려는 인사 쿠데타였다"고 했다.

 

이어 "한덕수 총리에게 부여된 권한과 임무는, 파면된 내란 수괴 때문에 치러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국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전부"라며 "경거망동을 멈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총리는 지금 당장 헌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며 "위헌적 쿠데타 시도에 대해 국민께 사죄하라"고 했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입장문을 내고 "애초부터 권한대행에 불과한 한덕수가 대통령 몫의 재판관을 지명하는 것은 헌법에 명백히 반한다"며 "심지어 (삼청동) '안가회동'의 당사자로 2차 내란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완규 법제처장과 성폭력 가해자의 논리를 대변하고 노동자에게 가혹한 판결을 내렸던 함상훈 부장판사를 지명한 것은 헌재를 파괴하려는 파렴치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비상행동은 "한 대행이 평소에도 사석에서 정권교체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표명했다는 증언과 언론보도가 나오는 상황에서, 어떤 국민도 한 대행이 헌법을 수호하고 다가올 대선을 공정하게 치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판관 지명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한만큼, 한 대행은 즉각 재판관 지명을 철회하라. 더 이상 헌법을 파괴하지 말고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위헌적 월권 행위 국민 앞에 사과요구

 

 

 
이완규 법제처장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15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 결의안을 바로 처리할 방침이다.

 

운영위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완규, 함상훈 지명 철회 촉구 결의안’을 민주당 등 주도로 처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운영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결의안에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이라는 위헌적 월권 행위를 한 것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이완규·함성훈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앞서 지난 8일 한 권한대행은 오는 18일 임기를 마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한 바 있다.  < 한겨레 기민도 기자 >

전직 대통령 가운데 직업 직접 말하지 않은 것 윤 전 대통령이 유일

 

 
 
윤석열 전 대통령(왼쪽),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김영원 기자forever@hani.co.kr, 연합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정식 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의 신원을 확인하던 재판부가 직업을 직접 말하지 않게 해 뒷말을 낳고 있다. 형사 재판 피고인석에 앉았던 전직 대통령 가운데 직업을 직접 말하지 않은 이는 윤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판사가 직업 묻고 박근혜·이명박은 “무직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14일 오전 10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재판을 시작했다. 이날 실질적인 심리에 들어가기 전 피고인이 공소장에 기재된 인물과 동일한지 확인하기 위해 이름과 직업,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 절차가 이뤄졌다.

 

눈에 띄었던 점은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가 윤 전 대통령에게 “1960년 12월18일생, 직업은 전직 대통령이고. 주거가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생년월일과 직업은 재판장이 먼저 언급한 뒤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주거지만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답하도록 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재판장이 직업을 언급한 대목에서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는 퇴임이나 파면 뒤 형사 재판을 받은 전직 대통령들이 인정신문에서 직접 직업을 답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7년 5월23일 첫 공판 인정신문에서 “박근혜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무직입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8년 5월23일 첫 공판 인정신문에서 “무직”이라고 직업을 직접 밝혔다. 내란 및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의 첫 공판에서도 ‘직업이 무엇이냐’는 재판장의 질문과 “없습니다”라는 답변이 각각 오갔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4일 첫 정식 재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

 

구속 취소, 촬영 불허…윤석열 봐주기 점입가경

 

한편, 지 판사는 이날 재판에 대한 언론사 촬영도 전례와 달리 불허해 특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다만, 이날 지 판사는 촬영신청이 늦게 진행돼 충분히 검토할 수 없어 촬영을 불허했다고 밝히며 “촬영신청이 다시 제기되면 허가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설명했다.

 

야당과 법조계에서는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양지열 변호사는 이날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피고인 직업을 물어봐야 하는데 ‘전직 대통령이냐’고 판사(가) 대신 얘기했고 윤석열은 답도 안 하고 끄덕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같은 방송에 출연한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도 “판사 앞에서 인정신문에 응하는 모습 자체가 역사적인 교육인데 이걸 못 하게 하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 판사는 앞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하면서, 구속 기간을 날짜 단위로 따지는 기존 계산법 대신 시간 단위 계산법을 처음으로 적용해 검찰이 구속 기간을 넘겨 기소했다고 판단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 한겨레  심우삼 기자 >

“증인에게 어떤 반응 보이는지 판사가 표정·행동 읽어야”

 

 
 
빨간 원 안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한국방송(KBS) 유튜브 갈무리

 

14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형사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 둘째 줄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았다. 보통 피고인들이 재판부의 태도 증거 확인을 위해 첫째 줄에 앉는다는 점에 비춰 통상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법정에 섰던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첫째 줄에 앉았다.

 

윤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은 3열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윤 전 대통령의 자리는 둘째 줄 가장 안쪽 자리였다. 윤 전 대통령 주변을 12명의 변호인들이 포위한 형태다. 417호 법정은 150석 규모로 서울고법·지법 내 법정에서 가장 규모가 커 전직 대통령들 재판도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2017년 5월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나란히 앉아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

 

법조인들은 통상적이지 않은 배치라고 지적했다. 피고인들은 재판부의 눈에 잘 띄도록 피고인석 앞줄에 앉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인 한동수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은 15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와 “피고인이 앞줄에 앉는 이유는 태도 증거 때문이다. 표정이나 동작 등 비언어적 진술 태도를 보는 것이고, 사실인정의 한 요소”라며 “재판부 입장에서 (피고인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관찰하기 좋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조상호 변호사도 “피고인은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증거다. 그래서 피고인 신문도 하는 것”이라며 “피고인이 증인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판사가 표정과 행동들을 읽어야 한다”고 짚었다.

 

윤 전 대통령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앉은 탓에 일부 현장 취재진은 일어서서 윤 전 대통령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고 한다. 한 전 부장은 “뒷줄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갔다는 건데 저라면 ‘피고인 앞줄로 오세요’라고 소송지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오른쪽), 노태우는 군형법상 내란죄, 반란죄 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8월 26일 1심 선고공판에 나란히 선 두 사람. 한겨레 자료사진

 

같은 법정에 섰던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피고인석의 첫째 줄에 앉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첫째 줄 두 번째 자리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은 자리에 앉았다. 전두환·노태우는 피고인석의 위치가 지금처럼 검사석 맞은편으로 바뀌기 전이어서 재판부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다만 첫째 줄에 앉았다는 점은 변함없었다.   < 한겨레 심우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