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1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내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브라질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7살과 5살 된 두 딸과 함께 우리 부부가 브라질 쌍 파울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던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LA를 거쳐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 이름을 바꿔야 했다. 이유는 쌍 파울로에 나와 이름이 같은 목사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를 초청했던 목사님이 함께 비행기에 타고 가면서 제안한 아이디어가 내 이름을 브라질식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순간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 마음에 떠올랐는데 그 이름이 바로 바나바였다. 몇 가지 이유로 바나바를 평소에도 좋아했었다. 나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구브로 라는 섬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나도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랐다. 제주도가 항상 마음의 고향으로 나의 삶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의 본명은 요셉이지만 별명이 바나바이다. 본명보다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 바나바이다. 바나바라는 뜻이 ‘권위자’ 즉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주어졌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선뜻 나의 브라질 이름을 바나바로 정하고 그 때부터 브라질을 나올 때까지 강 바나바 목사로 불리어졌었다. 

사실 바나바는 초대교회에서 많은 영향력을 주었던 지도자이다. 그의 밭을 팔아서 헌금을 하기도 했고 사울을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이도록 성도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켰던 사람이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주님을 만나고 나서 참회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이기를 꺼려하였다. 이때 바나바가 중간에 화해자로 나서서 사울을 옹호하고 그의 변화는 진심이라고 호소를 하였다. 만일 바나바가 사울을 믿어 주고 교회에 받아주도록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택한 귀한 사람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교회가 편견과 차별적인 분위기에 젖어 들었을 때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덮고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도록 하는 데는 바나바의 포용력과 넓은 마음이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울이 바울이 되고 이제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인기가 바울에게 집중할 때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바울을 위해 박수를 치며 축하할 줄 아는 사람이 바나바이다. 1인자의 자리를 물려주고 2인자의 자리에서 1인자를 도우며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 바나바이다. 

바나바는 화해자이다. 화평케 하는 능력을 가진 자이다. 광야의 길과 같고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사람이다.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 슬픈 사람에게 찾아가서 함께 말은 없어도 그 슬픔을 나눌 줄 아는 사람, 목말라하는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할 줄 아는 사람, 진실로 자신의 가슴을 열고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바나바이다. 오늘날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능력있는 사람, 권위있는 사람, 재능있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광야 같은 이민생활에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바나바가 되면 안 될까? 우리 모두가 바나바가 된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 강성철 목사 - 우리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