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 나에게 언어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가 물었다. 대강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할아버지가 빙그레 미소를 지며 “그게 바로 어릴 때 내 모습” 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분은 90이 넘으신 체스(Ches) 할아버지다. 
체스 할아버지는 우리가 70년 대 토론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만난 사람 중에 한 분이다. 프린스 에드워드(P.E.I.) 섬 출신인 할아버지는 그 때 건장한 중년이었는데, 여름에 P.E.I.까지 찾아가 할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하여 많은 가족도 만나고, 빨간 섬의 농가에서 온갖 사랑을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서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평생 톱니바퀴(gear)를 만드는 일을 했다.
 
할아버지가 만든 톱니바퀴 중에는 일점 오센티 (1.5㎝) 의 작은 톱니바퀴에서 부터 육척이 넘는 할아버지의 키보다도 세배나 큰 톱니바퀴까지 크기가 다양하고 쓰이는 용도도 추측할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체스 할아버지는 톱니바퀴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밀도라고 했다. 원형의 틀 주위에 박혀있는 수많은 톱니중 어느 하나라도 정확히 깍아지지 않으면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지 못하여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했다. 두번째로 기계 속에서는 많은 톱니가 서로 물고 돌아가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깍아 놓은 톱니도 용도와 환경에 따른 문제가 동반하게 되어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기계가 원활히 작동하도록 온갖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사람은 하는 일에 따라 생각과 사는 모습이 바뀌어가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원칙대로 정확히 사는 일이 몸에 밴 사람이다. 우선 무엇이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곳에 도착하기까지 긴 훈련이 필요해도 일단은 그 원칙을 받아 들인다. 자신이 정성들여 만든 톱니 바퀴가 무사히 돌아가기까지 조절하고 깍기를 거듭하는 것처럼 일단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조금씩 주변에 적응해 나간다.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토론토에 도착한 후 지난 60년 이상을 시내의 한 교회를 지켜왔다. 그 긴 세월 신앙생활에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많은 여성들이 안수를 받고 목회자 직을 맡게 되었고, 토론토에는 여러 곳에서 온 이민자들이 정착을 하여, 중상층 백인들뿐이던 교회는 온갖 얼굴의 교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성적 소수자들도 눈에 띄게 되었다. 예배의 형태들도 변화를 보여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으로만 이어지던 경건한 찬송은 기타와 드럼 소리에 맞추어 사람들의 감정이 더 많이 표현되는 복음성가들이 섞이기도 하였다. 
최근 거론된 교회의 변화 중에는 성적 소수자들을 목회자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익숙하지 않은 일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종교는 삶의 모태와 같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 감정을 모두 의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변화를 어렵게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그 문제로 교회에는 많은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긴 회의 끝에 의장이 성적 소수자에 관하여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교회의 입장을 정하는 것이 좋겠다며 회의를 마무리지으려는 순간이었다. 늘 회의를 지켜만 보던 체스 할아버지가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할 말을 정리하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일은 우리와 함께 예배에 참가했던 이들도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고 이들을 이해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라고 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한 톱니바퀴로 사회라는 기계 속에서 조금씩 원활한 돌림을 시작하고 있다.
 
이제 할아버지는 교회에 참석하는 최고령자가 되었지만, 평생 하던대로 교회 건물과 시설들을 수리할 일이 생기면 자신이 고쳐보려 온갖 아이디어를 내 본다. 60년이 넘은 교회의 보일러는 할아버지의 기술과 지극한 정성으로 ‘바꿀 필요 없음’이라는 합격 평가를 받았다. 요즘은 연장 통이 힘에 버거워진 할아버지 뒤에 우울증으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청년 하나가 할아버지를 도와 연장 통을 들고 쫓고 있다. 자신의 말처럼 할아버지는 말로 남을 설득하며 살아 온 사람은 아니지만 주변의 톱니바퀴들이 다 맞아 돌아가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갈고 조이기를 끊이지 않는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