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2년 전 오늘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지진해일(쓰나미)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상 초유의 사건은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만도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지진 해일은 인도양 전역에 걸쳐 20만 희생자를 냈고, 2008년 2월 중국 쓰촨성 지진과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도 50만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는 이런 끔찍한 재난이 드물지 않게 발생함을 기록하고 있는데, 당연히 인간은 태풍·한발(가뭄)·화산폭발·지진 등 과격한 자연변화에 순응하며 사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의 유례없는 점은 그것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폭발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원자로에서 망가진 핵연료를 꺼낸 뒤 안전하게 처리하기까지 30~40년은 걸릴” 거라는 게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의 말이고 보면, 재앙은 이제 겨우 시작된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하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현장에서 즉사한 직원의 시신은 아직 오염구역 안에 남아 있다고 한다. 방사능으로 인해 구조대원의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후쿠시마든 체르노빌이든 두 사고 모두 현재진행형이고, 원인이 지진 때문이든 설계결함 때문이든 또는 직원의 조작실수 때문이든, 원전이란 근본적으로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간과하는 아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원자력의 군사적 사용과 ‘평화적’ 이용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뿌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폭탄과 원자력발전은 동일한 원리에 기반해 있고, 따라서 핵무기 개발과 원전 건설은 핵심적 과정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지진 다발 국가인 일본에 수많은 원전이 건설된 불가사의를 설명하자면 ‘원전 마피아’라고 속칭되는 일본 지배층의 군사적 야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고, 세계 제5위의 원전강국임을 자랑하는 한국도 그런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라는 비슷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프랑스가 원전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은 평화주의를 지향하느냐 군사주의를 용납하느냐의 세계관의 차이가 두 나라 정치와 시민사회의 근간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요즘 들어 매일 실감하는 바와 같이 후쿠시마 이후 2년이 지나는 동안 동북아시아는 날로 더 위험한 지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동북아가 지구상 최고의 원전밀집지역이라는 것은 그 위험의 구체적 증거라 하겠지만, 그러나 이것이 단지 이 지역 국가들의 원전정책에만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 더 큰 눈으로 보자면 1900년 전후 청일전쟁·러일전쟁을 통해 표현되었던 것과 같은 거대한 시대전환이 지금 역사의 지층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데, 관련 당사자들이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부적응의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부적응의 대표 사례는 영토분쟁일 것이다.
물론 당면의 위험은 북핵이다. 제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 결의에 대항하여 북한은 잇달아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고, 오늘부터 시행되는 키 리졸브 훈련을 앞두고도 <로동신문>은 모든 장병들이 “최후의 돌격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며 더욱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남쪽 방송에서 거두절미하고 전해주는 북한 아나운서들의 난폭한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갖는 것은 누구보다 남북화해를 소망해온 남한의 일반 국민들일 텐데, 그 점을 북한 당국자는 짐작이나 할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제2의 조선전쟁’이란 발상은 꿈에서도 해선 안 될 금기 중의 금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전·현직 대표들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고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실로 처량한 노릇이다.
지난 5년 동안 남북관계를 파탄 낸 결과 우리의 안전을 남에게 의탁하는 신세가 된 것 아닌가.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총체적 구상을 가다듬을 시점이다.
< 염무웅 -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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