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각,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찾고 모아 정리하는 재미 쏠쏠
“그게 문화고 예술이죠”

봄을 맞이하며 “버려야 산다”는 ‘버림교’가 유행하게 되지만 오래된 수집 본능을 누를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신종 수집가들은 단돈 몇푼이면 살 수 있는 싸구려 상품들을 모은다. 예술의 눈으로 보면 키치에 가깝다. 필리프 블롬은 <수집>이라는 책에서 “키치는 기계생산시대에 수집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대량생산이 이루어짐으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완전한 세트를 갖춘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구할 수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던 시대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수집가들은 오랫동안 모아온 것들을 함께 모아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전시라지만 값비싼 미술품은 없다. 일상 잡화 신봉자인 이들은 코카콜라 캔, 스타벅스 텀블러, 베어브릭 인형, 플레이모빌 같은 완구류, 심지어는 오래된 잡지 표지를 곱게 모아 정리하기도 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지는 물건들이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면 새 생명을 얻는다. 
코카콜라 캔은 세계 어디서나 1달러 남짓한 돈으로 살 수 있는 값싼 전리품이다. 그러나 구하기 어려운 캔이나 병은 수집가들 사이에 비싼 값으로 거래되기도 한단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호돌이가 그려진 코카콜라병이 나왔다. 외국에서는 지금 우리 돈으로 50만원 정도에 거래되는 희귀 품목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추첨 행사장에서만 돌려졌던 코카콜라병은 20만원 정도다. 이쯤 되면 콜라를 마시면 병을 버리기가 아까울 만도 한데 그 값은 영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카콜라 수집품을 전시한 김근영씨는 “지금 값싼 아이템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예전엔 대부분 화폐나 우표를 모으던 사람들이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때 수집품들의 가치가 갑자기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많은 수집가들이 없어졌다. 수집한 물건들이 가치가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뒤늦게 모으기 시작해도 무섭게 모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수집의 경향이 투자보다는 순수한 취미로 돌아왔다는 말이다.
 
‘저장 강박자’, ‘소비 중독자’, ‘불안증 환자’. 어떤 말로 공격해도 소용없다. 
수집가인 김상윤 씨는 바로 그러한 수집가들의 오타쿠적인 측면이 문화를 만든다고 봤다. 김 씨가 “수집은 예술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수집은 일상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은 욕망에서 나오며 주변의 무엇인가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은 개인이 예술가가 되는 작은 단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책을 모으는 사람은 애서가라고 칭송받지만 장난감을 모으는 사람은 유치하다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김 씨는 “책을 읽다 보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수집하다 보면 모으지 않은 수집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수집은 맥락을 캐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건축가인 강기표 씨는 영화티켓, 포스터 등을 모은다. 개인적인 수집을 자산 삼아 영화 강연도 하게 됐다. 레고와 플레이모빌을 모아온 이주학 씨는 수집품들이 감당 못할 양으로 쌓이자 토이 뮤지엄을 열기도 했다. “십여년 전부터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외국의 색다른 상품을 접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수집동호회가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주학 씨 말대로라면 수집이 시작된 지 10년, 이제 전시의 단계에 이른 셈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씨는 지난해 <수집미학>이라는 책을 썼다. 그의 연구실은 수집가들의 마음이 편안해질 성소 같은 곳이다. 연구실 안에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책장을 빼곡히 들여놓았다. 책장과 책상 사이사이에는 그가 하나하나 발품 팔아 정성껏 마련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박영택 씨는 “문구류, 특히 예쁜 볼펜은 환장하며 사는 것 같다. 끊임없이 나를 사로잡는 걸 찾아 전시장도 다니고 수없이 많은 가게들을 들락거린다.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쉽게 살 수는 없다. 대신 값싼 공산품을 끊임없이 산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매일 무언가 수집하고 바라보고 좋아하면서 은밀한 시간을 보낸다. 
이 자폐적인 사물과의 독대는 그것들이 발화하는 음성을 듣는 일이자 그 생김새와 색채, 질감을 편애하는 일”이라고 썼다. 그 쾌락을 물신주의라고, 공허한 소유욕이라고,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다만 이 순간만은 온전히 수집가의 것이다. “내 감각, 기호, 취향, 이런 것을 만족시키는 물건들을 찾아내 그런 것을 삶의 근거리, 내 손이 닿는 곳에 놓았을 때 즐겁다. 그게 문화고 예술”이라는 게 박영택 씨의 생각이다.
< 남은주 기자 >


수집과 중독 사이…
『나는 수집한다, 고로 존재한다』

남성잡지 <GEEK>에서 일하는 김도훈 기자는 자타 공인 스니커즈 수집광이다. 그가 지금 가진 스니커즈는 30켤레 정도. 특히 하얀색 스니커즈를 좋아해 4~5켤레는 항상 가지고 있다. 그의 광범위한 스니커즈 소장품 중에는 60만원이 넘는 신발도 있단다. “옷 같은 걸 소비하는 것은 여자의 영역으로 간주되니까 자연 남자들은 신발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신발 수집의 변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에서 보면 나이키 한정 스니커즈를 주제로 모인 카페가 여럿, 회원들 대부분이 남자다.
 
남자가 신발이라면 여자의 수집목록 1위는 단연 향수다. 이선주(46)씨는 1989년부터 향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모으고 선물받은 향수가 지금은 1500개를 넘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olive67)에 향수를 구입한 이야기, 시향기를 올리다가 향수 광고, 꽃 전시회, 향수에 관한 소설 등 향기를 주제로 점점 폭을 넓히고 있다. 이씨가 향수를 모으는 이유는 “모든 향기는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병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란다. 십수년이 지나 지금은 쓸 수 없는 향수도 많다. 향수는 태어나면서부터 변한다. 금세 변질될 변덕스러운 패션 아이템을 모으는 이유는 변하는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단종과 품절은 수집가들의 늪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물건이 곧 사라진다는 생각이 저장 강박을 부추긴다. 
전지영(38)씨는 17년 간 화장품을 모아왔다. 배우 심은하가 칼리 모델을 하다가 은퇴하면서 갑자기 그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뒤, 뜨는 화장품은 반드시 모은다. 중독되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벼룩시장에서 산 구두든, 마놀로 블라닉 매장에서 집어든 신발이든, 빛나는 것은 그들의 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