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예루살렘 서울 토론토

● 칼럼 2013. 2. 8. 16:58 Posted by SisaHan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우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탄식하셨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지금까지 로마의 식민지로 지나면서 그 학정에 시달렸던 나라와 민족이 로마제국의 말발굽에 완전히 초토화가 될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장로와 바리새인들은 정치 권력에 아부만 하고 율법은 입으로만 떠들고 기도는 하지 않고 기도하는 곳을 장사꾼들이 돈버는 처소로 변모시켰을 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어떤가?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그 사상의 갈등은 이제 남남이 갈라지고 세속화의 물결이 휩쓸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세계적인 추세에 빠지지 않으려는지 동성결혼이나 죄악 된 일에는 앞장을 서는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 사상의 갈등만 아니라 도덕의 기준도 사라졌고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신앙의 차원을 앞질러 파괴로까지 가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세상 정치에 물든 것이 교회에도 들어와 교회 정치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교회의 권위는 세상의 법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신학자들은 벼라별 단어를 동원하여 새로운 신학을 만들고 있으나 영감이 없다. 교단마다 교권을 차지하려 다투고 예배당 건물이나 교회의 예산이 마치 목회자 또는 어느 장로의 재산인 것처럼 세습을 하려고 하는 교회가 되었다. 
기도원은 수양관으로 전락하고 부흥회는 만담의 장소로 변했다. 교회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인터넷의 카페는 늘어나고 안티 기독교 세력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교회는 거저 오늘에 만족한다. 예배당도 크고 그래도 사람은 모이고 헌금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무기력한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하다.

잘 살아보겠다고 떠나온 무리들의 처소 토론토. 고향을 떠났고 섬기던 교회를 떠나 가나안과 같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 속에 주변을 돌아볼 틈조차 없이 분주했다. 문화 언어 환경마저 다른 처지에서 안간힘을 쓰며 오늘에 이르렀으나 무엇을 얻었는지 또는 잃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교회는 많아졌으나 앞으로는 암담하다. 이민이 들어오지 않으니 교인 수는 늘지 않고 정체된 상태에서 함께 살다 보니 모두 늙어가고 있다. 젊은이는 교회를 떠났다기보다 들어오지 않았고 우리에게서 자란 젊은이들은 영어권으로 가서 예배를 하니 결과적으로 교회는 늙어가고 있으며 자연 헌금도 줄어지고 경제의 불황이 확산되면서 예산은 해마다 축소해야 하는 형편이다. 3 백 개를 헤아린다고 하던 토론토의 교회도 통폐합을 해야 할 때가 왔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한다. 

만일 오늘 예수님이 토론토에 오셨다면 뭐라 하실까? 역시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하시고 책망하지 않으실까? 과연 우리에게 눈물이 있는가? 기도가 있는가? 말씀 속에 깊이 빠진 묵상에서 나온 설교가 있을까? 읽은 말씀에서 설교로 들은 말씀에서 가책을 느끼며 바로 살려고 노력하며 진정 빛으로 진정 소금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그렇게 이루어진 삶이 있을까?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