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싱크탱크로 ‘정책 네트워크 내일’을 만들었다. 최장집 이사장과 장하성 연구소장을 비롯해 유력한 지식인 여럿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내일’은 안 의원이 추구하는 새 정치를 뒷받침할 정책 담론을 개발하겠다고 한다. 안 의원이 정치에 다시 뛰어들면서 정책부터 붙든 것은 좋은 일이다. 안 의원의 정치활동 무기가 될 뿐 아니라 범야권 차원에서도 자극이 될 수 있다.
안 의원은 대선 국면에서 정책 준비가 부족해 좌충우돌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에 앞서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펴내고, 정책 분야별로 기본 착상을 선보인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 뒤 안 의원 자신이 통일외교안보를 비롯한 일부 분야에서 <안철수의 생각>과 어감이 다르게 발언함으로써, 무엇이 진정한 안철수 생각인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대표 상품이라는 정치개혁 분야에서도 고작 국회의원 수 줄이기를 실천 수단으로 제시해 밑천이 짧다는 느낌을 줬다.
안 의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지난 대선에서 야권은 무엇보다 연합정치에 대한 이론적 허약성을 드러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진영은 과거 DJP 연합 수준의 정책협약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공통의 정책과 우선순위, 실현 프로그램을 합의하고 시민들한테 설명하는 기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수준 낮은 밀고 당기기만 벌였다. 이것이 야권의 대선 패배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안 의원 진영이 기왕에 이론 작업에 착수한다면 연합정치 주제를 우선적으로 연구하는 게 옳다고 본다.
‘안철수 세력’은 사실 독특하다. 기성 야당을 통해 소화되기 어려운, 새로운 정치적 취향과 참여 욕구를 품은 시민들이 주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안 의원은 국회에서 거의 단기필마 소수세력이다. 다원화된 가치를 대변하기 좋도록 다당제를 주장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이와 동시에 창당도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이 여론조사 지지율로 민주당을 앞서고 있다. 안 의원 진영이 야권 재건의 동력이 되리라고 기대를 모으는 동시에, 야권 분열에 대한 걱정이 함께 나오는 이유다. 연합정치 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안 의원이 정치 재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할 듯하다.
연합정치는 보편성이 매우 큰 주제이기도 하다. 서양 정치사에서 소수 정치세력은 늘 연합정치를 통해 성장했다. 영국 노동당은 자유당과 연합 전략을 구사했다. 사회당과 여러 민주주의 정파들은 파시즘에 맞서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진보정당은 대체로 선거연립을 잘 만들 때 집권했다.
안 의원 진영이 해결해야 할 또 한가지 이론 문제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구호가 무엇을 뜻하는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또한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까지 정부 정책의 진보성은 주로 외교안보, 특히 대북정책에서 나타났다. 그밖에 경제정책에서는 보수정권과 진보정권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화해협력이냐 대북 압박이냐라는 남북관계 철학이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상징언어처럼 된 데는 이런 까닭이 있었다.
진보와 보수를 고정해놓고 개별 정책을 꿰어맞춰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보는 보수’를 표방한다면, 어떤 보수정책 묶음으로 남북관계와 분단의 모순을 해결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안보는 보수’ 구호가 단기 여론을 의식한 모호한 처방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
안 의원이 저명한 학자들을 삼고초려하고, 이론 연구에 착수한 점은 여러모로 방향을 잘 잡은 것이다. 좋은 결과를 일궈 야권과 지식계를 자극해주면 좋겠다.
< 박창식 - 한겨레신문 연구기획실장 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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