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에 불합격 판정을 받은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가동중인 원자로를 정지하라고 지시해 올여름 전력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원전 불량 부품은 지난해에도 크게 문제돼 관련 기관들이 시스템 정비와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끊이질 않으니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시험 성적서를 위조한 부품은 제어케이블로, 원전 사고 발생시 원자로의 냉각 등 안전계통에 동작 신호를 보내는 장치라고 한다. 원안위에 따르면, 제어케이블 시험의 일부를 해외 시험기관에 의뢰한 국내 시험기관이 이 해외 시험기관에서 발행한 시험 성적서를 위조했다고 한다. 제어케이블이 정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핵연료 냉각 및 외부로의 방사성물질 차단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니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것도 원자력산업계의 비리를 막기 위해 원안위가 운영하는 신문고에 누군가가 제보한 덕이었다. 이 부품이 설치된 게 2008년이라니 5년 동안 까마득히 모르고 가동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알게 됐기에 망정이지 제보가 없었다면 위조 부품이 들어간 원전을 계속 가동할 뻔했다. 지난해 품질 서류 위조에 대해 전수조사를 했다는 원안위와 한국수력원자력의 검증 시스템에 또 허점이 드러났다.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원전은 단 하나의 부품이 고장을 일으켜도 연쇄적으로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제어계통의 부품은 원전의 핵심 안전설비 중 하나인데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충격적이다. 지난해에도 영광 원전에서 품질 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공급된 사실이 드러나 한동안 가동이 중단된 적이 있다. 또 고리 2호기와 영광 1~4호기에 납품된 부품의 시험 성적서가 위조되고 이 과정에서 한수원 직원이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사실도 드러난 바 있다. 먼저 납품된 부품이 몰래 빠져나갔다가 그대로 재납품되기도 하고, 중고 부품이 새 제품으로 둔갑돼 납품되는 등 비리 수법도 다양하다.
한수원이 우월적 지위에서 300개에 이르는 부품 납품업체를 관리하고, 원전 운영을 폐쇄적으로 하다 보니 생기는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납품업체로선 불합격 판정을 극구 피하고 싶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유사 사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드러난 것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불량 부품이 들어갔을 소지는 없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원전의 가동 정지로 전력 수급에 비상등이 켜질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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