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바울 사도를 생각하며

● 칼럼 2013. 3. 15. 19:46 Posted by SisaHan
지난 2월에 필리핀에 있는 우리 교단 산하의 태평양 노회의 요청으로 부흥회를 다녀왔다. 그런데 막상 부흥회를 허락하고 난 뒤 갈 때 쯤 되어 연락이 왔는데 노회 내의 모든 교회들이 모두 선교지역으로 흩어져 있는지라 강사께서 노회 산하의 몇 지역으로 함께 가셔서 집회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의 말씀이었다. 노회의 형편으로 볼 때는 수도인 마닐라 지역에서 집회하는 것이 편리하지만 노회의 구성원인 다른 지역의 교회도 노회가 누리는 혜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면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강사인 나로서는 난감했다. 보통 부흥회를 인도할 때 낮에는 쉬면서 건강을 관리했는데 낮에는 이 지역 저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하니 몸에 무리가 될 것은 뻔하고 그렇게 피곤한 몸에 시차 역시 만만치 않을 텐데 하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큰 걱정은 설교를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었다.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강사 나름대로 은혜를 받게 하고자 설교하는 흐름이 있는데 그런 어떤 흐름도 없이 다른 지역에서 설교를 해야 하고 매번 청중도 바뀌어지고 동행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시니 같은 설교를 계속할 수도 없고. 이젠 적지않은 나이에 모든 것이 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마닐라에서 하루 저녁 인도하고 다시 북쪽의 바기오라는 도시로 갔다. 거기는 영상 30도 이상의 마닐라와 달리 산위의 도시가 되어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다는 그대로 영상 20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고,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마닐라에서 온탕을 하고 바기오에서 냉탕을 한 셈이랄까? 다음 날은 다시 바기오에서 내려와 앙겔레스라는 도시로 왔다. 다시 온탕이었다. 바기오까지 6시간의 운전에다 거기서 다시 앙겔레스까지 4시간을 타고 내려왔다.
음식도 그랬다. 나름대로 정성껏 대접해 주시는데 육신이 피곤에 지치니 음식의 맛도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괜히 매운 것 같고 괜히 짜게만 느껴지는 그런 식이었다. 전에는 잘 먹었을텐데.
이리 저리 자동차에 시달리면서 피곤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나는 바울 사도가 생각이 났다.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세 번의 전도여행을 다닐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었던가? 지금 내가 힘들고 불편해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바울 사도를 생각해 보았다.
 
바울이 필리핀에 와서 선교를 했거나 부흥회를 인도했다면 뭐라 했을까? 나이 타령? 피곤하다? 잠을 많이 못 잔다? 음식이 불편하다? 덥다 춥다 하는 말들을 했을까? 어느 것이나 모두 바울 사도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일 뿐 불평이나 불편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울 사도 당시 승용차는 물론 자전거가 있었겠나? 모든 길을 걸어 다녔을 것이고 기껏 빠른 길을 택했다면 배를 탈 뿐이었다. 바울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흥회 강사로 모시는 그런 대접이 있었겠는가? 그가 가는 길에는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말씀하는 그대로 갖은 고난과 푸대접 또는 돌에 맞는 환난과 핍박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겠다.
물론 시대가 다르지만 그래도 내가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서 바울을 생각해보니 송구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강사님 강사님 하는 대접을 받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바울 사도를 생각해내야 하듯이 우리보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을 항상 생각하며 고려하는 자세를 갖고 주의 일을 하면 어떨까?
그런데 부흥회가 끝나고 돌아오려는 데 내년에 또 오라고 하신다. 어떻게 할까? 물론 가야겠지.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