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도쿄전력에 6천여 건 전화공세
SNS에 일본비난 글 급증, 일본인 시설 투석도

마쓰노 일 관방장관 중국 쪽에 자제 요구
일본 외무성 주일 중국대사 불러 입장 전달

 

27일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 일본산 수산물 판매 중단을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일본 언론들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 개시 이후 중국에서 반일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2023.08.28. AFP 연합뉴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강행을 계기로 중국에서 일본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함께 반일감정이 확산될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양국간에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

깊어가는 중일간 균열

도쿄전력이 해양 투기를 시작한 24일 이후 중국 SNS에는 일본 비난 글들이 급증하고 28일까지 도쿄전력 본사에만 중국인들이 6천여 건에 이르는 전화공세를 펼쳤다. 중국 내 일본인 학교들에 돌과 달걀을 던지다 붙잡혀 구속되는 사례도 보도되고 있다. 일본쪽의 인적 물적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중국 내 관할 각 일본 총영사관은 현지 당국에 경비 강화를 요청했다. 일본 외무성은 27일 중국에 가거나 체류하는 자국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마쓰노 일본 관방장관 중국쪽에 자제 요구

사태가 일반적 예상 수위를 넘어 이상 조짐을 보이자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28일 “지극히 유감”이라며 “우려하고 있다”면서 중국쪽에 자제를 요구했다. 마쓰노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쪽에 대해 자국민에게 냉정한 행동을 취하도록 호소하고 일본인 체류자 등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계속 강력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오카노 마사타카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우장하오 일본주재 중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일본정부의 이런 입장을 공식 전달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 이후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것과 관련, 금주 중 수산업자를 보호할 구체적 방안을 정리해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2023.08.28. AFP 지지 연합뉴스

 

일본에 무차별 전화공세 동영상, 도쿄전력에 6천건

<아사히신문>은 28일 티셔츠 차림의 중국의 한 젊은이가 “도쿄 아무데나 전화해 보자”며 스마트 폰의 지도 앱에서 무작위로 뽑아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일본어로 “여보세요”라고 한 뒤 중국어로 “왜 핵오염수를 바다에 흘려 보냈냐”며 일방적으로 퍼부어 대는 동영상이 중국 SNS에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일본 참의원으로 보이는 곳에 전화를 걸어 중국어로 이야기를 늘어 놓고는 끊어버리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 같은 것들도 확산되고 있다.

후쿠시마 현에서는 여관이나 음식점, 역 등에 중국에서 걸려온 것으로 보이는 해코지 전화들이 밀려들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우치보리 마사오 후쿠시마 현 지사는 말했다. 전화는 병원이나 약국 등에도 계속 걸려 오고 있어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도쿄전력은 28일, 핵오염수를 해양 투기하기 시작한 24일부터 4일간 중국의 국가번호 ‘86’이 표시된 전화번호로 걸려 온 전화가 6천건이 넘었다고 밝혔다. 전화 내용은 투기에 대한 항의나 불만인 것으로 보이지만, 도쿄전력은 “유사 안건을 환기시킬 가능성이 있어서 전화 내용 설명은 삼가겠다”고 밝혔다.

치요다구 구청에도 1천 건이상 전화

도쿄도 치요다구 구청 대표전화에도 해코지 전화가 1천 건 이상 걸려와 경찰에 그 사실을 알렸다. 구청에 따르면 “왜 오염수를 방출하느냐” 등의 항의를 서툰 일본어로 내뱉거나, 일방적으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으며, 전화를 받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 녹음된 음성을 자동으로 흘려 보내는 경우 등도 확인됐다. 25일에는 약 600건에 달했고 그 뒤에도 수백건 단위로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다고 치요다구는 밝혔다.

SNS에서 관심을 끌려고 이런 전화를 한 경우까지 포함해서, 중국인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의 중국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오염수 해양 투기 문제가 폭넓은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아사히는 썼다.

 

일본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시작한 24일 중국 베이징의 대형마트에서 한 여성이 수산물을 보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세관)는 이날 일본의 오염수 방류 개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일본이 원산지인 수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2023.08.25. EPA 연합뉴스

 

“모두 일본 때문이야” 반일감정 표면화

25일 아침 베이징 시내 슈퍼 마켓에서 텅 빈 소금 제품 선반 앞에서 고령의 한 여성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모두 일본 때문이야. 제멋대로 굴어 화딱지 나.”

일본계 기업에서 일하는 40대 여성은 “아이가 ‘왜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야먄 해? 다른 방법은 없어?’라고 물었으나 대답할 수가 없었다”며 탄식했다.

산둥성 칭다오와 장쑤성 쑤저우의 일본인 학교에 돌멩이와 달걀을 던지는 등 “반일감정이 표면화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2012년 센카쿠 열도 사태 재발할까 우려

게이단롄(경제단체연합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은 28일 삿포로 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화장품을 사용하지 말자는 움직임 등이 일고 있다며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한 2012년 무렵)를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무인도인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사들여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중국 각지에서 격렬한 반일시위가 벌어져 일본제 자동차들이 공격을 당하는 등 일본기업의 경제활동도 큰 영향을 받았다. 도쿠라 회장은 이번에도 수산물 수출과 일본방문객 감소에 그치지 않는 큰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본제품 불매 선동이 크게 확산되진 않고 있어 2012년 당시의 긴장감과는 다르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그럼에도 베이징의 일본인 사회에는 “예단은 금물.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기를 바라지만”(일본계기업 간부) 하며 걱정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규제 조치가 시행되는 홍콩의 한 수산 시장에서 23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전날 홍콩 정부는 일본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시작하는 24일부터 도쿄 등 일본 10개 도(都)·현(縣)에서 수산물을 수입해오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2023.08.23. EPA 연합뉴스

 

한국 윤석열 정권과는 큰 차이

중국사회의 이런 반응에는 ‘처리수’를 ‘핵오염수’라 부르면서 “바다는 일본의 하수도가 아니다”는 등의 격렬한 말로 비판을 계속해 온 중국 외교부의 일방적인 “정치적 주장”이 영향을 끼쳤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중국에서는 “트리튬(삼중수수) 등의 방사성 물질 농도는 국제기준 이하” 등의 일본쪽 설명은 “도쿄전력 데이터를 신용할 수 있나” “30년에 걸친 장기 방류의 안전성을 누가 보증할 수 있나”라는 중국 외교부의 반론에 부닥치고 있다.

중일관계는 중국의 ‘전랑외교’라는 강경노선 탓도 있어서 최근 외교당국간 교섭에는 진전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가들 차원의 전략적인 의사소통도 기능하지 않았다. 이런 점은 일본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의 윤석열 정권이 대일 관계를 중시하면서 한국내에서 강한 반발까지 받아가며 굳이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과학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일본에 쇄도한 불편한 전화들에 대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언급을 피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한편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해 외교부는 “주변국과 국제사회는 두루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북한과 러시아, 솔로몬 제도 등 가까운 나라나 한국 야당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중국 입장이 돌출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 시민언론 민들레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