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장물을 유산으로?

● 칼럼 2013. 6. 9. 19:27 Posted by SisaHan
얼마 전 여행길에 만난 가이드는 뜻밖에도 ‘거물’이었다. 그는 부친이 경찰 책임자였는데, 자신은 육사를 나와 특수훈련까지 받은 지휘관으로 영관급 ‘하나회’ 출신이라고 당당히 자신을 소개했다. 더욱 힘이 들어간 것은 5공 정권의 주역으로 ‘각하’를 지근거리에서 모셨고, 청와대에서 ‘영부인’의 부속실 현역 비서관으로 권력 뒤편에서 많은 ‘거사’를 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수없이 5공 청산이다 뭐다 해서 갑자기 잡혀가 감옥살이를 하는데 어느 날 불려나와 건네주는 여권만 받고 하루아침에 외국으로 쫓겨났다고 했다. 그래서 수십년 고국에도 못가고 이렇게 살아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설마 이런 여행길에 저런 거물 가이드를 만나다니… 동승한 여행객들 가운데는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동키호테’ 를 만난 듯, 대놓고 싸울 수도 없으니 ‘화려 찬란한’ 자화자찬을 시달갑잖은 표정들로 그냥 두고 볼 수 밖에-. 그랬다, 그는 정말 동키호테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가이드들의 공통분모처럼 여겨지는 입담 좋은 것과 고객서비스를 따지자면 평균점을 받을 만 했다고 볼지 모르나, 여러 어른들 면전에서 ‘천방지축’인 언행에다, ‘그 시절’의 무용담을 무슨 훈장처럼 쉼없이 자랑스레 떠들어대니, 시대와 개념인식이 도통 현 시류와는 거리가 먼 5공을 맴도는 것이, 정말 가관이었다.
그런 그가 “시끄럽게 하는 놈들 다잡아다 5공 때 삼청교육대처럼…” 운운하는 말은 ‘국가평안’을 바라는 군인정신의 발로에서 나온 격한 농담이라고 치부한다 치자. ‘영부인’을 모시며 했었다는 ‘새벽 2시의 만찬 초대’ 어쩌구 하는 ‘재벌들 훌치기’ 작전담은, 살벌했던 그 시절의 권력과 돈에 썩어빠진 군사독재 권부의 치사한 뒤안길을 다시금 생생히 상기시켜 주었다. 그들이 그렇게 훌치기 수법으로 긁어모은 돈을 정당성 없는 권력유지를 위해 사방에 뿌려대고, 천문학적인 액수는 자기들 뱃속에 쳐 넣어 지금껏 그 구린내가 천지를 진동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부정한 권력과 방법으로 착복한 거금 가운데,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대법원이 부과한 추징금 총액은 2,205억원이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2,398억원을 부과받아 지금까지 231억원의 잔액을 남겨두고 있다. 반면 전두환은 지금까지 검찰의 징수에 532억원 만을 ‘빼앗기듯이’ 납부했을 뿐, 아직도 더 토해내야 할 잔액은 정확히 1,672억 2,651만 5,564원에 이른다. 그는 그럼에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며 수년째 버텨 ‘29만원 대통령’으로 불린다. 당시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호화 골프를 즐기는가 하면 유명 음식점을 드나들면서도 나라에 돌려줄 돈은 땡전 한푼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휘젓고 리더쉽이 탁월했다는 ‘사나이’ 답지않게, 사실은 ‘천하의 졸장부’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이상하다. 
돈을 돌려주거나 갚으면 빌려간 것 혹은 납부이므로 불법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몰래 돈을 챙긴 것도 불법인데, 돌려주지도 않는다면 그건 분명히 도둑이고 사기범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틀림없는 국민의 돈 일텐데 꼭꼭 숨겨놓고는 ‘배 째라’라고 하면 도둑도 상도둑 아닌가. 
더구나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시치미를 뗀다면 그 자손이 두고두고 뱃속 편히 잘 살까?. 대대로 ‘도둑의 장물’, ‘도둑집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살 터이니, 오욕을 유산으로 떠넘기는 참으로 가련한 배짱이다.
 
둘째 아들이 증여받은 돈 때문에 징역형을 산데 이어 장남도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만든 사실이 밝혀져 떠들썩하다. 뚜렷한 사업성공을 이룬 적도 없는데 천억대 재산가이고, 해외 조세회피처 유령회사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면 그 재산에서 아버지의 ‘도둑질 유산’의 냄새를 맡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오는 10월로 임박한 추징시효 종료를 앞두고 뿔난 시민과 언론의 은닉재산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도 추적에 팔을 걷어부쳐 귀추가 주목된다. 이제라도 도둑의 오명만은 벗어 던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참 군인이요, 대장부답지 아니할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