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눈송이의 감상

● 칼럼 2013. 3. 8. 17:54 Posted by SisaHan
겨울이 막바지에 달했다. 나는 매일 먼 곳까지 운전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날씨와, 특별히 겨울에 내리는 눈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보통은 운전 길에 쌓이는 눈이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생각으로 살지만, 한편으론 차창에 내려앉는 눈 송이의 모습에 따라 그 먼 출퇴근 길이 깊은 감상의 길이 되곤 한다. 
암만 갈 길이 멀고 마음이 조급해도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의 큰 눈송이를 보면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그냥 차를 집어 던지고 마냥 걷고 싶어진다. 어디선가 그리운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날은 생각 없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떡가루 같은 눈이 보슬보슬 내릴 때가 있다. 바람도 없는 잿빛 하늘에서 줄지어 내려오는 가는 눈 발을 보고 있으면 마음은 차분해 지면서 알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첫 아기를 품에 안던 날이 꼭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학교 가는 길에 그런 눈을 맞았던 것 같기도 하여 따뜻한 느낌마저도 준다. 또 습기를 잔뜩 머금고 뚝뚝 떨어져 차창에 쌓이는 눈을 보면 애틋한 감상보다는 곧 봄이 올 것 같은 기대에 어깨가 가벼워지고 새 계절에 대한 기대에 쌓인다.
 
라디오에서 눈송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야기한다. 눈은 모두 6각형 짜리 미세한 얼음조각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작은 얼음 조각이 떨어지다, 상공에서 기류를 만나면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또 내려오다 올라가기를 거듭하면서 그 때 공기 중에 있던 습기가 얼음 조각에 부착되면서 눈송이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했다. 듣고 보니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과정인데, 그렇게 해서 조금씩 달라진 눈의 형태들이 하늘을 채우면서 우리의 감정을 그리도 변화 무상하게 하는 것이다. 
같이 일을 하는 동료 중에 나이도 비슷한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인은 항상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제적인 일에 정보를 다 확보하고 있어 우리가 고용계약을 다시 조절하거나, 직원 혜택의 내막들을 알고 싶으면 그녀에게 물으면 된다. 무슨 일에도 그녀는 금전적인 계산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늘 주변의 사람들과 돈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가 하는 일이 틀린 것은 없지만, 만나면 저 깍쟁이가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계산기를 꺼낼까 싶다.
한편 다른 여인은 어디를 가도 주변의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 그녀는 늘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바램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서슴지 않고 베푼다. 언어치료사로 많은 아이들과 일하다 보면, 어린 나이에 힘든 병에 걸려 앞 날을 추측할 수 없는 아이들과도 만나게 된다. 그 동료는 수시로 그런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자신이 선두로 비용을 내고 모금 운동을 벌여, 아픈 학생을 ‘디즈니월드’에 보내 주기도하고, 집에서 치료를 받을 때 갖고 놀 수 있는 게임기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마치 어려움은 한번도 겪어 본적이 없는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풍요롭다.
 
이들 두 동료는 각자 나와 단둘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얼마나 자신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은 시골 마을에서 농토도 없이, 막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또 다른 친구는 폴란드에서 갓 이민 와 광산에서 일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많은 형제들과 자라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의 삶은 공중에 던져진 작은 얼음 조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류에 쌓여 곤두박질 치면서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면서 살아간다. 그 긴 여로를 아무 준비 없이 맞아, 있는 힘 것 살아간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 많은 눈송이들이 다 다른 형색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공중곡예를 거치며 살아 온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모습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도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꽃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차창에 떨어지며 스르르 녹아 버리는 힘없는 눈을 보며 감상에 젖어본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