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화, 컴퓨터, TV, 가전제품, 자동차, 장난감, 심지어는 데이팅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첨단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런데 이 테크놀로지 시대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 중의 하나가 ‘순간 만족’(instant gratification) 이라는 것이다. 즉, 무언가를 원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그 욕구가 충족된다는 것. 예를 들어보자. 전화를 걸어야 한다면 집이나 공중전화 박스에 갈 필요가 없다. 호주머니나 핸드백 안에 휴대전화가 있으니까. 어떤 주제에 대해 리서치를 해야 한다면 굳이 도서관까지 가야만 하는 건 아니다. 노트북 컴퓨터나 태블릿, 심지어 휴대폰으로도 인터넷에 접속해서 바로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납부금을 내야 한다면 굳이 은행에 가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 뱅킹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 <순간 만족>의 시대. 그런데 문제는 이 <순간 만족>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것이냐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순간 만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주로 무절제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지칭하는 데 이 말을 사용한다. 비만으로 고민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즉시 달려가서 몇 번이라도 사먹는다든지, 형편에 맞지도 않게 값비싼 물건을 신용카드로 구입한다든지, 할 일을 안하고 노는 것에 열중한다든지 등등. 여기에 덧붙여지는 말이 ‘지연 만족’(delayed/deferred gratification) 이다. 이는 즉각적인 보상을 얻고자 하는 충동과 유혹을 피하고 나중에 받게 될 더 큰 보상을 위해 만족을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님들이 즐겨 쓰는 표현들이지만 “할 일을 해놓고 나서 놀아야 된다”라든지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해야한다”라든지 “지금 열심히 일해야 나중에 인생을 즐길 수 있다”라는 등의 말들은 모두 같은 문맥에서 <순간 만족>을 비난하고 <지연 만족>을 권장하는 말들이다. 물론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를 빼놓을 수는 없다. 게다가 Walter Mischel의 유명한 <Standford marshmallow experiment>는 <지연 만족>이 장기적으로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연구함으로써 과학적인 측면에서 이쪽 진영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렇다면 <순간 만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까? <순간 만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정의에서 비롯된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순간 만족>은 게으름이나 이기심 또는 근시안적인 사고와 동의어가 아니다. <순간 만족>의 올바른 정의(definition)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을 향유하는 것’이다. 평생 일만하다가 병들어 죽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열심히 일한다고 왜 놀 시간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인가? 평생 많은 돈을 모아놓고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죽는 오류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되, 오늘 나 자신을 위해 가끔은 쓸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정작 가족생활과 인간관계에는 실패한 유명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목표를 향해 결연한 의지로 돌진하되, 가끔은 그 목표와 상관없이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면 왜 안된다는 말인가?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라는 유명한 격언을 여기에 추가해 놓자.
필자의 해결책은 논리학에서 ‘황소의 두 개의 뿔 사이로 피하기’(go between the horns and deny that) 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필자는 이 두 가지의 입장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것은 그릇된 이분법(false dichotomy)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용어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이지 본질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만족>도 필요하고 <지연 만족>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얼마나 온전히 즐기면서 가치있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 노승문 - 시인, '시.6.토론토' 동인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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