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연예인 참가자들에게 장래희망을 일일이 물어보았다. 일부는 진지하게 또 소수는 오락적인 답변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중에 가장 반전을 일으켰던 장래희망은 요즘 대세를 이룬다는 걸 그룹 중의 한 멤버가 대답한 ‘현모양처’였다. 상상외의 답변에 좌중은 웃음바다를 이루었으나 정작 본인은 진지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보인 진지함 마저 오락적 연출인지 아닌지 불분명했지만 화려함의 극치에 있는 소녀의 답변에서 나는 한 생각을 키워보았다. 현대적 감각을 가진 현모양처는 어떤 모습일까, 혹시 이웃의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요즘 눈여겨보는 젊은 여인이 있다. 향기로 말한다면 바닐라나 오렌지 향보다 라벤더 향에 가깝고, 꽃으로 치면 목련이나 장미보다 해바라기 꽃 같은 건넛집 여인이다.
그녀는 서른 중반의 연령대에 S라인 몸매를 가졌으며 미모라고 할 수는 없으나 세련미를 겸비했다. 사회생활을 한다면 전문직에 종사할법한데 전업주부로 돌아와 육아에 전염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가정을 이끌어 가는 솜씨는 수십 년 경력자인 나 보다 훨씬 월등해 보인다.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차고 안을 우연히 들여다보면서 부터였다. 흔히 창고로 사용하는 차고의 벽면을 마치 상품 진열장처럼 깔끔하게 손질 해 놓은 살림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허접한 물건들이 모이는 곳임에도 주부의 손길이 자주 미치지 못하는 곳이 창고이다. 하지만 그곳조차 삶의 군더더기를 허용 않는 그녀의 성품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났다. 정원 일을 하는 날은 하루 종일 숙련된 조경사의 솜씨로, 집 외관을 손 볼 때는 남편과 똑 같은 역할을 하며 적극적으로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
또한 그녀는 대인과의 교류를 절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손님의 방문도 그렇다고 외출도 잦지 않다. 자신의 대외활동으로 인해 가족들이 혹시 모를 불편을 겪게 되거나 그들을 소홀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깔려있음이리라. 대신 언제 어디서나 네 식구가 똘똘 뭉쳐 무엇이든 함께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녀의 일과 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여가시간 활용이다. 정오가 되면 나는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 하고 출근길에 오르지만 그녀는 대문 앞 돌계단에서 태양열을 쪼인다. 차를 후진하면서 온몸으로 태양 에너지를 흡입하는 그녀를 훔쳐보는 것은 부러움이면서 즐거움이다.
보통 홀로 자유를 만끽하는 그 시간엔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던 그녀가 오늘은 웬일로 한 뼘도 안 되는 핫팬츠에 끈 달이를 걸쳤고 챙 넓은 밀짚모자를 얼굴에 가렸다. 그리고 다리는 최대한 벌린 상태로 상체를 뒤로 젖힌 포즈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포즈가 다소 강렬해도 그녀는 요염하거나 헤프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힘겨운 오전이었음을 연상하게 한다. 그녀만의 독특한 치유법인 셈이다.
현모양처의 변화된 모습은 매사 소극적에서 적극적으로, 절대 희생에서 상생으로 그리고 자부심과 열정으로 건강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그녀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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