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곧 개봉되는 영화 <링컨>을 미리 보고 느낀 소감이다. 물론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명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짝을 이뤄 만든 작품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4년 넘게 6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역사상 최대 위기를 혼신의 힘으로 돌파해낸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빛나는 리더십이 실재하지 않았다면 영화도 감동도 존재할 턱이 없다.
미 해군사관학교에 가면 ‘위기 때 가장 좋은 배는 리더십이다’(The best ship in times of crisis is leadership)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딱 어울리는 재치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리더십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나라마다 사정도 천차만별일 터인데, 우리나라 지도자에겐 어떤 리더십이 최선일까? 영화 <링컨>이 그 답을 상당 부분 제공해준다.
남북전쟁 막바지인 1864~65년 무렵, 링컨은 노예해방이 전쟁의 주목적이라는 급진 공화당원과 오로지 연방의 복원을 위해서만 싸워야 한다는 보수 민주당원 사이에 끼여 있었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게 되면 당과 정부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거덜날 지경이었다. 마치 북한 핵과 양극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우리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 갓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안보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외면할 수도, 경제민주화를 위해 안보를 등한시할 수도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링컨은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확고한 원칙과 소신, 포용과 통합, 소통이라는 종합예술로 타개했다. 당내 대통령 후보 경쟁자였던 윌리엄 헨리 수어드, 새먼 체이스, 에드워드 베이츠를 국무, 재무, 법무 장관에 과감하게 기용해 당내 화합을 이룬 데 머물지 않고 야당, 일반 시민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불과 2표 차로 통과된 ‘노예 폐지’ 헌법 제13조 수정안 처리를 앞두고, 여야의 반대 의원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링컨의 모습은 ‘진정성 있는 소통’이 최고의 리더십임을 보여준다. 더 강한 내용의 노예제 폐지 조항을 요구하는 급진파 공화당 의원 새디어스 스티븐스에게 ‘북극성만 보고 가다가는 발밑에 있는 진창에 빠질 수 있다’며 자제를 촉구하고, 전쟁 때 흑인에게 숨진 가족이 있는 민주당 반대파 의원에겐 ‘그런 희생을 노예제 폐지의 숭고한 밑거름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상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그의 능력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걱정이 많다. 신뢰와 원칙은 있는 것 같은데 포용과 소통은 없다는 게 요지다. 최근 관훈클럽의 ‘관훈초대석’에 나온 임채정·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나란히 그의 리더십을 비판했다. 임 전 의장은 그가 권력 독점, 통제와 지시, 반대에 대한 억압, 자원의 강압적 동원, 획일과 효율성 만능 사고라는 박정희 시대의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장도 원칙과 신뢰, 헌신과 정도, 품격과 절제가 그를 선택한 이유일 것이나 출범 전부터 밀봉, 불통의 인식을 심어줘 안타깝다고 말했다.
비교적 소통에 강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 영화를 보고 “대통령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 결핍증’ 지적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링컨한테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영화 <링컨>을 보고 나면, 적어도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쥔 채 “물러설 수 없다”고 외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 오태규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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